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도 탐정이 류태인 씨를 찾고 있습니다
네, 이것은 루테인을 노리고 쓴 전일도 탐정 시리즈입니다.
프사에 관해서는 다음에 따로 써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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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유태인이요?”
추석인데 유태인이 전화를 안 받는다니, 크리스마스엔 무슬림을 찾으려나. 내가 아무리 ‘누구든 무엇이든 찾아 드리는 실종탐정 전일도’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황당하잖아.
“아…류태인 씨요…”
그럼 그렇지 류태인 씨의 엄마라는 의뢰인이 울면서 말하는 바람에 잘못 들었다. 류태인 씨는 9급도 7급도 아닌 무려 행정고시 수험생인데 합격 전까지는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는 포부를 품고 신림동에 상경했으나…몇 년 째 고향에 돌아오지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전 아버지가 “장손인 네가 성묘도 못 하고 차례상에 절도 못 올리고 친척어른들도 못 뵙고 있으니 면목이 없다”며 이번 추석에는 내려오라고 전화기에 대고 화를 냈고 그 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의뢰인이 아무리 전화하고 문자와 카톡을 남겨도 확인은 하긴 하는데 답이 없다고 한다.
“뭐…별로 큰 일은 아닐 것 같네요.”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잡고 통화하며 한 손으로 류태인 씨의 신상정보를 검색했더니 트위터 계정이 너무 쉽게 나왔다. 근황은…브릿G라는 사이트에 소설을 올린다는 것 정도?
“제가 류태인 씨한테 연락 해 놓을 테니까 어머님께서 서울 오셔서 설득 좀 해 보시죠. 직접 얼굴 보면서 대화를 좀 하셔야…전 부치신다고요? 그깟 전은 그냥 반찬가게에서 사시면 되잖아요! 요새 반찬가게는 일부러 집에서 부친 것처럼 삐뚤빼뚤하게 부쳐서 판다는데! 재료값이랑 전기, 가스비용 계산하면 사먹는 거나 해 먹는 거나 차이도 없어요. 조상님께 정성이 없다고요? 그깟 행시 하나 못 붙여주는 조상님 음덕이 별 거라고…아니 어머님, 지금 하나뿐인 아드님이 한강 수온 체크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이미 죽은 조상님이랑 어차피 남의 집 식구인 친척들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남편분이 뭐라고 하신다고요? 전은 누가 부치고 손님맞이는 누가 하냐고요? 아, 그 잘난 장손이신 남편분이 하시면 되잖아요! 그래도 못 올라오신다면…제가 내려가서 류태인 씨 여친인데 임신했다고 구라 까고 집안 한번 뒤집어 놓을까요?”
류태인 작가에게 브릿G 쪽지를 보냈다. 약속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작품을 읽었는데…피도 눈물도 많은 허술한 탐정이 나오는 탐정소설을 써 놓고 왜 태그는 #하드보일드 라고 달았어!…근데 재미는 있네.
의뢰인은 약속 시간이 지나서야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나타났다. 류태인 씨는 ‘잠만 자는 방’에 살아서 음식 같은 거 둘 데도 없다고 했다는데도 굳이 ‘엄마 손맛’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다.
“근데 아가씨네 집은 명절 안 지내요?”
우리 부모님은 불륜 증거를 잡는 ‘불륜 탐정’ 이다. 남의 집 가정불화가 많을수록 돈을 버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1년 중에 부부싸움이 제일 많고 이혼 건수도 최다인 날이 언제냐면…명절이다. 갑자기 21세기 한국이 조선시대로 타임리프하면서 남의 집 귀한 딸이 며느리가 되고 부부끼리 서로 “니네 부모님 왜 그러신대?”라는 패드립이 난무하며 친척끼리 비교질을 작작 하다 보면 이게 화목하자고 모인 명절인지 술 먹고 싸우자고 모인 명절인지 차례상은 양반처럼 거하게 차려놓고 하는 짓은 상놈이다. 그러니 명절마다 우리 부모님은 손발에 땀차도록 ‘명절 후에 이혼할 때 유리한 위치에 서려면 불륜 탐정에게 의뢰해서 증거를 잡으세요!’라며 영업을 뛰시는 거다…이런 복잡한 사정을 처음 만난 의뢰인에게 하기 애매해서 간단하게 거짓말을 했다.
“부모님은 교회 다니세요.”
“어디 친척집에는 안 가고?”
“…할아버지는 해외여행 가셔서요. 외가만 갈 건데요..”
서울은 오랜만이라는 의뢰인과 한강변으로 갔다. 노을 지는 한강을 보고 있던 류태인 씨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탐정소설가라면서 하는 짓은 어린 왕자다. 역시 슬플 때는 학춤을 춰야…아니 노을을 마흔 네 번 봐야 한다. 의뢰인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도시락통에서 고기며 떡이며 과자며 과일 등등을 주섬주섬 꺼내며 내게 손짓했다.
“탐정님도 와서 같이 먹어요.”
엄마랑 눈도 안 마주치고 있던 류태인 씨가 의심과 동경이 반씩 섞인 눈으로 나를 봤다.
“진짜 탐정이에요?”
내가 봐도 탐정처럼 보이진 않는다. 아이유가 입었을 때는 츄리닝도 라피아햇도 패셔너블해 보였는데 왜 나는 농촌봉사활동 온 학생 같을까.
“전에는 경찰공무원 수험생이었고 지금은 탐정이죠.”
“언제 인터뷰 해도 되나요?”
“네, 괜찮아요. 그럼 이제 저도 작가님이 쓰고 계시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건가요?”
의뢰인이 끼어 들었다.
“우리 아들이 작가님이라니요?”
“어…엄마 사실 처음에는 수험 스트레스 풀려고 쓰기 시작했는데…알잖아, 나 어렸을 땐 책도 많이 읽고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타 오고 그랬던 거. 근데 쓰다 보니까 요새는 공부는 안 하고 소설만 쓰고 있어…엄마, 난 살아 오면서 주변의 기대는 너무 큰데 그걸 충족을 못 시켜주는 ‘모자란 놈’이었는데, 주제 넘게 7급도 9급도 아니고 행시를 준비하면서 더 그랬잖아. 아버지가 ‘장손이 잘 되어야 집안이 잘 된다’고 우겨서 내 실력에 붙을 리 없는 행시를.. .엄마, 나 브릿G라는 데서 소설 쓰면서 작가님 소리도 들어보고 후원이란 것도 받아보고 사람들이 잘 쓴다고 잘 읽었다고 해 주고…처음으로 남들한테 인정 받아서 너무 좋았어.”
“너 그럼 책 나오는 거냐?”
“아니…그 정도로 인기 있진 않아. 근데 아직은 젊으니까, 잠깐만이라도, 남의 기대에 맞추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거 해 보고 싶어. 살면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열심히 해 보고 싶어. 글 쓰는 거. 아버지한테도 추석 지나고 내려가서 말씀 드릴게. 엄마가 내 편 좀 되어 주면 안 돼?”
“에휴…네가 나를 닮아서…책 읽는 거 좋아하더니…내가 로맨스를 그렇게 좋아했는데…결혼해서 살아보니 소설은 소설이더라. 네가 쓰는 건 뭐냐? 어디서 봐야 되냐?”
류태인 작가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이거 꼭 폰으로 봐야 하냐? 아유, 나는 이제 노안이 와서 작은 글씨는 눈이 피곤한데…”
“엄마, 내가 ‘브릿G 루테인 문학상’에 응모했어. 당선되어서 눈에 좋은 루테인 받을게. 꼭 엄마 혼자 드시고 눈 좋아져서 내 소설 읽어 줘야 돼. 책 내서 인세 벌면 한강 말고 좋은 데도 같이 놀러 다니자.”
“그러게 아들 덕에 서울도 오고…한강변이 참 좋네. 노안 오기 전에 좋은 데 다니면서 구경도 할 걸.”
“그러니까 엄마, 내가 꼭! 루테인 문학상 수상할게! 좋은 거 많이 보여 드릴게.”
이미 내가 음식을 우적우적 다 먹었는데도 모자 간에 회포를 푸느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음식값은 내야겠지. 선금으로 받은 수임료를 류태인 작가에게 보냈다. 이 돈으로 엄마랑 서울 구경 좀 같이 하다가 꼭 추석 지나서, 엄마랑 본가 가시라고. 아직도 취직 못 했냐고 묻는 친척들은 아버지 혼자 전 부치면서 상대하셔도 될 것 같다고. 안쓰러워 보이면 친척들이 같이 전 부쳐 주겠지 뭐.
부모님이 영업하러 나가신 빈 집에 돌아와 브릿G에 접속했다. 류태인 작가의 작품에 구독을 누르고 ‘현직 탐정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란 쪽지와 함께 골드코인을 후원했다. 저녁 늦게 답쪽지가 왔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언제 어디서 하실래요?’ 다시 쪽지를 보냈다. ‘루테인 문학상 발표 나는 날, 오후 2시, 동작대교, 저는 베레모에 큐툴루 배지를 달고 나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