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초보가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
0.
한때 “나 일상추리 꽤 잘 쓰나봐!” 하고 착각하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전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안 쓰고 있는 천가을입니다. 사실 평생 읽어본 추리소설이 30권도 안 되기 때문에 추리소설을 잘 쓸 리도 없으며, 애초에 추리소설이 어떤 장르인지도 잘 모르는 게 당연한 거겠죠. 제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1.
제일 좋아하는 추리소설은 아오사키 유고의 “체육관의 살인”입니다. 등장인물이나 구성이 살짝 난잡해 소설 자체로서는 그 다음 작품인 “수족관의 살인”이 더욱 완성도 높다고 생각하지만…. 체육관의 살인은 지금까지 “화려한 트릭! 예상치 못한 반전! 그 뒤의 반전!” 같은 느낌의 추리소설만 읽던 저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사소한 증거에서 범인의 제한조건을 찾고, 소거법을 사용해 하나하나 지운다…. 세밀하고 논리적인 추리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범인에게 다다르게 됩니다. 아직 추리소설 많이 읽지 못했던 저는 그게 너무 신선했어요. 정작 그런 스타일의 대표라는 엘러리 퀸의 소설은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지만.
2.
그래서 저는 이후에 제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이 논리적이면서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추리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부터 설득을 해야 돼요. 제가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가능성을 제시하면 제가 만든 탐정은 그게 아니라고 반론을 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정말로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게 되고, 그러면 저는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본편에 들어가 단서를 하나 던지고 다시 돌아와요. 그런 식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그게 잘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3.
아무튼 그렇네요. 저는 아마 “신의 능력을 가진 탐정”을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아뇨, 사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뭔가 추리는 하는데 그게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도 탐정에겐 너무 당연한 논리’ 이런 식의 전개 있잖아요. 써놓고 나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맞아요, 이런 느낌이에요. (?)
π.
넘버링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4.
독자님들, 제 추리소설들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고 논리적인가요? 저는 제가 잘 쓰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독자님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5.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는 어디에서 올까요? 정말 작가와 독자의 두뇌 대결이 미스터리의 핵심일까요? 애초에 우리는 정말로 작가와 대결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 해야 하기는 하는 걸까요? 뻔한 이야기지만, 저는 결국 미스터리의 1차적 재미는 “반전”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에는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이 나왔고, 그만큼 더 이상 기발한 살인트릭이 나오는 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CCTV와 각종 기술의 등장으로 밀실살인 같은 트릭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지요. 슬퍼요.
7.
10월에 인비저블 게스트란 영화를 봤었습니다. 밀실 속에서 시체와 발견된 남성이 변호사와 함께 사건을 재구성한다는 내용인데, 연출과 반전이 상당히 좋습니다.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추천해요. 하지만 추리소설 마니아에게는 좀 그럴 수 있어요. 반전이 보일 수가 있거든요.
6.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기발한” 살인트릭이 과연 정말로 현실적인 걸까요? 정말 화려한 밀실트릭이 정답일까요? 그게 없이 놀라운 반전은 정말 불가능한 이야기인 걸까요? 그렇기에 어떤 미스터리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조작합니다. 범인이 화자가 되기도 하고, 증인이 위증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반전을 숨기는 동시에 반전의 핵심 역할을 하게 돼요.
8.
인비저블 게스트도 결국 그런 류입니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겠군요.
9.
…그럼 여기서 우리는 작가가 의도한 시선을 따라가야 할까요? 아니면 조작된 시선을 해체하고 앞으로 나올 전개와 반전을 작가보다 먼저 밝혀내는 게 미스터리 독자의 역할일까요? 제 개인적인 의견은, 물론 작가와 독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겠지만,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속아주는 것이 미스터리 소설을 즐기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에 대한 의심을 잠시 내려놓고, 그가 서술하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겁니다. 그리고 의도된 반전에 놀라는 것. 어차피 우리는 작가가 마련해놓은 판 안에서 불공정 게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작가와 독자 대결 구도는 잠시 내려놓자구요.
0.
라고 추리소설 초보가 한번 떠들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