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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취미로서의 소설쓰기

분류: 수다, 글쓴이: 한켠, 23년 11월, 댓글16, 읽음: 139

배우자에게 추천할 만 한 취미로 소설쓰기가 괜찮냐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배우자에게 추천할 취미는 요리, 청소, 빨래 밖에 없어.

육아와 병행할 수도 없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취미는 키즈카페 탐방밖에 없어. 소설을 쓰려면 오랫동안 집중해야 해. 내가 글 쓸 때 트위터 들락날락 거리고 몇 줄 다다다 쓰다가 모니터 노려 보다가 쓰던 거 절반쯤 지워 버리고 유튜브 좀 보다가 다시 한 줄 쓰고 히죽 웃고 하는 거 엄청 산만하게 보여도 다 창작의 과정이야. 누가 방해하면 몰입이 깨져서 안 돼. 너는 배우자가 출근 전 한 시간, 퇴근 후 서너 시간, 주말 내내 너랑 함께 있지 않고 글 쓴답시고 혼자 시간 보내면 외롭지 않겠니. 아 뭐 네가 1 독자이자 1평론가가 되어 배우자가 쓴 소설을 두고 같이 열띤 대화를 나누면 영광이라고? 네 배우자가 글 쓴답시고 집안일 대충 하면? 그치집안일은 더러운 걸 못 버티는 사람이 소매 걷게 되어 있지근데 난 네가 먼저 포기하고 청소기를 잡을 것 같다

장비 발세우는 낚시나 사진에 비하면 소설은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훨씬 더 들지. 카페에서 글 쓰면서 마실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 값이 해 봐야 얼마나 하겠어. 그건 별 문제가 안 되는데, 그게 아니라, 창조적인 아웃풋을 내려면 인풋을 어마어마하게 때려 넣어야 해. 작정하고 자료 조사를 하면 소설 하나 쓰는데 몇 십 만원은 우습게 깨질 수도 있어. 요새 책 값이 비싸. 한 권에 몇 만 원씩 한다고. 만약에 좀 희귀한 자료나 절판된 책을 웃돈 주고 구하면 한 권에 십 만 원 넘는 책도 있어.  

자료조사에 그 정도 돈을 투자해서 잘 쓰면 어디 공모전에 응모해서 상금을 탈 수 있긴 있겠지. 네 배우자가 장강명 작가급으로 쓴다면. 그 분은 1억 원 짜리 문학상을 여럿 타시고 전업작가가 되셨다만대개 공모전 상금은 몇십 만원에서 몇 백 만원 밖에 안 된단다. 자료조사 비용과 노트북 감가상각 비용, 카페 이용 비용, 글 쓰는 데 들인 시간과 노동을 제하면 손해야. 상을 타서 책이 나오면? 기분이 좋지 뭐. 사실상 그게 다야. 인세 수입?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아니 그리고 취미라면서 돈 벌 기대는 왜 하는데. 인생의 모든 장면에서 그러하듯이 소설 업계도 잘 쓴다고 반드시 잘 되는 게 아니란다. 웹소설 사이트 아무데나 들어가 봐. 문장도 아름답고 플롯도 쫀쫀해서 읽을수록 감탄만 나오는데 순위권에도 들지 못 하고 저 바닥에서 떠돌고 있는 소설이 부지기수란다. 누군가의 눈에 띄는 것도 다 운이야. 오래 쓰다 보면 언젠가 잘 될 거란 말은 기만이야. 평생 무명인 사람도 많아. 다들 마흔 넘어 등단한 박완서 작가를 동경하다가, 죽고 나서 유명해진 카프카를 상상하지. 너는 배우자가 공모전에서 탈락할 때마다 곁에서 함께 그 울분, 좌절, 시름을 견디면서 위대한 작가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눈깔이 삔 심사위원을 욕해줄 수 있어? 아 맞다 너 남들보다 가운데 손가락이 길었지.

야야 너무 겁먹을 거 없어. 소설 쓰는 사람 별 거 없어. 취미로 뭘 하든 빠져들어 덕질을 하게 되면 다 돈 쓰고 시간 들이고 즐겁고 그런 거야. 그 취미를 함께 하면 좋지만 넌 그냥 네 취미 누리면서 배우자의 취미를 서포트해 주면 되는 거야. 그래서 결론적으로, 취미로 소설 쓰는 배우자 추천하냐고? 나쁘지 않지. 그런데 아주 많이 사랑하는 거 아니면 그냥 다른 취미 가진 사람 만나.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배우자의 취미로 소설 쓰기, 괜찮겠어?

듣고 보니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소설 쓰는 배우자의 배우자로 너는 어떨 것 같냐고? 어 그건…  

한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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