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절판된 스티븐 킹 소설들 이야기

분류: 책, 글쓴이: 너드덕, 23년 9월, 댓글17, 읽음: 159

예로부터 한국은 호러 소설들의 불모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꽤나 많은 호러 소설들이 번역되고 시도되던 때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현재에도 그렇고요. 물론 『한밤의 시간표』처럼 메인 스트림에서도 먹어주는 공포문학이 나오긴 했으나, ‘공포 소설’이라는 타이틀보다는 부커상 수상 후보자 정보라 작가님이라는 타이틀이 더 먹어주지 않았나 싶고요.

물론 그때당시 꽤나 잘 나가던 조폭 소설 등이 실화 소설이라는 이름하에 우후죽순 나왓다가 지금은 아예 빛을 볼 기회조차 없으니 (…) 호러 소설들만 그런 취급을 당하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알라딘: [중고] 대두목 2

(당대의 숱한 조폭소설들.)

 

아무튼 자유게시판을 빌려 추억에 남은 절판된 책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절판되어 추억이 되어버린 스티븐 킹의 소설들 말입니다. 원래 절판된 호러 소설 전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했는데 시간이 없네요.

 

1. 스티븐 킹의 『데스퍼레이션』과 『통제자들』

 

삼촌의 책장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그리고 출판사는… 그 유명한, 브릿G 사용자들이라면 다 아는…! 황금가지입니다. 초판이 1997년으로 알고 있는데, 이때부터 스티븐 킹과의 인연이 있었구나 싶습니다.

두 책의 관계는 특이합니다. 지금 말하고자하는 멀티버스와 같다고나 할까요… 거의 동일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위기를 겪는데, 그 내용이 판이합니다.

『데스퍼레이션』은 스티븐 킹 하면 떠오르는 고유의 호러라고 할만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미국 횡단 여행의 꿈을 접은 사람이 많았다나 뭐라나. 줄거리가 가물가물하긴 한데, 악령에 빙의된 경찰이, 미국 사막 지역의 한 마을 근처를 횡단하던 사람들을 차례로 붙잡아 제물(기억이 맞나?)로 바치려고 감옥에 강제로 가둬두는 그런 내용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가물가물한데, 구체적인 장면들은 인상적으로 남았던 소설입니다. 경찰을 처음 마주한 한 일가족이 처음에는 그냥 교통 단속이겠지 싶어 실실 웃으면서 경찰과 이야기하다가,… 점차 경찰이 아빠에게 갑자기 폭행을 행사하던 그 장면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포 장면보다 기억에 더 남는 장면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년 데이빗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친구를 병문안하는 장면인데요. 수 페이지에 걸쳐 묘사되는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우울과 비극적인 감정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스티븐 킹은 그런 장면들을 신파적이지 않게 어쩜 탁월하게 인물들의 감정을 잘 전달하는지 ㄷㄷ 당시 번역가님과 편집부도 애쓰셨을 거 같고요.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낸 『통제자들』은, (데스퍼레이션과 인물들의 포맷과 배경만 얼추 비슷한 소설…)호불호가 갈리긴 하던데 저는 딱 제취향이었습니다. “미국식 카툰 만화 속 악당들이 갑자기 다 튀어나온다면?”을 전제로 한 소설이라고 볼 수 있죠. 리처드 바크만의 이름으로 낸 소설들은 전부 이런식으로 막 나가는 상상력을 구사하는 편 같습니다.

 

2. 스티븐 킹의 『그것』

버젓이 지금도 소설로 나와 있는데 무슨 절판이냐… 싶으시겠지만 제게는 특별하게 기억이 남은 번역본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게가 삼촌의 책장에 있었던 절판된 번역본 중 하나로 보기도 했거든요…

온라인 신고서점(이미지 출처: 신고서점)

『그것』이 과거에는 무려 『신들린 도시』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것 알고 계셨나요…? 웬만한 스티븐 킹 팬이라면 알긴 하실 겁니다. 이 제목으로 된 스티븐 킹의 소설이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스티븐 킹이 동양의 무속에 관해 공부했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90년대 초반에 발간됐을 당시, 출판사가 소설을 동양식 감수성에 얼마나 가까이하려 했는지 그 노고가 보이는 제목입니다. 달랑 ‘그것’이라고 번역하기에는, 스티븐 킹이 지금처럼 별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고민이 필요했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도 스티븐 킹은 미국에서 이 작품을 통해 완전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고 하던데, 그런 베스트셀러를 번역하면서 ‘그것’이라는 제목만 달랑 선보이기에는 아쉬웠을 테고요.

저는 이 판본으로 『그것』을 접했는데요. 신들린 도시와 같은 번역가분이십니다. 그리고 번역은 상당히 양질이어서, 수십 년을 건너고 난 뒤에 읽으면서도 큰 어색함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인가 읽어서 그런지 십 대인 주인공들한테 과몰입하기도 했습니다.

“공포의 ‘IT그것(악몽록의 원제입니다) 당신의 등뒤에서 웃고 있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의 스티븐 킹이 쓴 가장 무시무시한 공포소설”

이런 캐치프레이즈도 어쩐지 저는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레트로 매니아였나봅니다. 아무튼 도서관에서 그것을 보실 사람들은… 옛 시대의 향수를 더 추억하고자 한다면 악몽록이라는 이름으로 봐도 괜찮을거 같습니다. 물론 간지는 황금가지 스티븐킹 전집의 번역본이지만…

 

3. 스티븐 킹의 『불면증』

불면증 / Insomnia

동네 도서관 한구석에서 발견한 소설입니다. 총 세 권으로 이루어진 대작입니다.

21세기 한국에서 꼭 필요한 의제를 다루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주된 소재가 바로 임신중절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거든요.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남성으로 이루어진 극단적인 혐오 집단 패거리가 나타나고, 그들의 테러를 막는 게 소설의 주 줄거리입니다. 심지어 아내가 임신중절 법안에 찬성하는 서명을 했다고 가정폭력을 가하는 남성도 묘사됩니다…

노인이었던 주인공이 어느날 오컬트적인 기운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가위를 들고다니는 작은 대머리 박사(가위를 들고다니면서 수명을 관리하는 실?을 자르거나 조작하는 걸로 기억합니다) 들과 조우하면서 사건이 벌어지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 대머리 박사 중 한 명이 맛이 가면서 신비의 힘으로 혐오 집단을 컨트롤하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구하실 수 있는 분들은 꼭 구해서 보면 좋을 소설입니다.

『다크 타워』를 비롯해 스티븐 킹 세계관의 최악의 악당인 크림슨 킹이 나오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저는 다크 타워를 접하기 전에 이 소설로 크림슨 킹(이 번역판에서는’피의 왕 크림슨’이라고 합니다)이 언급되는 걸 보다가, 이후 다크 타워 등지에서 크림슨 킹이 언급되어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된 책입에도 번역이 상당히 유려하고 자연스러워서 기억에 남은 역작입니다.

 

4. 스티븐 킹의 『드림캐쳐』

드림캐처 1 | 스티븐 킹 - 모바일교보문고이것도 삼촌의 집에서 발견한 책… 생각해보니 삼촌이 스티븐 킹의 어지간한 팬이었나 봅니다. 지금도 스티븐 킹의 저서를 모으고 계신지는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처음 접한 도서이기도 합니다. 제가 초딩때 외계인 UFO 음모론에 빠져 있었을 때였는데…이 소설이 바로 UFO와 외계인을 다루거든요. 처음 읽을 때에는 이해가 안되어서 접어뒀다가, 『그것』으로 감동을 받은 다음 다시 도전한 소설입니다.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 똘똘 뭉쳤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뭉쳐서 악을 물리친다’는 서사가 이 소설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것의 주인공들과 패니와이즈가 언급되는 파트가 있습니다 ㄷㄷ

책 앞면에 쓰인 “인간의 꿈을 사냥하려는 자들이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는 구라에 가깝습니다. 제목이 드림캐쳐인 이유는 아메리칸 원주민 부족의 드림캐쳐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인데 이런 식으로 낚시를 했네요.

이 소설에서는 두 빌런이 나옵니다. 불시착한 회색 외계인들과 군인인데요… 킹은 미국 군인을 어지간히 싫어하는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티븐킹 식의 신비주의적 SF를 저는 재밌게 읽었습니다.친구들 간의 우정도 감동적이더라고요.

 

5. 스티븐 킹의 『토미노커』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에서 온 색채』의 아이디어를 적극 차용해서 썼다는 소설… 총 3권 분량이고 역시 모든 인물들의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분인 만큼, 이 소설도 서사가 방대합니다. 외계의 물체! 가 한 마을에 떨어지고, 그에 따라 기괴하게 변하는 마을의 생태를 묘사하는 소설인데요.

사실 이건 저도 얼마 전에 구해가지고 아직 읽는 중에 있습니다.

 

 

시간 때문에 다루지 못한 소설들이 많은데요. 브릿G가 황금가지 플랫폼인 만큼 스티븐 킹의 팬들도 많으실 거 같고, 절판된 도서를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거 같습니다. 당장 『욕망을 파는 집』만 해도 예전에는 『캐슬록의 비밀』이라고 번역되어서 그 제목을 더 익숙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ㅎㅎ

 

절판된 스티븐 킹의 도서에 대한 추억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나누어주시면 재밌을 거 같네요.

너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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