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를 지켜보다 떠오른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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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오버워치’에 대한 이야기가 내용의 주를 이루지만 사실 브릿G를 지켜보며 떠올린 감상글 맞습니다. 고급시계 안해보신 분도 이해하실 수 있도록 해설 달았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로 비유하면 더 찰질 것 같은데, 제가 많이 안 해봤습니다.) 으으, 운영자 양반, 각주, 각주 기능을 자게에도 달아주시오. (“이보세요, 여긴 자게입니다.”)
1.
보통 오버워치를 하는 분들은 빠대(빠른 대전)이나 경쟁전을 많이 돌리지만 저는 인공지능전을 더 많이 했습니다.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요. 서로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여섯 명이 한 팀을 맺고 적 팀(마찬가지로 유저)을 상대로 협동과 경쟁 심리를 끌어올려야 하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더군요. 즐거우려고 하는 게임인데 적 팀과 싸우지 않고 같은 편끼리 다투다가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게임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거든요.
특히 빠대에서 가장 골치 아플 때는 영웅을 픽(선택)할 때입니다.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딜러와 탱커, 힐러가 적절하게 조합되어야 하다보니 서로 합의점이 나와야 하는데, 대부분은 이 과정에서 많이 싸우지요. 다들 성과가 눈에 띄고 플레이도 재미있는 딜러를 맡고 싶어합니다. 누군가가 자청해서 탱커와 힐러를 맡아주면 큰 다툼이 없지만, 고집스럽게 딜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죠. 하다못해 지난 판에서 딜러를 맡았으면 다음 판에서는 탱커나 힐러를 맡아주는 식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친구들은 누가 뭐라 해도 무조건 딜러 픽합니다.
솔직히 누가 플레이도 지루하고 욕 먹기 쉬운 데다 상대적으로 성과가 눈에 띄지도 않는 탱커와 힐러를 자청해서 맡아주겠습니까? 다들 딜러로 팟지(Play of the Game, 게임이 끝난 뒤 제일 게임 플레이 잘 한 사람의 활약을 짤막하게 보여줌) 따고 싶어하죠. 그러다보니 자기 실력과는 별개로 무조건 딜러를 픽하는 사람들과 다투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채팅이나 보이스챗으로 다투다 6딜러 가는 경우도 자주 생기죠. 결과는? 게임 터지죠(패배하죠) 당연히. 맵에 깔린 힐 팩(HP를 채워주는 아이템, 한 번 먹고 나면 일정 시간이 흘러야 재등장)은 한정되어 있는데 어그로 끌어 줄 사람도 없고 힐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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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가 아무리 잘 해도 전체를 캐리할 수 없다는 예를 보여주는 일화 하나.
언젠가 한 번은 너무 저격을 잘 하는 위도우메이커를 상대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날렵하게 피해다녀도 그 속도를 아득바득 쫓아와서는 헤드샷을 맞추더군요. 얼마나 게임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던지 죽인 숫자를 전체 챗으로 쳐가면서 놀리기까지 했습니다. 덕분에 루시우 골랐다가 꽤 많이 죽었습니다. 이가 갈릴 정도로요.
그 게임, 승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희 편이 이겼습니다. 아무리 상대 위도우메이커가 킬을 많이 따냈어도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는 조건은 화물 운송이었거든요. 근데 그 위도우메이커, 저희 팀 사람들이 화물을 거점 끝까지 끌고 와서 승리 직전까지 왔는데도 거점에서 비빌 생각도 하지 않고 열심히 저격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혼자 열심히 해도 팀이 져버리니, 그렇게나 킬을 많이 따갔는데도 팟지도 못 받았습니다. 같은 편 사람들에게도 아무 칭찬을 못 들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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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끔은 정신 나간 6딜러를 골라도 재미있게 노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승패 신경 안 쓰고 6한조나 6겐지 하자고 분위기를 깔아놓는 경우죠. 이런 경우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드립(애드립)을 쳐놓기 때문에 아무도 열 받지 않고 재미있게 놀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설정되어 있던 목적을 암묵적으로 엎어버리고 재미를 추구하는 경우죠.
물론 여섯 명 중에 승패 관리 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절대 이런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나가면 분위기 깨져서 파티가 터지는 경우도 잦구요. 어디까지나 어쩌다 한 번, 운 좋게 모였다고 봐야죠 뭐.
2.
어찌저찌 누군가 양보해서 힐탱을 맡아도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대부분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몰이해가 문제를 만들곤 하는데, 특히 딜러를 고집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문제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겐트위한이라 불리는 혐오픽 중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던 게 겐지라는 영웅입니다. 방어력과 체력이 부족해서 겐복치라고 불리지만, 총이 난무하는 세계관에서 날렵한 몸동작으로 검 한 자루와 수리검을 들고 강한 데미지와 반격기를 넣기 때문에 이상한 낭만을 자극하기 좋은 캐릭터죠. 문제는 워낙 날렵하고 벽을 잘 타서 힐러가 뒤를 쫓기 매우 힘듭니다. 역할도 상대편에 잠입해 들어가서 재빨리 죽이고 나오는 닌자 기믹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움직이는 데 특화되어 있구요.
잘 하면 괜찮아요. 남들의 2인분을 하죠. 그러나 조금이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단숨에 티가 납니다. 심지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겐지가 끼어도 5:6의 싸움이라고 할 정도로.
근데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없이 딜러를 고른 녀석들은 항상 힐러한테 힐 해달라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한 자리에 있지도 않고 도트피(매우 적게 남은 체력) 상태로 또 열심히 움직여요. 힐러가 쫓아가서 힐을 해주려 해도 그 사이에 제 역할도 못 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통은 무시하려 합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욕 때문에 무시하기도 힘듭니다. (채팅 치고 있을 그 시간에 힐 팩을 찾았으면 되었을 것을…… 하지만 이게 다 힐러가 힐을 제대로 안 넣어줘서라거나 하는 핑계 서린 욕이 빗발칩니다) 그 때문에 탱커 옆에 붙어서 힐을 넣어줘야 할 힐러가 빡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죠. 탱커도 거점 수비나 화물 운송 때에 몹시 중요한 역할이거든요. 활약이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 때문에 이런 일도 겪어봤죠. 힐러인 메르시를 맡아서 플레이하는데, 왼쪽 맵에서는 겐지가, 오른쪽 맵에서는 위도우메이커가 힐러 소환을 계속해서 눌러가면서 힐러 어디 갔냐고 온갖 욕을 쏟아내더군요. 열불나서 딱총으로 바꿔들고 딜러 했더니, 메르시로 팟지 따버렸습니다. 그 것도 부활 궁이 아니라 순수 딜로요. (뭐 물론 게임 초기라 가능한 일이긴 했습니다만……)
딜러 너네들 대체 뭐 했냐!
그나마 열심히 서폿(서포트) 캐릭 맡아주려 해도, 하다못해 딜러가 힐탱에게 잘 해줘서 고맙다는 식으로 빈말이라도 해주면 낫겠지만, 그런 보상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고 욕만 먹으면 결국 그 꼴이 나곤 합니다.
2-1.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곤 합니다. 게임을 이기려면 딜러가 원활하게 딜을 꽂아넣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팟지 욕심에 딜러 공격을 끊어버리는 서포터도 있지요. 분명히 리퍼로 궁(궁극 기술) 쓰겠다고 선언하고 적진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꽃을 시전했는데, 방벽을 쳐서 적과 저를 분리시켜 놓는 아군 메이라거나…… 허허.
잊지 않겠다, 파란 빙벽.
3.
반대로 팀워크가 너무 좋아도 문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전이기는 하지만 고수전은 난이도가 높은 편입니다. AI가 바보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문제는 상대 봇들이 다들 에임핵 키고 온 것처럼 너무 잘 맞추거든요. 그래서 아차 하면 순식간에 헤드샷 여러 방 맞아 체력 녹고 나자빠지는 경우도 많이 벌어지곤 합니다. 상대 AI가 솔저를 맡으면 그 부담은 두 배가 되고요. (에임ㄱㅈ가 에임핵을 달고 나왔을 때의 그 데미지란……)
그 날은 참 운 좋게 팀을 잘 만난 경우였죠. 딜러 맡은 사람도 잘 하고, 탱커 맡은 사람도 잘 하고, 힐러도 절묘하게 힐을 잘 넣어서 두 판을 돌았는데 다 이겨 버렸습니다. 내친 김에 중간에 나간 한 명 빼고 5인팟 맺고 돌았죠. 계속해서 이겼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숙지도 잘 되어 있었고 각자의 실력도 뒷받침된 경우였죠. 두 사람이 계속 딜러를 맡아도 불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상황 파악을 잘 했습니다.
문제는 그 상황이 고착화되어 버리니 게임은 계속해서 이겨도 게임 자체가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기계적인 플레이가 되어버린 거였죠. 딜러는 탱힐 잘 해줬다고 칭찬하고, 탱커나 힐러도 딜러가 잘 한다고 칭찬해 주고 있기는 했지만…… 역할 자체가 너무 고정되어 버리다보니 슬슬 분위기도 처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플레이해야 이길 지를 각자가 잘 알다보니 움직임도 한정되고, 전략도 한정되어 버린 겁니다. 이기기 위해 지난 판에서 했던 짓을 그대로 반복하니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노동이 되어버린 거죠.
문제는 한 파티를 맺은 다섯 명이 아니라, 그 사이에 끼인 한 명이었습니다.
5인팟이 나무랄 데 없이 잘 하니 새로 들어오는 한 명이 계속해서 압박을 느꼈던 겁니다. 여러 판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는데, 다들 정해진 픽만 고르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죠. 2딜에 2힐, 1탱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픽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힐을 고르면 힐량만 넘치니 낭비고, 탱을 골라도 막을 자리가 없는 상황이니 남은 건 딜러 밖에 없죠.
그러다보니 한 판 끝나면 바로 나가버립니다. 다섯 파티원들 모두 파티챗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팀팟은 조용하고, 분명 이기기는 하고 있으니 승률 관리도 되고 좋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게임이 기계적으로 돌아가니 재미가 없었던 거겠지요.
계속해서 팀원이 나가고 들어온 채로 승리만 챙기고 있던 와중에, 새로 한 명이 의외로 꽤 오래 버텼습니다. 즐겜 유저였는데, 워낙 남은 5인이 탄탄하게 플레이하고 있으니 아예 컨셉으로 빠진 경우였습니다. 저격을 중심으로 하는 위도(위도우메이커)를 골라놓고는 소총질 하고 있고, 좋은 자리에 터렛을 설치해서 2인분 노릇을 해야 하는 토르비욘을 골라놓고 적을 수리용 망치로 때려죽이려 하더군요.
그렇게나 이상한 컨셉 플레이를 하는데도 실력마저 좋았습니다. (컨셉을 유지하려다 어이없이 죽을 때도 많았지만)
그 분과 세 판 남짓 돌고 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저 분도 영입해서 6인팟 돌자고 제안했죠. 그 분도 계속해서 팀챗으로 ‘저도 끼워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구요.
근데 저 빼고 파티원 모두가 거부하더군요. 지금의 5명으로도 충분히 분위기가 좋은데 굳이 새로운 인원을 끼워넣을 필요가 있겠냐는 거였죠. 그 한 분이 즐겜해 보겠답시고 컨셉 플레이를 너무 열심히 하다보니, 그런 즐겜 마인드가 승리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력도 좋고 팟쥐도 한 번 따낸 분인데도 그렇게나 백안시를 하더군요.
한 두 판 정도 더 돌고 나서, 컨셉 플레이를 하던 그 분도 점차 말이 없어지시더니 팀을 나가버리시더군요. 저도 슬슬 그 때의 분위기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기에 몇 판 더 돌고 바로 나가버렸습니다. 파티 분위기를 주도하던 딜러 분께서 몹시 아쉬워하셨지만, 아마도 이런 건실한 팟을 다시 만날 수 있겠나 싶을 정도로 잘 하시는 분들이었지만, 정말 아무 미련 없이 그 파티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뭔가 심하게 갇혀있는 기분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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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G를 지켜보며 떠올린 감상글 맞습니다. (이 놈의 장문충 습관……)
모두들 건필하시고, 좋은 작품 찾아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