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문학 중편 전집을 위한 작가 프로젝트에 많은 작품들이 접수되어 편집부가 머리를 맞대어 선정작을 고르기 위해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중편이라는 특성상 분량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전집에 맞게 다양한 색채의 공포를 수록하기 위한 논의도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응모작 중 상당수는 공포 문학임에도 ‘공포’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공포라는 본연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선 꽤 다양한 연출 방법이 필요한데, 그러한 시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너무 적었다. 최종적으로는 예상보다 적은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고, 중편 전집 프로젝트의 완성에는 부족한 수가 되었다. 때문에, 2023년 초에 두 번째 응모를 받기로 하였다. 다만 다채로운 공포 전집 구성을 위해 ‘우주’, ‘해양’, ‘꿈’, ‘사이버스페이스’ 등으로 소재를 한정할 예정이다.
응모작 중 선정작을 비롯하여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몇 작품에 대한 코멘트를 남기면 다음과 같다. 「무별촌」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유사 종교 혹은 폐쇄적인 영적 공동체와 결합시킨 독특한 미스터리 호러로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기괴한 분위기는 인상적이었으나, 각기 소재나 사건들이 촘촘하게 어우러지지 못하고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고사목」은 오래전 잔인하게 인신공양을 받은 고사목에 깃든 저주에서 시작된 공포를 다루며 학교 괴담 특유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면이 있었으나 분위기에 비해 캐릭터의 개성이나 시점 전환 등 전반적인 구성 면에서 미흡한 인상을 남겼다. 「스위치백」은 두 캐릭터 사이의 긴장 관계를 통하여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조성하였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마무리까지 이르는 과정이 아쉬웠다. 「액연」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섬뜩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였으며 결말까지 이르는 개연성이 뛰어났다. 특히 ‘금기’와 ‘소외’라는 두 가지 테마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조심도(鳥深島)에서: 재회」는 음산한 섬을 배경으로 한 실종 사건을 코스믹 호러로 풀어내 인상적이었으나 전형적인 플롯과 평이한 전개가 크게 공포감을 주지 않았다. 「주오」는 기묘한 신탁을 소재로 일가족의 흥망성쇠를 괴기한 분위기로 그려 냈으나 지나치게 밀도가 높은 묘사와 느린 전개로 흡입력이 좋지 않았다. 「아까시나무」는 초반 흡인력이 부족해 공포로서 가는 관문 역할이 부족했다. 「루살카」는 초반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공포의 색채가 옅어졌다. 「여덟 연꽃잎 피어난 하늘 아래」는 분위기를 잡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흡인력을 놓쳤다. 「벽지뜯기」는 공포 본연의 색채를 드러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였다. 신혼집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체험을 다룬 「벗어날 수 없는」은 디테일한 장면과 불안한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었으나 SF적인 설정이 드러나면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녀의 채널」은 VR이란 이색적인 소재를 채택한 점이 눈길을 끌었지만 전개가 매끄럽지 않았고 공포라는 정서를 충분히 자극하지는 못했다. 「우물」은 공모 기준의 분량을 다소 초과한 긴 중편이었으나, 무속적인 디테일과 비교적 경쾌한 인물들의 케미를 적절히 배합하여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