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의 감각
https://youtu.be/qUghts6Fu-c?si=AIhItgiCj4ifJ8N8
제 취미는 작사한 가사를 가지고 suno를 이용해 곡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때 1년치를 통으로 결제해서 미친듯이 곡을 만들기도 했었는데요, 이건 그때 만들었던 곡 중에 하나입니다. 해당 채널은 제가 suno로 만든 곡들을 백업해놓는 계정 같은 것……
제가 링크에 걸어놓은 곡의 가사 후렴구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실패의 감각은 쌓이기만 하는데
해도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걸
언젠가 붙겠지 되뇌고 되뇌어도
현실은 시리도록 차갑기만 하네
이걸 쓸 때만 해도 한창 공모전에 투고하는 족족 떨어지던 때라 아마추어의 심경을 그대로 담아 만들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까지 쓰진 못할 것 같네요. 물론 지금이라고 투고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하여튼 투고하는 신세가 현재진행형이라 오랜만에 이 곡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올해는 왠지 모르게 투고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게 많더라고요.
가장 빠르게는 4월 말에 발표될 브릿G 제10회 작가 프로젝트부터, 5월에는 한국과학문학상(장편과 단편 모두 투고했습니다), 6월 말에는 이번에 남극의 이방인들을 가지고 아르떼 문학상과 넥서스 작가상에 투고한 게 결과가 나올 겁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단편이 갖춰진다면) 연말에 신춘문예에도 투고할까 싶고요.
이래저래 올해는 투고와 결과의 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전과 같이 무수한 실패를 겪을 테고, 인용한 구절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실패의 감각들을 다시금 쌓아나가겠죠.
하지만 투고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기대하게 되는 것은 제가 계속해서 정진해나가고, 더 발전했다고 여기는 작품들을 투고했기 때문입니다.
글을 좀 더 쓰고 나면 일반 투고로도 이곳저곳 찔러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드네요. 어쨌든 계속 써야 투고할 게 생기니 계속 쓰기도 쓰겠고요. 해야 할 일은 매번 바뀌지 않는다는 게 장점인 듯하면서도 기분이 복잡미묘합니다.
이런 투고, 실패, 예술 활동과 관련해서 제가 쓴 단편 생각도 나네요. 여기엔 이런 구절이 있거든요.
축복받은 자는 저주받은 자를 이해할 수 있지만, 축복도 저주도 없는 범인(凡人)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쥐어진 게 없다는 건 축복도 저주도 될 수 있단 점에서 가장 지독한 고난에 속했으니까. 모든 게 마치 노력으로 결정지을 수 있을 거란 환상 뒤편엔 그렇게 결정되는 건 내가 허비한 시간뿐이라는 사실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세상이 노력만으로 뭔가가 됐더라면 예술은 저주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예술은 축복받았다. 그래서 범인은 고통받는다.
제가 투고 결과에 의연해지고자 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이 어느 정도 포함돼 있습니다.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요. 들인 시간만큼 정직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들인 시간만큼 보답 받는 것도 아니죠. 중요한 건 제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고, 그것이 어떻게 운 좋게 눈에 띄었는가…니까요.
그러니 투고 결과에 의연해지되, 투고를 놓지 않고 더욱 꾸준히 하는 것은 제가 어제의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운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을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운’이라는 요소는 참 지독하게도 신경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리고 천부적인 재능이 없는 제가 ‘운’을 쟁취할 유일한 수단은 더 많은 ‘기회’에 제 작품을 노출시키는 것이겠고요.
그러니 다시 노래로 돌아가서,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실패의 감각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겠죠.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 앞에서도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후후후, 그건 언젠가 제가 초-유명해져서 작가 에세이를 당당하게 출판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 가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봤자 여러분들이 글을 쓰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예요.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하니까요.
말이 길었네요. 불금 잘 보내시고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장편 퇴고를 좀 더 마친 후에(투고는 일정상 급하게 퇴고할 것만 마치고 낸 거라 많이 불안하긴 합니다ㅋㅋ) 새로운 단편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두 달 장편 몰아쳤다고 단편 뇌가 작동을 안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