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만약에 말이죠…. 혹시라도 투어메이린에 염원을 빌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절대 그때 당장의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요.”
“네? 그게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예요?”
“만약에요.”
그때 이키라는 나에게 감정에 치우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는 이 상황이 되고 나서야 그말의 의미를 알겠다.
“이…. 이키라…. 제발…. 이거 거짓말이죠? 아니야, 아닐 거야…. 그렇죠? 네?”
겨우 정신이 돌아와서 간신히 입을 떼자 휘몰아친 감정은 눈물이 되어 나의 두 뺨을 타고 쉼없이 흘러내렸다.
“카스텔라. 선조나 피 하나 안 섞인 그 후손이나 참으로 역겹기 그지 없구나.”
무질서는 상실의 슬픔에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내 주변을 가득 메우며 조롱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나는 카스텔라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자, 이제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냐.
사랑하는 친구를 되살리는 거? 아니면 그 목숨은 포기하는 대신 세계의 안정을 구할 거냐?”
어떤 선택?
세계를 구할 마지막 퍼즐조각은 이키라였다. 하지만 나는 이키라를 잃고 그가 없는 세계를 살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이키라 너를 되살리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이제 알았어. 투어메이린에 담아야할 염원의 정답이 무엇인지를.”
나는 고개를 똑바로 들어 올리며 눈앞의 정적을 날카로운 눈으로 마주했다.
“뭐?”
오히려 당황한 쪽은 내가 상실감을 극복하리라 예상치 못했던 무질서였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염원은 이 세계의 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