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나의 마지막 청중

  • 장르: 일반, 기타
  • 평점×110 | 분량: 71매
  • 소개: 지구가 멸망한 뒤 남은 한 사람의 음악가와 로봇의 이야기. 더보기

지구상 나의 마지막 청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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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터 교수는 자신이 이 자리에 왜 불려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지하갱도에서 그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혀 쓸모 없는 축에 속했다. 어쨌든 인류의 대부분이 멸망하고 기계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에 한 명의 늙고 병약한 음악가란 고장난 라디오만큼이나 찾을 일이 없었다.

갱도 사람들은 그를 점잖게 무시했고, 시미터 교수 또한 밥버러지가 되지 않기 위해 허드렛일과 청소 등을 돕는 게 다였다.

한데 그날따라 아침부터 갱도 사람들이 그를 찾는다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리더니, 점심 무렵이 되어서는 그곳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베이거 앞으로 불려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침투에서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시미터 교수는 베이거가 내뱉은 말 중에 몇 마디를 놓쳤다. 하지만 알아들은 척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령 마더 봇의 침실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굉장한 행운이었죠. 거기 한가운데서 펄떡거리던 그녀의 심장을 못 부순 것은 대단한 불행이었지만.”

이 말을 듣고 교수는 침실 한가운데 들소만 한 심장이 뛰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교수님을 여기 모셔온 이유이기도 하죠.”

“그게 뭡니까?”

베이거는 중대한 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전우들을 두루두루 살펴본 후 말했다.

“놈은 음악으로 기계들을 조종합니다.”

“네?”

그 얼빠진 반문은 교수가 아니라 모여 있던 다른 전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베이거는 여전히 시미터 교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말한 그대로입니다. 놈은 전파를 쓰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 해커들이 그렇게 애를 먹었죠. 도무지 명령체계와 전달 시그널이 뭔지 알 수 없었거든요. 완전히 다른 곳에서 헤맨 꼴이죠.”

시미터 교수는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로봇들이 음악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군. 그것 참 뭐랄까, 음악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교수님이 필요합니다. 교수님께서 놈의 음악을 듣고 무슨 뜻인지 해석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갱도에서 음악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교수님뿐이라서요.”

“맙소사.”

시미터 교수가 그런 감탄사를 내뱉은 것은 놀라서가 아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해석을 하라니요, 도대체.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내게 로봇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악보를 그려달라고 하면, 그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그것까지는 알아낼 방도가 없는데요.”

“그건 연구해 봐야죠. 저도 음악은 잘 모르지만 음표 하나에 스펠링 하나, 이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시미터 교수는 머리를 굴렸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음표는 알파벳을 전부 표현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단어를 만들어낸다면 온통 불협화음일 텐데.

시미터 교수는 로봇들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음악적 소양을 높게 평가하느냐고? 로봇들이 음악의 화음이나 아름다움을 따질 것 같으냐고?

물론이었다. 아니라면 굳이 음악을 의사소통 체계로 삼았을 리 만무하니까.

‘아무래도 마더 봇을 뛰어난 감성의 소유자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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