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續 프로필의 사연

분류: 수다, 글쓴이: 이나경, 18년 11월, 댓글15, 읽음: 98

 

사진 속 남자에 관한 이야기

 

지난번에는 사진 속 남자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요, 저는 여전히 저 사진을 쓰고 있으니 이번에는 사진을 찍은 사람에 관해 시시콜콜 떠들어 보겠습니다.

그(녀)에 대해 말하자면- 실은 그(녀)도 이곳 브릿G에서 활동하던 작가였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소설과는 무관한 어느 술자리에서였지만요.

무슨 밀교의 경전을 연구하는 모임의 뒤풀이 자리였는데 진중한 토론은 술이 들어가고서야 비로소 시작되더군요. 참석자들은 온갖 추상적인 것들을 떠들어댔습니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한 모임이라 저는 구석에서 눈알만 굴렸고 그(녀)도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과묵했습니다. 우리는 모임 내내 변변한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했지요.

우리가 처음 말을 주고받은 건 술자리가 파한 다음이었습니다. 하필 그(녀)와 제가 같은 버스를 타게 됐거든요.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네요.

눈인사를 나눈 뒤 한동안 우리는 어색함의 기류를 타고 어지러이 나부꼈습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나? 모르는 척하는 게 예의인가? 이런 건 정답이 없지 않습니까? 혹시 정답을 알고 계시는 분은 댓글로 공유 좀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그날 저는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음.. 어쩌면 그(녀)가 제게 말을 건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기억을 과신해선 안 됩니다.

“종점까지 갑니다.”

저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혹은 그(녀)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어! 저돈데.”

“아! 그러시구나.”

“어! 계속 그 동네 사셨어요?”

“아! 그게요, 초등학교 때까지 살다가 잠깐 이사했다가 다시 돌아온 거예요.”

“어! 그럼 혹시 주병진(가명)이라고 아세요? 전교 회장하던…”

“아! 지금도 페북 친구예요.”

“어!”

“아!”

그렇게 한두 마디씩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우리는 제법 말이 통한다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모임에 있을 때처럼 어색하거나 거북하기는커녕 오히려 아주 편안했어요.

 

비록 모임은 다시 나가지 않았지만 그(녀)와는 이후 종종 만나곤 했습니다. 가까운 호프에서 맥주를 마시자거나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자거나 칵테일바에서 어려운 이름의 칵테일을 마시자거나 하며 어쨌든 불러낼 구실을 마련했지요. 요컨대 우리는 동네 친구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로망 같은 것이지요.

이따금 우리는 영화관이나 박람회에 함께 가거나 미술관과 동물원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사진을 찍으러 멀리 해외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팝가수의 LP를, 스도쿠나 네모네모로직의 문제지를, 8000피스짜리 지그소 퍼즐을, 그리고 소설책을, 거리낌 없이 빌리고 빌려주었습니다. 돌이키건대 우리는 꽤 많은 것을 공유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소설을 쓴다고 고백했더니 그(녀)가 관심을 보이더군요. 애초에 그럴 줄 알고 말한 것이었지만 제 기대보다 더 호의적이었습니다. 자기도 소설을 써보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브릿G에도 제가 소개해서 가입한 거예요. 에헴.

처음에 그(녀)는 꽤 의욕적으로 단편을 올렸습니다. 제가 읽었던 글도 있고 처음 읽는 글도 있었습니다. 저는 공감을 누르고 단문응원을 달았습니다. 짬이 나면 리뷰도 쓰려고 했는데… 때마침 문제의 이벤트가 개최된 것입니다. 루테인 받는 눈눈 이벤트가.

 

제1회 눈눈 이벤트 결과

 

결과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정성껏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낙선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짤막한 소개로 당첨자 1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금은 아홉 명뿐이죠…) 그(녀)는 항상 당첨운이 있는 편이었어요. 그것이야 말로 저와 그(녀)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당시 저는 점잖게 굴었지만 내심 그(녀)가 부러웠습니다. 부러워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끝까지 숨겼어야 했는데 그만 실수를 해버린 것입니다. 얼마 후 그(녀)와 통화하다가 저는 루테인이 정녕 눈 건강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아니, 그걸로도 모자라 조금 나눠달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말했다는 건 점잖은 표현이고 사실은 아주 볼썽사납게 애걸복걸했습니다. 휴대폰이 땀으로 흥건해질 정도로요. 아아, 저는 왜 그랬을까요. 눈이 멀어서 그랬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군요. 하여간 눈 건강이 관건입니다.

저의 요구에 그(녀)는 난색을 표명하더군요.

“어.. 그래. 다음에 만나면 좀 줄게…”

전혀 아련한 대목이 아닌데 ‘게에에에에..’ 하고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그만큼 망설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내키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통화는 어색하게 끝났습니다. 저는 거북했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참 이해가 안 가요. 동네친구끼리 몸에 좋은 것 좀 나눠먹고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러는 대신에 제 눈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네? 저의 눈 건강이 의심스럽다고요? 그게 아니라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얘기입니다. 브릿G를 탈퇴했을 뿐 아니라 전화번호를 바꾸고 몰래 이사를 가기까지 했어요. 심지어 직장도 그만두었더군요. 대체 왜… 왜 그렇게까지…

 

저는 한동안 자책했습니다. 제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경전 해석 모임에 나간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어디든 기댈 데가 필요했어요. 모임은 예전만큼 불편하진 않더군요. 그곳 사람들은 제게 상냥했습니다. 아니, 예전에도 상냥했습니다만 적어도 이번에는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들은 경전을 들먹이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아니라 루테인이라고요. 루테인이 모든 걸 망쳤다고요.

그들은 제가 그 원흉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버리는 것만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삼키지 말고 씹어 먹으라고요. 아니, 어떻게 먹든 상관없지만 반드시 루테인을 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그(녀)가 돌아올 거라 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무슨 조화인지 눈눈 이벤트 시즌2가 개최된 것입니다. 헐…

 

정녕 신은 존재할까요? 아니면 이 모든 게 그저 우연일까요? 혹시 정답을 알고 계시는 분은 댓글로 공유 좀 부탁드립니다.

이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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