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팝에게 잘못을 묻는다면
“얼마나 많은 특별했던 사람들이 변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이한 삶을 사는지
우리가 취해 있을때 넌 어디에 있었니?”
Oasis – Champagne Supernova
왜 가만히 있는 브릿팝을 패냐고 물을 것이다. 패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안타까운 것일 뿐이다. 안타까운 것이 뭐가 있다는 것인가? 브릿팝은 한때 빛났던 장르다. 지금도 가끔 카페나 바 등을 들락날락거리면 ‘Wonderwall’이나 ‘Don’t Look Back In Anger’를 들을 수 있다. 팝 음악이 약세인 우리나라로서는 이 두 곡 정도가 다이지만 말이다.
브릿팝은 비교적 90년대에 그런지와 같이 탄생한 유행이기 때문에, 굳이 피치포크나 레이트유어뮤직까지 뒤적거리지 않아도 네이버 검색 잠깐 하는 것으로 충분히 들을 만한 음반들을 구할 수 있다. 지금도 트위터에 보면 갤러거 형제들을 롤모델로 삼는 청년들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우리 세대 중에 ‘우린 존나 예전에 끝났어 다 돈 때문에 하는 거지 그러니까 나갈 때 망할 티셔츠나 사라고’ 이 짤방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아시스와 블러의 대결이 유명한 만큼, 브릿팝과 그런지, 영국 음악과 미국 음악의 대결 구도도 유명하다. 브릿팝 대 그런지 하나로 미국 음악과 영국 음악의 승패를 논하기는 힘들다. 음악의 장르라는 것이 그 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90년대에는 힙합도 존재했고, 아저씨들이 듣는 컨트리 음악 또한 존재하는가 하면, 라디오헤드와 같은 멜랑콜리한 밴드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브릿팝은 죽었다.’ 오아시스의 숙적 블러가 5집 셀프타이틀 음반을 내며 한 말이다. 어떻게 감히 브릿팝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한 블러의 5집도 미국 특유의 디스토션 사운드가 들어간 것 치고는, 그들의 이전 활동에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적어도 내 의견으론 그렇다.-
한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동의할 수 있다. 브릿팝은 확실히 블러가 5집을 내던 1997년 시점에서는 ‘죽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냥 시들시들해진 것은 아니다. 브릿팝은 늙어 죽은 것이 아니라, 칼을 맞고 죽었다.
브릿팝은 그 어원부터가 굉장히 정치적인 색채를 띄고 있었다. 그 장르명부터가 ‘브리티시 팝’이라는 뜻 아닌가. 그들이 주적 삼았던 시애틀의 ‘그런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언제부터 영국의 미디어들이 브릿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알아보려면 집에 박힌 책을 다시 한 번 훑어봐야 하겠지만, 블러나 펄프, 스웨이드가 데뷔한 90년대 초 쯤일 것이다. 오아시스는 상대적으로 1-2년 정도 늦게 데뷔한 편이다.
영국인들은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루저 감성이 마이클 잭슨을 누르고 차트 1위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지에 대한 적대감만으로 브릿팝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는 것은 너무 근거가 부실하다.
오히려 영국에 유행했던 ‘대처리즘’ 신자유주의의 바람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한데, 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영국 특유의 펑크 정신을 다시 부활시켰을 거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클래시 등의 펑크 밴드가 남긴 족적과 스미스의 감성적인 기타 멜로디, 그리고 매드체스터의 신나는 뽕끼가 합쳐져서 브릿팝이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브릿팝 밴드들은 저마다 노동 계급을 대표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다. 그 단적인 예시가 바로 오아시스 대 블러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결과적으로 보면 블러는 중산층을 위한, 오아시스는 노동계급을 위한 음악을 했다고 말해지지만 당시에는 서로 노동계급을 장악하기 위해 애썼다.
올드한 기타팝 사운드를 지향함으로써, 그리고 출생배경과 똘끼어린 행동거지를 통해 리얼리즘적인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오아시스는 블러를 손쉽게 이길 수 있었다. 블러의 프론트맨 데이먼 알반은 나름 대학을 나온 중산층이었고, 사운드도 오아시스에 비해 실험적인 편으로 리얼리즘적이기보다는 모던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을 위해 음악을 만들면서, 그들은 유니언 잭 디자인의 옷을 입는 등 ‘영국식 국뽕’을 드러내기를 일삼았다. ‘우리는 쿨한 영국인이다.’ ‘쿨 브리타니아’와 같은 구호는 노동계급의 인기를 얻었다.
왜 사람들은 브릿팝에 열광했을까? 그들은 브릿팝과 거기에서 비롯한 쿨 브리타니아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브릿팝은 노동계급에게 공감해주는 음악이었다. 오아시스와 블러에 견줄 만한 밴드 펄프의 ‘Common People’은 중산층을 향한 노동계급의 증오를 잘 보여주는 음악이다. 블러의 ‘End of Century’ 또한 세기말의 공포의 질린 노동 계급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음악이다.
“넌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없어
넌 평범한 사람이 하는 걸 할 수 없어
넌 평범한 사람처럼 실패할 수 없어
넌 네 관점 밖에서 네 삶을 바라볼 수 없어
그리고 춤추고 마시고 빙빙 돌지
왜냐면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Pulp – Common People
그런데, 이 노동 계급에 대한 공감은 곧 정치로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바로 노동당의 대표이자 마거릿 대처를 이어 영국 수상의 자리에 이르는 토니 블레어였다. 토니 블레어는 브릿팝 밴드들과 친분을 이루며, 스스로를 ‘평범한 노동 계급의 인간’으로 포장하는 데에 애썼다. 인터넷을 찾으며 기타를 치는 토니 블레어의 사진을 찾은 적이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선거철만 되면 시장 국밥을 먹는 사진을 찍는 기분을 연상케 했다.
인기있는 브릿팝 밴드들이 지지하는, 노동당의 인사이자 노동 계급의 또다른 아이콘인데 누가 그를 부정할 수 있을까? 많은 밴드의 지지에 힘입어 토니 블레어는 마거릿 대처를 이은 영국의 수상이 되었다. 돌아온 것은 블레어노믹스였다. 그는 복지보다는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노동조합을 축소하면서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비록 매년 3%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주었지만 말이다. 뒤이은 2001년과 2003년의 영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다시 한 번 영국 사람들을 분노케 했지만, 그건 브릿팝이 시들고 난 뒤의 이야기다.
1997년, 블러는 공식적으로 브릿팝의 사망을 발표하고 미국의 디스토션 사운드가 섞인 5집을 낸다. 스웨이드는 나름대로 1집부터 아웃사이더였던 밴드였고, 97년 즈음해서 나온 3집 ‘Coming Up’은 사운드는 비슷할지언정 가사의 내용은 지금까지와 다른 우울한 노래들이었다. 펄프의 다음 작품이었던 ‘This Is Hardcore’ 앨범의 가사에서도 희망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고, 기존과 다른 색채를 지닌 곡도 등장했다. 오아시스의 3집 ‘Be Here Now’는? 약하고 1절 2절 3절 뇌절까지 다 하다가 망했다.
“하지만 우린 그냥 쓰레기잖아 너와 나
우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이파리
우리는 길거리의 연인들
그냥 쓰레기잖아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게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게”
Suede – Trash
브릿팝 밴드들은 이렇게 돌아서고, 기존의 브릿팝과 다른 노선을 택하고 있었던 버브, 라디오헤드, 트래비스와 같은 멜랑콜리한 밴드들이나 콜드플레이, 뮤즈와 같은 기존의 브릿팝과는 다른 음악을 하던 밴드가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쿨 브리타니아의 시대는 토니 블레어의 당선이 무섭게 저물었고, 멜랑콜리한 음악들이 영국을 지배했다.
이쯤에서 결론을 내려보면, 브릿팝 밴드들은 ‘이용당했다.’ 물론 토니 블레어 혼자서 브릿팝을 말아먹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유행이라는 건 오래가지 않기 마련이고, 미디어들의 지나친 관심이 열매를 따다 못해 나무의 뿌리까지 뽑아버린 탓도 있다.
내가 여기에서 묻고자 하는 것은 그저 한 가지다. 브릿팝은 잘못했는가? 브릿팝은 정말로 ‘정치적인’ 유행이었다. 물론, 브릿팝 밴드가 토니 블레어에게 속은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일이었다. 그 순진함을 잘못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다. 그들은 혈기 넘쳤고, 어리석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언정, 그들이 정치적인 참여를 했다는 것 자체에서 나는 브릿팝을 존중한다. 인간의 일이 생계를 위한 노동, 대상의 활용을 위한 작업, 그리고 정치에 대한 참여로 나뉜다면, 브릿팝은 작업과 참여 그 사이에 있었다. 그들은 비록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언정 정치에 참여하고자 애썼다.
누군가는 이쯤에서 ‘예술의 순수성’을 운운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순수한 음악‘이란 게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음악을 예술가에게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생각이다. 예술은, 특히 대중예술은 하나의 표현이고 해석되면서 청자에게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 의미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환경에서 예술에게 순수를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그러므로 내가 브릿팝에게 묻는 잘못은 하나다. 그들은 너무 낙관적이었고, 순수했다. 그들의 사유는 부족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대가를 치렀다. 20년도 지난 음악에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아직도 브릿팝을 듣는다. 홍차를 마시며 듣는 브릿팝 사운드는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