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위원 정기석(문학평론가)
‘장르문학’을 정의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특정 ‘장르’를 분류함에 따른 과거의 정의와 개개인이 가진 대략적인 느낌을 섞어 다소 ‘장르문학’에 가까운 분류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언제든 실패할 규정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어떤 장르들의 묶음인 ‘장르문학’이 묶음의 범주를 언제나 뛰어넘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한편 ‘장르문학’의 현재가 계속 새롭게 쓰여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위 본격문학과의 자의적 경계 역시 모호해진 채, 모든 것이 가능한 혼종 속에서 장르문학에 대한 정의는 이제는 불가능하거나, 더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장르문학에 대한 정의를 되짚어 보는 것은, 지금까지의 관례적 관념과 궤를 달리하는 물음이 앞으로의 장르문학 비평가에게 요청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는 원소스멀티유즈의 기본 소스로 대중 확장성을 담지하고, 철학적 영역에서는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 SF)의 개념적 가능성이 도나 해러웨이, 이자벨 스텡거스, 제인 베넷 등에 의해 이론적 첨단의 한 부분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 수만큼 다양한 읽기와, 대중 확장성을 위한 통로 역할을 하면서도 가장 첨단의 독해를 해야 하는 것이 새로운 비평가에게 주어진 몫인 듯합니다.
지원한 원고들을 읽으며 장르문학의 현재와 미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이후의’ 비평에 대한 애정과 밀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심사의 기본적 요건이었던 문장력, 이해도, 비평의 완성도 부분에서 미달되는 글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소설 줄거리를 반복 서술하며 인상으로 마무리 짓는 글들이나, 소설 독해를 위한 도구로 내세운 특정의 개념어가 작품의 독해를 가두는 글, 다소 낡은 문법으로 소설을 규정하는 원고들은 선정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작품은 대안적 현실이나 우리가 아직 모르는 미래의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비평가가 우리에게 익숙한 잣대와 습관적 논리의 틀로 작품을 옭아매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비평은 결국 정확하게 읽기에서 시작하며, 그 독해는 작품에 대한 동의와 애정에서 비롯될 것이므로, 정확하게 읽기보다 평가를 앞세운 글도 선정에서 제외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비평문은 일월명과 김시인의 원고였습니다. 일월명의 글은 전체적으로 뛰어난 문학적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줄을 그으며 읽게 만드는 매력적인 문장들도 반가웠습니다. 일월명은 지원자들 중 가장 기존의 비평‘스러운’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용어 사용에 있어 다소 불친절한 부분도 있었지만 안정적인 필력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성한 「견사환상견문록」에서는 장르문학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한 평자의 비평적 관점, 텍스트 속 세계에 대한 애정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비평의 시선이 다소 주관적으로 침잠해 있는 부분과 비평문 구성에 있어 다소 비약적인 전개가 아쉬웠습니다.
김시인의 글은 문체의 발랄함과 거기서 오는 문장의 흡입력이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독해에 있어 도식화된 접근은 단점으로 지적할 만하나, 그러한 풀이로 도달한 결말에서 보이는 평자의 시선 자체는 그 도식 너머를 향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의 분석에 있어서 복잡한 타래를 풀어나가는 성실함과, 글 전반에서 느껴지는 정직함이 김시인의 앞으로의 비평에 대해 신뢰하게 하였습니다. 소설을 독해하며 평자가 느낀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습니다. 글의 성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흡입력 있는 문장이 가진 기본적 역량, 아직 없는 것들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선과 아직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환대의 감각이 다음의 비평을 기대하게 하여, 김시인의 원고를 최종적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힘든 시대에는 현재의 삶의 방식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작가들, 두려움 가득한 이 사회와, 그것이 이루어 놓은 강박적인 기제들을 꿰뚫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other ways of being)을 탐구하며, 나아가 희망의 현실적 기초를 상상해내는 작가들의 목소리가 원하게 될 것입니다.” 어슐러 K. 르 귄의 2014년 미국 도서상(National Book Award) 수상 연설 일부입니다. 당선된 비평가께서 ‘그런’ 작가들의 목소리를 밝히고, 또 그런 비평의 목소리를 내어주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본심위원 김준혁(황금가지 편집주간)
올해 처음 개최된 브릿G/황금가지 비평상에 도전한 비평은 총 12편이지만, 어느 비평 하나 쉽사리 손에 놓을 수 없는 완성도를 보였다. 심사 기준은 비평 대상의 작품을 명확하게 꿰뚫는 시선과 이를 잘 압축하여 표현하는가 등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평론의 형식이나 완성도 등은 전문 분야 본심위원인 정기석 평론가님의 의견을 중요하게 반영하였다.
편집부의 기준에서 오랜 고심 끝에 NahrDijla 님과 일월명 님, 김시인 님, DALI 님으로 압축했으며, 좋은 평론 글이 많아 이 과정 또한 지난하고 어려운 일이었음을 알리고자 한다. 본심위원 간의 상의를 통해 이중 최종적으로 김시인 님을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2022년 한해 황금가지의 여러 도서에서 김시인 님의 비평을 기대해 본다.
수상자 김시인 님께는 비대면으로 수상 상패가 발송될 예정입니다.
수상자께서는 상금 지급 및 부상 발송, 계약 작성 등을 위해 문학상 문의란을 통해 [성함, 주소, 연락처(휴대폰), 이메일] 정보를 입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