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 (제1회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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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빨간 페라리 한 대가 테헤란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대기를 뒤흔드는 엔진음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량을 따라 원위치로 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 몰려가는 경찰차들은 우사인 볼트를 뒤쫓는 마라토너처럼 보였다.

길 가던 사람 중 스물일곱 명은 무슨 일인가 싶어 휴대전화로 검색을 해보았고, ‘<긴급> 대담한 나 홀로 은행털이범 경찰 추격 중’이라는 기사를 접할 수가 있었다. 기사에는 동영상이 함께 실려 있었는데, 월 십만 원에 육박하는 무제한 데이터요금을 사용하는 세 명만이 그것에 손가락을 가져다 댈 수 있었고, 재생되는 동영상을 놀랍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남자는 K2 소총으로 하늘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하고는 은행직원들 하나하나에게 뭐라뭐라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마치 사장이 부장에게, 부장이 과장에게, 과장이 대리에게, 대리가 사원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는데, 은행직원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자 그가 던져준 자루에 돈다발이 차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 동영상의 백미는 남자가 창구 쪽으로 훌쩍 뛰어넘어 와 책상 밑의 버튼, 그러니까 경찰에게 신고를 할 때 쓰는 것으로 보이는 버튼을 직접 누르는, 교만인지 자만인지 혹은 개인적인 일탈인지 모를 행동이었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동영상을 보고 난 총평과 페라리의 먼 뒤꽁무니를 찍은 사진, 그리고 무능한 경찰 운운하는 욕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 중 하나가 원중의 눈길을 끌었다.

‘이 사람 지금 자기가 하는 게 무슨 게임인 줄 아나 본데요?’

세상 참 좋다.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원중은 휴대전화를 조수석에 내려놓고 핸들을 틀어 중앙선을 넘어갔다. 맨 뒤꽁무니에 붙어 있던 차가 반대 차로를 타고 앞으로 기어 나오자 운전자들의 입에서 맹렬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가 아아, 하는 탄식으로 바뀌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차종의 앞에는 두 발로 선 검은 말 한 마리가 떡 하니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성공이었지만 사실 좀 난감했다. 은행털이가 이렇게까지 난이도가 높은 작업일 줄은 몰랐다. 은행에서의 행동을 하나의 매끄러운 동선으로 만드는 데에만 십 수 번의 시도가 필요했다. 엉겁결에 은행직원을 총으로 쏴버린 적도 있었고, 경찰이 들이닥쳐 대치 상황에 접어들기도 했으며, 준비한 자루가 커서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수가 없어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은행을 터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니 막상 성공 후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헤아려 놓은 바가 없었다.

지금 몰고 있는 빨간 페라리도 문제였다. 경찰을 따돌리는 데에는 적합했으나 따돌리고 난 후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자신의 몽타주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는 수배자나 진배없었다.

‘다시 시작해?’

원중은 대시보드에 얌전히 올려 있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지금까지의 개고생이 떠올랐다. 다시 시도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나은 결과를 낼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조금 더 두고 보기로 마음먹었다. 원중은 ‘그것’ 옆에 놓인 담배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담배의 첫 모금을 깊숙이 빨아들이는데 백미러를 통해 살짝 경사진 뒤쪽 도로에서 경찰차가 떼로 몰려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원중은 담배를 던져버리고 신호가 바뀌는 동시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부우웅! 굉음과 함께 상체가 좌석에 파묻혔다. 다음번 교차로가 단 몇 초 만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원중은 핸들을 꺾었다. 페라리의 낮은 차체는 별다른 쏠림현상 없이 도로와 밀착된 채 차량을 이리저리 피하며 광란의 질주를 다시 시작했다.

이제 빨간 페라리는 논현과 신사를 지나 한남대교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경찰의 추격을 제외하고는 주위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원중은 경찰이 몰아가는 방향이 다리 쪽임을 깨달았다.

‘어쩌려는 거야? 다리라도 끊어 놓으셨나?’

원중의 이맛살이 잔뜩 우그러졌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라 한남대교라니…… 옆길로 빠져 압구정 쪽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유류 게이지가 거의 바닥을 가리키고 있는 걸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더 이상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원중은 경찰이 원하는 대로 한남대교를 향해 페라리를 몰아갔다.

다리 초입에서 일단 차를 멈춰 세웠다. 다리의 허리께는 소위 닭장차로 불리는 전경버스로 가로막혀 있었다. 일렬로 주차된 버스들은 종이 한 장 비집고 들어가기 버거울 정도로 앞뒤 간격이 조밀했다.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는 대응이었다. 어디선가 촛불이 타들어가는 듯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버스 지붕에서 무언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엎드려 있는 사람, 즉 저격수였다. 메가폰으로 투항을 권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머리 위로는 헬기가 선회하고 있었다. 뒤쪽에서 사이렌 소리와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미끄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원중의 입가에서 비릿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판은 막판에 아주 개판이었다.

원중은 가속페달을 발가락에 힘까지 줘가며 꾹 눌렀다. 아무리 개판을 쳐도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리의 4분의 1 지점을 지나며 원중은 손을 뻗어 ‘그것’을 집었다. 그런데 버튼을 누르려고 엄지를 들어 올리는 순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원중은 얼른 고개를 숙여 바닥을 더듬었다. 그 순간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이 날아와 운전석 머리받이에 박혔다. 동시에 탕! 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원중은 기겁을 하며 필사적으로 바닥을 훑었다. 죽어도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침내 ‘그것’이 손에 집혔다. 그는 지체 없이 버튼을 눌렀다.

2

그 날, 원중은 한남대교로 갔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죽으러 간 것도 아니었다. 뛰어들지는 않겠지만,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고 서 있으면 정신이 바짝 들 것 같았다. 다리 위는 컴컴한 가운데 굽은 가로등이 드문드문 오렌지빛을 뿌리며 서 있어 자못 감상적인 느낌이 났다. 헌병초소를 지나 본격적인 다리 위로 접어들자 바람이 심하게 불어왔다. 3월의 봄밤은 겨울의 꼬리를 물고 있었다.

아내가 일하는 곳은 다리 건너 백화점이었다. 원중은 다리 이쪽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다니고 있으니 그리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원중은 강을 넘어가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아내는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했다. 물론 말은 안 했지만 시선을 자주 그의 어깨너머로 넘기는 아내를 보며 그런 것쯤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원중의 입에서 나지막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아내와 연애를 할 때 입에 달고 살던 곡이었다. 그때가 좋았다.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두어 달 살고 나자 아내는 천사에서 전사로 돌변했다. 요즘엔 아내가 싫어하는 일을 피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살고 있다.

강 건너 스카이라인을 불구경하듯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문득 다리 난간 위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색 슬림핏 슈트를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였다. 강한 바람에 슈트자락이 폭 좁은 깃발처럼 격렬히 펄럭였고, 그에 따라 남자의 몸은 휘청거렸다. 원중의 걸음이 슬그머니 늦춰졌다. 설마하니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중은 다리에 온 것을 후회했다. 거긴 왜 갔어? 라고 아내가 물어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왜가리라고 있는데 말이지. 걔가 봄이 되면 한강에 찾아온다나 봐. 그래서 몇 마리나 왔나 한 번 가봤지. 안 그러면 내가 거길 왜 가리? 하하하.’

그러나 그건 망상 속에서나 가능한 헛소리였다. 현실에선 왜가리 입에 물린 조개처럼 입을 꽉 닫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죽은 사람 살리는 법은 없어도 죽으려는 사람은 말릴 수가 있었다. 자살방조죄던가? 죽으려는 사람을 막지 않으면 벌을 주는 법도 있었다. 그래, 아무리 삶이 각박해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지. 원중은 크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며 호흡법을 가다듬었다.

“저기, 아저씨……”

일단 불렀지만 다음 말은 생각해 둔 것이 없었다.

“그냥 가던 길 가세요.”

남자는 원중 쪽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가라고 했으니 가면 됐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껏 아부를 떨려다가 거절을 당한 모양새였다. 원중은 부아가 치미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가던 길이 없어요. 그러는 아저씨는 어디 가시는 길인데요?”

그제야 남자는 원중을 바라보았다.

“죽을래요?”

원중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남자의 억양에 시비를 거는 투가 섞여 있지는 않았다.

“죽으러 온 거 아니에요?”

남자가 재차 물었다. 그때, 남자의 몸이 뒤로 크게 기우뚱 기울었다. 남자는 몸을 원위치 시키기 위해 턱을 주욱 내밀고 팔을 휘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자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남자는 턱을 당긴 채 엉덩이를 바짝 끌어당겼다. 그렇게 그네타기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남자는 몸을 멈출 수가 있었다.

“와, 죽을 뻔했네!”

남자가 말했다.

“위험하게 거기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얘기 좀 해요.”

원중이 말했다.

“하나도 안 위험해요. 볼래요?”

남자가 씨익, 웃어 보이더니 바짓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그대로 점프를 했다. 남자는 허공에서 다리를 들어 올려 무릎을 구부렸다. 남자의 몸은 중력에 의해 떨어졌으며, 남자의 엉덩이가 난간에 부딪혔다. 순식간에 남자의 몸은 난간 위에 걸터앉은 자세가 되었다. 원중은 입을 떡 벌린 채 남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소 서커스 단원이었다.

“사실 세 번 실패했어요. 그 쪽이 본 건 네 번째 시도였고 보기 좋게 성공했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는 원중이 이해하건 말건 계속 혼잣말을 했다.

“강물로 뛰어내린 건 아까 것이…… 음…… 두 번째였네요. 잘 안 죽더라고요. 물만 무진장 먹었죠.”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