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같은 타임라인, 빌어먹을 멜론 뭐시기.”
이제는 트친과 모르는 사람의 트윗마저 구분하지 못하고 스팸 트윗마저 타임라인에 한꺼번에 띄워버린 화면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가끔 아직 계정을 탈퇴시키지 않은 다른 이들의 프로필에 들어가 유령처럼 같은 말만 내뱉는 자동 트윗을 보면 기분이 정말 묘해졌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에 실패하고 머스크 향수 사업에 뛰어든지도 벌써 5년, 수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를 대체할 또 다른 SNS로 넘어가면서 트위터 이용자 수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옛 향수에 젖은 채, 더 이상 SNS로서의 기능마저 잃어버린 일기장과도 같은 트위터를 여전히 끌어안고 습관처럼 혼잣말을 뱉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이목탁 @yee_moktak0901
다 스러져간 판잣집 주저앉아 광인처럼 중얼거리는 게 나라니…
접어야지, 이제 그만 해야지 하면서도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한 시간도 안 지나서 다시 고향이 그리워진 사람처럼 재활성화를 하는 꼴이 스스로도 한심했다. 하루에 트위터를 8시간이나 하더니 정말로 중독자가 되어버렸구나. 나는 한숨을 푹 쉬곤 부엌으로 가 선반에 있는 컵라면 하나를 꺼내기 위해 몸을 길게 늘렸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천장에 딱 붙은 수납장 문을 열자마자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대충 쌓아두었던 물건들이 산사태라도 난 것처럼 일제히 우르르 쏟아졌다. 가뜩이나 까치발을 들고 있던 나는 쏟아지는 컵라면 용기와 종이컵들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뒤로 자빠졌다.
” 아오 씨… ”
짜증 섞인 음절이 입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입에 뭐라도 단 걸 집어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제대로 잡쳐버린 나는 방바닥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종이컵들을 대충 발로 밀어서 구석으로 몰아넣고는 문고리에 대충 걸어둔 모자를 대충 걸쳐 쓰곤 핸드폰과 지갑만 챙겨 편의점으로 향했다.
천 원이나 하는 메로나를 집어 들고, 나는 그 연두빛 포장지를 노려보았다. 무슨 하드바가 천 원씩이나 해?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XX대 대통령이 탄핵되기 직전 트위터에서 서동요처럼 유행했던 일종의 밈(meme)을 뇌까리며 하드바를 깨물었다. 미뢰에 시원한 단맛이 느껴지는 순간 경쾌한 알림음이 휴대폰에서 울렸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화면을 보았다. 트위터 알림이었다.
‘ 와 얼마만의 알림음이야? ‘
알림음에 신나다니. 정말 SNS 중독자구나.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 나는 곧 현실을 직시했다.
‘ 보나마나 스팸이겠지. ‘
어차피 나 말고는 내 계정을 보는 사람도 없을 테고 타임라임 시스템도 관리가 안 돼서 온갖 오류가 일어나기 일수다. 그러니 내 글에 마음이나 리트윗이 생길리가 없었다. 도파민이 순식간에 훅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곧 짜증으로 변했다. 트위터 알림이 계속해서 울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트위터에 접속하자 화면은 글씨가 빽빽하게 들어찬 창으로 가려져 있었다.
<중요 공지>
2028년 8월 12일 업데이트 내역
적은 이용자로도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방법을 원하십니까? 트위터는 당신의 SNS가 보다 더 활기차지길 바랍니다. 신규 기능이 추가된 트위터를 베타 테스트 해보세요! 당신의 관심사에 안성맞춤인 자들과 더 많이, 더 자주 교류를 하세요!
(중략)
[닫기]
‘ 이게 뭐야. 이제 그냥 오류난 타임라인을 아예 정식 타임라인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거야? 으, 싫어!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 이상한 변태들도 많단 말이야. 다 망해간 SNS 계정이지만 심심해도 혼자서 헛소리나 할 건데. ‘
생전 처음 보는 팝업창의 닫기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트위터를 하면서 누군가 내 트윗에 공감을 해주길 바란 적도 있지만 막상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하니 꽤나 소름이 몰려왔다. 대낮에 밝은 공원에 떡 하니 놓인 통유리 공중 화장실에서 변을 보는 기분이랄까. 나는 서둘러 계정을 비공개 계정으로 잠궈버렸다. 그리고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기 전 사진 한 장을 찍어서 뻘글을 올렸다.
이목탁 @yee_moktak0901
마트까지 가는데 10분, 처먹는데 10초. #mood
트윗을 쓰고 타임라인을 내리고 내 속삭임으로 전부 들어찬 화면에 하트를 누르는 등, 의미도 생산성도 없는 행위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휴대폰을 대충 던져둔 채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벌건 대낮에 낮잠이나 퍼질러 잔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계좌에 남은 돈도 이제 거의 떨어져 가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백수 SNS 중독자 인생. 나는 무료한 일상을 뒤바꿔줄 새로운 일이 생기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 인생을 바꿔 놓은 그 일은 시끄러운 매미 소리에 귀를 틀어 막고 죽부인을 끌어안은 채 방 안에서 한량처럼 잠에 들었을 때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
이목탁 @yee_moktak0901
마트까지 가는데 10분, 처먹는데 10초. #mood
〔답글 달기〕
ㄴ파록소 @BLUEchlorophyll
무슨 아이스크림 먹었어요? 맛있었겠다. 돼지런하시네요.
낮에 잠들어 다음날 이른 새벽에 비몽사몽 눈을 뜬 나는 계정을 비공개로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비어있어야 할 답글란에 달려 있는 멘션을 마주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둑한 방에서 뜨다 만 눈으로 환하게 빛나는 액정을 보고 있자니 눈이 아려 참을 수가 없었다. 잠에서 덜 깨 납덩이 같은 몸을 비척비척 끌고 방에 불을 켰다. 그리고 침대에 다시 엎드려 트위터를 살폈다.
그런데 답글이 달려 있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그간 올렸던 모든 글에, 그 녀석의 답글이 달려 있었다. 뭐야, 뭔데. 의문의 사용자는 나와 서로 팔로우가 되어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 아니, 그리고 돼지런하다는 소리는 또 뭐야? 부지런한 돼지라는 거야? ‘
참신한 합성어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가 하나씩 손수 남겨놓은 멘션들을 읽는 게 재미있기도 해서, 도무지 스크롤 내리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내 일상 트윗, 내가 올린 짤막한 서평, 뮤지컬 감상 후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부 살펴본 듯 싶었다. 누군가 내가 기록한 일상을 하룻밤 새에 낯낯이 뒤져서 살펴보았다는 게 소름이 끼치면서도 동시에 SNS 중독자에게 당장 필요한 도파민이 과다하게 분비되었다.
파록소 @BLUEchlorophyll
저도 그 책 읽었어요. SF 소설 중에서 단연 최고지요. 문목하 작가의 ‘유령해마’가 재밌었다면 ‘돌이킬 수 있는’이라는 소설도 좋아하실 거예요. 아름다운 소설이에요.
파록소 @BLUEchlorophyll
능소화네요. 여름에 피는 꽃들 중 하나죠. 주홍빛 꽃잎과 담을 타고 뻗어 올라가는 덩쿨이 생명력 있고 매력적인 식물이에요.
‘ 한 번 답글이라도 남겨볼까. ‘
나는 할 말을 고르고 골라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답글을 보내기 직전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화면에서 손을 뗐다. 애초에 잠금 계정에 팔로우 하지 않은 사람이 멘션을 달아둔 게 이상하다 느끼긴 했지만, 그건 또 트위터의 오류가 아닐까 싶어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파록소라는, 그 의문의 사람이 답글을 달아둔 시간이 모조리 똑같았다는 거다. 그 50개의 멘션들은 시, 분, 초가 전부 동일했다. 누가 매크로라도 쓰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도 오류일까? 그러나 그 의문은 조금 뒤 알림배지에 20이라는 숫자가 동시에 떠올랐을 때 풀렸다. 다른 닉네임을 가진 자가 나와 실시간으로 접속한 채, 내가 올린 트윗에 무작위적으로 멘션을 달아둔 것이다. 무려 스무 개를! 동시에 말이다!
확신이 섰다. 이건 트위터의 오류가 아니다. 이게 트위터가 공지로 띄웠던 교류 어쩌고 하는 그 이상한 기능인 걸까? 애써 멘션을 전부 무시하려 했지만 휴대폰을 거꾸로 뒤집어 책상에 둘 때마다 상자 안에 있는 선물이 궁금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힐끔대게 되었다. 결국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답글을 달아보았다.
이목탁 @yee_moktak0901
누구세요?
파록소 @BLUEchlorophyll
앗, 죄송해요. 저랑 관심사가 비슷해서 구경하다가 멘션 달았는데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래도 모처럼 관심사가 맞는 분을 찾아서 너무 기쁜데 계속 교류하면 안 될까요? 저는 김초엽 작가님 작품이랑 천선란 작가님의 책을 정말 좋아해요. 목탁님도 그렇지 않나요?
나는 잠시 동요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멘션이 달린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인간처럼 말하는 그를 보고 매크로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매크로까지 써가며 다정한 말을 건낼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루에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사람의 수가 할당량처럼 정해져 있어 기를 쓰고 듣기 좋은 말들로 사람들을 현혹시켜야 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런 이상한 상황이 존재하기나 할까.
이목탁 @yee_moktak0901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뭔데요?
고민 끝에 그를 내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알림이 동시다발적으로 뜬 건 트위터에서 갑자기 과도한 양의 데이터가 들어와 처리 순서가 밀려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믿고 싶어서 끼워 맞춘 건지 실제로 그런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낯선 이는 나의 질문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그는 꽤나 마이너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점만큼은 나와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좁은 판에서 같이 덕질할 사람은 많을수록 좋지. 사람 하나 하나가 금이라고. 나는 그렇게 덕질과 일상이 뒤섞인 나의 계정에 그를 정식으로 들여보냈다. 정식이라 해봤자 그저 서로 맞팔로우를 하는 행위일뿐이지만 말이다.
파록소 @BLUEchlorophyll
앞으로 잘 부탁해요. 같이 즐거운 독서 해봐요.
그의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웃고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
그렇게 의문의 존재와의 멘션이 지속적으로 이어진지도 몇 개월이 지나고 어느덧 계절이 휙휙 뒤바뀌었다. 매일 같이, 내가 트윗을 올릴 때마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즉각적인 다정한 말을 해주는 그에게 나는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가 남긴 메시지를 훑으면 다운 되었던 기분도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파록소 @BLUEchlorophyll
목탁님도 오늘 바다 다녀오셨군요. 저도 이번 휴가철에 바다 가려고 하는데, 괜찮은 곳 좀 추천해주시겠어요?
파록소 @BLUEchlorophyll
오늘은 뮤지컬 해적 보려갔다 왔어요. 뮤지컬 넘버들이 전부 좋더라고요. 아마 이번에도 회전문 돌 것 같아요.
파록소 @BLUEchlorophyll
서울국제도서전이요? 당연히 다녀왔죠. 작가님 싸인도 받고 왔어요. 이번에 구매한 책은 이것들이에요.
(사진) (사진)
파록소 @BLUEchlorophyll
아, 전에 추천해주셨던 팬션으로 놀러 갔었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맨발로 해변가를 걸었는데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모래알들이 기분 좋았어요.
파록소 @BLUEchlorophyll
목탁님 괜찮으세요? 너무 속상하셨겠어요. 다음 시험은 꼭 붙으실 거예요.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그와의 관계가 틀어져 버리는 순간 또한 오기 마련이었다. 그건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살짝씩 삐그덕거리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 혹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미묘함. 그건 그가 내가 말한 적도 없는 사실을 아주 당연한 듯 먼저 입 밖에 냈기 때문이다.
파록소 @BLUEchlorophyll
그나저나 어제 복학 신청한 건 잘 됐나요? 전에 무슨 문제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트위터에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사실을,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알고 태연히 말했다. 맹세코 나는 이와 관련된 것을 말하지도, 추론을 통해 알 수 있을 정도의 실마리도 제공한 적이 없었다. 순간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이목탁 @yee_moktak0901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전에 말한 적 있나요? 그런 적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꽤 오랫동안 휴학을 한 탓에 전산 오류로 인해 일련의 사건 사고가 있었는데, 나는 분명 말한 적이 없다고 다시 한 번 주장하고 싶다. 나는 그가 이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는 고사하고, 내 질문에 둘러대거나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다는 말을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파록소의 대답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파록소 @BLUEchlorophyll
당연히 말한 적 없죠. 제가 알아낸 거예요.
이목탁 @yee_moktak0901
뭐라고요?
‘제가 알아냈어요’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온갖 가설들이 빙빙 돌아갔다. 저 사람은 내 트위터 타임라인을 사찰하며 개인정보를 빼가고 그걸 넘어서 내 신상까지 캐고 다녔던 건가? 아니면 해킹? 애초에 나한테 접근한 이유가 뭐지? 사이비인가?
이목탁 @yee_moktak0901
너 누구야?
파록소 @BLUEchlorophyll
당신 트친이죠. :)
기껏 한다는 말이 이딴 건가. 아무렇지도 않게 영양가 없는 말로 대꾸한 그에게 나는 다시 한 번 멘션을 보냈다. 이번에는 경멸과 공포를 꾹꾹 눌러 담아서 말이다.
이목탁 @yee_moktak0901
시치미 떼지 마. 너 뭐냐고. 대체. 나랑 대화하고 있는 너 말이야. 뭐하는 새끼야, 너. 너 댓글 알바 같은 그런 거야? 아니면 스토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