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관 설정의 어려움들
1. 판타지 세계관 설정하면서 지도 그리시는 분들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저는 판타지 세계관 짤 때 한 번도 지도를 그려 본 적이 없거든요. 네, 저는 길치+방향치+공간감각 제로 입니다…지도를 들고서 길을 잃는 인간은 지도를 그릴 수도 없지요…
북쪽에 숲/남쪽에 바다/동서로 황무지/국토를 가로질러 강/북쪽 8개 행정구역+남쪽 8개 행정구역/각 행정구역마다 불교의 8열,8한 지옥 이름을 갖다 붙임…이게 제가 판타지 쓰면서 머릿 속으로 그렸던 지도고요. 여러 개의 국가가 필요하면…’하늘을 나는 마차를 타고 이동하므로 국가간 경계선은 무의미’ 이 정도 설정으로 끝내 버립니다.
2. 장편 판타지를 쓰면(장편은 다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주요 인물들 약전을 쓰는 편이고요. 가상 캐스팅을 하고 해당 연예인 사진을 보면서 인물 외양 묘사를 할 때도 있습니다. TV에서 그 연예인이 나오면 왠지 죄송합니다…그런데 나이가 드니 연예인들 얼굴이 다 똑같아 보여서 이 방법을 쓰기가 어려워지는군요…
3. 저는 사전조사 집착증이 있습니다. 쓰기 전에 사전조사(주로 책 또는 뉴스)가 덜 된 것 같으면 착수를 못 하는데, 사실 사전조사는 해도해도 끝이 없기에 어느 선에서는 ‘쓰면서 필요하면 더 조사한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그게 어느 선인지…ㅠ
사전조사 집착증+내글 구려 병+오늘의 나새끼와 내일의 나님 힘내라=폭망으로 고속질주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요즘도 시리아 내전에 관한 기사와…각종 사회과학 서적들 등을 뒤적이며 사전조사를 하고 있으려니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면서…사전조사 집착증이 도지고 있습니다. 이래 놓고 써먹는 건 절반도 안 되겠지요.
4. 세계관을 짤 때 지도를 버리고(포기하고) 인류학자가 된 기분으로 풍속과 의상과 축제와 언어(누구에게 존댓말을 하고 누구에게 반말을 하는지)와 노동과 계급갈등(??)을 구상하는데…’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에서는 신화와 역사를 쓰고, 언어를 창조했는데…나중에 다른 작가들이 쓴 글을 보니 외국어는 이탤릭체로 표시하고 넘어가는 편리한 방법이 있었더라고요.
프랑스인이 말했다. “봉주르(안녕하세요)”
ㄴ 이게 제가 쓴 방식이었다면
프랑스인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ㄴ 요게 편리한 방식이었던 거죠.
저는 몰랐습니다…또르르…
5.요즘 새로운 판타지 장편을 구상하면서(사실 예전에 2번을 쓰다가 엎었던…) 등장인물 각각을 화자로 내세우려고 하는데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에서 여러명의 인터뷰이가 자기가 겪었던 2차 대전을 회고하는 방식이죠…소설로는 <사람아 아, 사람아>가 중국 문혁을 이런 식으로 서술…) 사실 판타지 세계의 ‘세계 대전’을 다루는 장편을 이런 식의 1인칭으로 쓰는 게 괜찮을 지 고민이 많습니다. 비유하자면 <삼국지>를 유비, 관우, 조조, 제갈량, 손권 등이 돌아가면서 말하는 방식인데, 아아…3번째로 엎게 될까요…
새로운 장편 판타지 구상을 하면서 이런저런 고민들을 적어 보았습니다…장편 쓰시는 작가님들은 대단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