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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고바야시 야스미

분류: 책, 글쓴이: 구름사탕, 17년 12월, 댓글3, 읽음: 75

너무 재밌는 추리소설을 발견해서 추천글을 써봅니다! 히히

『앨리스 죽이기』의 세계관은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이 소설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것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앨리스와 모자 장수, 3월 토끼, 체셔 고양이 등의 인물이 몽환적이고 변덕스러운 기질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원더랜드라는 공간을 『앨리스 죽이기』는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앨리스 죽이기』는 루이스 캐럴이 되살아나 작품을 집필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인물의 괴짜 같은 면모와 특유의 말장난을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예시를 들어보자.

 

“잠깐만!” 3월 토끼는 모자 장수를 손으로 제지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봐줘.”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라도 되나?”

“내게 특별한 날이야.”

“네게?”

“그래.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닌 날이라고.”

“어? 그랬어?” 모자 장수가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우연하게도 나도 오늘이 생일이 아닌 날 이야.”

“뭐, 뭐라고? 놀라 자빠질 일이로군.”

“안 믿길지도 모르겠지만.” 빌이 말을 꺼냈다. “나도 오늘이 생일이 아닌 날이야.”

“이것 참 굉장한 우연인걸!”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너무 웃기지 않은가? 생일 아닌 날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기인한 단어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생일 아닌 날을 기념으로 선물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위에 인용한 부분은 생일 아닌 날을 특별하게 여기는 풍습을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이것 말고도 재미있는 대화와 묘사가 이 소설에는 넘쳐난다. 예를 들어 모자 장수의 티파티를 재현한 부분이 그러하다. 매일 끊임없이 티파티를 하는 탓에 테이블은 다과와 흘러내리는 차로 범벅이 되어있다. 그러한 차가 점점 테이블 위에 고여 작은 호수만큼 커졌고,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물고기가 그 속을 헤엄치고, 그 물고기를 노리는 물새들이 내려앉고, 물새들에 붙어 온 씨앗이 뿌리를 내려 테이블 위가 온통 수초 천지가 된다. 그래서 앨리스는 수초를 헤치면서 쿠키를 찾는다. 이 이미지가 너무나도 재미있지 않은가? 테이블 위에 펼쳐진 호수와 수초와 쿠키를 찾아 헤매는 앨리스의 이미지. 이러한 몽환적인 이미지가 이 소설의 작품성의 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인 말장난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흥미진진한 대화와 이미지들을 설명하느라 줄거리 설명이 늦어졌다. 줄거리를 설명해보자면, 원더랜드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앨리스가 유력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한편, 원더랜드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지구의 일본에서 태어난 구리스가와 아리의 꿈이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 아리는 그것을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곧 그 꿈이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원더랜드의 인물은 현실 세계의 인물과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현실 세계에서의 이모리 겐은 꿈속에서 도마뱀 빌이 되어 원더랜드의 세계를 돌아다니고, 오지 다마오는 꿈속에서 험프티 덤프티가 되어 원더랜드의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꿈속에서, 즉 원더랜드에서 죽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죽는다. 연쇄 살인사건의 첫 번째 희생자인 험프티덤프티가 원더랜드에서 죽자 그와 연결되어 있던 현실 세계의 오지 다마오도 죽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리(원더랜드에서는 앨리스)와, 이모리(원더랜드에서는 도마뱀 빌)는 원더랜드와 현실 세계를 오가면서 앨리스의 누명을 벗기고,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앨리스와 도마뱀 빌은 셜록 홈즈와 왓슨처럼 파트너가 되어 원더랜드에서 조사를 해나가는데, 재밌는 점은 현실 세계에서의 이모리는 굉장히 괴짜이면서도 동시에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추리를 이끌어가는 반면, 이모리와 연결된 원더랜드에서의 도마뱀 빌은 기억력이 나쁘고 멍청하다. 그래서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원더랜드에서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중, 말하는 굴을 결정적인 증인으로 대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설마…….” 앨리스는 숨을 삼켰다.

“굴, 말할 수 있어요?”

“……아아. 앨리스. 난 말할 수 있어.” 굴이 말했다.

“범인을 봤나요?”

“앨리스, 난 범인을 봤어.” 굴은 몹시 괴로운 듯이 말했다.

“범인은 당신이 아는 사람?”

“앨리스, 난 범인을 알아.”

“이름도 알아요?”

“앨리스, 범인의 이름도 알아.”

“지금 여기서 범인의 이름을 말해줘요.”

“앨리스…….”

“생굴, 잘 먹겠습니다!” 빌이 미치광이 모자 장수의 손바닥에서 굴을 후루룩 빨아들였다.

앨리스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멍하니 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빌의 입술 사이로 굴의 즙이 흘러나왔다.

“우와. 최고야!” 빌은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빌, 무슨 짓이야?” 앨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응? 생굴을 먹었는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거야.”

 

증인을 먹어치우는 추리소설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필자는 이 대목에서 정말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앨리스는 빌이 말하는 굴을 먹은 죄로 잡혀갈까봐 걱정하지만, 원더랜드 세계 속의 그 누구도 빌이 말하는 굴을 먹은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모자장수는 말한다. “생굴을 먹은 죄로 잡혀간다면 우리는 살면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을 거야.” 증인을 먹어치웠다는 것도 그렇고, 중요한 증인을 먹어치웠는데도, 아무도 그것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는 점 또한 웃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구축하는 3가지 요소를 꼽자면, 인물, 공간, 상황이 있다. 이 소설은 물론 상황도 재미있지만, 인물과 공간의 매력을 최대치로 뽑아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추리게임을 예시로 들자면, 일본의 추리게임인 <단간론파>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의 줄거리는 이렇다. 키보가미네 학원이라는 일본에서 제일 엘리트인 학교가 있다. 그 학교는 한 분야에서 보통 고교생의 수준을 초월한 초고교급 학생들만이 스카우트제로 입학할 수 있는 학교다. 초고교급 아이돌, 초고교급 야구선수, 초고교급 겜블러, 초고교급 폭주족, 초고교급 야쿠자, 초고교급 풍기위원, 초고교급 프로그래머, 초고교급 사육위원 등등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한 학급에 열다섯 명이 모이게 된다. 그 중 초고교급 행운으로 키보가미네 학원에 스카우트된 나에기 마코토는 입학식 날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정신을 잃게 되고, 정신을 차리자 같이 입학하게 된 14명의 학생과 함께 모든 창문을 철판으로 막아둔 키보가미네 학원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을 감금한 모노쿠마라는 말하는 곰인형이 나타나고, 모노쿠마는 이곳에서 나가려면 누군가 한 명을 죽여야만 한다고 선언한다. 학교를 나가기 위해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죽이면 조사 시간 이후 학급재판이 벌어진다. 학급재판에서는 조사 시간 때 입수한 증거를 토대로 추리하여 살해를 저지른 진범을 찾아내야만 한다. 진범을 찾아내면 진범 혼자 처형당하고, 다른 학생들은 다시 학교에 갇힌다. 하지만 진범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진범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처형당하고 진범 혼자 졸업, 학교를 나갈 수 있다. 이 추리게임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애니메이션화까지 되었다. <단간론파>가 인기를 끈 이유는 물론 스토리, 상황이 재미있었기 때문도 있지만, 각자 어느 한 분야에서 엘리트인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섥히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도 한 몫 했다. 또한 모든 창문이 철판으로 막힌 학교에서 연이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점도 공간을 재미있게 활용한 예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한 가지 할 수 있다. 보통 추리소설 및 추리게임을 떠올리면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사건,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과연 그럴까? 여태껏 수많은 추리소설들이 집필되었고, 그에 따라 수많은 사건들이 이미 다 쓰여졌다. 이제 사건뿐만 아니라,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보조하고 있다고 여겨졌던 인물과 공간에 더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단간론파>와 『앨리스 죽이기』는 인물과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훌륭한 예시들이다. 매력적인 인물들과 매력적인 공간은 사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오히려 인물과 공간이 작품을 대표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셜록홈즈처럼 말이다.)

부디 브릿G의 여러분이 이 리뷰를 읽고 『앨리스 죽이기』를 읽게 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단간론파> 게임도 해보았으면 좋겠다. <단간론파>를 게임으로 하거나(스팀에서 판매중, 한글패치 있음) 애니메이션으로 볼 분은 부디 되도록 인터넷에서 서치하지 않고 플레이 및 감상하기를 바란다. 당장 서치해서 나오는 이미지들만 봐도 스포가 넘쳐나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리고 애니보다는 게임으로 접하는 것을 더 추천한다.

 

후, 어쩌다보니 <단간론파>도 같이 영업하게 됐네요! 연말은 추리소설과 추리게임과 함께!

구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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