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사진과 익명의 후원자께.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출근하면서 브릿G에 들렀던 때였습니다. 알림메세지가 와있지 않을까? 그런 두근거림은 하루를 시작할 때 좋은 에너지가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습관이 생기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알림메세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알림메세지가 있었더군요. 전 가슴이 풍족해졌다는 걸 느낌과 동시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메시지일까? 어제 올린 근황에 누군가 댓글을 달아준걸까? 짧은 추리를 해가면서 저는 알림버튼을 눌렀습니다.
댓글이 아니었습니다.
중요.
중요라니? 후원이라도 받은 것일까? 후원이 아니면 내가 쓴 리뷰가 추천 리뷰로 선정되기라도 한것일까? 하지만 나는 최근에 리뷰를 쓴 적이 없었는걸?
의문은 늘어났습니다. 모태불안증은 단순한 기쁨을 용서하지 않고 절 미숙한 탐정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저는 중요 버튼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슈레딩거의 고양이같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열쇠도 제가 쥐고 있다는 걸 곧 알게되었지만요.
저는 이 중요 라는 상자에 숨겨진 고양이가 산 고양이인지 죽은 고양이인지 열어봐야 했습니다.
익명의 후원. 장문의 메시지.
저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예전에 저에게 후원해주신 그분인가? 내 글을 좋아하는 팬인건가! 내가 돌아와서 축하해주는 건가? 아냐 다른 사람일 수도 있어. 만약 같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번에는 왜 장문으로 메시지를 달아놨을까?
저는 산고양이가 입에 물고 있는 편지를 또 열어봐야 했습니다.
간략하게 메시지 요약을 하자면 프로필 사진을 사용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의 표정은 심각해졌습니다. 프로필 사진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필요성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단 제 얼굴이 될 수 있는 이미지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으니 이런 의문은 당연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닉네임은 블루라쿤이라고 합니다. 블루스+ 너구리. 합쳐서 블루라쿤.
블루스는 예전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흑인 노예들이 만들어낸 혼(soul)입니다. 노예가 된 아픔과 고통을 침울하지만 흥겨운 리듬으로 풀어낸 음악이죠. 전 블루스의 느낌을 좋아합니다. 어미에게서 물려받은 민족의 슬픔이 저 멀리 고향을 등지고 고통받았던 그들의 음악에서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눈물이 가득찬 바다가 된 사회에서 그 빛깔은 청량한 파랑. 내게 소설이었고 그들에겐 음악이었던, 달라보이지만 사실 같았던 것. 그래서 제가 블루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너구리는 동화에서 영리하고 꾀많은 동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울하기 보단 유쾌한 해학이 가득하죠. 순해보이는 외견과 다르게 흉포하고 예민하고 가끔은 솜사탕을 쥐어다 물에 씻어먹는 바보같은 라쿤. 나는 라쿤이어라~ 생각하면서 살았던 겁니다. 그날, 제가 소설을 쓰다가 담배를 피러 나온 본, 우리 앞을 서성거리며 사람을 피해 도망치던 그 너구리가 나였구나 그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라쿤. 나는 라쿤이어라~.
그래서 만들어진 필명. 블루라쿤. 내 다른 자아가 그렇게 완성된겁니다.
머리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있지만 그것과 닮은 것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림도 못그리니 어쩔 수가 없겠지요. 찾지도 만들지도 못한 게 저였던 겁니다.
문장이나 지을 줄 알지 다른 것을 못하는 전 아직도 얼굴없는인간입니다. 그래서 프로필 사진이 없는 것입니다.
후원을 받고 어서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습니다. 얼굴이 없는 인간은 달걀귀신이라고 하니 남들에게 미확인 생물체로 붙잡히기 전에 어서 얼굴을 구해야 겠다 그렇게 느낀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프로필 사진을 구해 언젠가 보여드리겠습니다.
3줄 요약.
1.익명의 후원자에게 프로필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들음.
2.블루라쿤은 블루스+라쿤.
3.프로필 사진은 아직 마음에 드는게 없어 달아두지 않음. 가능한 빠르게 찾아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