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666 – Galaxy Express666

  • 장르: 호러, SF | 태그: #알아낼수있을까 #브릿G독자라면
  • 평점×894 | 분량: 39회, 666매
  • 소개: “명심해라, 여기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승객들이 끝없이 달리는 열차에 오른다. 객실, 복도, 식당칸, 화장실, 예배당,... 더보기

후기 1

7월 11일

1. 20세기 과학의 폭발

20세기 초, 과학은 폭발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아마 한 번쯤은 보셨을 사진이 있습니다.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 사진입니다. 그 사진 안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마리 퀴리, 막스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디랙 같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 논문 약 3,800편 이상
– 노벨상 18개

사이언스 빅뱅.

한 명만 따로 놓아도 과학사를 뒤집을 만한 사람들이, 한 시대에 한꺼번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과 시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입자 같은 아주 작은 세계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거대한 세계, 즉 거시세계의 법칙과, 입자와 확률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의 법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세계에서는 하나의 법칙이 작동하는데, 너무 작고 미세한 세계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법칙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왜 세계는 크기만 달라졌을 뿐인데 서로 다른 법칙으로 움직이는가.

왜 거대한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과 아주 작은 입자를 설명하는 이론이 하나로 깔끔하게 맞물리지 않는가.

그래서 등장한 것이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통일장 이론, 양자중력, 초끈이론 같은 것들이 그런 갈망 위에서 나왔습니다.

초끈이론 역시 처음부터 완성된 정답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에 시작된 이론은 오랫동안 검증되기 어려운 가설적 영역에 머물렀고, 1990년대에 들어 M-이론과 함께 강한 추진력을 얻으며 다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우리가 보는 차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그 흐름 안에 있습니다.

 

2. 다른 분야의 발전과 접합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진이라는 별칭이 붙은 솔베이 회의.

하지만 그동안 물리학만 따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수학, 논리학, 언어철학도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러셀은 수학의 기초를 논리로 세우려 했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세계를 어떻게 그려내는지, 그리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 흐름은 훗날 계산과 정보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튜링은 계산이라는 개념을 기계의 언어로 밀어붙였고, 셰넌은 정보를 수학적으로 다루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컴퓨터가 탄생했습니다.

이러한 과학들의 발전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였습니다.

상대성이론은 우주와 중력의 이야기처럼 보였고, 양자역학은 입자의 이야기처럼 보였습니다. 컴퓨터 공학은 계산과 기계의 이야기처럼 보였고, 정보이론은 통신의 이야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 분야들이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반도체는 양자역학 없이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컴퓨터라는 물건 안에는 논리학, 정보이론, 전자공학, 양자역학이 한꺼번에 들어가게 됩니다.

천체물리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블랙홀은 처음에는 일반상대성이론의 영역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블랙홀을 깊이 들여다보자, 양자역학과 열역학과 정보의 문제가 함께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호킹 복사, 블랙홀 엔트로피, 정보 역설 같은 문제들은 중력과 시간과 정보가 완전히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낳았습니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분야들이, 어느 순간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홀로그래피 원리나 AdS/CFT 대응 같은 이론도 등장했습니다.

홀로그래피라는 말은 원래 입체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사실은 평면 위의 정보로부터 만들어진다는 데서 온 말입니다. 물리학에서의 홀로그래피 원리도 비슷한 상상력을 줍니다.

우리가 어떤 공간 안에 정보가 들어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정보는 꼭 공간의 부피 전체에 저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공간의 경계면에, 더 낮은 차원의 표면에 기록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3. 홀로그래피와 AdS/CFT의 의미

이것은 인간에게 이상한 충격을 줍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3차원 공간 안에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앞뒤가 있고, 위아래가 있고, 안쪽과 바깥쪽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홀로그래피 원리는 우리가 ‘안쪽’이라고 믿는 세계가, 어쩌면 그보다 낮은 차원의 경계면에 기록된 정보로부터 구현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열어줍니다.

이후 AdS/CFT 대응은 이런 생각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고차원 공간 안에서 중력이 작동하는 세계와, 그 공간의 경계면에서 작동하는 중력 없는 양자 이론이 서로 대응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쉽게 비약해서 말하자면 컴퓨터로 구현된 세계와 우리가 현실이라고 느끼는 세계가, 구조적으로 비슷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정말 게임 속에 살고 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3차원 세계가 어쩌면 더 근본적인 정보 구조에서 구현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우리가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가 시간이라고 느끼는 것.

우리가 중력이라고 부르는 것.

이런 것들조차 절대적인 배경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정보의 배열과 확률, 관측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시각이 생긴 것입니다.

4. 정보로서의 우주와 시뮬레이션 우주론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어떤 흐름에서는 우주의 근본을 물질이 아니라 정보로 바라보려는 시각이 있습니다. 우주는 수학과 정보로 구성되어 있고, 엔트로피란 그 정보가 더 가능성 높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며(=확률이 높은 방향), 시간과 중력조차 그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는 식의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도 밝혀진 사실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바라보면 이상한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정말 3차원 공간 안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그렇게 인식하도록 구현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의 본질은 육체일까, 아니면 정보일까.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흐르는 것일까, 아니면 관측자가 정보의 배열을 순서대로 통과하며 만들어낸 감각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말 절대적인 현실일까, 아니면 어떤 더 높은 차원의 구조 안에서 구현된 하나의 좌표계일까.

2000년대 초에 나온 시뮬레이션 우주론도 이런 흐름 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말 컴퓨터 게임 속 캐릭터라는 뜻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결론도 아닙니다. 다만 계산, 정보, 의식, 우주, 기술 문명에 대한 생각이 서로 연결되면서 나온 강한 사유 실험입니다.

5. 은하철도 666의 출발점

「은하철도 666」은 바로 그 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소설은 현대 과학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해온 여러 구조들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세계입니다. 다만 “우리 우주가 정말 이렇게 생겼다”고 주장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닙니다.

제가 보고 싶었던 것은 그 구조였습니다.

만약 세계의 근본이 물질이 아니라 정보라면.

만약 시간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흐르는 무엇이 아니라, 관측자가 배열된 정보를 순서대로 통과하며 느끼는 감각이라면.

만약 죽음이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 안에서 정보가 이동하거나 재배열되는 사건이라면.

그때 인간과 사후세계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은하철도 666」은 그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과학의 언어와 종교의 언어가 겹쳐지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죽음이란 정말 끝인가.

아니면 하나의 레이어를 벗어나는 일인가.

정보가 패키지처럼 다시 전송되는 것인가.

혹은 재활용되는 것인가.

영혼이라는 말과 정보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것인가.

사후세계라는 말과 다른 좌표계라는 말은 정말 아무 관계가 없는가.

저는 이런 질문들을 일부러 같은 구조 안에 새겨 넣고 싶었습니다.

과학은 세계를 정보와 좌표와 관측의 구조로 바라보려 하고, 종교와 철학은 인간과 죽음과 영혼의 의미를 물어왔습니다. 「은하철도 666」은 그 둘이 겹치는 이상한 지점을 소설로 만든 것입니다.

6. 소설 1

물론 이 부분에는 작가적 상상력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쿠퍼가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 더 높은 차원에서 딸의 방과 딸의 인생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과학적 상상력이면서 동시에 매우 낭만적인 장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장면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더 높은 차원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시간이 흐르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쓰여 있고, 나열되어 있고, 열거되어 있는 어떤 배열을 바라보는 것에 가까운가.

인터스텔라적인 상상은 어쩌면 공포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책장에 꽂힌 책처럼 이미 펼쳐져 있는 정보의 배열일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우리는 그 안에서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놓여 있는 하나의 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이 생각은 「은하철도 666」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마블식 멀티버스나 단순한 평행우주를 말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회의. 특정 해석을 그대로 설명하려는 글도 아닙니다.

제가 상상한 것은 조금 다릅니다.

같은 본질이 어느 차원에서 연결되고, 어떤 관측자에게 도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웹소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웹소설은 독자에게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아래의 층위로 내려가면 그것은 문자입니다. 다시 내려가면 코드입니다. 다시 내려가면 논리 회로의 처리입니다. 다시 내려가면 반도체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물리 현상입니다. 다시 다르게 보면 그것은 전류 신호의 흐름입니다.

본질은 하나의 신호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디에서 관측되느냐에 따라 그것은 전류가 되고, 코드가 되고, 문자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감정이 되고, 세계가 됩니다.

같은 것이 차원과 관측자에 따라 다르게 구현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계도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떤 더 근본적인 정보가 특정한 차원과 특정한 관측 조건에서 구현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세계는 관측자에 의해 구성되는 것 아닌가.

「은하철도 666」은 바로 이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소설입니다.

7. 소설 2

열차 안에서 일어나는 괴이들을 다시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하나의 세계가 정보와 좌표에 의해 구현되는 구조라면, 그 구현 과정에서 데이터가 손상되거나 좌표값이 어긋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컴퓨터에서도 데이터가 깨지거나 주소값이 꼬이면, 화면에는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이상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글자가 깨지고, 이미지가 뒤틀리고, 프로그램이 멈추거나, 전혀 다른 값이 호출되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666」의 괴이들은 그런 감각 위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이라기보다, 세계가 정보와 좌표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 뒤틀림, 충돌처럼 보이도록 구성했습니다.

장르적으로는 호러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독자에게 주고 싶었던 감각에는 분명 공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포는 단순히 괴물이나 죽음의 공포가 아닙니다.

우리가 바깥에 있다고 믿었던 세계.

우리가 당연하게 현실이라고 믿었던 구조.

그리고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 자신조차 어쩌면 같은 구조 안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

그것이 이 소설이 향한 공포였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이 소설은 현대 과학이 논의하는 세계의 구조를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은하철도 666」의 열차는 그래서 단순한 저승열차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보가 이동하는 경로이고, 좌표가 바뀌는 공간이며, 관측에 의해 사건처럼 보이는 구조입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들이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고 느낍니다. 객차를 지나고,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고, 무언가를 만나고, 어떤 결말에 도착합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시간의 흐름이고 사건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은하철도 666 기본 메뉴얼은 그 흐름을 조금 다르게 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배열된 정보가 관측자를 통해 사건처럼 구현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좌표가 있고, 정보가 있고, 그것을 통과하는 관측자가 있습니다. 관측자는 그 배열을 순서대로 지나가며 그것을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8. 소설3

그러니까 마지막의 666 규칙은 작품 바깥에서 덧붙인 해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어떤 구조 위에서 가능했는지를 밝히는 내부 문서에 가깝습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는 사건 해설이 아니라, 이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고, 관측되고, 좌표화되었는지를 말하는 구조 설명입니다.

마지막 메뉴얼은 이 소설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뜬금없는 사건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정확히는, 그것들이 어떤 구조 안에서 사건처럼 보였는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책 역시 하나의 배열입니다.

페이지 위에는 이미 정보가 놓여 있습니다. 독자는 그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이미 놓인 정보를 순서대로 관측합니다. 그때 멈춰 있던 문장들은 사건처럼 보이고, 배열되어 있던 정보는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소설 속 승객들이 열차를 지나가듯, 독자 또한 책이라는 구조 안에서 페이지를 지나갑니다. 인물들이 객차를 통과하듯, 독자는 문장을 통과합니다. 인물들이 자신들의 시간이 흐른다고 믿듯, 독자 또한 이야기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9. 질문

그렇다면 독자는 정말 바깥에 있는 존재일까요.

아니면 독자 역시 어떤 관측과 좌표의 구조 안에 놓인 또 다른 승객일까요.

「은하철도 666」은 바로 그 질문을 향해 닫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과학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대 과학이 던지기 시작한 이상한 질문들, 정보와 관측과 좌표와 시간의 문제를 사후세계와 열차라는 이미지로 바꿔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또한 그 구조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관측에서 자유로운 승객인가요?

지옥이라고요?

타셔도 됩니다.
열차는 친절합니다.
열차는 당신을 올바른 좌표에 데려다 놓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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