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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해] 수업과 [원령공주]의 기억

분류: 수다, 글쓴이: stelo, 18년 6월, 읽음: 82

안녕하세요. [짝사랑 문제]를 쓰는 Stelo입니다. 오늘도 장광설을 자제하기 위해 딱 10매 이하만 쓰려 합니다. 어서 연재 원고를 쓰러 가야죠.

 

저는 정신분석과 영화를 전공하신 김서영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영화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브릿G에서 몇 번 이야기했었죠. 참 많은 기억들을 남겼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좋아하게 되었다던가, 과제로 학생들이 썼던 시나리오에서 수 많은 여자들이 죽는 걸 봤다던가, 방을 뛰쳐나와 유리병 편지를 던지러 뛰어가는 기분이라던가요.

 

최근에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어요.

한정우기님이 짝사랑 문제를 리뷰해주시면서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제목을 써주셨어요. 그 리뷰를 읽으면서 여러 번 마음을 읽힌 기분이었지만, 이때도 그랬어요. 이 수업이 떠올랐죠.

왜냐하면 교수님이 “굳이 고르자면” 과제 중에 제 ‘원령공주’ 비평이 가장 좋았다면서 똑같은 말을 하셨거든요. 정말 고민하면서 쓴 글이라는 게 느껴진다고요.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은 방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기억이 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어떤 말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요지를 옮기면 이렇습니다.

네가 쓴 글을 보면 분량 제한 3페이지를 꽉꽉 채워서 썼다. 그것도 모자라서 읽기 어려울 정도로 글씨도 작다. 그 3페이지 안에 모든 생각을 우겨넣으려 한다. 왜 그렇게 힘이 들어갔을까?

너는 아무도 네 말을 믿어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 것처럼 생각한다. 말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근거를 대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글이 길어지는 거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니까

하지만 단순하게 써도 너를 이해해 줄 사람은 이해해줄 거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 필요는 없다. 좀 더 힘을 빼도 되지 않을까.

정신분석을 전공한 교수님이라고 했었죠. 그 말은 독심술처럼 다 사실이었어요. 아니 너무나 뻔했죠. 제 리뷰는 이렇게 시작했으니까요.

6000자의 글을 지웠다. 사라진 글에서, 나는 사람들이 놓친 부분들을 파헤쳤다. 물론 다들 명작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선입견에 맞춰 눈에 보이는 걸 잘라 버린다.

 어떤 이는 아시타카가 인간을 대표하고, 산이 자연을 대표한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마을 사람들은 아시타카가 숲의 괴물이 아닌가 의심한다. 반대로 원숭이들은 산에게 “너는 인간”이라며 비난한다. 들개 모로는 말했다. “산은 들개도 인간도 되지 못하는, 가엽고도 소중한 내 딸이다.”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자.”

 

그 리뷰를 다시 읽어보면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되겠죠. 교수님의 말씀은 정말 감사했지만, 저는 여전히 설명하지 않으면 누구도 저를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짝사랑 문제]를 쓰면서 생각해요. 결국 나는 그 기억들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죽어가는 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그저 저는 제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이야기’만으로는 결국 누구도 구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지만, 그 모든 짐들이 버겁게 느껴져요. 오늘 동기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자꾸 혼자 다 하려고 하지마.”

 

하지만 그래서 저는 예은이랑 세영이가 되어서 이 질문에 답을 해보려고 하는 거에요. 현실적인 고등학교에서, 제가 직접 겪었던 사건들에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 다시 생각해봐요. 그걸 읽어주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결국 그 답을 찾을 거라고 믿어요.

[짝사랑 문제]의 두 사람이 좀 더 힘을 빼고 가벼워질 수 있으면 좋겠네요.

 

결국 또 10매를 넘은 것 같은데요. 그 과제는 이런 거였어요. “나를 살게 한 영화” “나를 깨어나게 한 영화” 그런 영화의 리뷰를 관심이 있으시면 한 번 읽어주셔도 좋겠죠.

st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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