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의 사연
사진의 남자와는 예전에 우연히 몇 마디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구직 활동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날도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의 비탈에 있는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관들의 질문 공세에 진이 빠져 면접을 마친 후 저는 터덜터덜 근처 카페에 들어갔어요. 카페는 저처럼 탈진한 취업준비생들로 바글거렸지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너무 뜨거워 조금 식혀서 먹으려고 기다리는데 문득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합석 좀 해도 될까요?”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빈 자리가 없었습니다. 자리가 없으면 다른 카페로 가면 될 것이지 굳이 합석을 하면서까지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 심리를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저는 그러시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초조한 듯 다리를 떨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못마땅했지요.
“면접 보셨나봐요?”
그가 물었고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울적할 때 이처럼 대화로 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묵묵히 (커피와 함께) 삼켜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처럼요.
그러나 그가 이런 사정을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어때요, 될 거 같아요?”
“글쎄요. 모르죠.”
“흠…”
남자가 저를 요리조리 뜯어보았고 저는 반사적으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기, 제가 사람을 조금 볼 줄 아는데요.”
그가 말했습니다.
“이번엔 안 될 것 같네요.”
이럴 때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요히 상대를 응시하며 속으로 저주를 되뇌는 사람이 있답니다. 저처럼요.
“아니, 아니, 들어보세요.”
남자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그는 진지했어요.
“아무리 봐도 회사 다닐 얼굴이 아니거든요. 혹시 미술이나 음악 쪽으로 전공하지 않았어요?”
“아닌데요.”
“아! 글 쓰시는구나.”
저는 내심 놀랐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남자를 경계하고 있었거든요.
“소설… 쓰시지요? 맞습니까?”
“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제 입에서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가 말했지요.
“소설 쓰시는 분은 이렇게 티가 난다니까! 계속 쓰세요. 꾸준히 쓰면 대성하실 겁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유념하시고.”
그러더니 남자가 입을 다무는 게 아닙니까? 저는 그 유념할 게 무엇인지 말해주기를 기다렸지만 남자는 이제 더는 대화에 흥미가 없다는 듯 다리를 떨거나 커피를 홀짝거릴 뿐이었어요. 카페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지요.
결국 궁금증을 못 참고 제가 물었습니다.
“…뭔데요?”
“네?”
“뭘 유념하냐고요.”
남자가 빙긋 웃더니 얘기해주더군요.
“눈이요. 소설가는 눈이 재산 아닙니까? 루테인인지 뭐시기가 좋다던데 하여간 눈 건강에 유념하세요.”
헐… 실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