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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분류: 수다, 글쓴이: bard, 19년 8월, 댓글1, 읽음: 87

브릿G에서 2년 전에 구매한 크툴루 양말 한 짝에 구멍이 났습니다. 정확히는 1년 8개월 전에 구한 물건이니까, 저를 위해 20개월 동안 봉사하다가 수명을 다 했으니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요즘 재미있는 꿈을 몇 가지 꾸는데,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참여하지만 깨어나서 사건을 논리적으로, 글로 표현하려고 하면 재미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일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내가 본 꿈이 정말로 재미있는 꿈이라면 언어가 논리적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있는 꿈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텐데, 우리가 따르고 있는 언어의 논리적인, 혹은 규범적인 룰에 의해 온전한 꿈의 재미가 훼손된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로그에 일기 형식으로 꿈 일기를 올리기는 하지만 브릿G에 감히 꿈일기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꿈은 종종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꿈에서 본 상징을 잘 조립해서 살을 덧붙이면 멋지고 재미있는 소설이 나오는 경우가 몇 번 있습니다. 당장 제가 쓴 순간이동자만 해도 꿈의 영향을 받아서 쓰기 시작했다고 기억을 합니다. (물론, 소설을 쓰기 전에 꾼 꿈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작품에도 꿈의 모티프를 넣은 적이 있는데 개중에는 성공적인 경우도 있었고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꼭 꿈의 모티프를 소설에 넣어서 성공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반대로, 꿈이라는 소재를 소설에 넣었기 때문에 그 소설이 실패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대다수의 꿈은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간밤에 꾼 꿈을 돌아다 보면 재미있는 내용으로 가득해서 언제라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만 같으면서, 오후만 되어도 꿈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꿈의 내용을 선명하게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그것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다는 겁니다. 어떤 이야기보다 꿈은 재미있기 때문에 단지 그것뿐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가치 있는 현상입니다. 이번 글은 오래도록 알고 지낸 지인인 푸른곰 님이 추천하신 율리시스(ulysses)로 써 보았습니다. 전체 화면으로 전환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화면이 온통 하얀색으로 가득해서 정말이지 낯설어요. 새 워드 프로세서에 익숙해지려면 몇 달이나 써 보면서 감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구멍난 양말은 버려야겠습니다. 기워서 신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이제 슬슬 크툴루 양말과는 이별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녕, 크툴루.

b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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