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들이닥쳤다. 서쪽 숲에서부터 기다랗게 이어진 발자국이 물결에 지워졌다. 그 끝에 진홍이 서 있었다. 하얗게 인 물거품이 미투리를 적셨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해풍에 맞서다시피 한 채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이 굳은 다짐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잔뜩 긴장한 어깨에서 조금씩 기운이 빠졌다. 진홍이 입가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냈다. 그러나 저물녘의 볕이 비쳐 붉은 기운을 띤 눈동자에 어린 분노는 지워지지 않았다.
파도가 쓸려 나갔다.
진홍은 이 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이 진홍이 원하는 단 한 가지였다.
진홍은 섬 생활이 끔찍했다. 매일 보는 동무들은 지긋지긋했고 갯냄새는 역겨웠다. 마당마다 줄줄이 매달아놓은 생선이 진절머리 났다. 하얗게 반짝이는 소금밭은 비위에 거슬렸다. 비좁은 땅에 어떻게든 발붙인 채로 새끼를 낳고 뒤엉켜 사는 어른들이 짐승 같았다.
이 섬에서 삶은 대체로 무사태평했다. 어획량은 풍부했고 돌림병은 잇닿지 못했으며 매해 여름 느지막이 사나운 기세로 다가들곤 하던 태풍은 섬 가까이에 이를라 치면 지레 겁먹은 것처럼 슬그머니 행로를 바꾸었다.
섬은 풍해를 입지 않았고 부락민들은 사시사철 배를 곯지 않았다. 보릿고개조차 남의 일이었다. 봄은 쑥과 가자미의 철이었으니까.
이 모두가 섬을 다스리는 용왕님의 자비 덕분이었다.
용왕님이라니! 하, 그 빌어먹을 것한테. 욕지기가 치민 진홍이 탁 침을 뱉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