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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이라고 거짓말 같은 하루가 펼쳐지네요

분류: 수다, 글쓴이: 수오, 17년 4월, 댓글15, 읽음: 111

후……

 

점심 든든히 먹고 이에 뭐 낀 거 없나 싶어 거울을 봤습니다. 뉘 얼굴이기에 이렇게 못생겼나 하고 깊이 탄식하며 들고 있던 거울을 내리려 하는데 뭔가 이상하더군요. 다시 거울을 보니 정말 못생겼…… 아니, 왼쪽 눈이 토끼처럼 새빨갛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냥 충혈된 정도가 아니라 흰자의 존재가 안 보일 정도더군요. 간지러운 것도 아니었고 아프지도 않았는데도 괜히 안구가 터진 건 아닐까 하고 혼자 기겁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안과로 향했습니다.

 

멀쩡히 잘 걸어가다가 초등학교 앞 어느 길목에서 순간 발을 헛디뎌 까뒤집었습니다. 인생 통틀어 발목 접지른 경험이 몇 년에 한 번 될까말까였는데 그게 하필 오늘이었습니다. 아스팔트 도로인 주제에 한쪽이 깊게 움푹 패인 몹쓸 길이더군요. 일 분 넘게 골목길 위에서 까치발을 뛰며 통증에 몸부림치고 나서야 겨우 지면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잔통으로 끝나더군요. 뼈가 나갔다면 걷지도 못했을 텐데, 발을 내디뎌도 그렇게 아프진 않더군요. 아마도 뼈가 아닌 인대에 탈이 났던 것이겠죠.

 

기껏 걸어서 안과에 갔더니 이미 문을 닫았더군요. 1층 약국 약사 분께 여쭤보니 토요일에는 오전 진료만 하고는 문을 닫는다고 하시네요. 헛걸음 했구나 싶어 한숨을 푹 내쉬니, 약사 분께서 처방전 없이 쓸 수 있는 안약을 하나 권해 주셨습니다. 뭐 약을 구했으니 잘 된 일입니다만…… 당분간 술과 기름진 것을 끊으라는 조언도 더해주시더군요. 저에게는 당분간 굶으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걸어 오는 길에 슬슬 발 안쪽에서 약한 통증이 올라오더군요. 날은 화창하고 사람들 표정은 화사한데 왜 나는 걸어다니는 동네병원이 되어가나 싶어 신세 한탄을 하려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따라 면상 마주한 채로 기침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 사람 다니는 것도 신경 안 쓰고 벌컥 차문을 열어젖히는 중년 아저씨 때문에 차 문짝에 온 몸을 들이받을 뻔 하기도 하고…… 하하.

 

뭐 그래서…… 결국 아득바득 걸어와서 지금은 눈에 안약 넣고 발에 파스 바르고 잘 쉬고 있긴 합니다. 불과 마실 나간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별 일을 다 겪으니 이젠 나가기가 무섭네요. 대체 무슨 좋은 일로 돌아오려고 이렇게 액땜을 하고 다닌 건지 참 모를 일입니다. 새옹지마, 새옹지마……

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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