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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영웅협행 [英雄俠行], 작가: DIMITRI

[설정집] 2. 칠주검문

18년 9월

※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인데 당연하게도 설정자료집의 20%정도가 역사적 사실이고 80%는 창작입니다. 또한 실존인물과 창작인물이 혼재되어 있으니 혼동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가령 구처기는 실존인물이고 그가 전진용문파의 개조인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칠주검법은 소설적 창작입니다.) 누가 전부 실제인물들로 착각하셔서 여쭤보시길래 드리는 말씀입니다. ^^;

* 영웅협행 현연재분까지 실존인물

(1) 중국측

▶ 전진교: 왕중양, 구처기
▶ 명나라조정: 만력제, 천계제, 숭정제, 주연우, 온체인, 위충현, 호환유, 이승조, 황입극, 이봉래, 장서도, 이국진
▶ 엄당계열: 위충현, 서응원, 호량좌, 위양경
▶ 영원성: 원숭환, 조대수, 오삼계
▶ 가도: 모문룡, 상가희, 진계상
▶ 장수: 이자성, 척계광
▶ 무인 및 종교인: 장삼풍, 달마편에 나오는 인물 전부
▶ 시인: 이백, 두보, 구양수, 백거이, 소동파, 굴원, 악뇌발
▶ 의술인: 편작, 진월인, 양계주, 조문병, 근현

(2) 후금측(청나라): 누르하치, 홍타이지(황태극), 도르곤, 후거, 지르갈랑, 범문정

(3) 조선측: 광해군, 인조, 권첩, 정세구, 강홍립

(4) 일본측: 시마즈 히사츠네, 토고 시게타카

이 외의 인물들은 전부 창작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칠주검문 (七朱劍門)

칠주검문은 시원(始原)부터 일사일제(一師一弟)의 규칙을 지켜온 탓에 규모가 큰 문파는 아니다. 개문자(開門者)는 전진칠자 중 하나였던 장춘진인(長春眞人) 구처기(邱處機)로 알려져 있다.

반면 똑같이 구처기로부터 개문된 용문파의 경우에는  번성하여 그 세력이 매우 큰 편이다.
단지 용문파는 무공이 아닌 도가의 사상을 전수 받아 전진파의 사상적 후계자라 볼 수 있는 곳으로 무공을 다루는 문파가 아니므로 강호의 무림문파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칠주검문의 제자들은 모두 당세를 풍미했던 영웅들로 이들로 인하여 칠주검문의 이름이 강호에 널리 퍼질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뛰어난 이가 바로 무림사대가 중 하나인 담봉우였는데 칠주검법을 가장 제대로 체화 시키고 이해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칠주검법에도 초월검식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철선검요(鐵仙劍要)다.

■ 칠주검문의 인물(人物)

▶ 구처기(邱處機)

금말원초(金末元初) 전진교(全眞敎)의 도사(道士)로 종남산에서 전진교를 창시한 왕중양(王重陽)의 제자인 전진칠자 중 1인.

자는 총밀(通密) 호는 장춘자(長春子)로 강호에서는 장춘진인으로 불리운다.

왕중양의 제자들 중 가장 유능한 인물이었다. 칭기즈칸과도 친분이 있으며 그의 조언으로 한족백성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전진용문파의 개파조사(開派祖師)로 원대(元代) 도교사상의 중흥에 큰 기여를 하였다.

말년을 연경(燕京-현 베이징)의 장춘관(長春館)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세상의 무학(武學)을 돌이켜 보며 오롯이 깨달은 바가 있어 칠주검법(七朱劍法)을 창안하였다.
더불어 전진파의 내공심법을 응용하여 칠주검법에 최적화된 상승내공운용법인 무극무위적공(無極無爲積功)을 창안해 내었다.

구처기는 생전  ‘세상에 남기는 나의 흔적에 있어서 양(陽)으로는 도가사상을 전수받은 전진용문파(全眞龍門派)가 있고 음(陰)으로는 무공을 전수받은 칠주검문(七朱劍門)이 있으니 할 일은 다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 학자용(郝慈勇)

학자용은 상당히 털털한 성격에 하늘을 벗 삼아 강호를 홀로 떠도는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 덕에 그의 별호는 기노야(奇老爺)였다.
젊은 시절 괴로운 일을 많이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사람들과의 교류를 마다한 채 오로지 여행과 무공에만 전념했다.
이러한 그의 성격 탓에 학자용 시절의 칠주검법은 세상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었다.
학자용은 생전에 인생에 대한 두 가지 저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말년에 왜구의 습격에 초토화 되어버린 마을에서 홀로 살아남은 작고 마른 소년을 구하게 되었는데 총명하지만 우직하면서도 담담한 소년의 성격을 크게 마음에 들어 하여 제자로 거두게 되었다. 그 소년이 바로 담봉우였다.

▶ 담봉우(譚鳳羽)

조무의 스승이자 무림사대가 중 1인. 강호에서의 별호는 무면탈명(無面奪命)이다.
담봉우는 원래 등주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왜구들은 등주보다 남쪽에 위치한 강소성과 절강성을 주로 침범하였는데 척계광 장군이 왜구를 토벌하여 대승을 거두자 왜구들이 북으로 패퇴하는 와중에 퇴로에 있던 등주의 마을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때 담봉우의 이웃들도 학살을 당하고 마을은 방화와 약탈로 초토화 되어버렸다.

담봉우의 아버지는 왜구들이 마을로 들어오자 상황을 짐작하고 담봉우와 그의 여동생을 집 뒤켠,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땅구덩이에 숨기는데 5살 밖에 되지 않았던 여동생은 화재의 열기와 연기를 못 견디고 그 속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여동생의 시신을 안고 밖으로 나온 담봉우는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그 자리에 선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좌절한 상태로 몇날며칠을 보내게 되었으나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학자용을 만나 구원받게 된 후 그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담봉우가 17세 되던 해에 학자용은 담봉우에게 세상으로 나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수명이 다하여 곤륜산 계곡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그동안 사람들과 교류가 없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앞섰던 그였으나 곤륜산 계곡에서 수많은 적들과 난투를 벌이고 있던 혜일평을 돕게 된 후에 의기가 투합하여 그를 따라 세상으로 나서게 된다. 담봉우는 혜일평과 평생을 절친한 벗으로 지냈으며 서로에 대해 존경과 크나큰 아낌의 마음으로 교분을 나누니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크게 샀다.
이로인해 강호에서는 아름다운 우정을 일컬어 담혜지교(譚惠之交)라 부르기도 한다.

담봉우는 단 한번 사랑에 빠졌는데 그 상대는 혜일평의 처제인 주원래(周園唻)였다. 하지만 그녀는 점창파의 하소천을 사랑하고 있었고 이것은 담봉우가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담봉우가 평생 교분을 나누고 마음에 두었던 사람은 오직 세 사람뿐이었다.
친우 혜일평이 그러했으며 사랑을 느꼈던 주원래가 그러했고 마지막으로 애제자인 조무가 그랬다.

조무는 자신의 은사가 그처럼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것을 마음 아파하여 후일 그를 기리기 위한 사당을 짓게 된다.

▶ 조무(趙武)

칠주검문의 현존하는 유일한 계승자. 강호에서는 칠주대협(七朱大俠) 혹은 칠주검협(七朱劍俠)으로 불린다.

조무는 사상적으로는 막충교와 혜일평, 혜만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무학적으로는 스승인 담봉우와 외조부인 혜일평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는 목련신교에 머무는 중에 무림각파의 무공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으며 후일 혜가장에 머물며 혜가권과 유초검법을 비롯한 혜가의 비기들을 전수받았다. (섬독장은 혜일평의 만류로 연마하지 않았다.)

칠주대협으로 강호에 이름이 드높으나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하소천을 비롯한 무림정파인물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 칠주검문의 무공(武功)

▶ 칠주검법 (七朱劍法)

칠주검법은 총 64로가 있으며 각로마다 72개의 초가 존재하고 각 초마다 순(純), 공(空), 파(破), 망(罔), 해(解), 첨(尖), 수(遂)의 7개의 기식이 있으므로 그 변화가 무궁무진하다. 칠주검법의 특징 중 하나가 기식에서부터 초를 이끌어 로를 만들어내는 역변위도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 무한대에 가까운 동작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초심자의 경우는 각로에 존재하는 초식을 암기하고 익히는 것도 버거워 응용이 쉽지 않지만 조무의 경우는 재능이 탁월하여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기식에서부터 시작하는 역변위를 제법 능숙하게 사용하였다.(소설 본문에서 공식에서부터 비롯된 선사탈인을 사용했다는 것과 선사탈인의 공식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전혀 다른 것이다.)

때문에 익히기 어려운 무공으로 알려져 있으며 몸에 체화되어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유일한 흠이다.(평생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으므로 칠주검법의 스승들은 무학적 재능과 총명함을 제자선정의 우선순위로 두는 경향이 있다. 담봉우가 왜 조무를 보고 한 눈에 빠져버린 것인지의 이유도 그것에 있다.)

본래 강호에서 비전의 경솔한 사용을 금하는 이유가 초식을 한 번 보았던 일류고수라면 그에 대한 방비를 할 수 있기에 비전의 위력이 급감하기 때문인데 칠주검법은 앞서 언급했듯이 그 변화가 무궁하고 이러한 응용과 변위 덕분에 이미 칠주검법을 상대했던 고수들조차 큰 혼란을 느껴 대항할 수 없으므로 오랜 세월 최강의 검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호에서 칠주검법을 상대할 수 있는 검법으로는 무당의 비전인 본류태극검법(本流太極劍法)과 혜가장의 유초검법(柳梢劍法) 정도가 존재한다.

본류태극검법은 애초에 모든 공격을 무위(無爲)로 일소시키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공격에 있어 변화가 많아질수록 방어에 있어서도 변화가 늘어나니 칠주검법의 장점이 상쇄되어 버리고 유초검법은 무궁한 변화가운데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는 속성이 있어 상극인 관계로 칠주검법의 다양한 공격이 일거에 소멸되어버릴 위험이 있다.

칠주란 이름은 한 번 검을 뽑으면 초식은 달라도 7가지의 기식전개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때 적의 상처로부터 피보라가 솟구쳐 꽃의 모양을 만드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 무극무위적공 (無極無爲積功)

전진교의 상승심법이 기반이 되었으나 구처기가 깨달은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추가되고 개량되어 기초가 되었던 심법과는 많이 달라졌다.

적공의 요소에는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단계들이 있어 창안자인 구처기조차도 최후의 단계까지 연성을 하지 못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대를 이어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단지 조무의 스승이었던 담봉우가 구처기 이래로 가장 높은 단계까지의 연성에 성공하였는데 그나마도 구처기의 단계까지는 가지도 못한 것이었다.

적공은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감정에 의해 부가적인 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힘은 분노, 사랑, 동정의 감정에서 비롯되고 내력에 또 다른 기능을 부가하게 되는 성질이 있다. 주의하여야 할 점은 감정이 이성을 넘어버리면 통제 불능의 폭주상태로 돌입하게 되며 이는 시전자에게 불행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 철선검요 (鐵仙劍要)

적공을 최상승단계까지 연마하면 칠주검법이 철선검요로 바뀐다. 실재하는지의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전설의 검법! 칠주검법이 다양한 검로와 초식을 지니고 있다면 철선검요는 오로지 하나의 검로와 초식만을 지닌다고 한다.

*스포일러때문에 삭제했지만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댓글에 추가했던 내용을 삽입합니다.

[칠주검법이 철선검요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64로, 72초, 7식은 사라지고 오로지 1초식만 남게되는데 이 일검으로 능히 파쇄하지 못할 공격이 없고 베어내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구처기가 지은 무극무위적공해례본-]

일설에 구처기가 무극무위적공을 창안하는 데에는 삼황오제시절 보다 훨씬 이전인 대궁시대(大窮時代)의 궁극적 존재(窮極的存在)=잊혀진 과거의 옛것들=사람이 아닌 존재=천인(天人)=신(神)에 의해 기반이 이루어지고 편작에 의해 완성된 기경회통 원본의 일부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구분 제목 조회 댓글 날짜
기타 [설정집] 2. 칠주검문 39 0 18년 9월
기타 [설정집] 1. 혜가장 112 0 18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