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갤러리 아르테미스.
1.
갤러리 아르테미스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입니다.
우선 미술.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서 왜 뉴욕이었을까요?
루브르 오르셰 에르미타쥐 그레이트브리튼 뭐 예술을 특히 미술을 향유하는 나라는 많습니다.
근데 그 중에서 가장 상업적이고, ‘음습한 권력’이 시장을 잡고 있는 곳은 뉴욕이라고 봤습니다.
제 다른 소설 (황금의 서사 4부 – 도금시대) 의 배경이 이 시장의 기원입니다.
주체 못할 정도로 착취와 강압으로 부를 쌓은 일명 강도귀족시대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미국의 신흥귀족임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물을 만듭니다. 예술에 대한 후원, 카네기홀이나, 록펠러센터, 구겐하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맞습니다. 미술. 그리고 권력. Power—!!! 의 정점.
뉴욕입니다.
2.
미국은 참 특히나 웃기는 동네입니다.
청교도 혁명으로 만든 나라고, 교회 공동체가 강한 나라입니다. 2차대전 이후로 크리스쳔이 확 줄어든 유럽과는 대비되지요.
도시의 리버럴, 시골의 보수적인 가치가 대립하는 나라입니다. 넓은 땅 인맥과 학맥이 엄청나게 강조되는 곳입니다.
인종 뿐 아니라 사상과 이념이 혼재되어 있고, 자유 평등 도덕적인 척은 하지만 위선적이며 특정 집단이 세력을 구축하고 지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회는 사실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나 그런건 사실이지만, 미국은 넓은 땅. 인맥 위주로 운영되는 측면이 강하고, 기회도 많지만 또 그만큼 벽이 높고 공고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들이 특히 모순적인 이 부분들이 작품의 제목인 SUGAR – 스폰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성매매는 금지 그러나 스폰은 합법.
지저분하게 음습한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에서 이런 부분은 전부 뺏거든요. 대충 짐작만 가능하게.
네. 맞습니다.
노먼이 소리칩니다. 그런 거라면 여기가 매음굴 아니냐고.
당신의 예술에 진정성이라는 게 있냐고 말이죠.
3.
페기는 말합니다.
진정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한정된 자리. 세상은 승인이라는 구조를 필요로 하며, 후원도 예술이다. 라고 말이죠.
미국 현대미술에는 이런 논의도 있었습니다.
예술이란 게 그냥 누군가가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고 곧장 예술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미술관, 갤러리, 평론가, 수집가, 예술가 집단, 학계. 이런 것들이 얽힌 이른바 ‘artworld’ 안에서 승인될 때, 비로소 그것은 예술로 성립한다는 생각입니다.
조지 디키의 제도론적 예술론도 비슷합니다. 예술작품은 예술계에 의해 감상의 후보 지위를 부여받은 인공물이고, 예술가 또한 그 제도적 회로 안에서 예술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곧장 예술가가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곧장 예술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봐줘야 합니다.
누군가가 걸어줘야 합니다.
누군가가 말해줘야 합니다.
누군가가 사줘야 합니다.
누군가가 승인해줘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술의 생산 주체조차 순수한 개인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승인된 자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이쯤 되면 노먼이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가 분노한 것은 단순히 페기가 돈 많은 후원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녀가 가진 것은 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문을 쥔 사람이었습니다.
4.
노먼과 페기의 대립은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특정 주체만이 예술을 선택하고 향유할 수 있는가?’
그래서 여기서 로맨스릴러라는 구조의 스릴러가 튀어나옵니다.
‘승인이라는 권력. 혹은 폭정 앞에서 예술가 개인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예전에 브릿G리뷰에 어떤 작가님의 작품에 제가 단 리뷰에 나온 에피소드가 이 부분입니다.
교수였던 제 친구와 제가 주먹다짐 까지 갔었던 사건입니다.
“예술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아니다. 그럼 선사시대 암각화는 예술이 아니냐? 뭐냐?”
페기가 말합니다. 쐐기를 박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귀족의 후원하에서만 비싼 염료와 색깔이 나왔고, 예술이 가능했다.
후원이 없다면? 예술이라는 건 그대로 사라지는 법이라고 말이죠.
5.
저는 소설 갤러리 아르테미스를 통해 제 예술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예술이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이죠.”
[작가의 생각] -> [주제 + 예술품] -> [독자의 해석]
예술품은 매개물이고 결국은 매개물을 통한 주제의 각자 다른 해석입니다.
평소와 다른 해석을 통해. 인간이 소통하는 것이 예술이 본질이라고 바라보았습니다.
언어는 불분명합니다.
범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파란색이라는 단어 안에는 옥색 군청색 울트라마린 코발트 하늘색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사과를 떠올려보세요. 누군가는 부사를 누군가는 홍옥을 떠올립니다.
예술을 거기에 따른 주제를 보세요. 같은 생각이 떠오를까요?
생각을 좁힌다? 그것이 예술의 목적일까요? 저는 언어로는 교류되지 않는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체험에 예술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6.
낭만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승인 이전에 예술이 있습니다.
승인은 그저 예술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끊임없이 물어보는 타인의 시선. 후원에 대한 물음.
그 모두가 모여 페기와 노먼의 공명을 만들어냅니다.
디오니소스의 광기와 아폴론의 차가운 이성 속에서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하는 그 속에서,
예술이라는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갤러리 아르테미스는 그런 예술의 탄생과 그 과정을 담고자 만든 소설입니다.
7.
소설 안에는 그리스 신화나, 노먼의 개별 예술품이 가지는 상징. 로버트 인디애나, 프시케 등 꽤 많은 상징을 숨겨놓았습니다.
로맨스 이야기와 페기라는 인물 속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헤겔식 인정투쟁. 소유냐 존재냐, 젠더갈등적인 요소도 조금 담아냈고요.
권력과 승인 구조를 두고는 약간의 사회 비판적 요소도 첨가한 것 같습니다.
뭐 과잉이라고 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각적인 레이어가 쌓여있다는 것은 그만큼 독자와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것이다. 정도로 선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설명보다는, 오독이 되더라도 독자가 직접 의미를 찾아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진정한 예술활동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소설의 나머지 의미는 여러분의 해석이 밝혀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