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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로키언” – 셜록 홈즈, 그리고 인류 문명의 변혁

분류: 책, 글쓴이: OneTiger, 18년 7월, 읽음: 52

여기 브릿G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끄는 소설들 중 하나는 <셜록 홈즈> 시리즈일 겁니다. 누군가는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가 가장 성공적인 소설 등장인물이라고 말하더군요. 그게 사실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브릿G에서 <셜록 홈즈> 시리즈가 많은 인기를 끄는 현상에는 아무 이유가 없지 않겠죠. 게다가 서점에는 이런 인기를 반영하는 <셜록 홈즈> 2차 창작물들이 있습니다. 니콜라스 메이어가 쓴 저 유명한 <7퍼센트 용액>, 앤서니 호로비츠가 쓴 <실크 하우스의 비밀>, 로리 킹이 쓴 <셜록의 제자>는 그런 2차 창작물들입니다. 그레이엄 무어가 쓴 <셜로키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다른 2차 창작물들보다 <셜로키언>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기이한 살인 사건과 독특한 추리 방법 때문에? 그런 이유 역시 있으나, <셜로키언>에서 꽤나 인상적인 부분은 시대 변혁입니다. 이 소설은 19세기의 아서 코난 도일과 21세기의 셜록 매니아 헤럴드 화이트를 번갈아 보여줍니다. 당연히 이 소설은 21세기 사람이 바라보는 19세기 셜록 홈즈를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셜록 홈즈가 성공적인 소설 등장인물이라고 해도, 셜록 홈즈는 21세기 과학 수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닥다리 탐정입니다. 과학적인 추리 방법은 원론적으로 훌륭하나, 셜록 홈즈 매니아들은 그걸 21세기에 날것으로 적용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셜록 홈즈라는 등장인물은 19세기 유럽 제국주의를 반영하는 낡은 관념입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20세기와 21세기 초반은 여기에서 파생했습니다. 서구적인 근대화, 자본주의, 산업 혁명, 첨단 과학 이론, 노동 운동, 1차 및 2차 세계 대전, 성 평등, 자본주의가 부른 기후 변화, 생태 철학 같은 긍정적인 변화들과 부정적인 변화들은 이런 시대에서 비롯했죠. 이런 것들은 여전히 오늘날을 장악하는 문제들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과 브람 스토커는 그런 것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는 그런 시대에 나타난 등장인물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과 브람 스토커는 가스등이 전기등으로 바뀌는 시대를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가 전기등과 어울릴까요? 드라큐라가 전기등과 어울릴까요? 숱한 작가들과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오늘날의 도시 판타지는 흡혈귀를 아무렇지 않게 현대적인 도시에 내보냅니다. 오늘날의 하드 보일드 소설은 탐정을 아무렇지 않게 거대 마천루들 사이로 내보냅니다.

하지만 드라큐라는 그런 흡혈귀들과 다릅니다. 셜록 홈즈는 그런 하드 보일드 탐정들과 다릅니다. 셜록 홈즈와 드라큐라는 전기 불빛에 속하지 않은 등장인물입니다. 그레이엄 무어 역시 여기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 <셜로키언>에서 브람 스토커는 아서 코난 도일에게 말합니다. “셜록 홈즈는 가스등 시대에 속한 등장인물이다. 절대 셜록 홈즈를 전기 불빛 아래로 가져오지 말라.” 셜록 홈즈는 그런 등장인물입니다. 그래서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19세기 빅토리아 영국 런던을 낭만적으로 포장합니다. 셜록 홈즈는 그런 낭만에 속했습니다.

어쩌면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복고적인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19세기 빅토리아 영국 런던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21세기 영국 런던은 빅토리아 시대와 다르고, 홈즈 골수팬들은 이걸 참지 못할 겁니다. 소설 <셜로키언>은 홈즈 골수팬들이 그런 상황을 슬퍼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게 사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빅토리아 시대를 낭만적으로 포장합니다. 문제는 시대가 계속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인류 문명은 이제까지 계속 바뀌었고, 앞으로 계속 바뀔 겁니다. 문화, 사상, 과학 등등 많은 것들은 계속 바뀝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지 못했습니다. 21세기에 사람들은 마음대로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여자들은 투표하지 못했습니다. 21세기에 여자들, 적어도 서구 강대국 여자들은 투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계속 바뀝니다. 물론 거시적인 것들은 그렇게 당장 바뀌지 않습니다. 침략 전쟁은 무려 6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이나 평화 운동이 거세다고 해도, 침략 전쟁을 당장 없애지 못할 겁니다.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 운동은 200살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촉발시켰고, 작년 2017년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이었습니다. 200살도 안 된 노동 운동이 6천 년짜리 역사를 당장 바꾼다면, 그건 꽤나 웃긴 망상일 겁니다.

하지만 느리게 바뀐다고 해도, 우리는 분명히 변화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 역시 바뀔 거라고 우리는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슬퍼합니다. (모리아티가 아니라) 모더니티가 셜록 홈즈를 밀어내기 때문에. 전기 불빛이 가스등을 밀어내기 때문에. 21세기 런던이 빅토리아 시대를 밀어내기 때문에. 시대적인 변혁이 계속 낭만적인 빅토리아 시대를 밀어내고, 셜록 홈즈가 낡은 것이 되기 때문에. 소설 <셜로키언>은 19세기 빅토리아 런던이 절대 낭만적인 시대가 아니라고 인정합니다. 여자들이 투표하지 못하는 시대. 아동 노동이 만연하는 시대. 인종 청소가 훈장감인 시대. 21세기 초반 역시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이나, 19세기 빅토리아 런던은 절대 낭만적인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그걸 미화하고 싶어하나, 미화하지 못해요.

이런 변화와 흐름 속에서 셜록 홈즈 골수팬들은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할 겁니다. 소설 <셜로키언>에서 전기 불빛을 봤을 때 아서 코난 도일은 저도 모르게 반감을 느낍니다. 코난 도일은 자신이 속한 시대, 가스등 시대가 밀려난다고 느끼고, 거기에 반감을 느낍니다. 코난 도일은 여성 참정권 토론을 보고, 역시 반감을 느낍니다. 코난 도일은 철저하게 여성 참정권을 부정했으나, 시대가 바뀐다고 느낍니다. 브람 스토커와 아서 코난 도일은 자신들이 시대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인식하는 세대라고 이야기합니다. 21세기의 해럴드 화이트 역시 그런 점을 고민합니다. 그렇게 <셜로키언>은 셜록 홈즈라는 19세기 등장인물을 이용해 시대적인 변혁을 포착합니다.

시대는 계속 바뀔 테고, 수많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세대가 밀려난다고 느낄 겁니다. 19세기 사람들과 20세기 사람들은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22세기, 23세기, 24세기 사람들 역시 그런 서글픔을 느낄지 모릅니다. 비록 <셜로키언>은 미래를 전망하지 않으나, 독자들은 이런 논리를 24세기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뭔가 낯선 것들이 계속 등장한다면, 누구나 거부감을 느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낯선 것들은 계속 시대를 바꿨습니다. 셜록 홈즈는 여성 참정권, 환경 보호, 아동 노동, 식민지 수탈에 하등 관심이 없었습니다. 셜록 홈즈는 19세기 자본주의에 밀착한 등장인물입니다. 그런 끔찍하고 억압적인 자본주의 속에서 셜록 홈즈는 성공적이고 천재적입니다.

물론 셜록 홈즈는 정의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셜록 홈즈는 보편적인 인간의 정의를 추구했습니다. 문제는 보편적인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서구적인 근대화 이후, 보편적인 인간의 정의를 추구하는 흐름은 기득권에 들러붙곤 했습니다. 보편성을 확대하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특수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볼리비아의 가난한 원주민 여자와 캐나다의 백인 중산층 남자는 똑같이 보편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셜록 홈즈(를 만든 아서 코난 도일 작가)는 이런 특수성을 인정하지 못했죠.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간다고 해도, 셜록 홈즈는 자본주의가 행성적인 환경 재앙인 기후 변화를 불렀다고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셜록 홈즈는 천재적인 명탐정입니다.

셜록 홈즈(와 아서 코난 도일 작가)가 낯설다고 느끼는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은 자연 환경을 보존하고, 여성 참정권을 실현하고, 아동 노동을 없애고, 식민지 독립 해방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낯선 것들은 시대를 계속 바꿀 겁니다. 그렇게 평등한 세상이 찾아온다면, 우리가 그걸 슬퍼할 이유는 없겠죠. 오히려 우리는 그런 낯선 것들을 응원해야 할 겁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타파하는 동시에 노동 운동을 옹호하고 페미니즘을 지지해야 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셜로키언>은 추리 소설이나, 19세기와 21세기를 서로 비교하고, 이런 주제를 가볍지 않게 논의합니다. 21세기의 셜록 홈즈 매니아로서 그레이엄 무어는 셜록 홈즈를 그렇게 추억하고 싶어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셜로키언>은 시대적인 변화를 깊숙하게 파악하지 못합니다. 지난 19세기와 20세기 동안 노동 운동이 상당히 강력했음에도, <셜로키언>은 그걸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이 그런 것처럼, <셜로키언> 역시 자본주의 체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못하죠. 이 소설에는 그런 한계가 있으나, 시대적인 변혁을 논의하는 부분은 나름대로 인상적입니다. 셜록 홈즈가 좋아하든 말든, 시대는 계속 흘러가고 바뀌겠죠.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의 비평문을 편집 및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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