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소재로 폭발하는 상상력이 가득한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여덟 가지 이야기들! 호러, 추리, 미스터리, 개그, 신체강탈, 로맨스 등 고유의 개성으로 무장한 이야기로 가득한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 출간을 기념해, 8인의 저자와 함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곧 죽어도 등교』 담당 편집자님께서는 작품집 구성 시 ‘나름 단짠단짠의 배치를 노렸다’고 하신 바 있는데요, 저희도 그런 콘셉트를 계승하여(?) 8인 8색 개성 넘치는 작가님들과 나눈 이야기를 한데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왕따, 고백, 괴담, 폭력, 귀신, 어두운 밤 학교에 남은 것들의 정체 등 학교라는 동일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놀라우리만치 다채로운 소재와 설정이 가득해 읽는 재미가 넘쳐나는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의 매력을 더욱 깊이 전해드릴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함께 만나 보세요!
Q. 브릿G에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브릿G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브릿G의 운영 주체인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셜록 홈즈 전집』 시리즈가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셜록 홈즈가 너무 멋있어서 대사를 줄줄 외우고 다녔죠. 지금 생각하면 이불을 뻥뻥 차고 싶은 기억입니다만, 특히 책 안에 시드니 파젯의 삽화를 넣어 주신 게 취향 저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황금가지 출판사를 계속 눈여겨보았죠. 『셜록 홈즈 전집』에 푹 빠졌을 때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이번에 제가 쓴 소설의 주인공도 고등학생이고 약간 탐정 비슷한 역할을 하네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Q.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에 수록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저는 ‘밀당’ 뭐 이런 게 싫습니다. 사랑에 속고 사랑에 애태우는 게 싫어서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 백일지하에 밝혀내는 똑똑한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Q. 「고딩 연애 수사전선」은 주인공이 각종 영화를 접목하여 자신을 영화 속의 캐릭터로 갈아타며 사건 추적을 해 나가는 전개가 흥미로운데, 특별히 이렇게 소설을 영화처럼 설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게다가 소설 후반에는 ‘쿠키’까지 등장하죠. 주인공을 비롯한 캐릭터 설정이 개성적이고 매력적인데, 연작으로 발전시켜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기작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또 이런 유쾌하고 가벼운 미스터리 외에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 보면 캐릭터의 말과 행동이 제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특정하게 전개되는 방향성에 대한 계기 같은 건 특별히 생각이 나질 않네요. 다만 쿠키를 쓴 건 역시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좋잖아요, 마블 영화.
차기작에 대해서는 질문을 받고 나니 뜨금하네요. 쓰면서 은근히 ‘이거 연작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야심도 품어봤었거든요. 일단 욕심은 있지만 계획은 없는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많거든요. 하지만 어떤 장르로 가서 어떤 캐릭터로 어떤 소설을 쓰건 유쾌하고 가벼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불나불 떠들어대는 느낌의 서술이 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Q.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전체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또 그때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쳐 쓰게 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미세먼지 낀 하늘 같았습니다. 여러 모로 우중충했죠. 구체적으로 표현하기엔 말재주가 부족해서, 일단 이미지로 표현해 보자면 그렇습니다. 다방면으로 흐릿해서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는 없지만 아직까지 생각나는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친구 아님!)이 하나 있네요. 전교에서 주먹도 제일 센 녀석이 공부도 전교에서 순위권에 들 정도로 잘했지요. 저 자신이 공부를 잘 하다 보니 주위 친구들 중에서도 공부라면 그 못지않게 잘하는 녀석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지간해선 다 책상에 붙어사는 공부벌레 유형들이었죠. 그 녀석처럼 몸매 좋고 다재다능한데다 자신감 넘치며 카리스마와 최신 유행을 온몸에 휘감고 다니는 동년배는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렘수면 상태에서도 형이 어깨에 탁 손을 짚으며 ‘일어나’라고 나직하게 한마디 하면 벌떡 일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 애를 보면서 세상은 가끔 형편없을 정도로 부조리하고 신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는 걸 처음 느꼈죠. 전교 회장 선거에 출마해서 부정 선거를 저지르는 등 제게 여러모로 세상을 보여준 아이였는데,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유학 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말하니 뭔가 ‘대마왕’이나 ‘최종보스’로 가공하기에 딱 좋은 인물 같습니다만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나 이야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주변이나 제 곁에 있던, 인상 흐릿했던 다른 녀석들하고 비슷하네요.
Q. 작가로서 나를 자각하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나요?
무엇보다 수상 후 상금이 입금되었을 때죠. 당신이 쓴 작품은 이만큼의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인정받은 거니까요. 다음으로는 글을 쓰다가 캐릭터가 통통 튀며 움직이는 걸 느낄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럴 때는 5장이고 10장이고 쓸 수 있어요.
Q.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집으로 한데 묶여 단편이 출간되는 경험도 하셨는데요,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직 장편을 쓸 재주가 안 되니까요. 수양이 부족합니다.
Q. 예전에 한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최근에 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있거나 좋아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글을 꼽아 본다면요? 또는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넘치는군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입니까? 그런 태도는 개인적으로 딱 제 취향입니다. 좋아해요. 하지만 역시 사람은 자기한테 부족한 걸 좋아하는 걸까요. 전 제 글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글은 주로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들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글은 역시 추천이나 조회수가 높은 글이지요.
최근에 쓴 이야기라면 공모전에 투고한 시간 여행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괴수 이야기도 쓰고 있습니다만 이건 소재가 그래서 그런지 뭔가 합성수 키메라 비슷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군요.
Q.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인의 평가가 있나요?
타인이 내리는 평가는 항상 무섭습니다. 물론 저도 발견 못한 장점을 칭찬 당하면 정말 춤추고 싶을 정도로 기쁘죠. 하지만 새가슴이라 단행본이 나오고 출판사에서 리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발 그러지 마!’라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 글을 읽어 주시고 ‘읽고 나니 이러저러했어’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께 친애에서 우러나온 감사를 바칩니다.
말이 길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평가가 있다면 역시 황금가지 어반판타지 공모전 때 이영도 선생님이 내려 주신 평가일까요. 결과적으로 낙선했고 좋은 평가인지 아닌지 조금 미묘했습니다만, 평가 자체는 상관없었고 학생 시절 전설과도 같았던 분이 내 글을 읽고 한마디 해주셨다는 게 너무 기뻤습니다. 가혹한 평을 당했어도 ‘우와, 이영도 선생님이 내 소설을 매도해 주셨어!!’ 하고 즐거워했을 것 같네요……. 음, 아무래도 너무 나간 것 같군요.
Q. 여러 가지 수단 중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한마디 전해 주신다면요.
소설가 김탁환 선생님이 사인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작품 쓰기 전 공상하는 순간이 소설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요. 확실히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이런저런 걸 써야지,라고 결심하는 순간까지가 제일 즐겁습니다. 밥 안 먹어도 평생 이러고만 살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요. 하지만 그걸 글로 옮기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부터 괴로움이 시작되지요. 스티븐 킹의 『미저리』는 작가를 감금시켜 놓고 글을 쓰게 만드는 내용이지요.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쓰셨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킹은 ‘이러지 않으면 작가들은 한 자도 안 쓴다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 한마디로 전하라고 했던가요. ‘상상하는 건 천국이지만 쓰는 건 지옥이다’.
Q. 작가, 독자, 생활인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웹툰, 소설, 영화 등 뭐든 상관없으니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많이 나오길. 지갑은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캐릭터가 크게 히트를 쳐서 그걸 가지고 공식적인 2차 창작이 많이 나오는 그런 구조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마블의 ‘스파이더맨’을 여러 작가가 각자 자기 방식대로 그려내는 것처럼요.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앞으로도 계속, 무엇보다 ‘재미있는’ 글로 독자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손장훈
서울 출생, B형에 양자리. 드라마, 소설, 영화, 예능, 웹툰을 너무 좋아하다가 창작까지 손을 뻗쳤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쓴 것보다 남이 써 준 게 더 재밌다. 그래서 가장 기쁠 때는 재미있는 창작물을 발견했을 때이며 개봉일/출간일 발표 후 기다려야만 할 때 가장 우울하다. 좋아하는 장르는 액션·로맨스·호러·SF·추리·판타지이고 다큐멘터리 류가 조금 힘들다. 제2회 테이스티 문학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탄 「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을 『7맛7작』에 수록했으며,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제5회 ZA 문학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Q. 브릿G에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브릿G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브릿G가 막 열릴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제나 황금가지의 족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브릿G에 오게 된 것에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한 쪽이라면 황금가지 출판사에 대한 애정이네요.
Q.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에 수록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이 글은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까지 내려가니까 10년은 더 되었네요. 해당 소설의 초반 부분, 그러니까 첫 번째 마침종이 치기까지는 경험담에 가깝습니다. 어수선한 반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하나둘 교실을 빠져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죠. 기묘한 기분이었고 언젠가 이것을 소설로 쓰고 말리라 다짐했습니다.
소설의 후반부까지는 어느 시점에서 아이디어가 완성되어 있었지만 마지막이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글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정도고, 완성까지는 1년 남짓은 걸렸습니다. 고민의 대부분은 소설을 어떻게 끝내느냐에 달려 있었고 몇 가지 다른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그저 최선이길 바라며 하나의 결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우리」는 밀폐된 상황에서의 고립감과 서스펜스가 극대화되는 이야기입니다. 언뜻 우메즈 카즈오의 『표류교실』도 연상이 되고요. 명확한 재난의 원인이나 결과를 밝히기보다는 과정상의 분위기 묘사가 매력적인데, 인과관계보다 설정 하나를 파고드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또 작중 학생들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오직 학급번호로만 대체되는데, 이러한 본 작품의 내용을 모티브로 표현된 숫자들이 표지 이미지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을 번호로만 호명한 이유가 있는지, 또 특정 인물들의 행동에서 다소 과도하거나 극단적인 면모가 엿보이는데 의도한 부분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소설쓰기 모드’가 여러 개가 있다고 생각하고 글을 쓸 때 그중 하나의 모드를 선택합니다. 이름 붙인 적은 없지만 「우리」는 제 다른 소설 「쿠소게 마니아」, 「아래에서」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로 겪은 상황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한 발짝을 더 나아가며 개연적인 전개를 제시해 보는 겁니다. ‘만약에……’ 같은 판타지가 첨가되기 쉽죠. 이런 종류의 글쓰기 모드의 장점은 쓰기 편한데다 읽히기도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그리 좋은 글쓰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쓰기의 단점은 마무리 짓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 소설의 끝을 모르니까요.
‘학급번호’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실 저는 그 부분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기능적인 이유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능이 필요한 이유는, 제 소설의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기 때문입니다. 주요 인물을 추려도 단편소설에서는 너무 과한 인물 숫자였기 때문에 제가 도전적이라고 생각한 부분은 이름을 학급번호로 쓴 것보다 이 많은 캐릭터들을 모두 호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참하게 실패한 것 같지는 않아 다행입니다. 관련해서는 나름의 수수께끼도 숨겨 두었는데 아직까지 봐 온 감상에선 특별히 이야기가 없어서 조금 민망하네요. 아무튼 누군가 발견하신다면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캐릭터들이 과도하거나 극단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제가 그냥 소설을 못 써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제가 개연성에 대해 좀 더 특별히 관대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개연성이 사실세계를 투영하는 거울이라 독자를 붙들어 둘 수는 있겠지만 이야기에는 가끔 자극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자를 떠밀어내는 거죠. ‘이건 이야기에 불과해.’ 그러다 다시 끌어당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만약에 말이지……’ 제가 이 밀당놀이에 노련하지 못한 것은 인정해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별건 아니지만 제 소설의 마지막 고민은 대화에 따옴표를 쓰느냐 마느냐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쓰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는데, 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고민한 이유는 동료 작가가 ‘글이 복잡하고 어려운데 이런 생경한 방법까지 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옴표가 있는 소설이 그렇지 않은 소설보다야 많죠. 하지만 저는 그냥 잘 읽을 수 있게 썼다고 믿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뺐습니다. 사실 마지막까지 고민한 이유는 대화문마다 따옴표를 추가했을 때의 노고가 생각나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Q.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전체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또 그때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쳐 쓰게 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교실에선 은근히 따돌려지는데다 성적도 형편없었고 수업 내내 졸다가 집으로 오는 사람이라 특별히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쓰레기 매립지에서도 어떻게든 쓸만한 무언가를 캐내야하는 소설가의 직업적 임무가 저를 과거로 돌아보게끔 만듭니다. 브릿G에 올라온 제 다른 단편들 「쿠소게 마니아」, 「거인」 같은 작품들이 그 결과물들입니다. 그리고 아직 쓰지 않거나 쓰는 도중인 글들이 더 많은데, 언젠가는 완성이 되어 브릿G에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Q. 작가로서 나를 자각하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나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직도 제가 작가인지 의심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답변은 별로 재미가 없겠죠. 의심과 별개로 저는 적당한 기회가 있다면 소설을 쓴다고 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저는 소설가/작가라는 것이 구태여 갖추어야할 자격일랑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신념의 실천으로써 ‘나는 최저의 작가선을 지키고 있다’, ‘나 같은 것도 작가이다’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작가로 정체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 되지는 않네요. 의심스럽습니다.
Q.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집으로 한데 묶여 단편이 출간되는 경험도 하셨는데요,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단편소설 쓰기로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딱히 이유를 찾지 않고 단편을 쓰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장편소설을 쓰는 것에 이유가 있냐하면 장편소설 읽기로 글 읽기를 시작했으니 그것도 마땅한 이유가 없는 편이고. 만약 내일 단편을 써야한다면 단편을 투고 받는 시의적절한 공모전이 있고, 제가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그 공모전에 들어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Q. 예전에 한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최근에 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있거나 좋아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글을 꼽아 본다면요? 또는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 글은 ‘아직 쓰지 않은 글’인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시도도 하지 않은 아이디어는 정말 반짝이고 예쁜 것 같은데 제 손을 타기 시작하면 어두워지더니 완성하고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가장 최근에 쓴 글은 아무래도 공개하지 않은 단편인 것 같은데 초고가 막 완성된 순간부터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질문으로부터 거듭해 고민하니 영원히 공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합니다.
Q.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인의 평가가 있나요?
가장 많이 들은 평가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겠죠. ‘재미없다’입니다.
Q. 여러 가지 수단 중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한마디 전해 주신다면요.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Q. 작가, 독자, 생활인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가끔은 소망을 하는 것도 사치스럽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해도 될까? 누군가 괜찮다고 해준다면, 돈을 많이 벌어서 지금보다 더 느긋하게 소설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게임을 하고 책을 볼 시간도 많이 내고요. 겸사겸사 좋은 사람도 만나면 좋겠죠. 저는 소설에 대해 알은체 하며 떠드는 시간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래 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군요. 반듯한 서재도 있으면 좋겠고. ……이쯤 할까요?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질문에 모두 답하다 보니 뭔가 단편 하나에 걸맞지 않는 장문의 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겨우 단편 하나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분들이 감상을 들려주었습니다. 모두 덕분입니다. 특히나 본 소설의 제목인 ‘우리’는 늘 제 소설을 재미없어 하시던 분이 추천했던 제목이었는데, 그 추천을 보자마자 이 소설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고 여겼습니다(보시다시피, 동음이의어지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있는데 그 계기를 마련해준 분에게도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읽어 주신 독자 분들, 그리고 앞으로 읽게 되실 독자 분들 모두에게도 감사합니다.
위래
단편소설 「미궁에는 괴물이」가 네이버 ‘오늘의 문학’란에 2010년 10월 게재되었으며, 2014년 3월 단편소설 「동전 마법」이 큐빅노트 공모전에 당선되어 온우주 소식지에 게재되었다. 2015년 7월 단편소설 「성간 행성」을 크로스로드 SCI-FI란에 게재하였고, 2017년 4월 단편소설 「쿠소게 마니아」가 브릿G 출판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2018년 1월에 장편 연재소설 『마왕이 너무 많다』를 문피아에 완결했다.
Q. 브릿G에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브릿G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공모전을 찾다가 ‘YAH! 문학 공모전’으로 브릿G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 여기 익숙한 작가님들이 연재를 하고 있네’ 하고 각인이 되었죠. 당선이 된 것도 처음이라 여전히 신기합니다.
Q.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에 수록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단순한 사람이라 계기도 간단합니다. 작년 여름 유독 더웠던 밤이었습니다.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자는데, 문득 새벽 감성이 일었는지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도 다른 소리가 났지만요. 여하간 머리맡이 서늘한 공포가 에어컨 때문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에어컨을 시작으로 다음 소재와 엮었습니다.
Q. 아무도 없는 학교에 혼자 남은 상황을 가정한 각종 괴담과 미스터리가 난무하지만, 「연기」에서 택한 소재와 설정이 무척 이색적입니다. 흩어져 있던 여러 가지 연결고리가 한데 모여 결말로 치닫는 과정이 흥미로운데, 학교에서 중점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들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에 대한 결의마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이처럼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새삼 제목이 새롭게 다가오는데, 뭔가를 흉내 내고 연기하는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또, 설정의 배경이나 사건의 뒷이야기가 있다면 독자들에게 넌지시 말해 준다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배경은 모두 제 학창시절에서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사립여고를 다녔고, 아주 자유로운 방종의 분위기였거든요. 그때 있었던 일들이 무난하진 않았구나, 깨닫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겪었던 일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은 소름 돋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바리맨’처럼요. 나도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넘기지만 곱씹어 보면 그런 것들의 정체는 불쾌함입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싶었어요. 지금의 모른다 하고는 다른 의미겠죠. 이름을 붙일 수 없어서 그냥 공포로 넘겼을 뿐. 「연기」도 그런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동음이의어를 좋아하는 제 취향이 반영되었습니다. 태연하게 사람인 척 연기하는 것. 뻔히 아는 결과를 연기해 버리는 것. 입장은 달라도 모두 정체를 똑똑히 알고 있죠. 쓰면서 좀 더 함의를 담아볼까 하다가, 깜냥에 넘쳐 포기했습니다. 나름대로 노골적인 장치라고 생각했지만요. 결국 흔적만 남았네요.
Q.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전체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또 그때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쳐 쓰게 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참 열심히 놀았다 싶습니다. 책과 게임에 지배당하는 수준이었죠. 낯을 가리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아리도 많이 했네요.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을 꼽으려니 너무 많아서, 야자 시간 중간에 친구들과 옥상에서 운동 삼아 놀던 걸 고르겠습니다. 그야말로 달밤에 체조였는데, 새벽 등산객처럼 모여 옹기종기 떠들던 더운 공기가 좋았어요. 아마 「연기」가 이 시절을 가장 많이, 정확히 반영한 이야기가 될 겁니다.
Q. 작가로서 나를 자각하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나요?
글을 쓰면 작가라고들 하지만 인세를 받고 나서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이야기에 집착하는 면은 있었지만 정말로? 싶었거든요. 지금도 작가라고 하기엔 욕심이 많아요. 기다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끝낸 뒤에야 그래, 나 작가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Q.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집으로 한데 묶여 단편이 출간되는 경험도 하셨는데요,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원래 단편은 의식의 흐름을 짧게 끊어둔 것뿐이었습니다. 주제를 정하고 쓴 건 공모전이 처음이네요. 막상 해보니 재미가 붙어서 계속 해보고 싶습니다. 여러 방식을 시험 중이에요. 다만 소재가 등장하니 쓰면서도 이렇게 저렇게 엮어서 장편으로 해보자! 심지어 삼부작! 이라고 외치는 제가 있네요.
Q. 예전에 한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최근에 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있거나 좋아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글을 꼽아 본다면요? 또는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글은 끝난 글입니다. 완결은 아우성치는 싸움꾼을 링 밖으로 끌어낸 것에 불과한 느낌입니다. 우열을 가리기엔 이른 시점 같죠. 그래도 처음으로 장편 완결 도장을 찍은 『가시관과 환상향』은 뿌듯하게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성장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좋으니까요.
Q.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인의 평가가 있나요?
섹시함이 부족해! 지나치게 강렬한 나머지 곱씹는 친구의 평가입니다. 평가를 몇 번 받아봤지만 이것만큼 제대로 표현한 문장이 없네요.
Q. 여러 가지 수단 중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한마디 전해 주신다면요.
쓰기 직전과 잘 써질 때는 항상 즐겁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니까요. 동시에 지나치게 자의식을 집어넣을까봐 항상 경계중입니다. 글은 수단이지만 변명으로 삼고 싶지 않아요. 모순적이지만, 글에서 제 목소리가 들리면 괴롭습니다. 어차피 배어날 건 알지만 좀 깎아내면 안 되겠니? 싶죠. 지금은 인터뷰니까 예외로 둡니다.
Q. 작가, 독자, 생활인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불안감의 해소입니다. 정확히는 의심을요. 어느 정체성이든 의심하는 제가 있습니다. 그걸 해소할 성과를 얻으면 좋겠네요.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인터뷰를 해볼 줄은 몰랐습니다.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자리를 마련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것마저도 재밌게 읽으시란 뻔뻔한 소망도 같이 드리겠습니다.
아소
다독 다작의 꿈에 시달리는 사람. 2018년 10월 장편 로맨스 판타지 『가시관과 환상향』을 출간 완결했다.
Q. 브릿G에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브릿G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인터페이스 완성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방문했습니다. 오픈한지 반 년 정도 되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Q.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에 수록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계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부분적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몇 개 있습니다. 소도시 시장에서 마주친 다른 피부색의 모자들, 늦가을 때 바스러지는 낙엽들.
Q. 「11월의 마지막 경기」에는 인생의 어느 한때를 지배했던 강렬한 기억에 대한 어두운 감정이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복수를 위해 모두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감정은 죄책감 때문이겠지만, 복수를 행한 뒤에도 이 감정이 깨끗하게 소멸되지는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복수라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이 행위 자체가 특정한 민간신앙을 통해 일련의 의식과도 같이 진행이 됩니다. 민간신앙과 호러를 아주 기민하게 결합한 것이 새로웠는데, 실제로 참고한 내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있다면, 어떻게 접하게 되어 작품 속에 녹여 내게 되었는지요?
그 아이들은 죄책감도 느꼈겠지만, 쾌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복수는 우연이라는 세계 원리에 자기 파괴/파멸이라는 인공적인 인과율을 애써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알든 모르든 달려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캄보디아 여행 중에 휴게소 역할을 하는 가게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사는 여자 아이 하나가 플라스틱 끈과 굵은 실을 엮어 만든 반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조악했지만, 그때 어떤 물건이 실재한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습니다. 아싼과 요안은 그 후에 동남아 민담을 읽다가 알게 된 것입니다. 글 자체는 출장 중에 지방의 모텔에서 썼던 기억이 납니다. 늦은 밤이었고 비가 왔었습니다.
Q.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전체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또 그때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쳐 쓰게 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꽤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Q. 작가로서 나를 자각하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나요?
아직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Q.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집으로 한데 묶여 단편이 출간되는 경험도 하셨는데요,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이해한 범위에서 말씀드리면, 저의 경우는 단편을 썼을 때, 몇 개의 이미지에 살을 붙이면 플롯이 명확해졌습니다. 그때 플롯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 내러티브가 만들어집니다. 그걸 며칠에 걸쳐 다듬으면 단편이 되었습니다. 장편의 경우는 이 과정의 폭과 깊이가 복잡해지거나, 혹은 플롯들이 다층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장르소설의 경우 전작의 경우를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저의 경우는 게을러서겠지만, 그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분위기와 제주 43사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결합한 장편 개요를 몇 장 쓴 적이 있는데, 잘 되지는 않네요.
Q. 예전에 한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최근에 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있거나 좋아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글을 꼽아 본다면요? 또는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작가로서 쓴 글은 두 개 밖에 없기 때문에 범위를 넓혀야겠습니다. 리뷰어로서 1999년에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읽고 나름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붙인 한글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고(「광기의 산맥」) 글의 내용을 그대로 책날개에 사용해서 출판된 적이 있었습니다. 출처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불쾌했지만, 나름 괜찮았으니 그렇게 사용했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때 전후로 다른 러브크래프트 한국어 번역본도 출간되고, ‘gaya’ 같은 분이 언급도 해 주셔서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브릿G에 올라 있는 또 하나의 중편이 「포식자들」입니다. 예전의 ZA공모전에서 본선까지 올라간 글을, 앞에서 언급한 장편 개요의 테스트 버전삼아 외전 개념으로 완전히 고쳐 쓴 글입니다. 생각했던 장편 버전의 분위기와는 일부러 완전히 반대로 써 본 글인데, 지금 보니 눈에 밟히는 부분이 꽤 있네요.
Q.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인의 평가가 있나요?
주신 질문에 대답할 정도로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습니다.
Q. 여러 가지 수단 중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한마디 전해 주신다면요.
두 번째 질문과 연관되는 것 같은데, 나를 표현하는 괴로움은 아직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다 쓰고 난 후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는 즐거움은 몇 번 있었습니다.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의 경우에는 나를 통해 글이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Q. 작가, 독자, 생활인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책값이 아깝다고 독자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출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이문
기억을 저장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한다. 가스통 바슐라르와 할란 엘리슨을 좋아한다.
Q. 브릿G에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브릿G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작년 4월 말경이네요. 『오버 더 초이스』 광고로 사이트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문득 여기다가 글을 한 번 올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입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닉네임은 뭘 할지 고민하다가 마침 침대 맡에 커피를 사온 게 있어서 그걸 거꾸로 뒤집어 ‘피커’라고 지었습니다. 네, TMI입니다.
Q.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에 수록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그날따라 잠이 안 왔습니다. 소설이나 구상하자 싶어서 새벽까지 침대에 누워서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이리저리 생각을 했었네요. 당장이라도 키보드를 두들기고 싶은데 일단 아침까지 참자라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작품 내적인 동기로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글의 장르나 트릭 같은 요소들도 중요하지만 밀실 연애편지 사건을 적을 때 가장 첫 번째로 생각한 조건은 그것이었습니다.
Q. 기술적인 부분이지만 「밀실 연애편재 사건」에서는 내용의 핵심이 되는 게 트릭 장치인데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던 교실 사물함에 연애편지를 넣는다는 밀실 트릭은 어떻게 고안하게 된 건가요? 고전 추리소설, 만화에 대한 낭만도 엿보이는데 오마주하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변주해 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질러 놓고 봤습니다. ‘연애편지를 받는다.’라는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그냥 교실이 아닌 밀실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트릭의 성립에 대한 건 그 후에야 구상을 했습니다. 만약 트릭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면 장르나 전개, 분위기 같은 게 꽤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봄이가 좀 더 마음고생을 했을 시나리오도 머릿속에 있기는 했습니다. 다행히도 트릭을 구상해 내고, 서술트릭까지 넣어서 이중으로 구성을 하면 더 괜찮지 않을까 했어요. 뭐랄까. ‘짜잔! 이것도 있었어요!’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소설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추리소설은, 어쩌다 보니 브릿G에 등록한 작품들에 추리나 스릴러 요소가 많이 들어갔는데 사실 추리 스릴러 장르에 딱히 조예가 없습니다……. 아주 유명한 작품들이나 제가 좋아하는 몇 명의 작가 외에는 접해본 게 많지 않아요. 만화나 서브컬처에서 봐 온 오래된 친구 관계를 알콩달콩한 연인 사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확실히 했습니다. 특정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제가 지금껏 접해온 작품들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Q.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전체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또 그때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쳐 쓰게 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이나 만화책 읽고, 노래 부르던 기억이 거의 대부분인 것 같아요. 고3 때는 그래도 야자도 하면서 공부를 좀 열심히 했습니다. 교탁 탁구도 생각나네요. 교탁 중앙에 칠판지우개로 네트를 만들고 삼선 슬리퍼를 탁구채로 쓰는 식인데 저희 고등학교에서 유행했거든요. 이 반 저 반 다니면서 원정 경기도 벌이고, 야자 때는 자습실에 있다가 쉬는 시간 종치면 쌩하고 반으로 달려가서 탁구 치다가 다시 돌아가고, 야자 끝나고 친구랑 남아서 치다가 가기도 하고요. 이건 자랑입니다만 제가 전교 최강자였습니다. 후후.
글에 대한 영향이라면, 쓰고 있던 미스터리 스릴러 시리즈에 많이 나와요. 앞서 언급한 탁구 같은 단편적인 묘사들도 있고, 주인공 둘의 설정이나 이런저런 대화, 묘사를 할 때 제 경험에서 나온 글쓰기를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여주인공의 성적이 한 등수 밀리는 장면이 있는데 저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굉장히 동요했던 기억이 있어요. 우정을 명분으로 한 악의에 관한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이것도 제 경험을 바탕으로 썼고요. 지금 생각하면 뭐 이런 게 있나 하고 상대 안 하면 그만인데 그때는 나름대로 고민도 되고 그랬었죠.
아, 「밀실 연애편지 사건」 같은 에피소드는 없었습니다. 이건 순수 창작물이에요. 연애편지라니, 제 학창시절은 발신번호 1004로 바꿔서 메시지를 보내는 시대였습니다. ‘4444’ 같은 걸 보내기도 하고요. 뜻을 검색해 보실 분이 혹여 계시다면 손발을 곧바로 펼 수 있게 옆에 다리미를 준비해 두시길 권합니다.
Q. 작가로서 나를 자각하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나요?
글쎄요. 저 자신을 작가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처음 이야기를 쓴 기억은 여덟 살 때예요. 뒷부분이 공백인 짧은 동화를 완성시키는 활동이었는데 제 딴에는 나름대로 반전 요소도 넣은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 즐거웠던 마음도 생생하고요. 하지만 글 하나를 오롯이 다 쓰는 경험은 다시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미필적 고의」라는 글인데 ‘아, 내가 소설을 끝까지 쓰다니…….’ 라면서 스스로도 얼떨떨하고 또 많이 기뻤습니다.
Q.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집으로 한데 묶여 단편이 출간되는 경험도 하셨는데요,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구상한 전체상, 이야기나 캐릭터를 남김없이 쏟아내려고 하는 과정과 그렇게 해서 완성된 글을 보는 게 좋습니다. 단.편.조.아.
Q. 예전에 한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최근에 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있거나 좋아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글을 꼽아 본다면요? 또는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미필적 고의」를 가장 좋아합니다. 처음 완성한 글이고 제 취향의 글이에요. 단편에서 확장해 시리즈로 진행 중이었는데, 한 마디로 소개를 드리자면 친구 없는 여학생과 친구하기 싫은 남학생 둘이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노닥거리다가 겪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요즘 쓰고 있는 장편을 일정 분량 이상 적게 되면 가장 좋아하는 글이 바뀔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가장 최근에 완성한 건 「간극」이라는 글이에요. 일본인과 한국인인 두 주인공이 국제연애 시도하다 실패한다는 줄거리인데, 이걸 쓸 당시에 외국인이 습득하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거든요. 문화에 대한 이해나 상호교류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을 때 다른 장애물도 충분히 있을 수 있고요. 이래저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제 생각을 많이 담아내서 어설프지만서도 애착이 가는 글입니다. 마음만 가지고 모든 걸 극복할 수는 없다,랄까요.
그러고 보니 대체 마지막에 편지는 왜 찢은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냥 제 성격이 반영된 거라서 그렇습니다. 『무진기행』 베낀 거 아니냐는 반응도 봤는데 기억도 안 났던 걸 제가 어떻게…….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에 대해 흔적을 남겨놓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렇게 마무리를 지은 건데, 그러고 보니 이거까지 다 쓰면 글을 소개하는 의미가 없는 건가요. 크흠. 아무튼 그렇습니다.
Q.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인의 평가가 있나요?
브릿G에서 후원을 해 주시면서 메시지를 남겨주신 분이 계신데, ‘이걸 읽고 돈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씀해주신 게 정말 과분하면서도 기뻤습니다.
Q. 여러 가지 수단 중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한마디 전해 주신다면요.
단어와 문장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표현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적어내는 텍스트가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완성되는 과정이요. 괴로움도 마찬가지겠네요. 글로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마냥 쉽게는 느껴지지 않아서요. 심리적인 게 아니라도 일단 글을 쓸 때 힘이 굉장히 많이 들고요……. 두뇌가 일을 한다는 느낌이 본격적으로 듭니다.
Q. 작가, 독자, 생활인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이루고 싶은 소망은 글을 열심히 적어서 많은 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루기 힘든 소망은 제가 쓴 글을, 아직 읽지 않은 상태에서 순수하게 독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거예요. 이거 정말 궁금하네요.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이 질의답변에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서면 인터뷰라는 게 상당히 힘든 것이었군요.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신 브릿G 편집부에도 정말 감사를 드려요. 마지막으로 저도 책이 집에 와서 읽어봤는데 『곧 죽어도 등교』에 재밌는 글이 많습니다. 마지막 지면을 빌어 홍보를……!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송헌
아직 20대.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Q. 브릿G에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브릿G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몇 년 전에 알고 지내던 선배가 브릿G 공모전에서 단편 작품으로 당선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간간히 들렀습니다.
Q.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에 수록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수록작은 형식도 내용도 저에게는 나름대로 실험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소설에서 웃음이 주가 될 수 있을까? 개그 소설이라는 장르가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썼습니다.
Q. 「신나는 나라 이야기」는 단편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새로운 구성 덕분에 배가되는 작품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긴 분량이 아닌데도 짧은 호흡으로 챕터를 나누고, 소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정체불명의 존재인 ‘나’는 언젠가 나의 존재를 기억하게 될지, 의도하신 결말이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원래는 일반적인 형식으로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개그가 중요 요소가 되다보니 필력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때 떠오른 것이 4컷 개그 만화였고, 소설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도입해본 방식입니다.
‘나’는 애초에 온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설정입니다. 신의 실수로 인해 ‘우울함’이라는 감정에 영혼이 들어갔다는 설정이죠.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 영혼이 온전한 존재가 되어 세상에 태어나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태초의 기억을 자연스레 잃어버리듯, ‘나’ 또한 자신의 체험들을 자연스럽게 잊게 될 것 같네요.
Q.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전체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또 그때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쳐 쓰게 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학창시절에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괴롭힘을 당했다거나 친구가 없거나 했던 건 아니었는데, 크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의 나는 마음의 병을 달고 살았구나 깨닫게 됐어요. ‘학교’라는 공간은 저에게 늘 싫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느낌들이 ‘나라’의 우울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했을 것 같네요.
Q. 작가로서 나를 자각하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나요?
뼈를 치는 질문이네요. 제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 있다면 그건 분명 글쓰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 것이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아직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이 오지 않은 것은 제 노력 부족인 것 같네요……. 그런 순간이 올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Q.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집으로 한데 묶여 단편이 출간되는 경험도 하셨는데요,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짧은 소설을 좋아합니다. 길면 지치잖아요. 짧으면 완성도를 높이기도 쉽죠. 미드는 정말 재밌지만, 대부분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해서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죠. 단편은 그렇지 않아서 좋습니다.
Q. 예전에 한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최근에 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있거나 좋아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글을 꼽아 본다면요? 또는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는 내일의 제 글이 맘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는 이야기를 구상만 하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인의 평가가 있나요?
너는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잘 될 거야라는 말을 중학교 때 친구가 해줬습니다.
Q. 여러 가지 수단 중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한마디 전해 주신다면요.
글은 고치면 좋아진다고 하죠……. 고치는 것에 매몰되어서 제 글을 놓아주지 못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제 글을 읽어주고 재밌어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죠.
Q. 작가, 독자, 생활인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웹소설이 무럭무럭 성장해서 지금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독자와 만납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쩌리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겉멋이 들어 소설을 즐겨 보는 척했다. 그러다가 진심으로 소설이 좋아져서 고생 중. 웃기면서도 세상에 잔소리 하나 던질 수 있는 소설을 쓰려고 한다.
Q. 브릿G에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브릿G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아무데도 올리지 않은 판타지 단편이랑 라이트노벨 단편이 있었어요. 그냥 넣어두긴 아까워서 어디 올릴 데 없을까 하고 둘러보다가 오게 되었습니다. 브릿G 오픈베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무렵일 거예요.
Q.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에 수록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브릿G에서 개최한 모 공모전(작가프로젝트는 아니에요)에 응모하고 싶은데, 공모 마감을 사흘 앞두고도 아무런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괴로워하다가 브릿G 자유게시판의 OldNick님 게시글에 이런 댓글을 달았죠.
[오늘 저녁부터는 YAH를 쓰기 시작해야 할 텐데… 그런 걱정 하고 있습니다. 근데 머리가 굳어서 아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요!! 아, 굳은 머리 옆에 엄청 똑똑한 머리가 새로 자라나는 이야기…는 재미없겠네요ㅠㅜ 올드닉 님, 호러 아이디어 좀 주세요]
의미 없이 단 댓글이었어요. 머리가 굳어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으니, 이야기가 잘 떠오를만한 신선한 머리가 하나 더 생겼으면 좋겠다는 농담이었죠. 댓글 달고 저녁산책을 나갔는데, 방금 단 댓글 속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가지를 뻗었습니다.(하지만 사흘 만에 쓴 초고는 여러 가지 모자란 부분이 많아 공모에는 낙방.)
Q. 「신의 사탕」은 같은 몸과 정신을 공유하지만 완전히 상반된 처지에 놓인 인물들을 그려내는 발상과 표현 방식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감정은 외형이 없는데,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신체강탈의 소재로 표현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또 작중 배경이 한국의 시골로 묘사되는 반면 봉봉, 프랑, 케이 등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대개 이국적이지요. 한국적이지 않은 것들의 조합이 분명한 한국적인 양상을 만들어 내는데, 이처럼 배경과 인물 설정에 부조화를 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키우던 고양이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입원을 시켰어요. 며칠 후에 고양이를 데리러 동물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 다른 고양이를 주는 거예요. “맡기신 고양이는 머리도 나쁘고 몸 여기저기도 안 좋고 성격도 괴팍했죠? 자요, 선물이에요. 이 멀쩡한 고양이를 데려가세요.” “우리 하양이(고양이 이름)는 어디 있나요!?” “이 애가 오늘부터 새로운 하양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의사선생님이 웃었다……면 공포일 것 같아요. 아니, 고양이가 아니라 자기 아이를 병원에 맡겼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역시 공포네요. 왜 공포일까요. 새로 받은 하양이는 원래 내 하양이보다 더 건강하고 똑똑해졌을 텐데요. 더 귀여워졌을지도 모르구요.
‘신체강탈’은 결국 ‘이름강탈’과 똑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등감 없는 사람 없고 누구나 더 나은 자신을 바라지만, 그건 ‘자신’이라는 연속성을 유지한 상태에서의 발전을 바라는 거죠? 이기적이지 않나요? 진정한 발전이라면 그 연속성을 끊어내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최선일 텐데요. ‘뒤통수에서 새로운 얼굴이 나타난다’라는 소재로 작품을 쓰기로 결정하자 자연스럽게 ‘왜 뒤통수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지?’라는 물음이 이어졌어요. ‘원래의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겠지.’ ‘얼굴이 새로 나타나면 자아까지 새로워지는 거야?’ ‘뭐야, 그럼 어디까지 자기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지?’ 그런 자문자답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태어난 이야기입니다.
봉봉, 프랑, 케이 등 캐릭터 이름이 이국적인 건, 딱히 한국적 이름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물론 한국적인 이름은 중요하죠. 신학기를 맞아 학교에 갔는데, 어느 모로 보나 한국인인 옆자리 아이가 자기를 제임스라거나 모모코라고 소개한다면 큰 위화감을 느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너무 현실 밀착형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봉봉은 프랑스어로 ‘사탕’이란 의미고, 프랑은 역시 프랑켄슈타인(또는 프랑켄 프랑)이에요. 케이는 기억하기 쉽고 받침 없고, 약간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이름으로 골랐어요. ‘예지’라는 한국 이름도 나오는데, 이 아이의 이름이 중요해요. 국적불명 이름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무게 추 역할을 하는 이름입니다. 이 국적불명 이름 가득한 이야기가 한국적으로 여겨졌다면, 그건 한국이라는 사회가 구성원의 열등감을 부채질하고 끊임없이 궁지에 모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이 이야기는 결국 그런 이야기니까요.
Q.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전체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또 그때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쳐 쓰게 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은, 시험을 보면 자신이 작성한 시험답안지를 앞자리로 넘겼습니다. 선생님이 답을 불러주면 앞자리 아이가 제 답안지를 채점하는 방식이었거든요.(저는 제 뒷좌석 아이의 답안지를 채점했고요.) 근데 제 앞자리 아이가, 제 답안지에 제가 쓴 원래의 답안을 지우개로 몰래 지우고 틀린 답안을 체크하고 나서, 그 문제에 X를 긋는 행동을 몇 번이나 하는 거예요. 저는 담임에게 그 아이의 그런 행동을 말씀드렸습니다. 결과는 제가 그 아이를 모함한 것처럼 되어, 오히려 제가 혼이 나 버렸네요.(담임은 그 답안지들을 직접 확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하굣길에 문방구에서 예전부터 사고 싶던 장난감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방에서 그 장난감 가지고 놀면서 혼자 울었어요. 그 일은 그렇게 끝났지만, 그 다음시험부터 우리 반에서는 채점을 더 이상 앞사람이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Q. 작가로서 나를 자각하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나요?
학교 다닐 때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모르고 친구 집에 굴러다니는 겉껍질 없는 그 책을 무심코 손에 들었는데 첫 페이지부터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그 책을 읽은 후로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작가로서의 나를 자각하지는 못했습니다. 내가 독자로서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을, 제 글을 읽는 누군가가 느껴줄 만한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비로소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Q.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집으로 한데 묶여 단편이 출간되는 경험도 하셨는데요,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은 장편을 쓰고 싶은데, 쓰는 장편마다 족족 중도포기를 해버렸거든요. 완성까지 살아남은 것이 단편들 밖에 없습니다.(단편은 단편만의 매력이 있어서 좋아합니다. 소설책을 구입할 때도 단편집을 더 많이 사요.) 『곧 죽어도 등교』 작가 소개란에 썼듯, 올해 내로 장편을 탈고하는 것이 글쓰기의 목표입니다.
Q. 예전에 한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최근에 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있거나 좋아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글을 꼽아 본다면요? 또는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방향을 스스로에게 제시한 작품이 있습니다. 2년쯤 전에 참여한 『지극히 당연한 여섯』이라는 앤솔로지에 실린 「맑은 하늘을 기다리며」라는 작품인데, 맹순정이라는 왕따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그 단편의 후기 글에 이렇게 썼어요.
[(전략)이런 말랑말랑한 소설은 이제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말랑말랑한 시절은 금방 녹아 없어지나 봅니다. 이제는 한없이 수동적인 ‘맹순정’ 대신 헉헉대며 달리는 소녀를, 섬세한 문장 대신 하드보일드를, 근거 없이 이어가는 희망 대신 완전히 무너진 자리에서 태어나는 해방감을 쓰고 싶습니다.(후략)]
「신의 사탕」에서는 모두들 무너져요. 봉봉이 무너지고, 케이가 무너져요. 하지만 그건 다시 태어나기 위한 창조와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무너져서 오히려 벽이 사라져 버리는 시원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자신이 쓴 이야기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지만, 제가 앞으로 쓸 이야기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 있다는 애매한 답변밖에 드릴 수 없네요.
Q.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인의 평가가 있나요?
같은 작품을 한국문인협회 주최 신인상과 장르소설 무크지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연이어 응모한 적이 있어요. 둘 다 본심에 들어서 간단하게나마 심사평이 실렸는데, 순문학잡지 심사평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필요이상으로 집착”했다는 평이고, 장르소설 무크지 심사평은 “장르적 특색 없는 밋밋함”이라는 취지의 평이었어요. 같은 작품인데도 순문학 쪽 관점에서는 너무 그로테스크하고(저는 이 말을, 지나치게 장르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장르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장르적 특색 없이 밋밋하다는 의미일 테죠. 동일한 작품이라도 관점에 따라 작품의 포지션의 달라지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평이라서 많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Q. 여러 가지 수단 중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한마디 전해 주신다면요.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글을 ‘내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쓴 글이 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존재가 되었으면 해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 작가의 심리를 분석하는 심리학의 분야도 있을 만큼, 글쓴이와 작품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겠죠. 소설을 써서 얻는 즐거움이라면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즐거움’이라기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창조의 즐거움’ 쪽이 더 큽니다. 예전에 빵 만들기에 몰두한 적이 있는데, 밀가루와 설탕과 버터를 반죽하고 발효하고 구워서 한 덩어리의 향긋한 빵이 나오는 순간, 한없는 충족감을 느꼈습니다. 글은 마음의 양식, 빵은 몸의 양식이 아닐까 해요. 빵은 서너 시간이면 만드는 데 비해, 글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땀과 카페인 음료를 쏟아 부어야 하니까 만들어냈을 때의 충족감도 더 큽니다.
Q. 작가, 독자, 생활인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작가로서의 나를 자각할 수 있는 한해가 되길!
새로 시작한 외국어공부가 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한해가 되길!
타인과 동물과 나에게 좀 더 평화로운 한 해가 되길!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요즘엔 브릿G에 자주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한동안 글을 전혀 못 썼고, 익명의 독지가분께 ‘언제 언제까지 이어서 써서 올릴게요’라고 한 약속도 몇 번이나 지키지 못해서 자괴감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좀 피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라도 곧 다시 브릿G에 들락날락하면서 글도 읽고 댓글도 달고 후원도 주고받으며 즐겁게 글을 쓰겠습니다. 감사해요!!
한유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직장인. 새해를 맞아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앤솔로지 『빨간 구두』에 「히아신스」를, 단편집 『지극히 당연한 여섯』에 「맑은 하늘을 기다리며」를 실었다. 월간 《토마토》와 월간 《판타스틱》에 단편소설을 게재했다. 「신의 사탕」을 쓰면서 너무 즐거워서, 앞으로는 호러 소설만 쓰기로 마음먹었다. 여자중학교 배경의 무거운 장편 좀비물을 2019년 내로 탈고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구상 중이다.
Q. 브릿G에 언제 어떻게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브릿G에서 작품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브릿G는 오픈 당시에도 알고 있었는데요. 본격적으로 들어오게 된 건 오픈 2개월 후부터입니다. 공모전에 문서로 글을 응모하면서 어떤 작품들이 올라와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다 저의 글도 올리게 되었고, 조금씩 자주 들어오게 되었어요. 운이 좋게도 제게 호의를 베풀어주신 분들이 많아서 순조롭게 이곳에 정착한 편입니다.
Q. 단편집 『곧 죽어도 등교』에 수록된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특별히 있었나요?
「비공개 안건」은 2회 작가 프로젝트에 문서로 응모했던 글입니다. 직접적으로 와 닿는 공포는 덜하지만 스스로는 호러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써내려갔는데요. 귀신 이야기가 흐르는 건조한 분위기 속에서 읽는 분들이 의외의 진실을 맞닥뜨리며 무언가 서늘한 느낌을 받기를 원했어요. 그때는 선정이 되지 않아 역시 무리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브릿G에 등록한 후에 많은 분들이 좋게 보아 주셔서 이번 작품집에까지 실릴 수 있었습니다.
Q. 「비공개 안건」은 초등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급회의를 이끌어 가는 과정과 별개의 사건이 교차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결말에 이르러 증폭되는 반전의 힘이 강렬한 작품입니다. 힌트를 최소화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켜야 하기 때문에 세심하게 설정을 짜야 할 것 같은데, 이처럼 다른 이야기 두 개를 중첩시키는 방식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검은 책」이나 「보리」 같은 또 다른 작품들처럼 학생들, 특히 저학년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글들은 추리물의 범주에 있어서, 후반부의 진상을 먼저 만들고 거꾸로 앞부분을 맞춰나가야 하는데요. 막연히 첫 문장을 쓴 뒤에 생각나는 대로 전개를 하는 식으로는 완성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미리 연습장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려 보고 거칠게 뼈대를 만든 후에 살을 붙여나가는 식으로 쓰는 게 보통입니다.
두 개의 이야기를 겹쳐서 진행시킬 때는 따로 초고를 작성한 후에 엮는 방법을 쓰고 있어요. 읽으시는 분들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항상 있지요. 그리고 독자 분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결말을 보여드리길 원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사기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반칙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전개 도중에 진상의 일부를 노출하고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지점이 적어도 한 번은 필요한데요. 이때 어떤 식으로 보일지 알 수 없는지라 매번 긴장이 됩니다.
「검은 책」이나 「보리」처럼 어린 아이들이 나오는 글을 계속 쓰고 있다는 건 제 자신도 나중에 깨달은 부분입니다. 글을 처음 쓸 당시만 해도 저에게 이런 면모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저 스스로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는 내용들을 써내려가다 보니 그런 글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Q.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전체 학교생활 중 기억에 남는 특정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 또 그때의 시절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끼쳐 쓰게 된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별다를 게 없는 우울한 나날이었지요. 정말로 학교 다닐 때 좋은 기억은 많지 않아요. 잘난 구석도 없고 성격이 좋은 편도 아니라 친구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도 무려 12년 동안 학교를 다녔으니까, 이런저런 기억들이 불쑥 튀어나와 제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저는 합창부에 있었는데 우리 부는 따로 연습실이 없어서 강당에서 연습을 했었어요. 당시에 탁구부가 강당을 함께 썼는데요. 여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운동부였고, 코치가 덩치가 큰 남자였는데, 탁구부 부원들이 제대로 연습을 못 따라올 때마다 그 사람이 애들을 엄청나게 때렸어요. 조그만 여자아이들이 코치의 손찌검에 저만치 날아가서 쓰러지곤 했었는데 그 광경이 제게는 큰 충격이었거든요. 한데 그때는 너무 어렸고, 워낙 체벌이 일상화 돼 있어서(90년대였으니까요) 그게 무섭다고만 생각했고 딱히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조차도 못 했어요. 이 기억이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 최근에 갑자기 되살아났는데요. 그게 정말로 잘못된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코치의 모습과, 여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라 한동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일이 「비공개 안건」을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작가로서 나를 자각하게 된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나요?
어떤 순간을 통해 스스로 자각하게 된 건 아닌 것 같아요. 습작 단계에서 저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고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막막하게 글을 쓰다 조금씩 성과를 내고, 좋게 보아 주시는 분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여러 단계를 지나 조금씩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Q.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집으로 한데 묶여 단편이 출간되는 경험도 하셨는데요, 내가 단편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끄럽지만 아직 긴 이야기를 다룰만한 능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단편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종이책을 많이 읽는 입장에서 하나의 제목으로 되어 있는 두꺼운 장편을 읽을 때가 만족감이 있는데요. 궁극적으로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지만 아직까지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해 단편에 머물고 있습니다.
Q. 예전에 한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최근에 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있거나 좋아한다고 여기는 자신의 글을 꼽아 본다면요? 또는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를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글은 「보리」인데요. 무술년 맞이 개 소설 프로젝트에 냈던 글인데, 제가 아는 분이 기르고 있는 강아지가 그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유기견으로, 강변에서 발견이 되었는데요. 새 주인을 만나 안정을 찾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되찾는 그 과정을 어쩌다 곁에서 지켜보게 되어서, 당시에 무척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그 강아지를 보면서 떠올랐던 감정을 중심으로, 인터넷 기사를 통해 유기견의 여러 사례들을 조사하며 글의 골격을 만들어갔는데,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제게 무척 인상적인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쓴 이야기는 공포물로, 빌라에 사는 어떤 남자가 옆집의 소리를 실 전화기를 통해 엿들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는데요. 운이 좋으면 조만간 독자 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Q. 지금까지 써왔던 글에 관해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인의 평가가 있나요?
제가 직접 얘기하기는 좀 부끄러운데, 브릿G의 작가 중 한 분이신 한켠 님이 ‘브릿G의 오 헨리’라는 평을 해 주셨어요. 물론 오 헨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 말씀이 무척 인상 깊어서, 계속 되새기고 있어요.
Q. 여러 가지 수단 중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하여 한마디 전해 주신다면요.
저는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웃음) 제가 습작을 하며 처음으로 가졌던 목표는, 독자들이 글을 아무리 읽어도 마치 안개처럼 글쓴이가 보이지 않는 그런 작가가 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건 초심자에게 과한 꿈이었고, 지금의 저는 글을 쓸 때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탄로 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에게 글쓰기는 필사적으로 저를 숨기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 조금씩 스스로를 보이고야 마는 과정인 거죠. 이게 무척 두려워서 갈수록 글쓰기를 주저하게 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 순간의 성취감이나 기쁨이 없다면, 이렇게 계속 글을 쓰고 있지는 않겠죠.
Q. 작가, 독자, 생활인 등 여러 경계를 넘나드는 개인으로서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지금 제 상황에서 전업 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것 같고요. 그냥 끊임없이 글감이 솟아나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계속 넷상에 글이 쌓이고, 공감을 얻고, 때로는 종이책으로 나오기도 하면서 제 이름으로 된 기록이 세상 한 자리에 남아있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 주세요.
「보리」가 전자책으로 한 번 출간이 된 적이 있었지만 종이책은 처음이라, 책이 도착했을 때 무척 놀랍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어요. 대부분의 작품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찬찬히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았는데요. 역시 종이책으로 읽는 건 또 다른 기분이더라고요. 매력 있는 작품집입니다. 『곧 죽어도 등교』를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차삼동
지방 도시 거주.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록앤롤싱어」로 제6회 ZA 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검은 책」으로 YAH!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