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돌려서 마음속을 바라봐! 고통으로부터 도망가려면 그 길뿐이야! 몸을 버리고 마음속으로 도망가!]
아빠가 허리띠를 풀고 다가오자 책장 위에 늘어져 있던 점박이가 하악 거리며 내게 말했어요.
점박이는 말을 너무 어렵게 해서 알아듣기가 힘들어요.
“빌어먹을 고양이 새끼. 어디서 하악질이야? 나가지 못해?”
아빠는 허리띠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점박이에게 휘둘렀어요.
나는 아빠의 허리띠가 내는 소리가 무서워요.
저번에 아빠가 내방에 찾아왔을 때 허리띠로 때린 상처가 아직도 아파요.
[어서 지금이라도 도망가! 머리 안쪽을 들여다봐!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거기로 떠나가!]
점박이가 말한 대로 도망가고 싶어요.
아빠가 나를 아프게 할거에요. 아빠는 나를 아프게 하면서 나쁜 말을 해요. 나쁜 말을 하면서 장군이처럼 나를 깨물곤 해요.
물론 장군이는 장난으로 그러는 거예요. 아빠처럼 내 몸에 이빨 자국을 내지도 않아요.
장군이는 키가 나랑 비슷한 커다란 개에요.
점박이가 장군이는 도사견이라고 말해줬어요.
아빠는 장군이가 사람도 물어 죽일 수 있는 무서운 개라고 말하고 다녀요. 그건 거짓말이에요.
장군이는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 않는 착한 개에요.
아빠가 나를 아프게 하면 엄마도 나를 괴롭혀요.
엄마는 나를 노려보며 뜨거운 물로 너무 아프게 빡빡 씻겨요. 아빠가 내게 남긴 상처가 아파 소리를 지르면 엄마도 내게 마주 소리를 질러요.
그럴 때면 나는 마당의 장군이에게 가요.
장군이는 짖지도 않고 내 옆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요.
때론 점박이도 마당에 나와서 내 다리 사이를 비비고 다녀요.
“썅년아. 이번에 저번보단 아빠를 즐겁게 해줘야 할 거다.”
아빠가 또 내게 나쁜 말을 해요. 곧 나를 아프게 할거에요.
나는 점박이가 말한 대로 하고 싶어요.
눈을 까뒤집고 다른 곳을 바라보려 해요.
아빠의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져요.
[지금이야…. 거기로… 도망가…]
방문밖에서 점박이가 하악 거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어요.
눈을 뜨니 아빠가 사라졌어요.
내 방이지만 내방이 아니에요.아빠도 점박이도 소리도 빛도 없어요.
밤도 아닌데 창밖이 어두워요. 빛도 없이 캄캄한데도 모든 게 잘 보여요.
여기엔 나 혼자 밖에 없어요.
아니다.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니 사람이 아닌가 봐요.
이빨이 엄청 많이 달려 있고 눈알이 시커먼 여자가 우리 집 마당에 서 있어요.
검을 옷을 입고 창밖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어요.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보고 웃고 있어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점박이가, 장군이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아빠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 층에서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빠도 엄마도 아니에요.
장군이가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와요.
나는 너무 무서워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되. 아이를 위해서 우리가 나서야 해.]
[나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수있다.. 니가 말하는거만 빼고..]
[아이의 상태가 안 좋아. 저 나이 때 인간의 아이는 내 말을 들을 수가 없어야 해. 다자란 인간의 아이가 아직도 내 말을 알아듣는 건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도….. 나는 못해..]
점박이는 장군이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유달리 개를 싫어하는 점박이가 보기에도 장군이는 다른 개와 달랐다.
때때로 장군의 주인이자 아이의 아비 되는자가 장군이를 커다란 쇳덩어리에 넣어 어디론가 데려갔다 오곤 했다.
그렇게 온몸에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를 입고 돌아온 날에도 장군이는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
[내 형제를 물어 죽이고 왔다.]
점박이의 호기심에 장군이는 짧게 대답해줬다.
장군이의 대답에는 자랑스러움도, 후회도 자책도 섞여 있지 않았다.
장군이는 그런 개였다.
집 안에서 아이의 아비가 내지르는 열에 들뜬 고함이 들려왔다.
무력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점박이의 털 한올 한올이 다 곤두섰다.
[들려? 너의 주인이란 자들은 부모의 의무를 저버렸어. 세상에 아이를 미워하고 고통을 주는 아비와 어미가 어디 있지??]
[내게도…. 나만의 신념이 있어. 난.. 그건 못해]
[너의 주인이란 자는 네가 사람 한두 명 물어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고 자랑하고 다니던데? 너의 주인이 거짓말을 했나 보지?]
[……]
답답하고 멍청한 개다.
점박이는 몸을 돌려 강변으로 걸어갔다.
이 집에서부터, 아이와 그 부모로부터, 답답한 장군이로부터 잠시 떠나있고 싶었다.
[!!]
언젠가부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장군이가 맹렬하게 짖어댔다. 점박이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그래?]
[아이가! 봐서는 안될 것을 봤다…. 봐서는 안될 것도 아이를 봤다!]
순간 아이에게 건넸던 충고가 떠올랐다.
[내가 실수를 했군. 인간의 아이가 가서는 안될 곳을 갔어…]
점박이는 비통한 심정이 들었다.
[이봐! 너는 개잖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거 아냐!]
[나는…. 인간들 손에 자라나 알 수 없다. 사부 라면…. 사부 라면 알고 있을 거다. 사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라!]
“저 개새끼가 갑자기 왜 저렇게 짖어대?”
빛이 돌아왔고 아빠도 돌아왔어요.
장군이가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와요.
나도 장군이가 저렇게 짖는 건 처음 들었어요.
아빠가 내 방을 나가자 온몸이 아파요.
그래도 아빠가 하는 나쁜 말을 듣지는 않았어요.
점박이가 말한 대로 도망쳐 있었던 게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요.
다시 방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어요.
처음엔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날 찾아온 줄 알았어요.
엄마가 수건을 내밀었어요.
이럴 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엄마를 따라가야 해요.
엄마가 잡아 끄는 게 너무 빨라서 다리 사이가 화끈거려와요.
그래도 아무 소리도 내면 안 돼요.
내가 소리를 내면 엄마가 내 뺨을 때리고 또 우실 거에요.
나는 엄마가 나를 아프게 하는 게 싫어요. 엄마가 우는 것도 보기 싫어요.
장군이는 어느새 조용해졌어요.
아빠가 장군이에게 먹을걸 가져다준 거 같아요.
아빠는 나를 아프게 하고, 엄마를 아프게 하지만 장군이한테는 잘해줘요.
이 집에서 장군이만 아빠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아빠를 자랑스럽게 만들어 준다고 했어요.
사부는 미친개였다.
사부에겐 주인이 없었고 이름을 지어준 이도 없었다.
점박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날부터 사부는 마을을 떠돌아다녔다.
털이 길어 눈코입이 어디 박혀 있는지 알아보기도 힘든 삽살개였는데 항상 흙바닥을 뒹굴고 다녀 원래의 털빛이 무슨 색이었는지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사부에게 이름을 지어 준건 점박이였다.
사부는 늘 지나가는 고양이나 개, 심지어 인간에게까지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 했다.
사부의 노력과는 달리 사부로 부터 무언가를 배운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마을의 인간 중 몇몇이 사부를 불쌍하게 생각해 강변에 집을 지어 주었다.
사부는 비가 오면 집에 있지 않고 나와서 비를 맞고, 햇빛이 못 견딜 정도로 뜨거운 날이면 집안에서 열기를 묵묵히 참아내곤 했다.
[이봐 사부! 우리 집 아이에게 큰일이 났다!]
[점박이인가? 너 핫도그란 음식 먹어 봤냐?]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내 말 집중해서 들어! 장군이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했어!]
[동그란 바퀴 두 개를 타는 인간들이 지나가다 주었어. 너도 먹어 볼 테냐?]
[사부!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코를 아프게 할퀴어 주겠어! 우리 집 아이가 봐선 안 될 존재의 눈에 띄었다고!]
[핫도그란 건 말이지…. 우리 개들로 만든 음식이란 이야기가 있어. 점박이 넌 우리 개들을 싫어하니 맛있게 먹을 수도 있겠군.]
비통한 마음에 점박이의 꼬리가 축 처져 내려갔다.
애당초 미친개에게 기대를 건 게 잘못이었다.
‘바보 같은 장군이놈 같으니라고. 미친개에게 도움을 구하라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혹여나 하는 마음에 장군이의 말을 따른 자신도 참 바보 같다 생각이 들었다.
[너희 집 아이도 내게 핫도그를 준 적이 있어. 뜨거워서 먹다가 이빨이 다 빠질 뻔 했지만 참 맛있었다.]
[…..]
[아이 부모의 그림자가 아이에게 드리워진 거야. 아이는 태양도, 그림자도 가지고 있지 않아.]
[!!!! 내가 아이에게 가서는 안될 곳으로 도망가라고 말했어! 거기서 아이가 봐선 안 될 존재를 만난 거야!]
[가서는 안 될 곳이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봐봐. 난 개들로 만든 핫도그도 맛있게 잘 먹잖아?먹어선 안될 것이란 것도 없어. 내가 집어삼켜서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그만인 거야.]
[사부!!! 집중해!!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 갈 수는 없어. 아이가 거기에 갔다면 이미 존재하는 곳이란 이야기야. 봐서는 안 될 존재란 것도 존재하지 않아. 이미 봐버린 걸 어떻게 하란 말이야?]
[사부! 장군이 기억하지? 장군이가, 아이가… 그리고 내가 사부의 도움이 필요해!]
점박이의 외침을 무시하고 사부는 강변에 곧게 뻗은 길을 달려가는 인간의 두 바퀴를 맹렬한 기세로 뒤쫓아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