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제1회 ZA 문학 공모전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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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수도 있지만, 주말 동안 세상이 완전히 변했다. 평소 뉴스나 신문을 보지 않으니 알 순 없다.

처음 좀비를 본 건, 늦잠을 잔 탓에 바삐 서두르던 월요일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였다. 1층에서 문이 열렸을 때, 현관에서 한 사람이 힘없는 걸음걸이로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흐트러진 옷매무새에 걸음걸이까지, 딱 새벽까지 술을 마신 윗집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참 가관이시네요.’ 그러다 서서히 그 썩은 시체 같은 몰골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나는 잠시 이게 꿈인가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때 나는 시체를 보면 길몽이라는 얘기가 생각났다. 내가 아직 자고 있는 걸까? 너무 많이 자고 있는 건 아닐까?

꿈도 좋지만 출근해야지! 내가 꿈에서 깨어나려고 뺨을 때리고 꼬집는 동안 좀비는 여전히 퀭한 눈으로 뒤뚱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막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이게 꿈이든 아니든 우선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정사정없이 녀석의 명치를 걷어찼다. 녀석은 삭은 나무토막처럼 힘없이 쓰러졌고 나는 급히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출근도 해야 하고, 어디서 샘솟은 사명감인지 사람들에게 좀비가 나타났다고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문을 열고 아직 바닥에 쓰러져 뒤집어진 채 거북이처럼 허둥대는 녀석을 뛰어넘어 거리로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다른 세계에 왔나 생각했다. 거리에는 온통 썩어 문드러진 얼굴들이 뒤뚱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내가 아는 세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꿈도 아니었다. 꿈이라고 하기엔 보고, 느껴지는 모든 게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나는 서둘러 차로 달려가 문을 잠그고 잔뜩 웅크린 채 거리를 살폈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과 싸구려 장난감처럼 뒤뚱거리며 그 뒤를 쫓는 좀비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라디오를 켰다. 평소 음악을 듣기 위해 FM주파수에 맞춰져 있던 라디오에선 긴장한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졌으니 절대 외출하지 말고 타인과 신체접촉도 피하라는. 외출? 나는 출근인데? 출근은 해도 되는 건가? 덜컥 부모님이 걱정됐다.

빌어먹을 재개발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동네를 떠나 혼자 심심하게 지내기 싫다고 우겨서, 부모님은 가까운 곳에 작고 싼 아파트 전세를 구하고, 나는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집이 작다는 건 핑계였다. 사실 나는 우리 동네의 재개발 수주를 따려는 회사의 특명을 받고 백방으로 뛰었다. 어머니 계모임에 식비를 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재개발 수주를 경쟁사에 뺏겼고 내 입장이 조금 난처해졌다.

그래서 괜한 트집을 잡아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결국 집을 나왔을 뿐이다. 아무튼 나는 곧장 부모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거리는 온통 경찰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보행자 신호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좀비들로 가득했다.

가는 동안 계속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휴대폰도 마찬가지였다. 주말 내내 방에서 뒹굴고 게임이나 하면서 안부전화 한 통 안 드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뻥 뚫린 듯 휑하고 시렸다. 제발, 아무 일 없이 멀쩡하시길!

내 바람과는 달리 멀쩡한 건 집뿐이었다. 맞은편 1502호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을 때부터 덜컹 겁이 났는데, 역시나 자식도 몰라보고 물려고 덤비는 부모님을 간신히 안방에 밀어 넣고 거실에 멍하니 앉아 천장만 바라보며 낮을 보냈다. 빌어먹을 1502호 사람들이 이렇게 만든 걸까?

문득 출근을 안 한 게 생각났다. 월차라도 쓰려고 전화했지만, 한 시간 동안 20번을 넘게 걸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 전화가 고장난 건 아닌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갔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작정 지난 수신번호에 찍힌 번호로 연결을 시도했다.

스팸번호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연결된,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방이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미친 새끼, 왜 이런 때 전화질이야! 다신 전화하지 마!”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동안 그게 마지막으로 듣는 인간의 목소리가 될까 봐 우울하게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걸까? 중국 황사를 타고 온 바이러스일까? 작년보다 한 달이나 빨랐다는 황사 보도를 들은 기억이 났다. 입춘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황사가 왔다고 했던 직장동료의 말도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전설이다』라는 책에도 모래폭풍 이야기가 나온다. 빌어먹을 황사!

어쨌든 먹고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어머니가 해 놓은 된장찌개와 이미 말라 바닥에 눌어붙기 시작한 밥으로 상을 차렸다. TV는 이틀째 먹통이고, 라디오에선 종일 녹음된 듯한 감염자 발견 시 행동요령이 흘러나왔다. 정말 쓸데없는 내용이었다.

행동요령의 마지막은 결국 112이나 119 같은 100번대 전화로 도움을 청하라는 건데, 사흘 동안 수백 번은 아니더라도 수십 번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결국 우리보고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정부는 돈 먹는 하마인가! 도대체 정부는 뭘 한 거지? 이 빌어먹을 정부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은 국민을 조용히 살지 못하게 한다!

내가 낸 세금과 부모님이 낸 세금이 그동안 총 얼마였을까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총성에 놀라 깼다. 처음엔 누군가 공기총으로 멧돼지 사냥하듯 좀비를 사냥하나 생각했는데, 다시 들어보니 기관총소리였다. 트림하는 디젤엔진 소리도 들렸다. 근데 총성? 서울 한복판에서 총성이라니? 남쪽 베란다에서 큰길 쪽을 내려다보니 멀리 장갑차와 탱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내달리고 그 뒤로 60트럭에 군인들이 거리의 좀비들에게 총을 쏘고 있었다.

놀랍기도 했지만 아직 정부가 뭔가 한다는 생각에 은근히 기대가 됐다. 치료제를 만들어 뿌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최소한 원시적인 대응조치라도 한다는 게 반가웠다. 좀비들은 총성을 듣고 불나방처럼 죽여달라는 듯 모여들었다. 좋은 태도다. 그래야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잠시 안방의 부모님을 내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빌어먹을 군인들은 죽여달라며 몰려드는 좀비들의 바람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뒤늦게 골목에서 나타난 좀비들이 이젠 보이지도 않는 트럭을 쫓아 뒤뚱거리며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 모습이 왠지 병들어 뒤쳐진 오리새끼 같아 괜히 불쌍해 보였다. 내게 소음기 달린 소총과 총알 1만 발이 있다면 녀석들을 편히 잠재워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뭔가 무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튼 좀비들이 귀는 제대로 달린 모양이다. 온 동네 좀비들이 벌떼처럼 이미 시야에서 멀어진 탱크와 트럭을 쫓아 계속 도로로 모여들고 있다.

큰길 건너 재개발 현장 안에 분명 다이너마이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동네 재개발인 탓에 돌산을 깨려고 하도급업체가 몇 번 폭파하는 걸 어머니가 보시고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심통을 부리며 우리 회사가 수주했으면 그런 짓 안 한다고 말해 어머니 입을 단번에 막아버렸다. 아무튼 대형 크레인이 세워진 공사장 안을 살펴보니 컨테이너로 만든 사무소 옆에 나무로 된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보통은 용접용 가스 같은 폭발성이 높은 자제들을 보관하는 창고지만 다이너마이트를 썼다면 분명 한 곳에 같이 보관하고 있을 터. 당장 뭘 할 건 아니라서 그냥 위치만 봐두고 말았다. 나중에 좀비문제가 해결되면 괜히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공사현장을 보다가 멀리 남산 쪽 도심풍경을 바라보니 세상은 그저 평화롭게만 보였다. 완연한 봄 햇살에 남산 N타워가 또렷이 보일 정도로 맑아진 공기, 지방국도처럼 한적한 거리, 뒤뚱거리며 느릿느릿 걷는 좀비. 보기만 해선 참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세상이 참 평화롭단 생각이 들었다. 인간만 없으면 세상이란 참 평화로운 곳이구나 싶은 게, 왠지 씁쓸했다.

해가 지고, 다른 아파트 군데군데 불이 켜진 집들이 보였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대응을 기다리며 집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TV라도 좀 재미있는 걸 보여주면 좋으련만, 이런 상황에는 좀비 영화가 딱인데, 방송국 직원들은 센스가 없다.

허긴 재난 방송도 못하는 데 좀비 영화는 무슨 얼어죽을 좀비 영환가. 괜히 나중에 욕이나 먹겠지. 위성방송도 안 나오는 걸 보면 위성방송이라고 해서 특별히 대단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뭐 우주에서 쏘는 건 아니니까. 그저 반사하는 것뿐이지.

일주일? 열흘? 아무튼 며칠이 더 지나자 총성도 사라지고 거리는 더 많은 좀비로 채워졌다. 설마 총알이 떨어진 걸까? 얼마 전 뉴스에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이 됐다던데, 만약 우리나라 인구 5000만이 좀비가 됐다면 최소한 5000만 발이 필요한 데, 5000만 발이 있을까?

아무튼 좀비들은 기본적인 귀소본능조차 없는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가 살던 아파트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보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을 수 있나. 설마 먹을거리를 찾아 거리로 나온 걸까?

그러고 보니 냉장고 구석의 냄새 먹는 하마가 눈에 띄었다. 그만큼 냉장고가 비었다는 얘기다. 문득 좀비들은 며칠이나 굶고 살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죄송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안식을 찾으셨길 빌며 살짝 안방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내 바람과는 달리 두 분은 여전히 방 안을 서성이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니 가슴이 찡했다. 예전엔 어머니와 내가 약수터라도 다녀오라고 내쫓기 전엔 비스듬히 누워 TV만 보시던 아버지셨기 때문이다. 평소에 저렇게 움직이셨으면 좋았으련만.

위험을 무릅쓰고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턱대고 자동차를 몰고 달리다가 좀비들에게 둘러싸이고,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처음 몇 번은 베란다에서 구경을 했지만, 것도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싶어 창문을 닫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정말 굉음과 함께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을 땐 정말 최악이었다. 전화를 걸어 경찰을 부를 수도 없는 상황, 전화를 했지만 받지도 않는 상황이니.

여자는 왜 무모하게 길을 나섰을까? 이 상황에서 가족을 찾아 나왔을 리는 없고, 아마도 먹을 게 없어서 구하러 나온 거겠지. 김치냉장고와 다용도실을 확인해 보니 라면, 햄, 밀가루, 계란, 김장 김치와 20킬로그램짜리 쌀 한 포대가 아직 남아 있다. 적어도 석 달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쌀이 있어 행복하다.

비명소리에 잠을 깼다. 맞은편 103동 402호 창문에 매달린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이었다. 젊은 부부 같았는데, 좀비에 쫓겨 베란다로 피했지만 유리창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모양이다. 어쩌다 좀비들이 저기까지 올라왔을까? 설마 초대했을 리는 없고. 그동안 밤이면 그 집에 불이 켜져 있던 게 생각났다. 불빛을 본 걸까? 부부싸움이라도 해서 좀비들의 관심을 끌기라도 한 걸까?

오늘 밤부터는 화장실의 불도 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전기가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문득 물도 곧 끊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욕조며, 빈 생수통, 온갖 그릇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먹는 수돗물 아리수! 서울에 좀비가 창궐했을 때 시민은 아리수를 마시며 견뎌냈다! 좋은 광고 문구가 될 것 같다.

광고는 꿈도 꾸지 마라! 이제 물도 끊겼다. 가장 큰 문제는 똥이다. 살아있으니 먹는 거고, 먹은 게 있으니 싸는 건 당연하다. 근데 치울 곳이 마땅찮다. 흙이라도 있으면 덮기라도 할 텐데 아파트 15층이라 흙 같은 건 없다. 벽으로 부숴 콘크리트 가루로 덮을 수도 없고. 화분이 몇 개 있지만, 그걸로 과연 해결이 될까? 게다가 저 이름도 모르는 난(蘭)은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거다.

고민 끝에 옥상이란 좋은 곳을 생각해 냈다. 이미 옥상은 비둘기들의 화장실이다. 같이 좀 쓰자는 데 불만은 없겠지. 우리 집은 꼭대기 층, 나름 펜트하우스라 옥상을 올라가는 데는 큰 위험이 없다. 우선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조심조심 현관문을 열고 조용조용 옥상으로 올라갔다. 예전에 부모님 몰래 담배 피던 고딩 시절이 생각났다.

똥을 싸고 휑한 옥상을 보니, 여기에 ‘HELP ME’라고 커다랗게 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인트는 없고, 쓰다 남은 청테이프로 쓰자니 큼지막하게 ‘H’ 하나 쓰면 끝일 것 같다.

종일 뭐로 표시할까 궁리하다가 짜증만 났다. 좀비 영화에는 이럴 때 필요한 건 어떻게든 다 찾아내는데, 우리 집에는 이럴 때 쓸 만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러고 보니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이럴 때 사람들이 피신할 냉전시대 만들어진 방공호며, 서로 교신할 수 있는 단파무전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총, 손전등, 페인트 같은 게 쉽게 등장하는데 우린 이게 뭔가 싶다.

우리나라에서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방공호는…… 군사기밀이고, 단파라디오는 있으면 간첩이다. 총은 예비군 훈련 때나 구경하는데 그나마 총알은 향방예비군으로 바뀌면 구경도 못한다. 손전등은 핸드폰 액정이 대신하고 있고, 페인트? 시너는 있어도 페인트는 없다. 80년대도 아니고 화염병을 만들 것도 아닌데. 우린 재난에 너무 취약한 것 같다.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여기저기 다시 불이 켜진 집들이 보였다. 위험한 짓 아닌가? 생각해 보니 아마도 이미 집을 떠난 사람들이 스위치를 켜두고 나간 모양이다.

위험에 처한 소녀를 발견했다. 낡은 옷가지와 지난 신문으로 ‘HELP ME’를 쓰다가 단지상가 건물 옥상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 103동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이다. 소리쳐 불러볼까 하다가 상가 주변에 좀비들이 워낙 많아 포기하고 고민 끝에 손거울로 햇살을 반사시켜 신호를 보냈다.

아이가 신호를 보고 같이 손거울로 신호를 보냈다.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볼까 고민하면서 모스부호를 알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또 나만 알고 있으면 뭐하나 어린 여자아이가 알긴 하겠나 싶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맞은편 건물에 햇살을 반사시켜 큼지막하게 글씨를 하나씩 써서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눴다.

이름은 최선희. 고2란다. 휴대폰이 있으면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선희의 휴대폰은 이미 방전된 상태였다. 반면 나는 정전이 되기 전까지 어머니 휴대폰과 예비 건전지까지 모두 충전해 둔 상태였다. 기회가 되면 건전지 모델이 같은 내 휴대폰의 예비 건전지를 가져다주기로 했다.

어떻게 보름이 넘도록 버텼냐고 묻자 아래 마트에서 과자와 라면을 가져와 견뎠다고 했다. 마트 주인보다는 좀비들에게 안 걸렸냐고 묻자, 선희는 자기가 내려갔을 땐 상가 안에 좀비가 한 놈밖에 없었고, 밤에 조용히 내려갔다고 했다.

밤이라고 해도 잠을 자지 않는 좀비에게 다를 게 있나 생각했지만, 어찌 보면 좀비들도 눈은 있으니 밤엔 잘 안 보일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밤에 시력이 우리보다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도 어두워서 녀석들을 잘 볼 수 없을 텐데, 우리도 썩 유리하진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103동 402호 가족이 죽은 뒤로 살아있는 사람은 그림자도 보지 못했는데 살아있는 사람을 보게 돼서 기쁘고, 문자지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혼자 조용히 지내다보니 진짜 입에 곰팡이가 쓸 것 같았다.

오늘 부모님을 죽였다. 어차피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 두 번 죽이는 짓이 된다. ‘저를 두 번 죽이는 짓이에요.’ 정준하의 유행어다.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 같다. 아무튼 먹을거리가 쌀과 김치뿐이라 나가야 했다. 그리고 마트 옥상의 선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사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더 중요한 이유였다. 마트까지는 100미터가 채 안 됐기 때문에 해볼 만한 모험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나갈 순 없었다. 좀비들이 어떻게 인간을 인식하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눈에 띄지 않는 위장이 필요했다.

처음엔 둘 중 한 분만 죽이려고 했다. 문을 열고 한 분만 먼저 나오길 바랐는데, 둘이 서로 밀치며 거의 동시에 나오는 바람에 제때 문을 닫지 못했다. 결국 영화에서 본 대로 몽둥이로 두 분의 머리를 후려치고 가위와 식칼을 머리에 꽂아버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냄새나는 옷과 피부 조직 약간을 벗겨냈다. 피부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된 상태여서 그런지 판박이 비닐처럼 쉽게 벗겨졌다. 혹시 선희도 다른 곳으로 탈출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의 시체에서도 옷과 피부를 조금 벗겨냈다.

두 분의 시체는 다시 안방에 밀어 넣은 후, 아버지의 옷과 피부를 내 목과 팔에 감아 붙였다. 어머니의 피부와 옷은 그대로 어머니의 등산배낭에 넣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온통 썩은 악취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역겨웠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괜히 역한 냄새에 토악질을 하거나 기침을 하면 좀비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2층 층계참에서 깨진 유리창으로 길에 좀비가 넷밖에 없는 걸 확인하고, 심호흡을 한 뒤, 뒤뚱뒤뚱 계단을 내려가 현관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행여 녀석들이 눈치 챌까 잔뜩 긴장하며 느리고, 느리게 걸었다. 다행히 녀석들은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103동 모퉁이를 돌자 빌어먹을 좀비가 수십 명, 아니 수십 마리가 나타났다. 완전 미칠 지경이었다.

15층에선 들을 수 없었던, 숨을 쉬는 건지 겁을 주려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들의 공허한 소리와 악몽을 꾸는 듯한 앓는 소리가 사방에서 낮고 음울하게 들렸다. 게다가 빤히 녀석과 부딪힐 게 보이는데도 피하지 못하고 계속 걸어야 할 땐 정말 심장이 튀어나와 죽는 줄 알았다. 아무튼 상가를 향해 걷는 그 10분은 내 생에 가장 긴 10분이었다.

상가 안의 마트는 유리창이 모두 깨어지고 진열대 두 개가 쓰러져 있었지만 물건들은 대부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하며 통조림과 1킬로그램짜리 쌀 봉지를 몇 개 챙겼다. 선희처럼 라면을 챙길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물론 가스도 없었지만 바스락거리는 봉지가 녀석들의 관심을 끌까 봐 손도 대지 못했다. 담배를 챙기고 다시 좀비걸음으로 느릿느릿, 뒤뚱뒤뚱 걸으며 상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나와 마주한 선희는 손거울은 있지만 볼 틈은 없었던 게 분명하다. 엉망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지저분했다. 그리고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치마통과 블라우스 폭을 줄인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날라리였다. 예전 같으면 눈살을 찌푸렸을 그런 차림새였지만 그땐 그마저도 귀엽고 착해 보였다.

선희는 그대로 내 품에 와락 안겨왔다. 다신 사람을 보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할 줄 알았다며 흐느꼈다.

나는 혹 그 울음소리를 좀비들이 들을까 봐 적이 놀라며 선희를 진정시켰다. 선희는 내가 와줘서 너무 고맙고,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엄마와 동생한테 화낸 게 너무 미안하고,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울먹였다.

그러나 나는 다정한 위로 대신 2층 상가 옥상이면 아래 좀비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제발 조용히 하라며 선희에게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괜히 찾아온 게 아닌가 후회되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동안 본 일들을 이야기하며 담배를 나눠 피웠다. 선희는 가족들이 전화도 받지 않는다며 또 울먹였다. 아마도 버려진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섣부르게 위로랍시고 내가 첫날 겪었던 일을 얘기해 주며 아마 위험해서 받지 않을 수 있고, 또 지금은 휴대폰들이 다 방전됐을 거라고 말했다.

집전화로 했는데 왜 안 받느냐고 물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집 전화는 없는 듯했다. 그리고 선희의 기분도 풀어줄 겸, 뒤뚱거리며 걷는 좀비 걸음도 가르쳐주었다. 그때 선희는 진짜 멍청해 보인다며 입을 틀어막고 웃었다.

나는 선희를 만나기 위해 올라오긴 했지만, 2층 옥상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잘못해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어떤 좀비가 아파트 위층에서 내려다보면 들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선희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래층 마트에 먹을거리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굳이 그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게 못 미더웠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약속한 휴대폰 건전지를 주고 안전한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그 웃음이 내가 본 선희의 처음이자 마지막 웃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실컷 웃게 할 걸 그랬다. 아니,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옥상에서 선희를 보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섣부른 위로가 선희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고 죽음으로 몰아버린 것 같다.

선희는 다시 혼자가 된 걸 견뎌내지 못했다. 선희는 그날 밤 내가 준 어머니의 옷과 피부를 두르고 가족을 찾아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좀비로 변한 엄마와 동생을 만났다. 그때 선희는 단호하게 돌아서야 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좀비로 변한 엄마와 동생의 모습에 울먹이다 그만 좀비의 이목을 끌어버린 모양이다.

방으로 도망쳤고 창문으로 나가려했지만, 이미 창문 밖에도 좀비가 몰려들고 있었다. 옷장 안으로 숨었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그만 눈물이 나서 이렇게 됐다고 울먹였다. 이제 좀비가 방에 들어왔다고 옷장에 숨어 있다고 했다. 어딘지 묻긴 했지만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떨리는 선희의 목소리 너머로 옷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내 바로 옆에서 문을 긁는 것 같았다. ‘미친 새끼, 왜 이런 때 전화질이야! 다신 전화하지 마!’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전화를 끊고 싶었다. 마치 내 바로 옆에 좀비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좀비들에게 들릴까 봐 조마조마하며 무조건 달아나라고 속삭였다. 그저 속삭이기만 했다. 그때 내가 두려워한 건 선희가 숨은 옷장 밖의 좀비인지, 아니면 내 머릿속의 좀비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선희는 계속 울먹였고, 살려달라고 말했다.

마지막엔 비명을 질러댔다. 수화기로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내 머릿속의 좀비들이 그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밖의 좀비들까지 다 듣고 올라올 것 같았다. 나는 수화기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선희의 자업자득이다. 나는 선희의 가족에 대한 집착이 화를 자초했다고 순간, 순간 그렇게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도우러 간다 해도 좀비처럼 느릿느릿 걸어가야 한다. 그럼 1킬로미터나 떨어진 선희의 집까지 1시간은 더 걸릴 터였다.

어차피 그때까지 선희가 살아있을 확률은 없다. 어머니, 아버지를 죽인 게 후회된다. 이미 죽은 두 사람을 죽이고, 또 산 사람 하나를 죽게 만들었다.

※ 좀비처럼 걷기.

좀비처럼 퀭한 눈으로 뒤뚱거리며 걷다보면 왜 그들이 청각이 예민한지 절로 느끼게 된다. 초점을 잃은 눈과 부자연스런 동작으로 굳고 뻣뻣해진 피부로는 주변의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가 없다. 결국 주변의 정보를 얻기 위해선 다른 감각을 이용해야 한다.

시각, 촉각, 청각을 빼고 미각과 후각이 있지만 미각은 과연, 쓸모가 있을까. 그리고 후각은 금방 마비된다. 결국 주변 정보를 얻기 위해선 귀에 많이 의지해야 한다. 그러니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어떨 때는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이 전후좌우로 귀를 흔드는 것처럼 내 귀도 움직이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좀비처럼 걸을 때 가장 고민거리는 방향 전환이다. 아직 좀비들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이유로 방향을 바꾸는지 잘 모르겠지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걸 보면 분명 뇌가 반응하고, 의지가 생겨서 바꾼다는 건데, 과연 그 의지가 이성적일까? 그리고 나는 청각보다는 이미 계획된 대로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고 싶을 때는 바닥의 돌멩이나 잡동사니에 걸리거나, 바닥에 신발이 끌려 방향이 뒤틀린 것처럼 해서 방향을 튼다. 바닥이 고르고 깨끗하면 그런 식으로 방향을 틀 수 없겠지만, 지금 거리엔 여기저기 돌멩이며 거치적거리는 쓰레기가 넘쳐나니 그럴 일은 없다. 오히려 곧장 가고 싶은데 괜히 돌멩이나 쓰레기더미에 걸릴까 봐 걱정이다.

다시 전기가 끊긴 동안 엘리베이터에 함정을 만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두고 빨래건조대 위에 얇은 널빤지를 깔아, 밟으면 바로 엘리베이터 통로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러면 최소한 바로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진 않겠지.

만들기 전엔 만들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괜히 함정에 걸려 좀비가 떨어지면 그 소리로 다른 좀비들이 모일 수 있다. 하지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전기가 들어와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못하게 옥상 엘리베이터실에서 엘리베이터 전원을 완전히 내려버렸다.

괜히 나중에라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좀비가 우리 집 현관 앞에 올라오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물론 그걸 타고 온 한두 놈이야 막을 수 있겠지만, 집 앞에서 놈들과 마주치고 싶진 않다.

아래층에 열린 현관문은 모두 닫아버리고 표시를 해뒀다. 열린 몇 집은 들어가서 살펴봤는데, 건질만한 건 쌀과 통조림 몇 개와 된장, 고추장,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 몇 개가 전부다. 라면은 생각보다 유통기한이 짧다. 육 개월도 채 안 되는 것 같다. 1년은 두고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런데 왜 전쟁이 나면 라면이 동이 날까. 반면 된장, 고추장은 발효식품이라 유통기한이 없다. 쌀은 쌀벌레가 있는 걸 보면 지저분해도 먹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벌레가 있다는 건 최소한 사람이 먹어서 죽을 독은 없는 거다.

닫혀 있는 문은 살펴보지 않았다.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할 수도 없다.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괜히 모험을 했다가 다치면 끝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분명하다!

먹을거리가 떨어져 마트로 갔다. 그동안 마트에 갈 때마다 진열대에 놓인 상품들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좀비들이 우연히 마트에 들어왔다가 진열대에 부딪혀서 위치가 바뀌고 떨어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그동안 내가 계산대 서랍에 숨겨둔 참치통조림이 모두 사라졌다. 좀비들이 어지르지 못하게 챙겨둔 것들이었다. 좀비들이 서랍을 열고 통조림을 다 가져갔다? 그건 말도 안 된다. 어딘가에 생존자가 더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그들을 찾을 수 있을까?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