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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을 원한 게 아니었지만

분류: 수다, 글쓴이: stelo, 18년 5월, 읽음: 104

안녕하세요. [짝사랑 문제]를 쓰는 Stelo입니다.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정말 힘든데, 남들은 부럽다고 할 때가 있어요.

 

[짝사랑 문제]에 나오는 고등학생 세영이는 3등급인 영어를 빼고 모두 1등급인 상위권이에요. 저도 받아본 적이 없는 점수죠. 하지만 이 친구는 자기가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과학고에 가지 못했거든요. 진짜 천재들은 원서로 대학 교재를 볼 텐데, 자기는 번역서로 공부하면서도 힘들어요.

세영이는 현실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중2 때까지 What이나 many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니까요. 그저 수학이 좋았고, 자연스럽게 교수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중3 때 영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아직 겨우 3등급이에요. 단어도 문법도 외우는 게 힘들고 싫어요.

세영이는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모님은 그 성적이면 수학 말고 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지기를 바래요. 세영이도 그 마음을 이해해요. 다들 네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하지만 ‘현실’이 있잖아요. 가난한 시간 강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긴 싫어요. 외국 유학을 가서 석박사는 해야 교수가 될 수 있을텐데, 영어를 못하죠.

사람들은 세영이한테 다들 부럽다고 해요. 다들 수학을 힘들어하는데, 세영이는 수학을 좋아하거든요. 교내 수학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고, 상도 여럿 받았어요. 그때마다 다들 축하해줬고 사실 그때는 좋았어요.

 

하지만 아무도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샌가 그 모든 아픔을 숨기고 살기로 해요.

 

이런 디테일은 상상이나 자료조사로 만들 수 없죠. 반쯤 제 이야기에요

 

학원에 다녀본 적도 과외를 받은 적도 없는데, 성적은 꽤 괜찮게 나왔어요. ‘전과목 우수 상장’을 받으면 아버지는 늘 기뻐하셨어요. 왕따를 당할 때 선생님들이 그러셨어요. “지금은 네가 약하니까 아랫 사람처럼 보이지만, 너는 똑똑하니까 나중에 성공하면 다 네 밑에서 일할 거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고요. 중1 때 장래희망으로 교수를 적었어요.

그게 다 순진한 상상이었고 환상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어요.

중2까지 영어 성적이 30점이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여자애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지망했고 합격했어요. 저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서 영어 성적을 90점까지 올렸지만 외고는 원서도 못 내봤어요. 일반계로 오면서 보지도 못하게 됐어요. TV에서 명문 자사고나 과학고 아이들, 어린 천재들이 나오는 다큐를 볼 때마다 힘들었어요. 베게에 얼굴을 묻고 운 적도 있어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이런 삶을 원한 게 아니었어요.

 

어떻게 날 괴롭힌 애들에게 복수하고 자살할지 고민하던 날들을 기억해요. 암모니아를 쓰려 했었죠. 다행히 실행에 옮기진 않았어요. 제가 받게 될 벌이 두려웠고, 사실 그 애들이 미운 만큼 불쌍하기도 했어요. 죽을 죄를 짓진 않았으니까요.

 

삶은 계속 흘러갔어요. 지금은 알아요. 그 후로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 많았는지요.

[수학 없는 물리]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지금도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이해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기억해요. 잘 이해하지도 못한 상대성 이론을 남동생에게 설명하기도 했었죠.

한국사 담당이셨던 노총각 선생님은 제 고민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들어주셨어요.

사서 선생님은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수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참 많이 배웠어요.

에스페란토를 배우고 핀란드에 사는 농부 아저씨에게 한국 학교가 얼마나 힘든지 투정을 부리기도 했어요.

 

다 제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항상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힘겨울 때가 많지만 결국 살아보기로 했어요. 행복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현실이 복잡하다는 건 알지만,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할지 고민해왔어요. 복수도 용서도 아니라면 어떤 길이 있을지 알고 싶었어요.

저는 누가 우는 것도 죽는 것도 싫었어요. 그게 액션 영화에 나오는 조연이라도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구하고 싶었어요. 누군가 살릴 수 있다면 제가 살아갈 가치가 있을 거라 믿었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답을 찾는 중이에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면서 혼자인 사람들 곁에 같이 있어주고 싶어요. 그게 제가 [짝사랑 문제]를 쓰는 이유에요. 사실 저도 ‘외로운 건 싫어서’요. 전 강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st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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