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베드에 묶인 채 풀장에 빠져 익사한다.
거대한 아나콘다에게 산채로 잡아먹힌다.
태닝 기계에 갇혀 불타 죽는다.
수영장 배수 펌프에 엉덩이가 빨려……
“……워, 이건 진짜 싫다.”
수현은 창을 닫았다. 영화 폴더는 검붉은 섬네일로 얼룩덜룩하다. 안주 삼아 보기 딱 좋은 매콤함이지만 마지막 영화는 위장을 따갑게 찔렀다. 수현은 그 감정을 씻어내기 위해 다른 영화를 찾다가 손을 멈췄다.
어떻게 죽는 게 좋을지 찾고 있냐는 질문이 스스로를 쑤셨다. 마음은 바로 답을 내놓는다. ‘아니, 어떻게 살아도 저것보단 낫겠지 싶어서 보는 건데?’
“지랄같네.”
맥주를 털어마신 후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
저녁 여섯 시 오십 분. 출근시간이다.
* * *
“어이구, 우리 백수 왔어요?”
“프리라니까.”
“일어나자마자 술집 출근도장찍는 프리랜서도 있어?”
먼저 기다리고 있던 중혁이 이죽거렸다. 수현은 자격지심과 짜증을 입 안에 얼버무렸다.
직장을 그만둔 지 9개월. 앉아서도 일감을 줍는 입장은 아니라 영업하듯 따오는 수밖에 없는데, 그 핑계로 이 사람 저 사람 전화번호부를 뒤지다 보니 한가한 놈들이 먼저 손을 벌려 주고, 같이 떠들며 앉게 되는 자리는 결국 술자리다.
“왜 너 혼자뿐이야? 한 사람 소개시켜준다며.”
“일 끝나고 오는 거라 40분쯤 걸릴 거래. 저녁은 먹고 왔어?”
아침 대용으로 맥주 한 캔 마셨다는 소리를 차마 못 꺼내는 수현에게 중혁은 기본 안주 접시를 들이밀었다. 안에 든 건 굵은 소금이 박힌 미니 프레즐, 튀긴 파스타면, 그리고 뭔지 모를 갈색 과자들.
“죄다 밀가루야.”
“싫어? 먹을 만한데.”
“아니, 이거 생긴 게 좀 뭣 같지 않아?”
수현은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과자를 들어올렸다.
갈색 빛을 띠게 튀긴 밀가루에 소금을 뿌렸다는 건 다른 과자와 같지만, 럭비공같은 모양을 보고 중혁은 다른 걸 연상했는지 표정을 구겼다.
“백수현. 입맛 떨어지는 소리 할 거지?”
“아냐. 다른 거야. 예전 영화에서 본 건데…….”
“호러영화지?”
“뭔지 알아?”
“네가 생각하는 건 뻔하지! 바퀴벌레 튀김 그런 거 아냐?”
“내가 미쳤냐! 이건!”
“‘요람 사냥꾼’에 나온 과자 아닌가요?”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방금 퇴근한 듯, 회색 정장을 입은 청년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99년도 미국영화. 악마숭배자가 사탄을 위한 제물로 애들 납치하는 이야기 맞죠? 아이를 쉽게 재우는 약이라면서 마을 보모들에게 이상하게 생긴 과자를 나눠주잖아요.”
“맞아요, 그거 맞아요. 과자를 먹은 애들은 낮에는 푹 잠들었다가 모두가 잠든 시간에는 숲으로 기어가고!”
“호기심이 일어 과자를 한 입 먹은 보모는 거대한 파리로 변해 농장 일꾼들에게 맞아죽고!”
“와, 두 분 너무 잘 논다. 자리 피해줄까?”
중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짧은 침묵을 기회 삼아, 중혁은 두 사람을 동시에 가리켰다.
“여기는 백수현이고요, 여기는 정밝음. 이제 다시 노세요.”
* * *
통성명 직후, 어색하게 서로의 이름을 화제 삼던 술자리는 맥주 두 모금에 호러영화 화제로 넘어갔다. 중혁은 입맛 뚝 떨어진 표정으로 도망친 지 오래다.
수현은 운명의 대나무숲이라도 만난 듯, 최근 반 년 간 꾹꾹 눌러두기만 했던 호러영화 감상을 쏟아냈다.
“그 감독 진짜 기대했는데. 신작을 웬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낸다는 거예요. 당신이 그걸 왜 해? 에이, 그래도 영화 하루이틀 찍은 사람도 아니니 괜찮겠지. 했는데 개애뿔! 캠코더만 720도 돌려가며 찍으면 파운드 푸티지가 된대요? 크리처 슬래셔 무비에 전통의 관객층이 있는데 왜 본인의 주 무기를 두고 나오냐고. 그렇다고 페이크 다큐가 아주 신식소재면 실험 삼아 해보고 싶었구나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잖아요! 누가 15년간 관짝에 가두고 최신영화 못 보게 했어?”
“그거 정말 어지럽기만 하더라고요. 웬만큼 흔들리는 거에는 저도 면역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카메라를 신발에 붙이고 뛰었는지.”
“그렇죠. 그거 보고 다음 날까지 빡친 게 안 가라앉아서 아는 애 불러다가 빙수 먹이면서 떠들었거든요. 근데 걔도 그 영화 봤대고, 재밌었대요. 뭔진 모르겠지만 신선하지 않았냐고. 신선은 무슨 내 지갑이 방금 낳은 빙수가 신선하겠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카메라 옆으로 쓰러뜨리고 질질 끌려가는 다리 두 개만 보여주면 다야?”
“수현 씨는 슬래셔 좋아하시나 봐요?”
“예, 음? 음…….”
수현은 잠시 이성을 되찾고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어떤 캐릭터는 어떻게 죽었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혼자 신났죠. 이런 이야기 할 사람 만나는 게 너무 오래간만이라.”
취미생활 공유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건 좋지만, 이 정도로까지 열변을 토했으면 업무 이야기는 물 건너간 거나 마찬가지이리라. 수현은 나중에 중혁에게도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기본안주 접시로 손을 옮겼다. 하지만 프레즐 조각만 남아 따끔하게 손을 찔렀다.
“언제 다 먹었지. 뭐 좀 시킬까요?”
“안주 필요하시면 이거라도 드실래요? 일하다 받은 건데.”
밝음은 주머니에서 종이로 포장된 화과자 같은 것을 꺼냈다. 수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과자 한 쪽 나눠 먹는 애들도 아니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어디서 얻어 온 화과자 한 알을 주섬주섬 꺼내 쥐어주는 경우도 있나. 밝음은 멋쩍게 웃었다.
“깨끗해요. 제가 정말, 부서질까봐 금이야 옥이야 모시고 왔어요.”
“예, 잘 먹겠습니다.”
수현은 종이 포장을 뜯었다.
연한 갈색의 만주다. 윗면 가운데에는 엄지손톱 크기의 무언가가 올라가 있었다. 번데기를 붙인 후 손톱으로 한번 꾹, 눌러 구부리면 그런 모양이 될까. 수현은 조금 망설이다가 건포도겠거니 생각하고는 한 입에 삼켰다.
백앙금이 달달하게 부스러지는 평범한 만주 맛이다. 하지만 씹을 때마다 찌그러진 번데기 같은 식감이 어금니 끝에 매달렸다. 건포도 같긴 한데 앙금 단맛에 가려져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수현은 그걸 혀로 살살 긁어 겨우 삼켰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죠.”
“네.”
“슬래셔 좋아하세요?”
“그게 본론이에요?”
“뭐 어때요.”
밝음이 씩 웃었다. 치과 광고에서 뽑아내온 듯, 비현실적으로 새하얀 이빨이 빛난다.
핏줄에 적당히 차오른 알콜과, 어차피 오늘도 망했다는 생각과, 술자리가 맛있다는 생각으로.
수현은 그냥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혔다.
“슬래셔가 좋다기보다는, 뭐든 원래 형태로부터 쪼개지는 거 좋아해요. 고딩때 본 방탈출 영화에서, 한 남자가 이렇게 멈춰 있다가 마파두부처럼 조각나는 장면 보고 내 머리도 한대 빡-! 얻어맞은거죠. 사람 몸을 두고도 저런 연출이 가능하구나, 하는 게 첫 번째 컬처 쇼크였어요.”
“그렇죠. 외부의 공격을 받은 사람 몸이 평소의 정상적인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넘어간다는 걸 보여주는 연출이 섬뜩하면서도 신선한 맛이 있죠.”
“네일건처럼 뾰족한 흉기가 연수랑 중뇌 쪽으로 박히면서 얼굴이 변하는 연출이 대박! 아. 안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좋아해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울룩불룩하더니 갑자기 확 터지는 거!”
“에이리언 좋아하세요?”
“재밌게는 봤는데요.”
“봤는데요?”
“왜, 영화 속 괴물들은 사람을 누워서 떡먹듯 잡잖아요. 먹든 죽이든. 그런데 걔들은 각 변태시기마다 역할분담하면서 고생고생하는 거 보니까 괜히 내가 힘들어지는 거예요.”
“아하하하하!”
“진짜. 나 진지해요. 특히 가슴 박살내고 나오는 애는 너무 힘들어 보여. 그 쪼끄만 게 말이야. 사람 몸에 한 번 기어들어갔으면 영양분을 뺏어먹든 살을 파먹든 그래야지. 근데 진짜 몸만 잠깐 빌려. 괴물이 도리를 알아.”
“와, 그런 친절한 해석은 처음 듣는다.”
“내가 괴물이 됐으면 인생 좀 날로 먹겠어요. 은근히 고생하는 괴물 많다니까?”
“이입을 재미있게 하시네. 걔들이 들으면 좋아하겠어요.”
“그러면 친절한 백수현 씨에게 술이나 샀으면 좋겠네요. 나만큼 걔들 걱정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영화 보면서 괴물 쪽에 이입하세요? 저기 쪼개지는 저 인간은 전무, 저 인간은 팀장, 이런 식으로?”
“이입은, 음, 이입은…….”
수현은 저녁에 보았던 폴더 섬네일을 떠올렸다.
누가누가 제일 편하게 죽었나, 누가누가 제일 빠르게 죽었나. 덜 비참하게, 끔찍한 꼴 오래 안 보고, 덜 고생하고.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밝음의 시선이 느껴졌다.
“밝음 씨는 무슨 영화 좋아하세요?”
밝음이 입을 열었다.
이빨들이 또 반짝인다.
수현이 기억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 * *
수현은 술자리에서 부끄러운 적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토한 적 없고, 필름이 끊긴 적도 없다. 실수 없이 귀가하는 음주량의 적정선도 안다. 그 양도 절대 남들에게 꿀리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날의 술자리에서 밝음에게 무슨 대답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 떠 보니 자취방 천장이 핑핑 돌고, 몸 안은 식도부터 대장까지 우릉우릉 울렸다. 기차 한 대가 내장을 레일 삼아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수현은 그걸 변의로 판단하고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바지를 내렸다. 매운 안주를 먹은 다음날처럼 따끔한 감각과 함께 내용물이 변기로 쏟아졌다.
“아……윽. 진짜 엄청 마셨나?”
수현은 내친 김에 샤워까지 하기 위해 윗옷과 바지와 팬티를 훌렁훌렁 벗어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물을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변기를 보았을 때.
형태는 익숙하지만 그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물체를 발견했다.
가늘고 긴 것이 변기물 위에서 하느작거린다. 수현은 처음에 기생충인 줄 알고 기겁했지만, 가만 들여다보니 어육 소시지에 붙어있을 법한 비닐 끈이었다.
수현은 자신의 아랫배를 내려다보았다. 백수현, 설마 어젯밤에 저런 것까지 주워 먹었냐?
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변기 레버를 내렸다. 예의도 부족했고 절제도 없던 술자리에 대해서 잊고 싶기도 했고, 저 비닐을 꺼낼 각오도 없었다.
변기가 소화불량에 걸린 듯 구룩거리는 소리를 냈다. 막혔나, 하는 불안감도 잠시. 내용물은 곧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