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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총화 속 “안공”과 “안 부윤”에 대해.

글쓴이: HaYun, 19년 3월, 댓글1, 읽음: 87

용재 성현이 쓴 용재총화는 한국형(?) 판타지 같은 걸 쓰고 싶은 사람한테는 참으로 반가운 글입니다. 이런저런 요괴 이야기가 수록되어있죠. 그 중에는 유독 귀신이 잘 꼬이는 인물이 있는데, 성현의 외가의 인물이 그렇습니다. 용재총화 3권과 5권에 그 이야기들이 수록되어있는데, 곽재식 작가님이 한국괴물백과사전에서도 소개했죠(제가 본 건 옛날 인터넷판입니다). 과연 이 사람이 누구일까 싶어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닌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친척 안씨는 용재총화 3권과 5권에서 나옵니다. 3권에서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나의 외삼촌 안공은 성질이 엄하고 굳세어 12주 현을 역임하였으나 추호도 남의 것을 범한 일이 없으니, 관리들은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따랐다. 또 귀신의 형체를 잘 보았는데 일찍이 임천(林川) 군수가 되었다.

我外舅安公。性正直嚴毅。歷任十二州縣。秋毫莫犯。吏畏民懷。又能善視鬼形。嘗守林川” 이렇게 시작하는 기록에서 고관대면을 만난 것과 홍난삼을 입은 여자를 만난 이야기, 소 울음소리를 내는 우물 이야기, 괴상하게 우는 나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바로 하나의 기록이 더 이어집니다.

“나의 외숙 안 부윤(安府尹 안향(安珦)의 후예)이 젊어서 파리한 말을 타고 어린 종 한 명을 데리고 서원(瑞原) 별장으로 가다가 별장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外叔安府尹。少時向瑞原別墅。乘羸馬。率一小僮。去墅十里許。時夜向黑” 그 뒤에 도깨비불을 만납니다.

 

이 두 기록에서 둘의 표현을 외구外舅와 외숙外叔으로 달리하고 있습니다. 고전번역원에서는 이걸 외삼촌, 외숙으로 표현했는데, 이 때문에 같은 사람으로 생각된 것 같습니다. 여기서 舅는 보통 시아버지나 외삼촌을 이르는 말이고, 外舅는 장인어른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는 하는데, 문제는 이 外舅는 해주목사를 한 적이 있고, 70세로 졸하였다고 적혀있습니다. 그 기록에 따르자면 이 外舅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성현의 외조부 안종약安從約으로 추측하는 것이 가장 맞는 것 같습니다. 성현은 外舅를 외조부의 의미로 쓴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문제는 도깨비불을 만난 외숙 안 부윤이 대체 누구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안종약의 아들 네 명은 안구, 안경, 안수, 안리의 네 명인데, 이 중에 부윤으로 재직했던 인물을 아직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좀 더 찾아보니 안구의 장남인 안지귀가 세조 6년에 전주부윤으로 제수된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둘이 따져보면 사촌형제간이기는 하지만, 성현이 1439년생이고, 안지귀가 1432년에 이미 식년문과에 급제한 것을 보면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나서 삼촌뻘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왜 이런 걸 찾아봤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한국고전번역DB는 재밌는 글들을 많이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원문을 같이 보지 않으면 이런 일이 생기는 일이 잦은 것 같습니다. 용재총화 5권에 “안공(제가 추측하기론 안종약)”에 대한 기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의 장인 안공(安公)이 임천(林川 부여(扶餘)) 군수가 되었을 때, 我外舅安公。爲林川守時。”

똑같이 外舅인데, 3권에서는 외삼촌이라 하고 이제는 5권에서는 장인이라 하고 있습니다.

++ 이 안종약은 안향의 3대손입니다. 이 안종약의 차남인 안경의 손자 중에 안당한테도 귀신과 관련된 기록이 있습니다. 훨씬 후대의 기록이긴 하지만,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는 이 안당의 계집종이 원통하게 죽어 두억시니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 성리학의 조종으로 통하는 안향의 후손들이 이렇게 괴력난신과 크게 얽힌 인물들이라는 건 참 역사의 아이러니일 수도 있겠습니다.

 

엄청난 발견도 아니지만, 혹시 글을 쓸 때 참고하실 분이 있을까 싶어(과연 굳이 이런 것까지 써먹을 데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여기에 올립니다.

Ha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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