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답을 알고 있다’와 관련한 부끄러운 고백
어느 한 작품의 리뷰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검색하던 중
‘뭐?’ 하고 놀랐다가, ‘음… 왜 그걸 여태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을까?!’ 하며 기가 막혀한 일이 있었습니다.
좀 부끄러운 고백을 해보겠습니다.
<물은 답을 알고있다>
너무 유명한 책이죠. 아~주 오래 전 (학창시절??) 와?! 정말 이렇다고?? 하며 사진들을 보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글을 모르던 꼬맹이 아들에게 보여준 첫 성인? 도서이기도 했습니다.
이것 봐, ‘사랑해’ 하니까 얼음 결정 모양이 어때?
‘밉다’고 하니까 모양이 이렇네? 했었더랬죠.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그 ‘구라’를 저는 최근까지도 별 생각없이 제 기억 저 아래서 긍정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책이 담고 있는 주제 만큼은 나쁘다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는데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좋은 말을 쓰자’ 라고 가르치며, 엉터리 근거를 댔었던 거죠.
최근 본 검색 기사는 이겁니다. 누군가의 의뢰에 의해, 저 뇌과학 전문가로 유명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직접 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실험을 재연한 적이 있었답니다. 당연히도 책의 내용처럼 사람의 말 혹은 음악 때문에 물의(얼음 결정의) 모양이 바뀌는 일은 없었죠.
재연불가능한 과학원리는 과학이라 할 수 없겠지요? 지금 책을 다시 보면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습니다. 조금의 논리적 사고만 가능하더라도, 굳이 실험을 하지 않아도 책에 실린 내용과 사진들을 조작일거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상 민망한 망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셈입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여전히 이 책을 구매하고, 긍정하는 서평들이 최근 날짜로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더군요. 심지어 아직도, 일부 서점에서는 이 책이 ‘과학’ 코너에 당당히 꽂혀 있기도 하다니까 말 다했습니다.
유사과학. 과학의 허울을 쓰고 있지만 지어낸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며 재배한 농작물의 생육상태를 막연히 더 좋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역시 왠지 그럴 것 같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유사과학입니다. 실제 다른 변인들을 모두 통제하고 실험해보면 유의미한 차이는 없고, 복불복이라는 것이죠.
SF를 좋아하는 저로선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SF는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나중에 있을 법한, 그럴듯한 미래의 모습을 ‘지어내는’ 것이니까요.
작가 에모토 마사루는 차라리 SF 소설을 출간하는 편이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돈을 벌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아는’ 사람들로부터는 더이상 존경을 받지 못하겠죠. 욕을 먹지 않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앗 검색해보니 이미 사망했다고 하네요…) 아니 언론이, 과학계가 공식적으로 공표하지 않는 이상(일일이 그런 것들을 찾아 반박하는 것을 촌스러운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대부분인 이상)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책을 소비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지식과 사고의 깊이 수준은 나날이 변합니다. 예전에 알던 것과 지금 그리고 훗날의 그것이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때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지식은 새로 접하는 앎을 통해 다시 깨닫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그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간혹 뿌리 깊게 박혀 잠들어 있는 ‘믿음’의 모양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한 지식일지라도 말이죠. 혹 내가 팩트라고 알고 있는 것들 중에도 픽션이 섞여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