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하늘 재개발

  • 장르: SF | 태그: #SF #부동산 #재개발 #공무원 #디스토피아 #서울 #돔 #AI
  • 평점×35 | 분량: 127매 | 성향:
  • 소개: 강남구청에서 재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명조. 어느 날, 한 민원인이 수상한 제안서를 가져온다. 강남 하늘을 재개발한다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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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하늘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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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돔을 뚫는다는 거죠?”

수상하기 짝이 없는 정비계획 입안 제안서를 훑어보던 강남구청 재개발기획팀 김명조 주무관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파트로? 돔을? 뚫는?”

민원인은 중단발의 여성이었고, 명조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정확한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남의 옷을 잘못 입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헐렁한 슈트 차림이었다. 그녀가 상담용 탁자에 두 손을 올렸을 때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할 수 없다는 빈티지 시계가 소매 틈으로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명조는 그것이 지난 세기에 생산을 멈춘 롤렉스라는 브랜드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왜요? 안 될 거 같아요?”

톡 쏘는 듯한 말투였다. 명조는 곁눈질로 민원인의 얼굴을 한 번 살피고 다시 전자문서로 눈을 돌렸다.

“이게 지금…… 총 높이가 몇 미터죠?”

“정비계획안 설명서 보세요. 8565미터예요.”

명조는 전자문서를 빠르게 몇 번 스크롤하다가 현진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팀의 차석인 그녀는 책상에 띄운 서너 명의 홀로그램 얼굴들과 한창 열띤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개 그렇듯 중재의 역할을 맡은 그녀의 상황이 어지간히 복잡하다는 사실은 붉어질 대로 붉어진 그녀의 목덜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명조는 한숨을 쉬었다.

명조는 문득 8565미터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작년 용산구에 착공한 빌레니엄인지 뭔지 하는 빌딩의 높이가 팔천 미터 언저리였던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시행사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세계에서도 48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것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었다. 그 효과는 뜨뜻미지근했다. 이미 초거대 건물(높이 5킬로미터를 넘는 건물들이 그렇게 분류되었다)이 너무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칠천 미터나 팔천 미터를 구분하지 않았고, 떠들썩한 홍보 문구란 높은 월세를 의미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안을 작성한 자는 대한민국 높이 1등이라는 타이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 돔을 뚫어야 할 만큼.

명조는 머리를 긁적이며 전자문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걸 주민들이 동의했단 말이죠?”

민원인은 가볍게 턱짓을 했다. 서류를 보란 뜻이었다. 이미 살펴본 것만으로도 토지등소유자 동의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류가 정확하게 갖춰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명조는 아직 이 제안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돔이 달걀도 아니고……. 굳이 이렇게 해야 할까요?”

민원인의 입가에 짧게 미소가 스쳐갔다.

“주무관님, 서울에 돔 올린 지 얼마나 됐습니까? 자그마치 54년이에요, 54년. 탄소나노튜브를 하나하나 꼬아 가며 저걸 지었어요. 요새는 그렇게 공사하면 잡혀가요. 드론들이 달라붙어서 보수를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지. 지금 자카르타에서 돔 재건축 들어간 거 알죠? 서울도 멀지 않았다고 봐요.”

민원인이 두 손을 가슴 쪽으로 조금 잡아당기자 손목시계에 박힌 천연 다이아몬드가 반짝였다.

“우리가 노후 돔에 기둥 하나 박아 준다고 생각해요. 철거한 돔 타일은 싹 닦아다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할 거고.”

명조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민원인의 말대로 건축 공법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구시대의 건축물들은 가차 없이 스러져 갔다. 구청에도 온갖 재개발 기획들이 쌓여 가고 있었고, 명조는 지난 6개월 동안 야근 없이 하루를 마감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골치 아픈 일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명조는 손깍지를 끼며 제안서가 담긴 전자문서를 505층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상상을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상상 속의 폭탄으로 먼저 폴리머 창을 폭파시켜야 했다. 민원인의 거침없는 태도와 서류의 빈틈없는 모양새를 통해 명조는 높은 확률로 이 장난 같은 기획이 통과될 것이라는 끔찍한 예감을 받았다. 그것은 명조의 기존 업무 위로 떨어지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명조에겐 아직 한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명조는 다시 전자문서를 집어 들었다.

“네, 그렇게 생각이 확고하시다면야…….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허가가 날 수 있을지 없을지 제가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명조는 전자문서를 들여다보는 척하며 다음 말을 할 타이밍을 쟀다.

“그런데요, 선생님. 죄송한데 부서를 잘못 찾아오셨어요. 기존 아파트 상부에 증축하시려는 거잖아요. 그건 재건축사업과로 가셔야 해요. 저희는 재개발사업과고요.”

재건축이 기존 건축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사업만을 의미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소재 공법으로 건설된 건축물의 증축 또한 재건축이라고 부른다. 지반과 외벽 보강 공법을 통해 기존 건축물 위로 수 킬로미터 넘게 증축하는 일이 흔해졌고, 웬만한 신축 공사보다 규모가 큰 그런 공사들을 재건축사업과에서 담당한다. 한편 재개발은 구시대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부수고 새롭게 신소재 건물을 짓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신소재 건물은 구시대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커서 구시대 건물 여러 동을 허물어야 공사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재개발사업과에서도 그런 사업만을 취급한다. 이 경우는 기존 3.5킬로미터 높이의 아파트를 8.5킬로미터의 초거대 건물로 증축하려는 것으로 재건축이 분명했다.

민원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움직임에 커 보이기만 했던 자켓에 맵시 있는 선이 만들어졌다.

“거긴 방금 들렀어요. 건물은 재건축하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저흰 재개발도 해요. 저 위, 하늘 말이에요.”

민원인이 집게손가락으로 재개발사업과 사무실의 천장을 가리켰다. 명조는 입을 다물고 전자문서를 스크롤했다. 정비계획안 도면을 보자 건물 주변 배경이 이상한 형태의 패턴으로 채워져 있었다. 명조는 곧 그 패턴이 돔 타일의 삼각형 형태가 찌그러진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경사진 돔을 뚫고 나온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그린 배치도였다. 말하자면 건물이 뚫고 나갈 하늘의 돔 면적이 곧 재개발 정비구역인 셈이었다.

명조는 전자문서를 몇 번 더 스크롤하고는 힘없이 그것을 내려놓았다. 이제 명조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민원인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명함 아직 안 드렸죠? 잘 부탁드려요.”

민원인이 전자지갑을 꺼내 명함 발송 버튼을 눌렀다. 명조도 전자문서에 자신의 명함을 띄운 후 민원인에게 발송했다.

“오! 명조 주무관님이시네요.”

명조도 자신이 받은 전자명함을 확인했다. GT개발 대표라는 직함 옆에 고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민원인이 다시 한번 빙긋 웃었다.

“또 봅시다.”

이 모든 것이 말장난 같았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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