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즐겁게 잘 읽었다는 말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백일장의 이름을 걸고 선별을 해야 하는 브릿G의 입장도 있고, 또 브릿G의 응모자 여러분이니 글쓰기에 대한 엉성한 한 마디라도 원하실지 모른다는 주제 넘은 생각이 들어 사족을 붙일까 합니다.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나다 순입니다.
– 그래, 소년. 나와줄 법하지. 이런 모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 아카데믹한 문학계의 오소독스한 표현법을 써보자면 작가께선 어디서 빡세게 써야 할지 헤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서 그래야 하냐고요? 작가가 모르는데 독자가 알 리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타자가 아는 것 중 써볼 만한 대책이 하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빡세게 쓰지 말아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 이 이야기는 어쩐지 만화로 그리면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군요. 컷이 딱딱 나눠지고 꽃 배경이나 검은 배경 같은 걸 쓸 부분도 바로 보이는 듯합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인간이 한 명도 안 나오는데다 식사 장면 같은 걸 생각하면, 흐으음. 여러분. 글은 좋은 겁니다. 그렇죠?
– 소박한 글감으로 무난하게 쓰셨다고 생각됩니다. 팬픽션에서 기대할 만한 것도 챙겼고. 유동식이나 이유식 같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 캐릭터들이 커다란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선택지 자체는 선명하게 표현되지 않는군요.
– 우와…… 저 세계의 토목공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는데.
– 이렇게 쓰시다 보면 조만간 문장들의 균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시겠죠. 세멘 이야기를 집어넣어 전개의 균형을 맞춰보려 하신 것도 눈길을 끄는군요. (지금은 들어가 있는 형태가 이상합니다. 시멘트 콘크리트도 집중을 잃게 하고요. 하지만 빼면 밋밋해지겠지요.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전반적으로 현재의 완성도보다 앞날의 가능성을 더 보여주는 글로 보입니다.
– 그렇죠. 항공 정찰. 당연히 생각해 볼만한 전술이죠. 2차 대확장 전쟁 당시 그런 모습이 잘 목격되지 않은 건 아마 레콘형 대공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겠죠. 전쟁 직전이라면 쓰였음 직합니다.
– 문장은 전반부 대부분이 타자의 그것을 반복한 것이고 기승전결이랄 것이 없어 구성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 없습니다. 글로 하는 소묘가 목적이셨다면,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초반부에선 낮의 잔열로 빛나는 사막과 차가운 밤하늘 사이를 날아가는 나가 정찰병의 야간 비행 같은 걸 묘사했다면 운치 있는 장면이 나왔을 것 같군요. 예. 자신이 선택한 소재에 대해 많이 생각하면 할수록 좋다는 말입니다.
– 약간 아쉬운 이야기 구성입니다. 읽는 사람이 결말을 아는데, 이 결말은 보늬가 선택한 진로와 선택한 사랑 때문에(작품 전반부와 중반부의 내용입니다.) 찾아온 것이 아니지요. 어쨌든 직접적으로 인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노련한 수습에도 불구하고 저 결말은 어디서 가져온 듯한 느낌을 피하기 어렵죠. 차라리, 뻔한 시도지만, 보늬가 자기의 미래에 대해 헛짚는 결말이나 선택했으니 뭐가 오든 받아들인다고 말하는 결말 같은 것을 그려놓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독자로 하여금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자체적인 완성도도 꾀해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작가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 물론 그런 티가 안 나는 괘씸한 천재들도 간혹 있지만 역시 급하게 쓴 티가 안 나기는 어렵죠. 그것도 작가의 선택이니 그로 인한 결과도 받아들여야죠. 많은 장점이 보이지만 불균형합니다.
– 동인 설정은 자신이 공식 설정이 아님을 밝힐 의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할 의무도 있을 거라 봅니다.
– 많은 분들이 겪는 문제에 처해 계시는 것 같군요. (예. 타자는 항상 겪습니다.)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글은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글 이전의 무엇을 옮긴 것이겠죠. 그런데 읽는 사람의 머릿속엔 그 글 이전의 무엇이 없습니다. 자신이 써놓은 글이 읽기 편하고 이해가 잘 된다면 그건 자신이 잘 써서가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전용 참고서나 상세 주석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끔 의심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 시대와 더불어 호흡할 줄 아는 작가의 귀감이라 하겠군요. 모두들 작가의 호소를 받아들여 마스크 잘 쓰도록 합시다. 마스크 착용을 고수하기 위해선 기권패도 감수하는 저 페이소스 짙은 절정부에 담겨 있는 메타포를 보세요. 씨름에 대한 해체주의적 접근은 밀접 접촉에 대한 우회적 비판일 테고 그렇다면 제목인 눈을 피하는 방법은 비대면 접촉에 대한 알레고리겠죠. 친절하게도 작가는 결말부에서 밀접 접촉을 원하면 바이러스 옮을 일 없는 외계인하고나 하라는 시사성 충만한 일갈까지 덧붙이는군요.
– 새로운 문학사조 보건주의의 태동을 알리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 이걸 글로 하는 쉐이키 캠이라고 해야 할까요.
– 아뇨. 영화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러프 컷 정도로 보이는군요. 괴인이 자주 출현하는 이 업계에는 퇴고가 하기 싫으면 퇴고할 필요가 없게 쓰면 된다고 말하는 괴인도 가끔 등장합니다만 작가께선 그런 괴인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퇴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 타자가 지은 죄가 많다는 느낌이 뭉게뭉게.
– 다른 캐릭터라고 해서 쉬운 건 아니지만 설득력 있는 악당을 묘사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죠. 해적들의 동기를, 그 무뢰배들이 일치단결한 이유를 설명해보려 해보시면 작가께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이 이야기를 남자의 시점에서 쓰면 어떻게 될까요.
– 타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이야기군요. 대한민국 출산율에 글로 공헌하기. 실현을 기원합니다.
– 계속 쓰여졌고 쓰여질 이야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이야기에 대한 타자의 기대는 ‘더 허둥거려. 더 비참해져. 읽는 사람이 잠시 딴청 부리게 만들어.’입니다. 일반적으론 단숨에 다 읽었다는 말이 글에 대한 찬사겠지만 타자는 이런 이야기에 대한 좋은 찬사는 읽기 힘들어서 잠깐 멈췄다는 말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유감이지만 한 번에 다 읽었음을 고백하겠습니다. (물론 무슨 해석인가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타자의 특수한 입장이 주된 이유겠지만) 욕이 튀어나오는 장면이 없군요.
– 완결작은 형태로 남는 작가의 재산이죠. 수고하셨습니다.
– 지금 작가께선 좋아하는 글들을 흉내내어 보며 즐겁게 글 쓰는 것이 좋은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글쓰기에 관해선 당분간 그것만 하시더라도 괜찮을 겁니다. 작법 같은 건 천천히 접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상식을 기르기 위해 다양한 것들을 폭넓게 접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습니다. 25만이나 되는 거대 병력이 주변을 불태우면서, 그러니까 공격측이 스스로 청야 전술을 펼치면서 전진하는 말문이 막히는 광경은 유감스럽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입니다.
– 작가 본인이 즐기면서 썼다는 것이 보여서 미소가 지어지는군요.
– 팬픽션은 수용자가 잘 아는 내용에 대해 써야 하며 또 수용자가 아는 것에 위배되지 않게 써야겠지요. 아마 그런 팬픽션의 문제 때문에 생기는 현상 같은데, 이 글은 평가하기가 어렵군요. 이보다는 잘 쓰실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과 한계가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동시에 들어서. 팬픽션 기준으로는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역시 작가 자신의 소재와 주제와 인물로 쓴 글은 어떨지 궁금하긴 하군요.
– 문장의 균형에 대한 감각이 있으시군요. 독자가 읽어나가도록 하기에 큰 도움이 되죠.
– 개연성을 가볍게 보시는 듯합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죠. 자신이 있는 지역의 최고 권력자를 체포했다면 편집증적으로 그 부하들과 격리시켜야 할 텐데 같이 놀라고 허락해주는 토카리도, 보통 군인이라면 허락할 리 없는 그런 요청의 수락을 계획의 핵심으로 삼은 그룸도 보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합니다. 본인의 문장에 본인도 휘둘려서 생기는 일이 아닌가 추측되는데,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이니 지양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쓰신 글을 봐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금철퇴와 은철퇴는? 응? 헤르메스, 직무유기입니까?
– 안 써도 되는 부분이나 안 써야 할 부분을 안 쓸 줄 아는 감각이 보기에 즐겁군요. 계속 쓰시다 보면 감각이 노하우로 자리 잡을 거라 봅니다.
– 복거일 작가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조심스럽습니다만 타자는 이 제목 재미있습니다.
– 축이 약하군요. 좀 덜그럭거립니다. 모처럼 제목도 저렇게 정하셨으니 글 전체를 이끌어가는 축이 될 수 있도록 암각문을 좀 더 부각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그리미의 독백도 시너지를 받았을 것 같군요. 물론 다른 방법도 있을 겁니다.
– 흐음.
– 삼가 직언하는데 글을 쓰시려거든 글을 믿으세요. 선문답을 하며 멋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믿는 사람은 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소중한 도구이기에 글을 잘 손질하려고 애쓰고요. 그게 글을 신뢰하는 태도죠. 하지만 귀하의 글에서 보이는 태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글을 안 믿으니 문장 하나 하나를 정성껏 쓰는 대신 메모하듯 대충 써놓고 허겁지겁 이야기를 따라 달려가는군요. 어휘를 안 믿으니 대명사나 보통명사를 쓰고 그 뒤에 괄호 열고 고유명사를 넣는군요. 낮은 맞춤법 수준도 글을 잘 닦아봐야 뭐 하겠냐는 불신감, 저신용의 반영처럼 보입니다. 본인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글을 믿고 아끼시길 바랍니다.
– 이건 콜래트럴 데미지라고 하기도 뭣한데.
– 화려체의 매력은 압니다. 하지만 작가의 어휘력과 문장력은 화려체를 감당할 만큼 단련이 되어 있다 하기 어렵습니다. 비문이 빈발하는군요. 하지만 간결하게 쓰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뻔한 해결책이라 끌리지 않기도 하고, 적은 횟수라도 바르게 해야 하는 운동과 달리 작문의 경우엔 좋아하는 방식으로 많이 쓰는 것이 나을 수도 있죠. 본인이 즐거운 방식으로 쓰세요. 허나 글 읽기는 더 많이 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뭘 읽어야 하냐고요? 검색하기 좋은 시대입니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목록 작성자가 죽어봤을 리 없으니 신빙성이 떨어집니다만.), 청소년이 읽어야 할 책(중년이 읽어도 문제 없습니다.), 아니면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우리가 낸 세금으로 정부에서 책도 골라줍니다. 괜찮죠. 낸 만큼 누리세요.) 같은 식으로 검색하면 쉽게 목록을 손에 넣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글들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목록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목록이든 관계 없으니 구해서 많이 읽으세요.
– 어려운 소재를 고르셨군요. 소설엔 글자와 문장 부호, 빈 칸뿐 영상이나 효과음, 배경음악 같은 몰입에 도움 되는 것들이 없죠. 읽는 이 스스로 깊이 몰입을 해야 하는데 저런 제4의 벽 통과는 그런 몰입을 방해하죠. 이렇게 말했지만 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예도 있고, 게다가 이 작품은 창작이며 동시에 감상인 팬픽션이니까 무리라고 할 것은 없을 것 같군요. 해볼 만한 시도였다고 봅니다.
– 제목은 세 가지 이야기인데 사실 이야기는 없죠. 작별과 출발뿐이니까. 구성에 대해선 특별히 말할 것이 없고, 문장은 단단해 보입니다. 문장 가지고 이것저것 해봐도 문제 안 생길 정도로. 내용에 대한 저런 실험을 다음 번엔 문장에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역시 구두 계약은 위험한 겁니다. 서면 계약을 애용합시다.
– 흡사 타자가 두드린 것 같네요. 노파심에서 여쭙는데 팬픽션이라서 일부러 이렇게 쓰신 거죠? 만에 하나 도움 안 되는 타자의 문체에 엉켜 계신 거라면 어서 탈출하시라 권합니다. 원전에서 다 나온 이야기라 이 작품은 처음부터 결말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응모작의 감상에선 그게 아쉬움이라고 말했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과가 명확히 제시되니까요. 가져온 이야기의 성질이 다르다는 거죠.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위치를 확고히 잡고 지향을 분명히 한 채 맵시 있게 쓴 글로 보입니다.
– 디아틀. 실험 스탭과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외부자의 감시가 있는지 확인해봐요.
– 예. 그리 기획하신 것 같은데 정말 러브크래프트 생각나는 이야기군요. 기획 의도가 그랬다면 중요한 건 분위기인데 그 점에서 보면 마인크래프트 생각나는 환상 건축물 묘사 장면은 좋네요. 시에도 박사가 처해 있는 상황과 결말에 대한 현대적/복합적 암시라고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혹시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 떠오르는 장면 없나 살펴보았음을 고백하겠습니다.) 교활한 이야기꾼이라면 틀림없이 동시에 다른 것들도 충분히 챙겼을 텐데 정직하게만 쓴 긴 설명들이 좀 눈에 밟히는데, 당분간은 즐겁게 글 쓰시는 것이 먼저겠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계속 쓰세요.
–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성우님의 나레이션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요약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게임 오프닝 같아서 그런 듯합니다.
– 으흠. 좀 심심하군요. 등장 인물 모두가 ‘보고만’ 있어서 그렇겠지요. 더더욱 오프닝의 컷 씬 같은데요. 일종의 액자소설 구성인데 안쪽과 바깥쪽의 균형이 안 맞는 것이 이유인 듯합니다. 전형적인 액자소설은 아니지만 메밀꽃 필 무렵 한 번 떠올려보세요. 허생원이 옛 이야기 꺼내는 장면 훌륭하지요. 그걸 훌륭하게 만드는 요인들을 연구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세련된 정무 감각이야 애초에 기대 안 했지만, 달비 대사. 무슨 정치적 폭탄을 그렇게. 규리하제 고성능 세탁기가 세탁-헹굼-탈수-살균건조까지 단숨에 해주려고 덤빌 텐데.
– 응모작 중에 안 그런 글이 드물기야 합니다만 이 글 참 팬픽션 같군요. 스스로 자립할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갈등 구조? 원전에서 다 봤을 거 아냐. 나는 해결만 쓴다!’네요. 새로운 갈등 구조를 만들어내기는커녕 기존의 갈등 구조를 해설하는 작업도, 아니, 그러려는 낌새도 안 보이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하실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죠.
– 와, 이게 뭐죠?
–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나는 전투에 참가했다. 뒷정리를 했다. 밥을 먹었다.’가 됩니다. 이런 줄거리라고 해서 안 될 건 없습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가 ‘살아있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막상 하는 건 살아가기다.’ 같은 것이었다면 쓰임새 좋은 줄거리였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군요. 작가가 다루고 싶었던 주제는 제목에도 드러나듯 페르소나에 대한 것인 듯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저런 줄거리여야 하나 의문이 들죠. 혹시 주제에 비해 보면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재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음? 이 녀석, 자유무역당원치곤 이야기 솜씨가 만만찮은데? 정체가 뭐지?’
– 무리하는 모습 없이 잘 쓰셨는데, 그래서인지 욕심이 생기는군요. 결말을 그리 하실 작정이었다면 ‘내’가 불확실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불안해하는 장면 같은 걸 앞부분에 미리 배치했다면 어땠을까 싶군요. 요즘은 노숙이 낫다는 대목이 있긴 한데 이건 충분해 보이지 않는군요. 작가께선 저 ‘나’에 대해 독자들이 대강 알 테니 그런 건 필요없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이야기의 짜임새라는 면을 고려할 땐 넣는 것이 나았을 것 같습니다.
– 물류왕이 되겠다는 숙원을 품은 자유무역당원 레콘이 등장하여 이카르와 불꽃 튀는 대립을 벌이는 대하 경제극을 기대하고 싶어집니다. “받아라, 이것이 나의 물동량이다!” “느껴지는가? 사지를 잠식하는 운임의 공포가?”
– 평이하군요. 좋죠. 프로타고니스트의 말을 빌려보자면, 계속 쓰면 도전은 멈추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평이하다는 건 만만하다는 것은 아닐 겁니다.
– 그리고 지멘은 자라나…… 아아, 눈물이…… 차라리 론솔피였다면. 이것이 작가의 반전인가.
– 제목을 저렇게 정하셨으면, 그리고 클라이막스를 그렇게 할 예정이셨다면 초반에 베미온을 덮는 육형제탑의 그림자 같은 것을 묘사해볼 법도 한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군요. 묘사 좀 집어넣으셔도 괜찮을 겁니다. 아투안의 무덤에 나오는 미궁 같은 것 근사하잖습니까.
– 혹시 타자의 글을 보시던 중 주변으로부터 ‘너 그런 거 보니?’ 라는 시선을 받은 경험을 하신 적이 있다면, 타자가 전부 잘못했습니다.
–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거의 전적으로 데오늬 달비의 캐릭터성 하나뿐인데 그것이 작가의 창의력이 느껴지는 고유 해석이나 재창작이라 보기엔 부족하고, 그렇다고 원전 이해가 심오하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쉬운 점들이 있군요. 사실 캐릭터의 파편 하나만 가져오는 건 팬픽션 창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긴 하죠. 하지만 그 파편은 그 작품 속에 있었기에 번득였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 연상을 안 할 수가 없군요. 답은 42입니다.
– 이 작품도 판단하기 어렵군요. 어쩐지 타자가 공부하는 기분입니다. 보통 작가가 자기 글감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그냥 못 썼다고 보면 되지만 그게 팬픽션이라면? 읽는 사람이 다 아는 거라서 넘어간 것일 수도 있죠. 보통 작가가 자기 글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감 있게 쓴 것을 보면 잘 썼다고 보면 되지만 그게 팬픽션이라면? 자기 글감이 아니라서, 즉 책임질 일이 없어서 생긴 가짜 자신감일지도 모르죠. 이 글이 좀 그렇습니다. 장점도 보이고 단점도 보이는데 그게 작가 고유의 장단점인지 팬픽션이라서 나타나는 장단점인지 타자의 깜냥으론 구분하기 어렵군요. 그러나 글 앞에서 보이는 차분함은 작가 본인의 그것이 확실히 맞는 것 같고, 멋있어 보입니다.
– 클래시컬한 쉬르레알리즘에 대해 짬짜면적 변증법의 적용을 천착하는 유니크한 사례임을 놓고 볼 때 각자 에고-슈퍼에고-이드의 은유로써 기능하는 듯한 세 요리와 요스비 활나가회로 유비되는 외디푸스 컴플렉스 등을 통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키치를 창조하려는 듯한 적층적 전개를 펼친 직후 ‘어찌 됐든 심사위원과의 인맥이 최고’라고 선언함으로써 피카레스크적 카타르시스를 추동하는 플롯과 대호왕의 발언에서 목격되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 대한 콘퓨셔니스틱 아포리즘이 이루는 패러독스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작가의 정체는 헨타이.
– 하라쇼, 따바리쉬.
– 저걸 전부?
– 작가의 대변인 선정이 아쉽습니다. 극연왕 캐릭터의 도입 시도는 좋았다 봅니다만 그렇잖아도 행동도 소통도 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는데 그 관찰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철창의 집중력이 낮군요. 철창의 관심 상당 부분이 티나한에게 가는 바람에 극연왕 캐릭터가 할 수 있는 것이 제약됩니다. 사실 따져보면 아무 것도 안 했죠. 작가 고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극연왕 캐릭터가 이렇게 되는 바람에 결국 이 작품은 원전의 줄거리 요약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독서 기억의 환기라는 면에서는 팬픽션답다 할 수 있겠네요.
– 이 작품은 팬픽션의 쓰는 재미 쪽을 주로 추구한 것 같군요. 그렇다면 이 작품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이 뭔지는 자명해지는군요. 쓰면서 재미있으셨습니까? 그러셨기를 바랍니다.
– 예. 저런 질문을 하는 건 재미있으셨을지 타자가 확신을 못 한다는 거죠. 비슷한 톤과 비슷한 리듬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데 이렇게 쓰는 것이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스스로 지겨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으니 즐거운 작업이셨을 거라 믿겠습니다.
– 요즈음 BTS 여러분이 나팔 바지 입고 MJ 무브를 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네요. 전통을 방해 요소, 파괴 대상으로만 보지는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진보하는 대신 전통만 파괴하면 자동으로 진보된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경도될지도 모르잖습니까? 문화대혁명을 기억하고, 적폐와 전통을 구분합시다.
–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칼을 내밀면 희극이나 부조리극 같은 효과야 날 수 있겠지만 반칙이죠. 보통은 가위나 바위나 보 중 하나를 내밀어야죠. 앞뒤의 게임이 많이 다릅니다. 게임을 통일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 “그러니 접칼이란 말이다. 자루가 바로 칼집이라고! 칼집 필요없어!” “저리 가세요, 아저씨.”
– 커피 없이 홀케이크를 먹는 기분이군요. 다른 감상에서도 했던 말인데, 전력으로 쓰지 말아 보세요. 장면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것 자체는 나쁘다 할 수 없겠지만 각 장면이 따로 놀 위험이 있습니다. 복선이니 반전이니 하는 건 결국 전체 글에서 서로 떨어져 있는 부분들이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이 문장 안에서 쓰인 단어가 이 문장만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장, 아무 상관 없어 보일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문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써보세요. 노파심에서 덧붙이는데 이건 한 문장은 다른 문장, 아무 상관 없어 보일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문장의 단어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 그리고 북부로 가던 그들은 정신 억압을 통해 수많은 개미들을 통제할 수 있어 의남蟻男이라 불리는 나가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D사 여러분? 무슨 볼일이라도?
– 등장 인물이 어딘가로 가야 한다면, 그런 전개를 쓸 생각이라면, 가야 하는 당위성을 만드는 만큼 가지 말아야 할 당위성이나 돌아와야 하는 당위성을 만들어 보세요. 그런 이야기 안 쓰더라도 도움이 될 겁니다. 프로도 배긴스는 (훌륭하게도 주로 샘을 거쳐 묘사되지만) 기필코 운명의 산에 도달하고야 말겠다고 외치는 대신 샤이어로 돌아가겠다고 되뇌이며 운명의 산으로 향합니다. 주목할 만합니다.
이영도 작가님의 코멘트를 토대로 편집부에서 출판 가능 작품을 선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