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 이제 더 못 하겠어. 이제 편해지고 싶단 말이야. 잘 있어.”
친구가 수화기 너머에서 펑펑 울더니 자살하겠다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최근 몇 달간 유난히 위태로워 보이기는 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던 터라 처음 들었던 감정은 짜증이었지만, 그만큼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는 이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119에 신고했다.
이번에는 꽤 결심이 굳었던 건지, 친구는 평소에는 입에 대지도 않던 술까지 마시고는 시너에 적신 솜을 채운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방문 고리에 목을 매었다고 했다. 시너로 의식을 잃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 의사(縊死)가 이루어지는 방식이라 경부가 압박된 시점은 전화가 끊어진 뒤 다소 시간이 흐른 뒤였고, 그사이 출동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응급실로 후송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입원하래?”
병원에서 전화를 해 온 친구는 정신과 외래 진료에서 입원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응…….”
“들어가고 싶어?”
“잘 모르겠어. 들어간다고 좋아질까 싶어서. 넌 어떻게 생각하나 해서.”
“어차피 우울해할 거면 한번 들어갔다는 와 봐.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앞으로 살아갈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잖아. 자의 입원으로 들어가면 아마 나오고 싶을 때 나올 수 있을 거야. 듣기론 심리 치료 프로그램 같은 것도 한다니까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뭐, 대학병원에 입원하래?”
“아니……, 내가 가족도 없고 돈도 없다고 하니까 국립병원 추천해 주더라고.”
“우리 고모 들어갔던 데가 국립이었는데 한 달에 십몇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아.”
“십몇만…….”
2년간 직장 없이 생활하던 친구에게는 부담이 되는 액수일 터였다. 그러나 나도 도와줄 여유는 없었다. 몇 분을 더 고민한 뒤, 친구는 한달 정도 입원해 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통화 말미에 다급히 덧붙였다.
“그런데 나, 네 방에서 좀 살 수 있을까?”
“응?”
***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에 실패한 뒤, 국어 학원 강사와 개인 공부방 불법 보조 강사를 거쳐 지금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최근에 원래 살던 고시텔에 불이 나서 새 고시텔로 옮겼는데, 이전에는 거주자 대부분이 낮에 방을 비우고 소음 관리에도 신경 썼지만 새로 옮긴 곳에서는 낮에도 많은 사람이 방에 있었고 생활 소음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낮에 잠을 자야 하는 입장에선 도저히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새 고시원이든 싼 달방이든 찾아서 옮기기로 결심했지만, 당장 하루가 급했던 처지라 떠올린 대안이 친구네 집이었다. 노후된 다세대주택이라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기는 해도 소음 문제는 확실히 나을 터였다.
“그래서, 너 나올 때까지만 살게. 안 될까?”
“음…….”
당장 그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친구는 의외로 고민을 많이 했다. 몇 분 후에 친구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어쩔 수 없지. 근데 하나만 약속해 주라.”
“응?”
“그게, 있잖아……. 지금은 뭐라고 정확히는 말 못 하겠는데, 거기서 살다가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 만약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말고 나한테 먼저 알려 줄 수 있을까?”
“이상한 일? 무슨 일인데?”
“그건 말하기 힘들어. 안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근데 막 위험한 일은 아니야. 그냥 ‘이상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