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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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은 신이 준 것이라면서, 할머니는 나의 허약함을 이해하라고 했었다. 그러나 겨우 열두 살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삼십사 곱하기 칠은 이백삼십팔이란 고도의 사칙연산 정도가 전부였지 그런 심오한 말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했다.

세상 어디에도 자신의 병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럴 거라고 어릴 때의 나는 막연히 확신했다. 나를 포함한 가족은 물론이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 모두를 벌레처럼 갉아먹는 병을, 반드시 한 사람 이상의 세상이 무너져내리고 마는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

제아무리 삶에의 의지를 완전히 내려놨거나 악착같이 붙잡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은 어려운 거라고, 그러기는 정말 불가능한 거라고 나는 고집스럽게 할머니의 말을 부정했었다.

외가댁이 있는 시골에 내려와 지내기로 한 건 그해 초부터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던 일이었다. 어른들끼리의 약속이었지만 어쨌든 그 약속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다음 해 여름 무렵으로 예상했던 나의 요양행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병원에 실려 간 바람에 앞당겨졌고, 그 때문에 2학기 교과서를 앞장만 펴보고 수성읍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언제나 그랬다. 나에게 학교생활은, 고작 한 입 베어 먹었다가 바닥에 떨어트린 쿠키와 다름없었다.

고질적인 비염 치료와 면역력 증강이라는 목적으로 잠시 머무는 거라고 둘러댔으나, 조그만 산골 마을에서도 동정받는 일만은 피할 수 없었다. 지나가다가 들른 마을 할머니들 대부분은, 내 어깨를 토닥이거나 쓸데없이 웃어 주시곤 했다.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란 대개 선하다는 걸 알지만 그 당시의 나는 누군가의 친절이라든가 다정을 느낄 여유가 없어서 인상을 찡그리는 날이 많았다. 남들보다 빠르게 죽어가면서 웃을 수는 없었다. 웃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