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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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개지 하나가 풀밭에 떨어져 있었다.

바람이 솜털을 흔들자 파리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제야 십이는 버들개지에 작고 여윈 몸과 네 개의 다리가 이어져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양이였다.

십이는 전에도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크기로 봐서는 젖을 뗀지 얼마 안된 새끼가 분명하다.

햇빛이 비치고 있다지만 선선한 날씨다. 어린 짐승이 굴도 아닌 곳에서 네 활개를 펴고 자도 될 만큼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그런데도 그 고양이는 꼼짝없이 모로 누워있다. 죽은 걸까.

십이는 팔을 뻗어 고양이를 건드려보았다. 손 끝이 닿는 순간, 죽은 듯 누워있던 고양이가 고개를 비틀어 올리더니 힘껏 깨물었다. 찌릿하고 하찮은 통증이 꽂혔다. 십이는 팔을 흔들었고, 고양이는 다시 바닥에 머리를 뉘었다.

살아있구나.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지금은 살아있지만, 죽어가는 중인 것만은 분명했다. 아마도 지금의 일격은 안간힘을 끌어모은 것일 터였다.

깨물린 자리에 뚫린 두 개의 구멍에서 붉은 피가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하지만 십이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하찮은 상처에 일일이 신경쓰기에는, 원래 입은 상처가 너무 많았다.

십이는 반듯하게 누워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다친 곳을 점검했다. 왼쪽 발목, 오른쪽 정강이, 양쪽 허벅지. 크고 작은 상처가 열두 군데. 옆구리, 오른쪽 팔꿈치, 손목, 등, 어깨, 뺨과 눈두덩. 상체의 상처도 짜맞춘 것처럼 열두 군데다. 모두 가볍지 않지만 치명적이지도 않은 상처들이다. 즉사시키기엔 모자라고, 고통을 주기엔 충분한.

공자의 일처리는 항상 이랬다. 숫자나 격식에 집착하는 버릇이며 화가 날 수록 조용해지고 잔인해지는 것까지. 자신을 분노하게 만든 자를 편안히 일격에 죽이는 자비심 같은 건 공자에겐 없었다. 물이 새는 것처럼 피가 새고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숨이 흘러나가도록 서서히, 가혹하게, 영원토록 고통을 주는 것. 그게 공자의 방식이었다.

무림에는 드물게 그런 사람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진 사람. 명문세가의 귀한 자손으로 태어나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떠받들어져서 세상이란 본래 자신보다 낮은 높이에 존재하는 건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타고난 재능 같은 건 의미가 없다. 초유와 함께 공청석유를 먹이고 이유식으로는 만년하수오를 갈아준다. 혹시 발생할 지 모를 주화입마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무림신의가 항상 붙어다니고, 조금 자라면 곧장 무림 몇대고수로 불리는 사람들이 번갈아 일년씩 무공을 가르친다.

처음에는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져주는 어른들도 있지만 조금만 팔다리가 자라나면 진짜로 질 수가 없게 된다. 무공천재니 오성이 각별하니 천골지체니 온갖 찬사가 따라붙는다. 돈을 주고 산 비급, 권력으로 빼앗은 신공, 예물로 바쳐진 신병이기가 숨쉴 때마다 손에 들어오는데 약해질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애써 무림을 제패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미 모든 걸 가졌으니까. 애써 천하제일인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당대의 천하제일고수는 대부분 밑바닥에서부터 애면글면 기어올라간 자들이다. 무공으로는 천하제일의 족적을 남기지만 그 영예는 일대로 끝나기 마련이다.

공자와 같은 사람들은 천하제일인의 지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건 말하자면, ‘되려고 하면 될 수 있지만 굳이 될 마음은 없는’ 자리다.

공자와 같은 사람들은 천하를 움직이는 힘이 무공에만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돈을 다루는 공부, 사람을 다루는 공부, 음모와 술수의 공부가 때로 그보다 위력적이라는 걸 안다. 또한 시와 풍류, 음식과 술에 대한 조예, 악기를 다루는 솜씨 같은 잡기들에 온갖 재미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 모든 걸 포기하고 묵묵히 장작을 패거나 물동이를 나르며, 혹은 뜨거운 모래에 손을 꽂아넣으며 무공만 수련하는 것은 삶을 오롯이 즐길 줄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그래서 공자와 같은 사람들은 천하제일인으로 불리기 보다 좀 더 우아한 별호로 불리기를 원하며, 강호를 주유할 때는 항상 근처에 인형 같은 소녀들을 달고 다니길 즐겼고, 그들에게도 매란국죽이니 금련 은련이니 하는 이름을 지어붙이고 자신이 가는 길 앞에 꽃을 뿌리게 하거나, 겁없이 대적한 무뢰배를 일검으로 양단하고 나면 흰 비단 손수건으로 검을 닦게 만들었다.

사대공자, 강남미서생, 백의신협 등등. 별호는 세대마다 다르고 그런 공자들을 배행하는 시비들의 이름도 달랐지만 규칙은 똑같다. 그 소녀들은 공자를 돋보이기 위한 장신구고, 병풍이다.

십이는 바로 그 병풍들 중 하나다. 아니,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