소설가의 소설가의 소설가의

소설가의 소설가의 소설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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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된다는 건 끝내주게 즐거운 일이다. 대다수의 소설가들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소설을 써서 먹고사는 삶이 너무 행복했던 것을. 사실 이 ‘먹고산다’는 부분이 중요한데, 아마 내 말에 반대했던 많은 소설가들도 소설만 써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생각을 달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단순히 먹고사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성공한 내 경우엔 소설가로 산다는 게 당연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런 삶이 지속되었다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이제 그런 복 터진 소설가로서의 인생과 작별을 고했다. 스릴러 장르의 신이라 불리며 책을 내는 족족 국내외 베스트셀러를 만들던 소설가 두미르로서의 삶은 이제 없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맹렬하게 소설을 쓰며 열정을 불태운 결과로 얻은 것은 소설 쓰기에 대한 무기력증이었다. 물론 부와 명예를 손에 넣고도 여전히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는 소설가들도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신작들을 쏟아내는지, 그들이 장착한 ‘소설 엔진’은 죽음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꺼질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작가들을 소설 쓰는 기계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비슷한 주제나 소재를 우려먹는다는 비판도 있다. 젠장. 그래도 나는 그들이 부럽다. 미치도록 부럽다. 나는 그들이 기계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사람일 거라고 믿는다. 밥 먹고, 잠자고, 볼일을 보는 인간 말이다. 다만 그들은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 같은, 남다른 엔진을 장착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걸 소설 엔진이라고 부른다. 

 

내가 장착했던 엔진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 나도 한때는 미친듯이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어 버려서 내 손가락의 움직임을 내 의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던 시절… 내가 왜 머릿속 아이디어보다 키보드 얘기를 먼저 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고백하건대 창작욕은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 앞에 앉는 데서 시작하는 거다. 무엇을 쓰겠다는 의지가 신체 활동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소설 엔진의 유일한 기능이다. 이렇게 허탈할 정도로 단순한 장치가 고장나 버리면 아무리 머릿속에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밖으로 풀어 놓을 재간이 없다. 

 

아무튼 그리하여, 등단 20년 만에 나는 절필 선언을 해 버렸다. 글을 쓰지 않는 고통보다 글을 쓰는 고통의 크기가 더 크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내 곁에 두 사람, 남편 김유신과 나의 오랜 친구 허사장이 내 선택을 응원해 주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꿈꾸던 삶이 있었던지라, 나와 함께 해외를 떠돌며 살아 볼 생각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남편도 프리랜서 개발자여서 우리 부부는 비교적 자유로운 업무 환경 속에서 일하며 지내왔지만 결혼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일주일 넘게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긴 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일단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하면 환경 변화에 굉장히 예민해지는 데다가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쓰는 스타일이다 보니 어디로 떠난다 해도 내겐 득 될 게 전혀 없었다. 남편은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해외 이런저런 나라에서 살아 보기를 무척 바랐다.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집을 렌트하고 현지 시장에서 장을 보고 그 나라 사람들을 사귀는 삶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동경해 왔다. 나는 뭐든지 빨리 돌아가는, 24시간 안 되는 게 없는 서울의 삶에 평생을 길들여진 사람이라 낯선 땅에서 적응해 내며 사는 게 조금 두려웠다. 하지만 한껏 들뜬 남편의 모습을 보다 보니 소설을 쓰지 않는 텅 빈 시간을 생경한 경험으로 채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은퇴 기념으로 그동안 배려해 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긴 여행을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의지와 그에 필요한 여행 자금을 모두 대겠다는 배포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갈 곳은 정했고?”

 

절필 선언 기념으로 허사장이 와인 한 병을 들고 찾아왔다. 사실 그런 건 다 핑계일 뿐, 허사장은 종종 우리집에 술을 마시러 들렀다. 얼큰하게 취한 날은 손님방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 나는 부러 더 허사장의 술잔을 빨리 채워 주곤 했는데 다음날 아침 허사장이 끓여 주는 해장국이 워낙 별미이기 때문이었다.

 

“난 호주나 캐나다가 좋은데, 유신옹은 유럽에서 두루두루 살아보자고…”

 

슬쩍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유신옹은 허사장과 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다. 우리 둘보다 고작 세 살 위지만 남편은 어딘지 모르게 행동거지가 노인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뭐랄까. 젠틀한 노신사 같은 느낌?

 

“유럽도 좋지. 옮겨다니는 재미가 있겠네.”

 

허사장이 와인 한 잔을 비우며 말했다. 

 

“유럽까지 가서 바리바리 짐 싸서 이사다녀야 하는 거야?”

 

“짐을 적게 가져가면 되지. 운전도 내가 다 할 텐데 뭐.”

 

내가 조금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묻자 남편이 달래듯 말했다.

 

“기간은 얼마나 되려나. 일 년? 이 년?”

 

허사장의 질문에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바라볼 뿐 누가 먼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뭐야. 그 정도도 대중없이, 그냥?”

 

“어, 뭐. 응.”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남편은 외려 그래서 더 좋다는 듯이 벙긋 웃어 보였다. 그런 남편의 표정에 허사장이 반응하며 말했다.

 

“좋겠다. 나도 그렇게 훌쩍 떠나 보고 싶네.”

 

“같이 가자니까.”

 

“내 사정 알면서.”

 

허사장은 일 년 전에 사업을 정리한 뒤로 여전히 백수 신세였다. 십 년 이상 버텨 온 일인 출판사를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직원 한 명 없는 회사였다고는 하나 그동안 출간한 책도 꽤 되었고 책을 고르는 안목도 있어서 출판사를 믿고 책을 사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 수가 너무 적은 탓에 인건비 뽑기도 어려운 날들이 태반이었다. 결국 허사장은 자기 자신을 해고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여전히 허사장을 허사장이라고 불렀다. 

 

“친구 뒀다 뭐해.”

 

남편이 넌지시 말했다.

 

“유신옹, 말은 고맙지만 회사 힘들 때 얘가 도와준 게 얼만데 나도 염치가 있지. 됐어.”

 

허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널 도와준 게 아니라 투자한 거지.”

 

“근데 한푼도 못 건졌잖아.”

 

“왜,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이 덕분에 나왔는데.”

 

그동안 해외에서는 유명하지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장르 소설들을 실컷 읽을 수 있었던 건 다 허사장의 열정과 헌신 덕분이었다. 나는 훌륭한 번역가를 구하는 일에 몇 번 나섰을 뿐이었다. 돈 많은 탐독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럼, 더 읽어 볼래?”

 

“응?”

 

“소설 말이야.”

 

허사장이 와인잔을 흔들며 말했다. 어쩐지 말투가 제법 의미심장했다.

 

“괜찮은 소설을 찾아 헤매는 건 이제 나도 지쳤어. 대신 괜찮은 소설이 먼저 찾아오도록 만들 수는 있지.”

 

나는 남편과 눈빛을 교환하고서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허사장에게 미소를 건넸다.

 

“내 힘으로는 부족했어. 출판사도 영세하고 좋은 소설들을 끌어당길 힘이 없었지. 그치만 넌 달라.”

 

흥미를 보이는 내 표정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허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한국 장르 소설의 대가, 두미르. 절필 후 후진 양성을 계획. 실력 있는 후배 작가들에게 출판의 길을 열어…”

 

“잠깐”

 

남편이 끼어들었다.

 

“출판사를 다시 한다는 거야? 미르랑 같이?”

 

“꼭 그런 건 아니고.”

 

허사장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책을 내려면 구색은 갖춰야겠지만, 평범한 출판사는 아니지. 중요한 건 공모전이니까.”

 

“공모전?”

 

“두미르의, 두미르에 의한, 두미르를 위한 공모전.”

 

허사장은 씩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와인병을 들었다. 빈 잔에 와인이 한두 방울 떨어지다 말았다. 우리는 다른 병을 땄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확실히 취한 밤이었다. 상상에 취한 밤. 

 

그날 밤 우리가 나눈 대화는 여행보다 더 나를 설레게 했다.

 

 

 

 

허사장의 제안은 간단했다. 일 년에 한 번씩 내 이름을 걸고 공모전을 하자는 거였다. 상금은 내가 원하는 액수로 정하면 되고 출판 쪽이야 자기가 전담할 테니 문제 없다면서, 두미르라는 이름의 파워가 있으니 처음에만 투자하면 적자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나는 허사장의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절필 후 독서에 매달리던 참이었다. 그나마 소설을 쓸 때는 다방면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었는데 내 소설을 그만 쓰게 되자 이상하게도 오직 소설만이 읽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소설을 다 읽어 치우겠다는 듯이 게걸스럽게 책을 읽다 보니 사들이는 권수도 만만치 않아서 백 평이 넘는 집인데도 걸을 때마다 발에 채이는 게 책이었다. 그래도 갈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렇게 기가 막힌 제안을 들었으니…. 나는 왜 진즉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공모전이나 출판업으로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돈이라면 이미 넘치도록 많았다.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이라면 한푼도 받지 않고 출간해 주리라.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양껏 읽을 수 있는 내 취향의 소설들이었다. 공모전을 열면 그런 소설들을 실컷 읽을 수 있을 터였다. 소설들이 제발로 나를 찾아올 테니까.

 

이런 생각으로 잔뜩 부풀어 있는 마음이 여행 따위에 틈을 허할 리 없었다. 첫 거점인 런던에서 머무는 삼 개월 동안 나는 도통 내가 머무는 곳의 정취를 즐기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어떻게 공모전을 꾸릴지 고민하거나 미친듯이 전자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프랑스였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무슨 수로 이동했는지도 그저 희미하게만 생각날 뿐이다. 그렇게 파리에서 또 몇 달을 보내던 어느 날, 이차선 도로 너머 에펠탑이 빛나는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미르 넌 돌아가.

 

나는 당황해서 눈만 끔뻑거렸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남편이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정말?

 

그래.

 

혼자 어떡하려고?

 

뭘 어떡해. 좀 더 돌아다니다가 갈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만 달싹였다.

 

괜찮으니까, 가.

 

남편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 정말…

 

그때 가지 않겠다고 해야 했을까?

 

정말 고마워.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다고 해야 했을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나는 남편의 팔을 힘주어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삼 일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홀로 올랐다.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원하는 주제를 올릴 거야. 매달 주제별로 마감하고 연말에 당선작을 뽑는 거지. 어때?”

 

“매달 마감을 한다고?”

 

“응.”

 

허사장이 한숨을 쉬며 내 천진한 생각을 꾸짖듯 말했다.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여행에서 돌아온 나를, 허사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맞이해 주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집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짰다. 

 

“그건 미르 너나 가능한 거지. 어떻게 공모전 주제를 보자마자 한 달 만에 책 한 권을 써?”

 

한창때인 작가가 그것도 못 쓴다고? 나는 그런 작가가 쓴 소설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속도감과 광기가 묻어나는 짜릿한 소설이 필요했다. 

 

“그럼 단편으로 하든지. 다섯 편 정도 모아서 단편집으로 만들면 되잖아.”

 

“난 장편을 읽고 싶단 말이야.”

 

물론 평소라면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읽어 댔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손에 두툼하게 잡힐 멋진 원고를 상상하기만 해도 침이 꿀떡 넘어갔다. 이건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공모전이 아닌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무조건 장편. 대신 주제는 일 년에 한 번씩 모아서 올릴게. 매달 정해진 날짜에만 접수하고.”

 

“왜 꼭 매달 작품을 받아야 해? 차라리 연말에 몰아서 받는 게 편할 텐데.”

 

“그래야 일 년 내내 꾸준히 읽을 수 있지.”

 

내가 뭘 모른다는 듯이 허사장을 나무라자 허사장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래. 아예 그 컨셉을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은퇴한 소설가를 구해주세요. 새로운 소설에 목말라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선보인 적 없는 날것 같은 소설! 생각만 해도 신난다.”

 

나도 허사장의 장단에 맞추어 마치 피를 탐하는 드라큘라처럼 입맛을 다시며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퇴한 괴짜 소설가로서의 내 캐릭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상금 액수는 2천으로 하고, 인세는 보통 상금을 초과하는 수익이 났을 경우…”

 

“상금 3천으로 하고, 인세는 그냥 지불하자.”

 

“그냥? 1쇄 수익에서 상금 금액만큼 공제하고 주는 게 대부분…”

 

“좋은 작품이 다른 데 안 가고 나한테 오게 하려면 더 좋은 조건을 내걸어야지. 소설 쓰는 것도 노동이야. 노동을 받쳐 주는 건 보상과 성취감이라고.”

 

“그러다가 적자 볼 수도 있어.”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그 순간 내가 가장 (그리고 오직) 걱정했던 부분은 적자가 아니라 응모작들의 수준이었다. 혹여 만족스러운 작품이 하나도 없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매달 접수된 작품 중에 몇 편 골라서 내가 작성한 심사평을 이메일로 보낼 거야.”

 

“이메일로?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게 아니라?”

 

“그럴 필요 있나? 내가 지적한 부분들을 고쳐서 다시 응모할지도 모르는데.”

 

허사장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할 거라는 공지만 올리지 뭐.”

 

“그리고 내가 직접 접수받을 거니까 꼭 필명으로 보내라고 하고. 아는 작가면 곤란하잖아.”

 

“그러네. 연락처는 이메일만.”

 

그제야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미르 공모전. 표면상 출간에 목마른 작가 지망생들이나 기존 작가들에게 시장의 문을 열어 준다는 취지였지만 사실 그 이면엔 내 구미에 맞는 따끈따끈한 소설들을 원 없이 읽어 보겠다는 욕망이 드글거렸다. 

 

그렇게 두미르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작품 수준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공모전을 열고 나서야 나 두미르 이후 장르 문학 시장에서 이렇다 할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귀신이 씐 것처럼 밤낮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 걸까. 단순히 글을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게 아니라 매혹적인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 사람들. 그들은 나의 충실한 소설가들이었다. 

 

두미르 공모전 홈페이지를 만들고 친한 기자 두어 명에게 소식을 전하자 바로 반응이 보였다. 공모전 첫해이니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허사장의 말에 요청이 오는 대로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 공모전 정보 사이트에만 소식이 올라가도 효과가 없지 않았을 테지만 이왕이면 좀 더 그럴듯해 보이는 게 좋으니까 나도 최선을 다해 홍보에 임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7월 1일 첫 달 접수일에 무려 99편의 작품이 들어왔다. 허사장은 한 달 내로 99편을 다 읽어 내는 건 무리라며 공지를 띄우자고 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래 봤자 하루에 서너 권이잖아. 걱정하지 마. 충분해.”

 

그리고 내 말이 맞았다. 시간은 충분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한 권, 아침 겸 점심으로 식사 후 한 권, 저녁 식사 전까지 한 권,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잠들기까지 한 권을 더 읽었다. 술맛보다 책 맛이 더 좋아서 술을 거르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애주가로서의 본분도 망각한 채 소설들을 읽어 치운 나는 정확히 25일 만에 읽을거리가 떨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때? 이제 시작인데, 소감이?”

 

99권의 응모작을 모두 읽어 낸 날, 허사장과 함께 와인을 땄다. 소설을 쓸 적에는 잠들기 전에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주 술잔을 들곤 했다. 머릿속에서 계속 이야기를 굴리다 보면 이야기 스스로 굴러갈 동력을 만들어 내는 바람에 억지로 멈추게 하지 않으면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럴 땐 역시 술이 최고였다. 

 

소설 읽기에 빠져 사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나에겐 소설을 읽는 행위가 술을 마시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한 달 치를 다 읽어 버린 지금, 나는 다시 술이 필요했다. 

 

“형편없는 것도 꽤 있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재밌어. 조금만 손보면 아주 괜찮을 거 같은 작품들도 있고. 일단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좋아.”

 

소설 엔진이 수명을 다한 것일 뿐 소설에 대한 감은 여전한 터라 내 눈엔 정확히 어디를 어떻게 더하고 빼고 고쳐야 할지가 빤히 보였다. 

 

“다행이네. 그럼 말일까지 심사평 써서 보낼 생각이야?”

 

허사장이 술을 따라 주며 물었다.

 

“응. 지금 골라 놓은 건 아홉 편이야. 볼래?”

 

“나중에. 요즘은 소설이 머리에 안 들어온다. 골치 아픈 일이 많아서.”

 

허사장은 독신이었지만 부모님과 자매들을 둘러싼 가정사가 복잡했다. 평생 애증의 관계였던 아버지가 근래 몸이 안 좋아지신 것도 허사장을 괴롭히는 문제 중에 하나였다. 나는 다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일독을 권하지 않았다.

 

“가끔은 부럽다. 소설가 두미르의 인생이.”

 

와인잔에 남은 술을 한입에 비워 내며 허사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괜한 소리.”

 

“왜, 좋잖아. 그토록 좋아하는 소설 원 없이 쓰고 원 없이 읽고, 돈도 많이 벌고…”

 

나는 와인잔을 흔들며 그 안에서 찰랑이는 붉은 색 와인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가끔 내 인생이 실체 없이 느껴지기도 하는 걸.”

 

“실체?”

 

“그래. 허사장 말대로 매일 쓰고 읽고 쓰고 읽고, 그것밖에 없잖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그래서 내가 불행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외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불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몰입의 쾌감과 쏟아지는 찬사를 누리며 느끼는 성취감 사이에 생겨난 작은 구멍에서, 그렇게 바람이 빠지듯 허탈한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었다. 

 

“그런가.”

 

“난 친구도 자기밖에 없잖아.”

 

“그건 그렇지.”

 

허사장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용케 결혼은 했어.”

 

“아, 그건 소 뒷걸음질치다 쥐잡은 격으로. 운칠기삼이랄까.”

 

“에이, 그건 아니지.”

 

“그런가?”

 

“그럼. 운이 9할이잖아.”

 

“맞네.”

 

우리는 잔을 부딪히며 깔깔 웃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나는 나의 복 받은 삶에 감사하며 다시는 엄살을 피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홉 편에 대한 심사평을 모두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낸 후, 8월 역시 7월과 똑같은 패턴으로 보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한 달 내내 집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하루 한 번 샤워와 두 번 식사를 챙기는 것으로 일상의 리듬을 이어나갔다.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몸이 찌뿌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거의 똑같은, 인견 잠옷 위에 얇은 가운을 걸치고 안경을 추어올리며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차림새로 집안 곳곳을 뒹굴며 소설을 읽었다. 8월에 접수된 응모작은 총 55편이었다. 전달보다 내가 내건 주제에 걸맞는 작품이 많이 보였다. 사랑의 파국, 배신, 복수, 범죄 등을 다룬 이야기들. 아무래도 7월엔 기존에 써 둔 작품으로 응모한 경우가 많았던 듯했다. 다소 급하게 쓴 느낌은 있지만 초고의 생생함이 그대로 드러난 소설들 덕분에 8월도 흥미진진하게 보낼 수 있었다. 때로는 노련함보다 아직 농익지 않은 어설픈 기량이 더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20년 전에 썼던 내 소설도 비슷했다. 성급하고 기교가 없었다. 하지만 절정기의 작품보다 그 시절의 작품을 더 좋아해주는 팬들도 많았다. 나 역시 나의 초기 작품들을 유난히 아꼈다. 일단 한 번 능숙해지면 다시 어설퍼지기란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처음처럼 반짝이는 실수를 거듭 해내고 싶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9월이 왔다. 9월 1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었다. 총 33편. 허사장이 예상한 대로 점점 응모작 수가 줄다가 막판이 되어야 다시 늘어날 것 같았다. 서른세 편이라면 한 달 동안 아주 여유 있게 읽어 낼 수 있을 터였다. 느긋한 마음으로 응모작들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프린터 세 대가 열심히 돌아갔다.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따른 잔을 한 손에 쥐고서 가장 빨리 출력된 원고를 집어 들었다. <8976킬로미터>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다. 나는 레이지 보이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앉아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처음 몇 장은 문장이 좀 거슬렸다. 문체가 단조로운 데 비해 한 문장 한 문장 힘이 너무 들어가 있는 터라 술술 읽히질 않았다. 마치 독자가, 그러니까 내가 초반만 읽다가 별로라며 내팽개칠까 봐 걱정된 나머지 부러 자기 능력을 애써 과시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곧 사건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야기가 문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8976킬로미터는 서울에서 파리까지의 거리였다. 소설의 주인공은 십 년차 부부. 이야기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던 남편 A가 갑자기 파리로 발령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인 B는 얼마 전 자기 회사를 설립하여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철마다 파리와 서울을 왕복하며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번번이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1년 넘게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A는 파리에서 새로운 여자 C를 만난다. A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B의 사업은 승승장구한다. A는 C와 함께 파리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그러자면 돈이 필요하다. A는 자신의 부인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8976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8976킬로미터>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살해 동기는 돈이나 치정. 가장 가까운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을 끝까지 배제해선 안 된다. 정교한 트릭을 쓰진 않지만 대범하게 힌트를 던져 놓고 독자의 추측을 몰이하는 스타일도 비슷했다. 하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고 했던 욕심이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쳐내도 될 곁가지 에피소드를 너무 많이 만들었고, 보란 듯이 배치한 힌트를 숨기려고 결코 수습하지 못할 미끼들을 마구 던져 놓는 우를 범했다. 이야기는 점점 혼돈을 몰고 왔고 거듭되는 혼돈은 짜증을 불러일으켰고 그러다가 저절로 맥이 풀려 버렸다. 결국 막판에 이르러서는 다시 이야기가 문장에 잡아먹히게 되었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소설이었다.

 

다른 원고를 하나 더 볼까 하다가 영 기분이 내키지 않아서 와인을 땄다. 유난히 떫은 맛의 레드 와인이었다. 탄닌 함량이 높은 묵직한 와인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남편의 취향이었다. 입 안에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생각했다. 프랑스에서 와인은 실컷 마시고 있겠네. 와인 취향이나 좀 바꾸고 왔으면.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씻고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할 법한 시간이었다.

 

– 봉주르~!

 

5분 뒤 메시지 창에 부은 눈으로 양치질을 하는 라이언 이모티콘이 떴다.

 

– 이제 일어났어?

 

– ㅇㅇ

 

 – 오늘 외출 예정?

 

– 응. 오늘부터 위워크로 출근.

 

– 아, 오늘부터구나.

 

– (컴퓨터 앞에서 불꽃이 튀도록 미친 듯이 일하고 있는 라이언 이모티콘)

 

– 저녁에 영상 통화 할까?

 

–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잖아. 지금은 나 늦어서 안 되고 내일 아침에 하자.

 

– 아니야. 알람 맞춰 놓으면 돼. 그쪽 시간으로 7시 어때?

 

– 저녁까지 일할 수도 있어서. 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냥 내일 아침에 하자.

 

– 그래 그럼.

 

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이상하게 기분이 찜찜했다. 남편은 파리에 홀딱 반해 버린 듯했다. 그곳에 더 머물 요량으로 현지에서 가볍게 할 만한 일을 찾다가 무슨 레스토랑의 홍보 앱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서로 떨어져 지낸 지도 벌써 반년이나 되었다. 남편은 언제든지 내가 돌아오라고 하면 바로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차마 먼저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그 여행을 얼마나 기대했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하고 얼른 돌아오라니, 그것도 오직 나를 위해서. 둘이 함께했던 여정에서 도망치듯 혼자 빠져나온 사람이 할말은 아닌 것 같았다. 

 

문득 <8976킬로미터>의 결말이 떠올랐다.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하던 B는 로라제팜이 든 와인을 마시고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그대로 실종된다. 남편 A가 파리에서 C와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B의 시체는 바닷속 깊이 잠들어 있다. 시간이 흘러 C가 임신을 하고, 만삭인 C의 배를 어루만지며 행복해하는 A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동틀 무렵 수면 위로 떠오른 B의 시체 가까이로 저편에서 어선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나는 잔에 와인을 가득 붓고는 꿀꺽꿀꺽 삼켜 냈다. 

 

이 소설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설마 나를 아는 사람이 의도하고 쓴 글일까. 

 

에이, 설마.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남편이 파리에 있다는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내 입으로 내가 떠들었으니까. 공모전 홍보를 위한 인터뷰에서 말이다.

 

그럼 내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 설정을 택한 걸까.

 

어떻게든 심사위원 눈에 띄어 보려는 궁여지책이었을까.

 

와인을 한 병 더 땄다.

 

식탁 의자에 앉아 저쪽 거실 소파 위에 놓여 있는 <8976킬로미터>의 원고를 쏘아보았다. 

 

A는 어떻게 8976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B를 죽일 수 있었을까.

 

공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B의 유일한 혈육이자 평생의 골칫덩이인 망나니 남동생 D.

 

B는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다.

 

어쩌면 B에게 가장 애틋한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남동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D는 매형의 꼬임에 넘어가 누나를 살해한다.

 

약에 취해 기절한 누나의 다리를 쇠사슬로 묶고 바닷속으로 던져 버린다.

 

언제나 우리의 심장을 찌르는 칼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8976킬로미터>는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새로 채운 술잔을 비우자 내 몸이 바닷속 깊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9월엔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33편의 응모작을 모두 읽어 냈다. 여유롭게 심사평을 쓰다 보니 당초 의도했던 5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심사평까지 작성하게 되었다. 딱 하나, <8976킬로미터>만 빼고 말이다. 

 

나는 <8976킬로미터>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노력했다. 유난히 남편이 그리워 잠 못 이루는 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B의 시체를 떠올리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엔 그럭저럭 그 기분 나쁜 소설을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부디 10월에는 잡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소설들이 많이 접수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10월 1일 메일함에 접수된 응모작 수는 겨우 11편.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모처럼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 들어오긴 했는데 그다지 참신한 느낌이 들지 않아 더욱 아쉬웠다. 

 

<s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