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쓰고 있는 장편
예전에 브릿지에 올렸던 엽편소설의 뒷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라도 제가 마냥 쉬고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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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합의금에 대해서도 얘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하긴 서로 얼굴 붉혀봐야 좋을 것 없죠.”
합의금 얘기가 나오자 서가은의 태도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금액만 얼추 맞는다면 서가은을 설득하는 일은 수월할 것 같았다. 문제는 박하솔이었다. 화장실 바닥을 뒹굴며 사람들 보는 앞에서 개처럼 얻어맞은 게 꽤나 분했던 모양이다. 박하솔은 잔뜩 독을 품고 나온 사람 같았다.
“지난 일주일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너무 억울해서. 트라우마 때문에 잠도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며칠간 형법 책을 좀 찾아봤죠. 나는 기왕이면 영자씨가 법의 심판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법에 대해 잘 아시나봐요?”
“저 법대 나왔거든요?”
영자가 끼어들자 박하솔이 신경질적으로 되받았다. 말문이 막힌 영자가 쭈뼛대며 중얼거렸다.
“저는 치료비와 위로금 합해서 3백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3백? 장난해요?”
서가은이 이마의 거즈를 떼어 냈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검붉은 상처. 서가은이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이마 주름을 따라 상처가 꿈틀거렸다. 서가은은 흉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직원들이 아직도 자신을 보면서 수군대더라는 얘기도 했다. 정신적 충격과 앞으로의 마음고생에 대한 보상도 요구했다.
이제 보니 아주 한 몫 단단히 챙기려고 작정을 하고 나온 사람 같았다. 영자는 사건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직시하며 후회하는 중이었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온 나날들이 그녀를 이 지경에까지 밀어 넣은 것이다.
모욕을 당한 건 영자였다. 상처를 입은 것도 영자였고, 박살난 커리어 역시 영자의 것이었다. 하지만 영자의 상처 따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영자에겐 흉터를 전시할 명분이 없었다. 판을 엎은 건 영자였으니까.
왜 요령껏 이기는 법을 모르는 걸까? 왜 항상 여우같은 개새끼들에게 카운터를 맞으면서도 양 팔을 휘두르며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걸까? 어째서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먼저 배우지 못했던 걸까?
차라리 그 자리를 모면하고 이대리에게 도움을 청했다면, 아니면 녹취를 해두었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가은의 가면을 벗겨버릴 수 있었다면, 섣불리 몽둥이를 휘두르는 대신 옆으로 비켜서서 겨드랑이 밑에 송곳을 찔러 넣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머리를 조아릴 일은 없었을 텐데. 합의를 구걸하는 대신 동정을 담보로 호의를 사는 편이 더 저렴했을 텐데. 그러나 영자는 교활해지기엔 겁이 너무 많았다.
“제가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한 것도 아니고 나도 맞았잖아요. 나도 눈 때문에 전치 2주 나왔어요.”
영자가 말했다. 처음 이 자리에 나올 때만 해도 영자는 당당함을 잃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만큼 영자는 상황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씨발, 이러다 나 진짜 감옥 가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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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줄 한줄 뚜벅뚜벅 밀어올립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