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병원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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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1

선생님, 당신께서 이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보인 깊은 인간애에 나는 탄복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나는 지금 무척 외롭고, 또 무섭습니다.

나는 지난 10년간 정신의 끈을 놓은 채 정처 없는 노숙 생활을 했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두려운 것도, 외로운 것도 모르는 들개처럼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선생님과 같은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보니, 나 스스로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점을 파고들며 무서운 기억들이 몰려왔습니다.

과연 이 얘기를 선생님께 털어놓아도 되는 것일지, 이렇게 무시무시한 내 고통의 절반을 선생님께 전가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죄책감을 갖게 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던 선생님의 진심, 그 미치도록 아름다운 진심에 한번 매달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모든 것을 구원해 줄 것을 믿습니다.
나는 그곳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흔하다면 흔한 5층짜리 시골 병원이죠. 건물은 M시의 작은 시내에서도 구석에서 구석으로 몰려 있습니다. 덕분에 자기보다 조금 높은 산을 바짝 업고 있죠. 지은 지는 한 20년쯤 됐을까요. 아마 지금쯤은 험악한 산 기운에 완전히 눌려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산에서 뻗어 내려온 관목들이나 넝쿨 식물들이 건물 안으로 침입할 기회만을 엿보던 형세였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듭니다. 그 거대한 풀 덩어리들이야말로 M병원에서 벌어진 온갖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주인 없는 무덤이 많았던 산, 그곳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온 풀 덩어리들, 혹시 거기에 섞여 음지에 서식하는 온갖 징그러운 것들이 병원으로 퍼져 나가진 않았을까요.

꼬물거리는 벌레들, 세균, 바이러스, 역한 습기, 기름진 촉감, 불행과 죽음을 암시하는 어떤 기운들까지…… 하지만 확실히 그 이전부터 M병원에 관해선 끔찍한 소문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 소문들은 하나같이 M병원을 저주 받은 곳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정신이 나가고, 살인을 저지르며, 죽어 있는 것이 어두운 생명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라미드의 저주’ 같은 것들처럼 지나치게 와전되고, 흥미를 위해 짜 맞춰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단 한 가지의 사실도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아, 혹시 이런 얘기들을 좋아하십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바로 제가 M병원에 대해 알고 있는 이런 종류의 한 가지 사실이랍니다. 그리고 10년 전 제가 직접 겪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쪽지 #2

그가 이런 M병원에 오게 된 것은 기묘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일 뿐입니다.

선생님, 나는 그를 잘 몰랐습니다.

정수민이라고 하는 자는 범죄자였습니다. 그것도 복역 중, 말기 암 진단을 받고 형 집행 정지를 받은 특이한 케이스였죠.

보통 치명적인 질병으로 형 집행 정지를 당하는 경우, 거의 자유의 몸이 되는데 정수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근래 들어서 형 집행 정지 중 발생한 사고들이 몇 건 있어서 경찰들을 아주 곤란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이놈이 M병원으로 오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경찰인 저는 놈을 감시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게 엄청난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정수민을 M병원에서 처음 봤을 때, 내가 형사로서 느낀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각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나는 대번에 그 녀석이 떠벌리기 좋아하고, 그로 인해 시선을 모으고 싶어 안달이 난, 정신 빠진 허풍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일단 별다른 전과도 없었고, 죄명이 살인 미수이긴 했지만 정수민 본인이 말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스무 명 이상의 살해라는 어마어마한 쪽으로 확대시켜 보기엔 너무 비약이 심했으니까요. 또 증거도 마땅치 않았고, 따라서 이들 가상의 피살자들에 대한 ‘식인 행위’ 역시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런 녀석들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극도로 관심을 절제하고, 제풀에 지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놈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언론과의 직접적인 접촉 또한 철저하게 통제해 정수민은 당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녀석은 무척 불쾌해하며, 나를 보는 족족 심한 욕설을 내뱉곤 했습니다. 그런데 욕을 먹으면서도 오히려 좋았습니다. 내심 내가 이번에도 범죄자 놈들과의 심리 대결에서 이겼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을 M병원으로 출퇴근 하다가 녀석의 병명이 다른 것도 아닌 위암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섬뜩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짓임이 분명한, 녀석의 식인 행위(자기는 ‘그 고기’를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도 했습니다. 또 자기가 위암에 걸린 것도 오히려 그 고기를 먹지 않아서 생긴 병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에 대한 진술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 먹는다는 행위와 위장의 밀접한 관련성이 위암이라는 진단으로 인해 너무도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말라비틀어진 말기 암 환자에게 덜컥 겁을 집어먹은 것이죠.

게다가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초반에 진료를 봐 주던 늙은 담당의가 어디론가 가고, 새 의사가 왔습니다.

‘내과 부장 염상훈’

가슴팍의 그 명찰을 보는 순간 나는 무거운 추가 코끝에 걸리는 지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명찰이 있는 가슴팍을 넘어 좀 더 위쪽에는 아주 잘난 남자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염상훈은 M시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네 친구였습니다. 공부를 곧잘 해 의대에 진학했고, 이후 서울에서 꽤 잘 나간다는 소문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M병원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이를 두고 여론이 분분했지만 내가 알아본 바로는 여자 문제였습니다. 환자를 잘못 건드려 서울 병원에서 쫓겨났다고, 전 병원에서 확인도 했습니다.

상훈은 원체 잘생기고, 똑똑하고, 집안도 좋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남달랐습니다. 웬만한 여자들 치고는 인근 동네들까지 상훈이 한 번쯤 안 건드려 본 여자들이 없었습니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을 타고 놀았습니다. 염상훈이라는 인간을 알게 된 이래로 이건 뭐 원래 그래 왔던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헌데 그게 이번만큼은 쉽게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내 아내가, 별거 중인 그 사람이 상훈이 타고 노는 그런 여자 중의 한 명이 되어 버린 건 좀 다른 얘기였으니까요.

쪽지 #3

지난 쪽지에서 정수민이 M병원으로 오게 된 일에 대해 저는 ‘우연’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기묘한’이라는 말까지 더했습니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우연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다각도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회고적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숨길 이유도 없고, 숨기고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제가 아는 모든 과거를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우연이라는 표현은 당시를 회상할 때면 나오는 습관적인 표현입니다. 사실 그렇게 드라마틱한 상황을 우연 말고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기도 합니다.

위암 말기로 형이 집행 정지된 정수민이 내 고향 M시의 M병원으로 오게 되고, 그의 주치의를 염상훈이 맡게 되고, 염상훈은 고향까지 돌아와서 친구 마누라를 가로채고, 정수민을 감시해야 하는 나는 덕분에 상훈을 매일 만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상훈을 통해 내게서 도망간 수희 년을 떠올리며 매일매일 끔찍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런 우연.

선생님 같으면 이 노골적인 불행을 그저 우연으로만 치부해 버릴 겁니까? 그저 몇 번이건 운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려운 확률의 일이 연달아서 일어났을 때, 그것은 오히려 ‘필연’이라 불러야 맞지 않습니까?

어차피 볼 장 다 본 입장에서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정수민, 나, 염상훈, 김수희가 그 썩을 놈의 병원에서 만나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말로 표현할 수만 없었을 뿐이지, 당시의 나도 이러한 분위기를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필연이라는 도도하고 거센 흐름은 내게 어떤 행동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 번째 쪽지 위에서 기묘하다고 다시 언급한 부분은 아마 여기쯤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이런 우연, 아니 필연의 상황 속에서 나는 정확히 10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나쁜 사람들에게 응징을 가했습니다. 그들은 무서운 비명을 질렀으며, 결국 망가진 수도꼭지처럼 피를 질질 흘리며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통쾌했고, 피의 굶주림으로부터 터질 듯한 포만감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10년 전, 아무도 응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기묘한 우연의 진실입니다.

쪽지 #4

잔인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완전범죄를 꿈꿉니다. 범인이 잡히지 않는 것 또한 잔인한 의도를 완성하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범인으로 지목되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게 정수민이었습니다.

그러자면 이 사실을 먼저 얘기해야 합니다.

어느 날 회진을 나온 상훈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말이 많던 정수민이가 잠잠한 게 이상하다는 얘기였습니다. 나와 상훈은 우리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녀석의 몸을 돌아 눕혔습니다.

그러자 입가에 흘러내린 선명한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계속 오물거리고 있는 입. 그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입가의 미소와는 달리 눈동자는 반쯤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 역겨운 자식은 자기 혀를 깨물었습니다. 병원의 사람들은 모두 자살 소동으로 이해를 했지만 나는 여기서도 좀 달랐습니다. 오물거리던 입, 그 녀석은 진정 자신의 혀를 깨물어 씹어 먹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그 고기’를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놈의 말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이후로 다행히도 놈의 쫑알거리는 말소리를 듣게 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왠지 병실을 감도는 초조하고 불안한 분위기가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M병원의 저주라고 할까요. 밤만 되면, 온갖 악령들의 후원으로 죽은 이에게 어두운 생명이 흘러 들어가는 것 같은 끔찍한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그 덕분인지 정수민은 며칠 만에 금방 회복을 했고, 그의 눈빛은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암의 진행도 그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어쩐지 전보다 더 강해진 그 모습이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주치의인 상훈을 비롯한 간호사들은 말기 암 환자의 일시적인 분위기 전환으로 여겼지만 난 또 달랐습니다. 난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거야말로 우연이 아닌 어떤 필연의 흐름이다!

그리고 저 도도한 흐름이 나를 강력하게 생애의 절벽 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곳은 깎아지른 듯한 선택의 절벽. 내가 죽든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대신 밀어뜨려야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저 정수민이란 괴물을 이용한 기묘한 완전범죄뿐이다!

나는 상훈이 없을 때 몰래 놈에게 말했습니다.

곧 신선한 고기를 마음껏 먹게 해주겠다고 말입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