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단수(神壇樹)

  • 장르: SF, 무협 | 태그: #유사과학소설 #단군신화일지도
  • 평점×875 | 분량: 28회, 697매
  • 소개: “간단해. 장풍은 파동함수야.” “네?” 서울대 물리학과 학부생인 도현은 ‘운명 철학관’에서 만난 노도사 태길진인에게서 믿기 힘든 말을 ... 더보기

신단수 [후기]

7월 2일

먼저,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헤헤헤.
미친 놈처럼 웃으며 강남건물 돌바닥에 얼굴을 부비는 도현, 그게 제가 여러분을 바라보는 기분입니다.

사랑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요.

후기를 어떻게 쓸까. 혹은 써야하나?
이걸 가지고 엄청나게 고민을 했습니다.

작가가 자기글을 설명하면 짜친다. 구리다. 별로다.
의견도 팽배하고.

저 역시도 작가가 설명하면, 독자가 해석할 꺼리가 사라지지 않나?
그럼 안되는 데 쪽이라 다른 작품 어디에도 아직 후기를 달아 놓지 않았습니다.

근데 여기 신단수에서는 후기를 달아야겠더군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걸 여기서 다 풀어놓기는 어렵고,

그래도 SF를 표방했으니 “과학”.
과학적인가 아닌가 만큼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때문입니다.

유사과학이라고 말하고 시작했습니다.

방어적으로 깔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저는 이것이 일종의 사변소설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세계를 다룬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과학이 아직 완전히 답하지 못한 자리, 그리고 인간이 오래전부터 신화와 종교와 도술로 상상해왔던 자리가 겹치는 지점을 건드려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인간의 뇌와 척수 신경망 사진을 본 것이 이 소설의 모티브였습니다.

고대인들이 뇌수술을 했다는 것과, 식인이나 해부등의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이었습니다.

제가 그걸 보고 떠올린 것은 이 것이었습니다.
‘어라? 나무랑 살짝 비슷하네…’

그 다음으로 연상된 것은 신화들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이 사람을 해부하고 뜯어보았다랑, 세계수라고 불리는 나무관련한 신화 사이에 연관성은 없나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단군 신화의 신단수, 유대의 세피로트, 북구의 유그드라실 등.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하나로 수렴하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나무라… 왜 하필 나무지?’
‘정보. 데이터 처리에는 트리구조가 쓰이는데…’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무는 단순히 생긴 것만 나무가 아닙니다.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가지가 갈라지고, 잎이 맺힙니다.
하나에서 시작해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고, 다시 각각의 끝에서 무언가가 발생합니다.

이거, 정보 구조랑 너무 비슷하지 않나?

물론 고대인들이 데이터베이스니 트리구조니 서버니 하는 걸 알았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할 때, 복잡한 것을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나가는 구조로 상상하는 방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늘과 땅과 지하를 잇는 나무.
신과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는 나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나무.

그렇다면 그 나무를 지금 시대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그게 신단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본 책중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으로 잘 알려진 하이데거의 대표적인 저작인데, 제가 그것을 읽은 이유는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데? 한 번 볼까?’

호승심이었습니다.

읽고 곧장 후회했습니다만, 남는 건 시간 뿐인 군대니까 끝까지 붙들고 읽은 끝에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언어학자고, 언어의 영역.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가지는 생각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뭔지를 설명하려고 드는 구나.’

‘한마디로 인간도 모르는 구조를 탐구하기 위해서, 언어화 되지 않은 사고를 설명하려다 보니까. 자기가 말을 만들게 된거고, 이 저자가 만들어낸 언어 장벽 때문에 진입난이도가 높아지는 건가보다. ex> 세계-내-존재.’

‘말하자면, 공학이 아니라 역공학적으로 결과물을 보고 거기서 법칙성을 찾아내는거네.’

라고 말이죠.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고대인이 말한 신화라는 것이, 단순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세상을 해석하려 했던 방식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지금의 과학 언어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양자역학도, 정보이론도, 데이터베이스도, 서버도, 트리구조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이어져 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무엇이며, 죽음 이후에는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는 힘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신화였고, 종교였고, 도술이었을지 모릅니다.

말하자면 신화는 고대인이 가진 언어로 작성된 세계 해석서였습니다.

역공학이란, 이미 존재하는 결과물을 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구조와 원리를 거꾸로 찾아내는 일입니다.

저는 그것을 지금 시대의 언어로 다시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신화가 말하는 나무를, 정보 구조로.
도술이 말하는 기를, 시스템에 접근하는 낮은 단계의 언어로.
주문을, 명령어로.
신단수를, 세계를 구성하는 루트 서버로.

그것이 『신단수』에서 제가 해보고 싶었던 ‘역공학’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신단수는 더 이상 단순한 나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중심에 선 나무.
하늘과 땅과 지하를 잇는 나무.
모든 가지와 잎으로 세계를 뻗어나가게 하는 나무.

그것을 현대의 언어로 바꾸면, 저는 자연스럽게 서버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알려진 사실 하나를 말해보겠습니다.

뉴턴은 중력을 만유인력으로 설명했습니다. 미적분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세계를 설명하는 강력한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빛, 시간, 공간, 거대한 중력장을 함께 설명하려면 더 넓은 언어가 필요했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공간이라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고무막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위로 볼링공, 그러니까 별과 중력이 있다고 생각해봐라.’
‘시간과 공간과 빛은 중력에 의해 다 같이 휘어진다.’

우리의 직관과는 다르지만, 이것이 현대 물리학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아인슈타인 이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따로 떨어진 것으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공간 따로, 시간 따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엮인 시공간.

그리고 그 시공간 안에서 한 관측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현재 지점에 서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관측자는 거대한 시공간 전체를 보는 존재가 아닙니다.
과거의 빛원뿔과 미래의 빛원뿔 사이, 현재라는 초곡면 위에 놓인 하나의 점에 서 있습니다.

말하자면 관측자가 실제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세계 전체가 아닙니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이 한 점.

이 한 점에서 들어오는 정보.
이 한 점에서 확정되는 현실.
이 한 점에서 기록되는 현재.

소설 중반에 도현이 파인만이나 코펜하겐 이론을 잠시 언급한 것이 이 부분입니다.

저는 신단수를 여기에 대입했습니다.

신단수가 세상을 돌리는 서버라면, 뿌리는 과거의 기록이고, 줄기는 지금 확정되는 현재이며, 가지와 잎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처럼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설에서 나오는 천부인은 루트키로, 현실에서 관측되는 한 점을 옮길 수 있는 신물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 시뮬레이션 된 세계 안에서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만은 아닙니다.

저는 인간을 일종의 엣지 서버, 혹은 관측 노드처럼 상상했습니다.

세계 전체를 신단수 혼자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 선 인간들이 자기 현재를 관측하고, 그 관측이 현실을 하나씩 확정해나가는 구조입니다.

<그림>

우리가 보는 세계는 전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위치, 자기 시간, 자기 감각 안에서 하나의 현재만을 봅니다.

하지만 그 하나의 현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가능성으로 남아 있던 세계가 관측을 통해 하나의 현실로 확정되는 지점.
그것이 인간이 서 있는 현재입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우주를 직접 계산하는 존재라기보다, 우주가 자기 자신을 확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관측 노드에 가깝습니다.

각자의 관측은 하나의 기록이 됩니다.
그 기록은 다음 기록과 이어집니다.
그렇게 이어진 관측의 사슬이 시간이 되고, 삶이 되고, 세계가 됩니다.

비유하자면 블록체인과도 비슷합니다.

하나의 블록은 작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어지면 체인이 됩니다.
그리고 한 번 쌓인 체인은 함부로 지울 수 없는 기록이 됩니다.

신단수에서 선우가 하려던 일은 단순히 세계를 고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쌓인 기록을 움직이려 했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살아냈고, 보았고, 선택했고, 후회했고, 사랑했던 현재들을 없던 것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반대로 도현이 지키려 했던 것은 완벽한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엉망이어도 이미 살아낸 세계.
불완전해도 이미 기록된 삶.
각자의 자리에서 관측되고 확정된 현재들의 연쇄.

그것을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홍익인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넓은 우주 속에서 인간을 먼지처럼 바라보는 허무보다, 오히려 세상을 돌리는 인간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야기가 장황해지는 것 같으니, 양자역학이나 시뮬레이션 우주론, 그 밖의 과학적 설정에 관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더 설명하면 사족일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기까지 따라와주신 독자님들이라면, 제가 길게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실 거라 믿습니다.

혹시나 질문이 남는 건 은하철도 666편의 후기로 미루겠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습니다.
전 나름 이 소설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소설”은 아니지만, 과학적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계관을 구성하고, 그 개념이 인간·신화·현실 인식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밀고 나간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시뮬레이션 속 정보 구조라면 인간은 무엇인가?
관측이 현실을 확정한다면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시간이 로그처럼 쌓이는 것이라면 리셋은 구원인가, 삭제인가?

제가 생각하는 이 소설은, 과학의 정답을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의 질문을 빌려 (단군) 신화를 다시 읽어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환타지성이 강한 웹소설일까요?

ㅎㅎㅎ. 뭐든 상관없습니다.

제게 강남건물 같은 독자님이 즐겁게 읽어주셨다면, 전 그걸로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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