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声の形 감상 후기
목소리의 형태 声の形
일단 놀랐던 건 이 영화를 메가박스뿐만 아니라 CGV, 롯데시네마에서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단순히 오타쿠 층을 겨냥하고 한국에 갖고 온 게 아니라는 뜻일까? 한마디로, “제2의 너의 이름은.”을 노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여기서 ‘너의 이름은.’이란 방 밖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는 딥 다크한 오타쿠들이 자기 친구들에게 자기도 인싸 영화를 봤다며 어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화를 의미한다. 그래, 과연 ‘목소리의 형태’는 ‘제2의 너의 이름은.’이 될 가능성이 있는가? 사실 그런 건 관심 없지만 딱히 생각나는 도입부가 없어서 이렇게 헛소리로 글을 시작해본다.
시놉시스를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요 소재는 ‘집단 따돌림’과 ‘청각 장애인’으로, 둘 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 크레이지 재패니즈 오타쿠들은 무엇이든지 모에 캐릭터로 소비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도 그런 모에 바보들을 위한 미개한 영화가 아닐까 하고 (내심 기대하고) 걱정하면서 영화를 관람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소리의 형태’는 확실히 그런 뻔한 영화와는 노선을 달리하기 위해 신경 쓴 노력이 보인다.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의 러브 스토리, 그것은 듣는 것만으로도 황당한 일진 미화 스토리일 뿐이다. 이 영화는 그 ‘황당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고자 하고 있다.
영화의 전체적 줄거리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초등학교 6학년, 영화의 주인공, 이시다 쇼야는 청각 장애를 가진 전학생 니시미야 쇼코에게 짓궂은 장난을 친다. 그와 친한 친구들도 거기에 가담했으며, 반의 전체적 분위기도 니시미야를 따돌리는 쪽으로 흘러간다. 결국 이것이 문제 되자 학교는 왕따 가해자를 찾았고, 방관자, 또는 가해자였던 반 친구들은 순식간에 이시다 쇼야를 왕따 주모자로 몰아세웠다. 그것은 이시다 쇼야의 낙인이 되었으며 6년 후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이시다는 외톨이다. 이렇게 사는 데에 의미가 없음을 느낀 이시다가 마지막으로 쇼코와 만나면서 스토리는 시작된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왕따 가해자를 다루는 방식이다. 당장 영화의 주인공인 이시다 쇼야가 왕따 가해자에서 순식간에 왕따 피해자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단순히 억울하고 불쌍한 인간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잊을 만하면 그가 저지른 짓을 상기 시켜준다. 이는 다른 가해자 미화 만화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며 나는 이것을 높게 평가하는데, 왜냐하면 학교폭력이 단순히 가해자가 반성하고 성장하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등장하는 스토리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영화에도 이러한 고민은 잘 드러난다. 주인공이 쇼코와 만나려는 행동이 위선이라고 지적하는 쇼코의 여동생가 등장하는가 하면, 왕따 피해자의 입장으로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돌이켜보게 되는 장면도 있었다. 이런 고민에 대한 답이 속 시원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런 고민을 했다는 노력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편, 청각 장애인이 소재로서 등장하긴 했지만, 이 영화는 청각 장애인이 가진 비극이나 장애의 극복이 중심이 아니다. 그보다는 더 폭넓은 개념으로서 “커뮤니케이션의 불통과 극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청각장애’가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나 연출을 위한 도구, 또는 캐릭터의 모에 속성으로만 사용된다는 느낌도 적다.
물론 혹자는 그런 주제를 위해 청각장애라는 소재를 등장시켰어야만 했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고, 그것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지적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 주제를 등장시키기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는 흔적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나는 감독과 원작 만화가의 의도를 존중한다.
전체적으로 주인공 이시다와 히로인 니시미야의 스토리가 중심을 이루지만, 다른 등장인물들도 영화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물론 7권 분량의 만화책을 2시간에 옮겨 담았기에 서브 등장인물들의 분량은 좀 적은 편이긴 하다만, 이 영화에서는 각 등장인물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그들을 왜 작품에 등장시켰는지가 꽤나 명확히 제시된다. 원작 만화에서는 이를 더 자세히 다룬다고 하는데, 나중에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흔한 학원 로맨스의 감정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살짝 강했다.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둘, 서로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면서 꽃 피우는 사랑, 극적인 전개와 운명적인 재회. 아무래도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인데, 너무 평범한 느낌이 들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굉장히 애매하다. 분명 다른 만화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집단 따돌림 미화라는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대략적인 목소리의 형태 감상이다.
작화는 아름다웠고, 스토리도 나름 괜찮았으며, 몰입도가 상당하고, 보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 그러나 여전히 고민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왕따 가해자 미화라는 족쇄와 청각장애를 굳이 사용해야 했는가라는 지적에서도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는 영화. 솔직히 말해 ‘제2의 너의 이름은.’이 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제가 블로그에서 쓴 글을 가져온 것이라 말투가 딱딱합니다. 두서 없는 글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