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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있게 쓴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하여

분류: 수다, 글쓴이: OuterSider, 17년 3월, 댓글1, 읽음: 114

 

1) 라이징은 저에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작품은 그냥 일반명사로만 받아주셨으면.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종반점을 돌아가는 데, 후회 없는 글을 하나 써야 하는 것이 작가를 열망하는 사람의 도리 아닐까, 물론 쓰고 난뒤에 후회가 남지 않는 글이 어디에 있겠냐만은, 좀 더 명확한 의미로는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붇는 그런 글을 쓰자.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도 후회도 더 확실하게 기억되는

 

2) 한 번에 두 가지 작업을 잘 못합니다. 보통 사람들도 잘 못하지만, 저 같은 사람은 더 못합니다. 하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를 공존시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세계와 사회적인 세계로 말해도 좋겠네요. 그럭저럭 잘 다니던 회사나, 직장에 돌연 연락도 없이 잠적하듯이 사라지고, 글의 세계로 떠나야 그나마 뭔가를 써냅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뭔가 걸림돌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 하는데, 그런 정황과 연관이 있을 듯 합니다.

 

3) 걸림돌은 주변의 시선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저에겐 편집자의 눈이란게 없으니까요. 언제나 제가 갖고 있는 정보량의 차이 때문에 편집인을 포함함 불특정의 독자간의 읽기라는 지점에서 항상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언을 검색할 땐 다쓴 원고만을 보여주고 지인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란 얘기도 있더군요. 여튼 본론적인 뜻은 항상 성실한 독자분들에게는 읽기에 설명이 불충분한 빈구멍이 생기는 듯하단 겁니다. 여튼 저는 주변에 글을 쓴다는 지인도 없고, 출판 문화도 잘 모릅니다. 내가 책을 내는 편집자라면 확대와 축소의 문제를 어떻게 지적해볼까 하는 질문에 대한 감이 잘 안옵니다.

 

4) 쓰는 과정동안에 인터넷에 있는 조그만 커뮤니티 몇곳에 글을 올려봤지만, 딱히 돌아오는 피드백이 없었습니다. 모든 관점들이 편집부의 시선처럼만 느껴지더군요. 어쩌다 돌아오는 피드백의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미친 소리를 계속 올리면 죽여 버린다는 반응도 있더군요. 그 반응은 상당히 고어적인 장면이 올려지고 난후에 받은 피드백이 었습니다. 이런 협박에 겁을 낼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도 편집부의 선택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면 느낌이 좀 다릅니다. 이야기 전개에 불필요한 고어씬은 최대한 삭제해보자고 나름의 편집을 해보니까, 3분의 1 정도는 아니더래도, 25%의 분량을 스스로 축소하게 되더군요.

 

5) 네크로멘티크를 별 거리낌 없이 보고(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요. 그 영화는 실제와 연출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요.) 세르비안 필름에서 신생아 강간(?)씬도 뭐, 영화적 연출이니 저럴 수도 있겠지 담담히 볼 정도로 고어적 충격에 둔감하거나 아님 수용력이 넓은 편인 나이지만, 나 개인의 시선을 떠나서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두개를 예로 들었는데 세르비안 필름은 제한상영만 허가 됐고 네크로멘티크는 정식 수입은 검토 중이지도 않은 그런 필름들이죠. 어쨋든 내 원고는 나 자신의 자본력으로 출판될께,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검토 후에 출판될 건데, 다른 이들보다 내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가진 부분이 있다면 그게 뭘까. 그런 여러가지 생각을 안해볼 수가 없어요. 에너지를 잃은 듯한 부분이 있다면 그런 점과 관련이 있을 것 같네요.

 

6) 사족이지만 우주적 공포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관점을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를 통해 접하고,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문제에 접근하기 보단, 비주얼적 측면에

집중해보자, 거기에 내게 젤 잘맞는 옷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러브크래프트와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의 중간에 걸쳐진 애매모호함 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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