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제해 글을 쓰다
대부분의 작가님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저를 정제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브릿G에 올린 글이 현재 14편이니, 저를 14조각으로 잘라 담아 놓은 것이나 다름없겠죠. 뭔 엑조디아도 아니고 
브릿G에 올리기 전에 써 두었던 글들은 대체로,
‘선천적으로 세로토닌이 부족한 탓에 평생을 고통받고 있지만, 현대 의학 덕분에 겨우 살아가고 있는 자의 발악에 가까운, 날것 그대로의 무언가’였습니다.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이었죠.
하지만 브릿G에 올린 글은, 정제된 저의 여러 모습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보기 편한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극혐하는 것 같습니다.
왠지 다자이는 주변에서 병원에 가 보라고 해도 가지 않고, 주변 사람들만 답답하게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저는 수년 전 뇌파 측정을 통해 세로토닌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현재 세로토닌 처방을 받고 있습니다.
치료 자체는 10년 넘게 해 왔지만, 세로토닌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오랜 고통에 명확한 이유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었음에도, 계절 탓인지 정신 아픔에 시달렸습니다.
그래도 글을 쓰려고 아등바등했지만, 결국 이전과 비슷한 글만 나와서 쓰지 못하겠더군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무협인데, 퇴근하던 직장인이 서점에서 산 책이 사실은 비급이었고, 그것이 인간성을 없애는 대신 인간성을 잃을수록 무공이 높아져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이야기… 
저는 적어도 나중에 제가 다시 보고 즐거워할 수 있고,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거든요. 어쩌면 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소설로 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어른의 형태는 갖춘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인간은 늘 즐거울 수 없다. 늘 즐겁지 않아도 공허하고, 늘 즐거워도 공허하다. 그러니 그런 것에 일일이 연연하지 마라. 그래도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생각을 덜 하고 필요한 생각과 행동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우울과 불안을 무시하지는 마라. 받아들여라. 이 또한 지나간다. 지나갈 때까지만 잘 버티면 된다.
이렇게 버텨왔다고 하면 강하다는 칭찬을 받기도 하는데, 강하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긴 하지만요.
오늘만 버티면 연휴입니다. 올림픽도 올림픽 같지 않고 설 연휴도 연휴 같지 않네요.
밴쿠버 때부터 동계 올림픽을 즐겨봤는데, 평창이 제일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국뽕을 빼고 봐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