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폴리(프로필 이미지 이벤트)
1960년대부터 파리의 고양이 운동 내부에서 두각을 나타낸 고양이로써, 본명보다는 필명인 “광기”라는 뜻의 미야앜/폴리(Folie, 불어)로 더 유명하다. 1960년대 말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격동 속에서 고양이들 또한 투쟁을 시작했는데, 이는 고양이들이 인간 사회에서 자주 귀족적 혹은 부르주아적인 상징성을 지닌 동물로 여겨지곤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이들은 열약한 처지 속에서 도시를 떠돌아야만 했거나 혹은 가정 내에서의 학대 또한 감수해여만 하는 열약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저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검은 고양이들은 다른 고양이들보다 더욱 열약한 처지에 처해있었는데, 검은 고양이들은 인간들로부터 더 많은 배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주 다른 고양이들로부터도 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안 좋게 만드는 존재들로 여겨지곤 했기 때문이다.
60년대 말 정치적 격동의 시기에 모든 고양이들의 연대를 위한 정치적 결사체가 만들어졌으나, 폴리는 그들이 검은고양이들의 참여를 은연중에 배제하고 있으며, 고양이들 사이의 연대란 단일한 주체인 고양이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였다. 그 이후로 그는 검은 고양이 그룹을 만들고 고양이들의 투쟁이 앞장설 뿐만 아니라, 고양이들 내부의 컬러리즘에 반대하는 투쟁을 개시하였다.
인간들의 언어(증언에 따르면 폴리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에 특히 유창했다고 했으며 독일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했다고 한다)에 능했던 폴리는 인간 사회에서 입지적인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미셸 푸코와 사회학자인 그의 연인 다니엘 드페르를 만나 그들과 집사관계를 맺었으며, 또한 서로 정치적인 동지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몇몇 인간 철학자들과 교류하는 동시에 더욱 급진적 경향에 기울었다.
이 시기 그는 푸코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저술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또한 프란츠 파농의 저술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폴리”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 때는 이 시기부터인데, 이 시기에 고양이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하며 그의 이름이 “폴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보수적인 고양이들은 폴리의 저술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였고, 또 고양이 운동 내부에서도 그와 검은 고양이 그룹의 활동이 투쟁을 지연시킨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폴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검은 고양이 그룹이 주도한 한 집회에서 연설하며 “미야오우 애오웅 애웅”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키며 이는 후일 아직 지역 수준에 머물러있던 고양이 운동을 국제 고양이 운동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삶 후반기에 그는 오랫동안 열중했던 대작 «도시의 고양이, 고양이의 도시»가 완성되었고, 1년간 행한 «사회적 고양이» 강연을 기반으로 «애오옹 메오웅을 위하여»가 쓰여졌다. 이들은 후대 고양이학자들의 인식론적 기반이 되기도 했으며, 인간 사회에도 영향을 끼쳐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 쓰이는데 영감을 주기도 했다.
폴리가 노환으로 삶을 마감했을 때, 그는 그저 한 고양이가 아닌, 국제 고양이 운동의 영감이 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있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몇가지 음모론도 존재하나, 폴리의 사망원인은 확실히 노환이었고 가족들과 친우, 그리고 그의 가장 가까운 정치적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 본 글은 “역사와 고양이”에 쓰인 폴리의 부고기사 중 그의 생애를 설명하는 부분을 발췌해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어가 마땅치 않은 경우는 고양이어를 그대로 음차하여 썼습니다.
1970년대 그의 집사 푸코와의 즐거운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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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미셸 푸코가 키웠다고 하는 고양이입니다. 이 고양이의 이름이 “광기”라는 말이 있던데, 진짜로 키운것이고 이름이 광기인지 확인은 안 됩니다ㅠㅜ 누군가 다니엘 드페르에게 물어보기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겠죠. 푸코와 함께한 고양이가 평범할 리가 없다는 그런 생각으로 한 번 써봤습니다. 푸코와 함께한 고양이라면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고양이일 것 같아서요
제 프사는 위의 사진에서 고양이만 보이게 잘라낸 부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