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액션 (제4회 ZA 문학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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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살던 아파트 현관 옆에는 반지하인 기계실과 연결된 조그만 창문이 하나 뚫려 있었다. 가끔 지나다니다 보면 고양이가 그곳으로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을 몇 번 볼 수 있었는데, 어느 날 나는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한 건지(아니면 아무 생각도 안 했던 것인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창문으로 기어들어가는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

반쯤 창문을 통과했을 때 나는 뒤늦게 내 몸이 모두 넘어가기엔 창문이 충분히 넓지 않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 순간 엄청난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눈앞에는 반지하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름 모를 기계와 파이프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느 순간 나는 그놈들에게 볼트와 너트, 철판으로 이루어진 눈알이 달려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방심하는 순간 저 자식들은 날카로운 칼날 손톱과 강철 이빨로 연약한 내 목줄기를 물어뜯어 버리리라.

어린아이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이 폭발하며 나는 패닉에 빠졌고, 어느새 비명을 지르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기계에 똑바로 시선을 고정한 채(눈을 떼는 순간 놈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잡아먹으러 뛰어들 테니까) 빠져나가기 위해 수차례 안간힘을 썼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밀폐된 기계실에서 웅웅대는 기계음과 함께 울리는 내 비명소리 때문에 완전히 미쳐버리기 직전, 누군가 바깥에 끼여 있는 내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라!”

다행히도 내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의 이성은 남아 있었고, 그동안의 훈련에 따라 반사적으로 나는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비명을 그쳤다.

“여기서 뭐 하는 지랄이고? 니가 무슨 괭이새끼라도 된 줄 아나?”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섞인 거친 말이 들리고, 곧이어 어머니의 억센 손이 내 다리를 잡고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정도 힘으로 나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고, 다시금 여기서 평생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친구라곤 눈앞의 철판 기계들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 될 거라는 상상에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순간, 뒤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난 후 한결 침착해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하자면, 나를 곤경에서 빼내주기 위해 어머니의 현명함과 재치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경수야, 니 성룡 좋아하제?”

“응…… 어…….”

조그만 딸꾹질 소리와 함께 울음 섞인 내 목소리. 나를 포함해서, 과연 이 세상의 꼬맹이들 중에 성룡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기는 할까? 게다가 그 당시 나는 성룡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나오는 NG씬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는 열혈 팬이었다.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에 훌쩍거리면서도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의 말에 집중했다.

“얼마 전에 「러시아워2」 비디오 빌려봤던 거 기억하나?”

“응.”

“거기 NG나는 거 중에 성룡이 좁은 계산대 구멍 통과하다가 목 걸리는 장면 기억나제?”

“어.”

“그 때 아빠가 했던 말 기억나나?”

아, 그제야 퍼뜩 그 사실이 떠올랐다. 머리가 들어가는 구멍이라면 몸도 통과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 소방관으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구조해 보셨을 아버지의 말씀이니 분명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고,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보였다. 분명히 내 조그만 머리통은 이 창문을 충분히 쉽게 빠져나왔었으니까.

“지금 니가 울고불고 난리치느라 몸이 부풀어서 그런 기라. 성룡 아저씨 생각하면서 침착하게 몸 빼 보그라. 심호흡 어떻게 하는지 알제? 심호흡하면서 천천히 몸 빼면 나올 수 있을 끼다.”

그때부터 대략 10분간 어머니와 나의 사투가 계속되었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몸을 빼낸 결과 드디어 나는 그 빌어먹을 기계들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잘 있어라, 철판 괴물들이여! 대신 한여름에 멍청한 아들 덕분에 난데없이 땀을 한 바가지는 쏟은 어머니의 성난 매질 몇 대를 감수해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뭐 어떤가? 결국 나는 빠져나왔는데.

그날 이후로 십수 년이 지났고, 나도 이제 아무 생각 없이 좁은 창문으로 기어들어가는 멍청한 짓을 자제하는 법 정도는 아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때때로 악마 같은 마법을 부려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그 결과 우리는 우왕좌왕하다 어린아이만도 못한 실수를 연달아 저질러버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 나처럼 말이다.

“크르르르르르르…… 그륵, 큭…….”

엘리베이터에 작게 뚫려 있는 유리 창문 밖에서 비웃듯이 좀비 몇 마리가 신음소리를 낸다. 까맣게 잊고 있던 예전 기억이 난데없이 떠오른 건 분명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꽤 있기 때문이겠지. 작은 실수와 불운 몇 개가 겹치자 나는 다시 좁은 창문에 갇혀버린 어린애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때와 다른 점은, 지금 내가 갇힌 곳은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안이고 바깥에는 좀비들이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는 것 마냥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 정도일까. 게다가 신나기도 하지, 지금 나를 도와줄 사람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꼴사납게 볼에 묻은 눈물을 닦아내며 나는 생각한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2시간 전

물통을 기울이자 가득 찬 쌀알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린다. 한 알, 두 알, 그리고 와르르…….

그 아래의 손바닥에 쌀알이 쌓여 작은 모래성을 이루고, 활짝 펴진 손바닥이 꽉 쥐이더니 쌀알을 밖으로 내던진다.

촤악!

“왕덕이 형, 뭐 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물이 얼마 없다는 핑계로 생쌀을 씹으며 버티게 된 지 이제 대충 일주일째다. 맛대가리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목숨 걸고 가져오는 귀중한 식량이다. 내가 뭐라 하든 말든, 그는 죄다 지겹다는 표정으로 손바닥에 묻은 쌀을 툭툭 털어내고 있다.

물론 나도 이젠 저놈의 빌어먹을 생쌀이 꼴 보기도 싫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깝게 그걸 내다버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제 세 시간 후면 이 빌어먹을 마트에서 나갈 텐데 무슨 상관이야? 누가 아나, 이 망할 쌀 벼락을 맞고는 아래 있는 좀비들이 우리를 구조하러 올라와 줄지?”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사람을 구조하려 드는 좀비라. 분명 굉장히 색다른 구조 활동을 구경할 수 있겠지.

“격리 구역으로 탈출하는 날에 식량 당번이라니,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그가 한탄한다.

“리더랍시고 설치는 그 경찰관 자식이 거들먹거리는 꼬락서니를 보면 꼭 지가 나서서 다 해결할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전부 딴 사람한테 떠맡기지. 장담하건대 그 인간은 좀비가 뒤꽁무니에 쫓아오면 망설임 없이 옆 사람을 먹이로 던져주고 도망갈 놈이야.”

“그런 말 마세요, 형.”

내가 반사적으로 반론한다.

“탈출하자고 의견 낸 것도 그 사람이잖아요. 우리도 전부 동의했고요. 누군가는 리더를 떠맡아서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요.”

“그래, 그렇지.”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결국 누군가는 그 빌어먹을 리더라는 걸 떠맡아야 하지. 하지만 내 너한테 미리 말해두겠는데,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인간은 침착한 것 같아 보여도 마음에 여유가 없다고. 조급해하는 사람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지. 장담컨대, 조만간 그 인간은 큰 실수를 저지를 거야…… 아주 큰 실수를. 그 전에 나는 작별인사하고 떠날 거라고.”

그가 손을 털고선 한숨을 쉬며 소방도끼를 집어 든다. 이제 출발할 거라는 신호다. 나도 옆에 놓아둔 쇠파이프를 들고 조심스레 그를 따라나선다.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출입구 문을 열기 직전, 옆에서 조용히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여기에 오기 전이 훨씬 나았는데.”

이 마트에 식료품이 있는 층은 두 개다. 이미 썩어버린 고기나 채소, 과일들과 더불어 바로 그 지겨운 생쌀과 통조림이 자리하고 있는 1층, 그리고 기타 수입 식품이나 과자 같은 먹을거리가 있는 지하 1층.

지하 1층에는 이미 좀비들이 들어차 모험을 감수하기엔 너무 위험했고, 그나마 1층은 생존자들끼리 힘을 합쳐 좀비 놈들을 처리해 둔 덕에 적은 수가 남아 있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돌아다니기에 안전했다.

아직 전기가 나가진 않았으니 원한다면야 엘리베이터를 쓸 수는 있었지만, 사람의 눈구멍처럼 뻥 뚫린 엘리베이터의 유리 창문 너머로 그 네모난 감옥이 도착하는 땡 소리를 듣고 점심시간이 된 고등학생들 마냥 허겁지겁 기어오는 좀비들을 보게 되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비상계단을 이용했다.

사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비상계단도 안전한 지대는 아니었다.

4층의 주차장 통로를 이용해서 겨우겨우 마트 안으로 들어왔나 싶었더니 비상계단 한가득 좀비들이 우글거리고 있었고, 결국 2층 층계참까지 억지로 좀비 놈들을 몰아낸 이후 우리는 더 이상의 사투를 포기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선 3층 출입구로 요령껏(참 무책임하면서도 편리한 단어다.) 마트 내부로 진입하기로 합의를 봤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식료품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는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에서 3층까지 ‘요령껏’ 내려간 후 마트 안으로 ‘요령껏’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까지 ‘요령껏’ 다가가 1층까지 ‘요령껏’ 내려간 후 음식을 주워 담고 다시 3층 비상계단까지 ‘요령껏’ 돌아와야 하는 셈이다.

하, 하, 하. 언제 뒈질지 모르는 세상에서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

그리고 그 ‘요령껏’의 1단계(비상계단으로 옥상에서 3층까지 내려가는 단계)는 보통 수월하게 진행되는 편이었는데, 뭔가 잘못되려는 전조였는지 오늘은 시작부터 말썽이 생겼다.

“쉿.”

비상계단을 내려가며 5층에 도착했을 때, 앞서가던 그가 내게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분명히 비상계단은 좀비 자식들이 더 이상 위층으로 못 올라오도록 바리케이드를 쳐 놨었는데…… 의아하게 여긴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가까운 아래에서 그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륵…….”

“망할, 저거 뭐예요?”

여전히 작은 목소리였지만, 흥분한 내 입에서 절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저 자식은 어떻게 올라온 거야? 분명히 아래층하고 주차장 쪽 문하고 전부 바리케이드 쳐 놨잖아요!”

“……이미 올라온 놈을 어쩌겠냐. 이유는 좀 있다가 생각하고, 일단 처리하자.”

그가 소방도끼를 양손에 단단히 쥔다. 나도 덩달아 긴장하여 장갑을 조이고 쇠파이프를 단단히 손에 쥐었다.

“가자.”

그가 조심스럽게 앞섰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4층 층계참에 나를 식겁하게 한 바로 그 좀비가 서 있었다. 피로 물든 하늘색 와이셔츠에 검정색 청바지 차림의, 생전에는 꽤 인기가 많은 중년 남성이었을 그 좀비는 아무리 봐도 좀비 무리에 어울리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어떻게 된 거죠? 이 마트에 좀비들은 다들 최소 1주일은 지나서 저것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을 텐데.”

내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왕덕은 소방도끼를 약간 뒤로 빼고서 계단을 내려갔다. 세 걸음쯤 뒤로 다가간 순간 놈이 인기척을 느끼며 뒤를 돌아봤고, 틈을 놓치지 않은 그의 소방도끼가 깔끔하게 그 망할 놈의 대갈통을 내리쳤다. 그리고 두개골이 깨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며……

“조심해요!”

주차장과 비상계단을 잇는 뒤쪽 통로에서 느닷없이 좀비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분명히 꼼꼼하게 막아두었던(내가 설치했으니 틀림없다.) 바리케이드가 약간 벌어져 있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좀비 한 마리가 그 틈 사이로 기어 나온 것이다.

“이런, 씨발!”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소방도끼를 휘둘렀지만 당황하며 내지른 도끼날은 당연하다는 듯이 빗나갔고, 틈을 놓치지 않은 좀비의 반쯤 썩은 손이 그의 팔을 움켜잡았다.

“흐아앗!”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추스른 나는 당혹감과 공포가 섞인,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 그 망할 좀비 놈의 옆구리를 쇠파이프로 내리쳤다.

“조심해, 인마!”

뒤에서 왕덕의 작은 외침과 함께 갈비뼈가 으깨지는 역겨운 와작 소리가 들렸고, 녀석이 괴성인지 신음인지 구분되지 않는 소리를 뱉으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자세를 잡은 그가 소방도끼를 휘둘렀다.

장작에 도끼가 박히는 듯한 우지직 소리가 들리고, 머리가 반쯤 매달린 구역질나는 모습을 한 채로 그 좀비는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다.

“헉, 헉…… 구경하지 말고…… 빨리 바리케이드나 다시 막아.”

숨을 몰아쉬며 그가 내게 말했다. 그렇지, 바리케이드…… 그 망할 놈의 바리케이드. 서둘러 책상과 잡동사니를 잡아끌어 틈새를 막으며 생각했다. 대체 어떤 망할 놈이 저걸 벌려둔 거야? 머릿속으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을 때 왕덕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야, 인마. 망할 좀비 새끼들 팰 때는 조심해야 돼. 내가 되도록 저놈들 배 주위는 때리지 말라고 얘기 안 했었나?”

“네? 아뇨, 처음 듣는 소린데요.”

“후…….”

그가 숨을 고르며 잠시 생각하더니 묻는다.

“진짜 얘기 안 했어?”

“제가 뭐 하러 거짓말하겠어요?”

“……그래, 그건 그렇지.”

그러고선 잠시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마트 오기 전에 내가 전직 소방관이랑 다녔다고 얘기했었지?”

“네.”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이야기했었나?”

“아뇨…….”

이야기할 때마다 딱 그 부분에서 끊어버리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내 눈에서 그런 말을 읽었는지 그는 시선을 피하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그 사람도 좀비를 죽여야 할 때마다 소방도끼를 썼었거든? 평소에 손에 익숙한 놈이 좋다면서. 머리 따는 솜씨가 일품이었는데, 어느 날 정신없이 싸우다 아무 생각 없이 녹색으로 커다랗게 부푼 좀비 놈 배를 찍어버린 거야.

근데 가스가 차서 그런지 몰라도 그 배가 아주 그냥 시원하게 폭발해 버렸지. 그래서 재수 없이 그 안에 있던 내장 덩어리들을 뒤집어써 버렸는데…….”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눈을 질끈 감고 그 끔찍한 장면을 털어내려는 듯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서는 그가 말을 이었다.

“모조리 녹아내렸어. 무기고 옷이고 피부고 완전히 무슨 염산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고. 다행인지는 몰라도, 금세 다른 좀비 놈에게 목을 물어 뜯겼으니 그 고통은 잠깐이었겠지. 하지만 젠장, 그 끔찍한 광경이라니…… 지금까지 온갖 역겨운 걸 다 봐왔지만 그런 건 처음이었다고.

나는 겨우겨우 정신 차리고선 똥줄 빠지게 도망치다 너희들이랑 만난 거고. 그놈만 특별한 놈이었는지, 아니면 전부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지. 그러니까.”

그가 잠시 쉬더니 힘주어 말했다.

“절대로 좀비 놈들 배는 건드리지 마. 너 혼자 있을 때면 몰라도 적어도 내 앞에서는 하지 말라고. 알겠어?”

“……네, 알겠어요.”

선뜻 믿기지는 않는 이야기였지만, 젠장, 애초에 좀비가 나타나는 건 믿을 만한 이야기였었나? 이젠 저놈들한테 초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저 망할 바리케이드가 열려 있다는 얘기는 분명히 누가 들어왔었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나를 휙 돌아보곤 히죽 웃으며 말한다.

“이번엔 네가 먼저 가라. 한 번 당했으니 교대해야지.”

“……젠장. 형도 그렇게 좋은 인간은 아닌 거 알죠?”

“크크…… 그럼 제 목숨을 떡하니 내놓고 나다니는 놈이 좋은 인간이냐? 공평하게 살아야지. 빨리 가, 인마.”

어쩔 수 없이 등을 떠밀리며 나는 비상계단을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3층의 출입구로 다가갈수록 평소엔 가끔 들리는 좀비들의 신음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했던 비상계단에 불길하게 뭔가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작게 깔려 있었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3층 출입구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변을 발견하고선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형, 이거 봐요. 문이 제대로 안 닫혀 있잖아! 만약에 재수 없이 여기로 저놈들이 밀고 들어왔으면 우린 지금쯤 식량이고 자시고 목숨 부지하기에도 바빴을 거라고요!”

“……저기 저거. 뭐지?”

그가 천천히 문틈에 끼여 있었던 물체를 가리켰고…… 그건…… 그러니까…….

아직 싱싱한, 사람의 손이었다.

“……! 이런, 씹……!”

나도 모르게 당황하여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차라리 좀비 놈의 반쯤 썩은 손이라면 몰라도 아직 멀쩡해 보이는 사람 손이 저기 떨어져 있다는 건…….

“……대충 짐작이 가는군. 문 열 때 조심해라.”

뒤에서 왕덕이 조용히 말했다.

“아마 어제 들어온 불청객은 아까 그놈 혼자가 아니었나보다.”

그래…… 그렇겠지. 어제 새벽에 보초를 선 인간은 어떻게 보초를 섰는지는 몰라도 좀비 놈들이 흐느적대며 돌아다니는 것 마냥 대충대충 선 게 틀림없다. 어느 자식인지는 몰라도 되돌아가면 얼굴에다 반드시 한 방 먹여줄 테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트 내부로 통하는 문을 열었고, 다시 한 번 욕지기가 튀어나올 뻔한 입을 겨우 틀어막았다. 비상계단 문을 열면 바로 오른편에 엘리베이터 두 대가 보이는데, 굳게 닫혀 있는 그 엘리베이터의 입구에 3층에 있던 좀비란 좀비는 모두 한데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덜컹거리는 소음은 바로 그 앞에서 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좀비들의 무게를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반쯤 뜯겨나간 시체 두 구가 로프에 걸려 거꾸로 대롱대롱 걸려 있었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좀비들이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놓는 똑똑한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말하자면…….

“좀비를 막으려던 덫에 사람이 걸렸군.”

뒤에서 나지막이 목소리가 들린다.

“……불쌍한 자식들. 내 생각이 맞았어. 조심해서 지나가자고.”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만찬을 벌이고 있는 좀비 놈들의 뒤를 조용히 지나쳤다. 엘리베이터 문은 난데없이 밀려든 손님들의 무게를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지, 불규칙적으로 위태롭게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게다가 겨우 이 정도 깜짝 파티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내가 반쯤 그 현장을 빠져나왔을 때는 한 놈이 휙 돌아보는 통에 바지에 오줌을 지릴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놈의 눈구멍은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고, 금방 녀석은 다시 친구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리는 무사히 그 끔찍한 잔치판을 지나칠 수 있었다.

“그래도 놈들이 죄다 저쪽에 몰려 있는 덕분에 다른 곳은 수월하게 지나가겠군. 다시 올라가는 게 걱정이긴 하지만.”

“젠장, 어제 보초 섰던 개자식은 도대체 누구예요? 좀비한테 눈알을 후벼 팼거나 우리를 엿 먹이려고 작정했거나 둘 중 하나인 게 분명해. 적어도 경고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우리 중에 좀비한테 눈알을 후벼 파인 인간은 없으니 아마 후자가 맞겠지. 참고로 알려주자면, 어제 보초 선 사람은 그 잘나신 경찰관 나리였어.”

“아니……잠깐만, 뭐라고요?”

2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멈칫하며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그 인간이었다고요? 그 인간이 우리를 엿 먹일 이유가 어디 있어요?”

“글쎄……의도라고 해야 하나. 아주 멍청하고 얄팍한 술수라고 해야 하나. 뭐, 좀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잘 모르겠으면, 잠시 후를 기대하라고. 올라가서 조목조목 따져 줄 테니까.”

“그래요, 그럼 이번만큼은 형 편을 들어야겠네.”

그러나 안타깝게도 15분쯤 뒤, 내가 편들어 줄 사람은 좀비의 한 끼 식사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