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소개해 드리는 브릿G 토크, 이번 게스트는 제1회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 최종 선정작이자 첫 출판작을 선보이신 <토마토 정원>의 한소은
피스오브마인드 작가님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원고를 주고받으며 메일로는 수도 없이 인사를 나눴지만,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처음이라 괜스레 긴장이 되기도 했는데요. 어쩐지 너무나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눠 주신 덕분에 저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구 수다를 떨고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브릿G에서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이기도 한 터라 그 의미가 개인적으로 남다른 작품이기도 한데요, 한소은 작가님의 집필 방식과 스타일, 일상의 면면들, 또 장르를 넘나드는 취향 등을 엿볼 수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꼭꼭 눌러 담았으니 모쪼록 재밌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에 소개해 드리는 이벤트도 놓치지 말아 주세요!✨
Q. 작가님, 안녕하세요. 일전에 제1회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 최종 선정작 발표 당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는 ‘브릿G 토크’ 코너로 이렇게 직접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우선 뻔한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웃음) 첫 장편소설 <토마토 정원>을 출간하셨는데요, 소회가 어떠신지 궁금해요. 웹 이미지나 파일로는 수도 없이 보신 내용이지만, 종이책으로 제작되어 직접 실물을 접하셨을 때 손안에 담기는 판형 같은 물성의 감각부터 웹으론 담기지 않는 후가공 등 다양한 요소가 있잖아요.
A. 옷 가게에 가서 옷을 골라 입어 본 게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 가면 입어 보세요. 입어 보면 달라요,라고 하시잖아요. 책이 나온 걸 보니까 약간 그런 거구나 싶은 거예요.
Q. 책의 물성이 확실히 매력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표지의 후가공이라든가 이런 부분은 담당 디자이너께서 이런 걸로 하겠다라고 말씀은 해 주셔도 잘 아는 영역이 아니거든요. 실물을 보니 표지 앞면은 물론이고 책등에도 홀로그램 박이 다 들어가 있어서 각도에 따라 예쁘게 비치더라고요. 마감 전에 띠지에 가려지는 표지 앞면의 글자 위치도 살짝 조절하신 거고요.
A. 그러네요. 원래는 표지에 글자가 ‘사람은’까지만 보였었잖아요. 근데 ‘원망’까지 내려갔더라고요.
처음엔 표지 시안 주신 거 보고 저는 도무지 모르겠어서 지인들한테도 의견을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지금 표지 시안이 제일 좋다는 거예요. 그전까지 저는 장르가 좀 애매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말들을 듣고 나니 정말 정확하게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아요.

Q. 딱 보면 예쁜데, 어딘지 스산한 느낌도 있고요.
A. 맞아요. 표지 예쁘다고들 많이 하시더라고요.
Q. 저희 이번에 IP마켓에 나가서 부스를 이 표지로 꾸몄잖아요. 그랬더니 예쁘고 눈에 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색감이 그렇게 화려한 건 아닌데 포인트가 있고, 선 같은 것들도……
A. 쇠창살처럼요.(웃음)
Q. 약간 감옥 같기도 하고요.(웃음) 그런데 포인트 곳곳은 다 너무 예쁘니까요. 사실 저도 편집하면서는 다른 분위기의 표지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디자이너가 원고를 보시고 본인만의 시선을 정말 재밌게 잘 담아 주신 것 같아요.
띠지도 박스 테이프 느낌을 살려서 디자인해 주신 거라고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앞면만 보면 바로 느껴지진 않지만 뒷면을 보면 질감이 더 돋보이는데요. 은찬이 줄기가 부러진 토마토를 테이프로 찍찍 붙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이미지로 담아 주신 것 같더라고요.
A. 네, 말씀해 주셨어요. 그걸 보고 정말 전문성이 엄청나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런 예쁜 표지를 다시 가질 수 있을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마토 정원> 본문 중에서
“그렇게만 해도 붙어요?”
은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신기해서요. 테이프로 붙여 놓기만 해도 된다는 게……. 괜한 질문으로 심기를 거스른 건 아닐까 싶어 지수가 황급히 덧붙였다.
“붙죠. 부러진 가지는 땅에 꽂아 놓기만 해도 자라요.”
토마토 정원 띠지
Q. 작가님의 프로필에 소개되어 있는 ‘번역대학원을 나와 남의 글만 쳐다보다가 결국 내 글을 쓰게 됐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어요. 이전에는 주로 어떤 번역 작품을 주로 하셨는지 궁금하고, 또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창작의 동기가 자연스레 피어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작가로서의 꿈이 있으셨던 건지도 궁금했어요. 온라인서점에서 검색해 보면 작가님 성함으로 역서가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A. 저 아니에요. 동명이인이 뜨더라구요.
Q. 앗, 작가님이 아니셨군요.
A. 아니에요.(웃음) 저는 영어 번역을 전공했습니다. 아, 내가 이럴 줄 알았어.(웃음) 본의 아니게 이런 오해를 살 것 같긴 했어요. 의외로 이름이 흔하기도 하고요. 감사하게도 한소은으로 검색하면 예쁜 배우도 나오고요, 신춘문예 등단하신 작가님도 나오고 많더라고요. 아, 그렇게 생각하셨구나…….
Q. 아니, 제가 큰 오해를.(웃음)
A. 사실 번역대학원을 들어간 것도 이유가 있어요. 회사 생활을 한 8년 정도 했는데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한계가 왔어요. 결혼은 한 상태였고, 뭔가를 준비해서 제2의 인생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근데 웃기는 게, 그때도 글은 되게 쓰고 싶었거든요.
Q. 회사 다니실 때도요?
A. 네, 딱히 번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글을 쓰면 돈이 안 되니 번역을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한 2년 준비해서 번역대학원엘 들어갔어요.
책 번역을 하고는 싶었어요. 그래서 제안서도 많이 냈는데 경쟁이 붙다가 탈락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서 번번이 그게 안 됐어요. 그래서 약간 슬럼프에 빠져 있다가 신춘문예를 접하고는 그럼 그냥 차라리 글을 써 볼까? 난 번역은 아닌가 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첫해에 열심히 썼어요. 두 군데 정도 냈는데, 당연히 안 됐죠. 그중 한 작품이 <치마>였을 거예요.
떨어지고 보니까 묵히기는 좀 아깝잖아요. 그런데 올릴 데가 마땅치가 않은 거예요.
Q. 질문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십니다.(웃음) 2020년 브릿G에 처음 올려 주신 단편 <망상들>을 시작으로 <치마>, <은수>, <나에게 있는 것, 너에게 없는 것> 등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단편들을 꾸준히 발표해 주셨는데요, 브릿G에는 어떻게 처음 글을 올리게 되었는지, 어떻게 브릿G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했거든요.
A. 제 글은 플롯 위주인지라 장르문학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쓰다 보면 자꾸만 장르풍으로 흐르니까요. 그런데 주변에 어떤 분은 저더러 장르 쪽은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하시는 분도 있어요. 장르를 웹소설로만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등단을 하라고 하시는데, 아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니까요.(웃음)
Q. 아니, 너무 쉽게 이야기하시는.(읏음)
A. 모르겠어요, 그게 또 저한테 맞는 옷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여러 플랫폼이 있지만 제 글이 전격 웹소설이랑은 또 달라서요. 브릿G를 우연히 알게 됐는데 들어가 보니까 일단 플랫폼이 너무 예뻤고요. 편집부 추천작을 좀 보다 보니까 이쪽이 맞네, 좀 먹힐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올려놓고, 한 두세 달 정도 들어가 보지를 않았어요. 그저 나는 올렸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다시 들어가 보니까 추천작으로 올라와 있더라고요. 엄청 기뻤죠, 정말.
Q. 처음 추천작으로 선정된 작품이 <치마>였지요?
A. 네, 맞아요. 그렇게 ‘브릿지언’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Q. 그럼 검색하시다가 우연히 알게 되신 거군요. 예전에 자유게시판에 웹소설과 출판 장르소설의 경계에 대한 고민을 한 번 글로 쓰신 적이 있지 않으세요?
A. 네, 고민을 올린 적이 있었어요. 커뮤니티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만남의 밤’은 언제 다시 하실 계획이신가요.(웃음)
Q. 저도 진짜 하고 싶은데요. 아마 내후년에 하지 않을까요. 내후년이 벌써 10주년이거든요. 아마도요……. 2017년 첫 만남의 밤에는 못 오셨을 텐데, 그날 만남의 밤 끝나고 몇몇 작가님들이 따로 뒤풀이하시면서 이야기 나눴던 게 ‘괴이학회’의 태동이 됐다고 들었거든요. 그때 작가님들이 이런 만남의 자리가 필요하셨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그래서 크게 하진 않지만 매년 황금드래곤 문학상 시상식도 회원이나 작가분들도 초대하기도 하고요.
A. 둥지가 필요합니다. 근데 괜히 원하는 것만 많은 것 같네요.(웃음)
Q. 아니에요. 사실 그런 게 있어야 작가님들도 더 작품 활동을 하고 생태계가 확장될 수 있는 거잖아요. 저희도 그런 사명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요.
A. 너무 감사한 일이죠, 사실.
Q. 아닙니다.(웃음)

Q. 아무튼 그래서 분위기가 있고 사건이 화려하다는 피드백을 들으셨던 게 아마 작가님의 취향(?)이 담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A. 참 취향이라는 게 벗어나기가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브릿G 자유게시판에 ‘이렇게 한번 써 봐야지 해서 썼습니다’라고 하시는 작가님들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솔직히 재밌어야지 쓰잖아요. 그리고 쓰다 보면 늘 비슷하게 나오니까요.
스티븐 킹이 왜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쓰느냐고 묻는 질문에 ‘왜 내게 선택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정말 공감해요. 저희 엄마는 도대체 너의 어린 시절에 무슨 문제가 있었냐고 하시고요.(웃음) 자꾸 의심하고, 누가 죽고, 왜 그러냐고 하세요.
Q. 어머니도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세요?
A. 읽으시죠. 최근엔 지력이 좀 쇠하셨지만 늘 잘 읽어 주세요.
Q. 좋은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분이 있는 거네요. 남편이나 다른 가족 등 혹시 더 조력을 받을 수 있는 분이 있나요?
A. 남편은 책이 나오고 읽었어요.(웃음) 남편은 웹소설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되게 뿌듯했던 건 남편이 책을 한 세 시간 동안 각 잡고 이렇게 읽더니 재밌다고, 계속 페이지가 넘어가던데,라고 얘길 하는 거예요.
Q. 오, 웹소설 독자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정말 진심일 텐데요. 재미없으면 바로바로 이탈하니까요.
A. 네, 그래서 ‘기쁘다. 물론 나의 초고는 읽어 주지 않았지만.’ 이런 생각을 했죠.(웃음) 옆에서 사람이 머리를 쥐어뜯으면 내가 한번 읽어 봐 줄까라는 말을 할 법도 한데 말이죠.
Q. 그래도 인상적인 단평이네요. 어쨌든 이런 작가님의 취향이 반영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서 <토마토 정원> 속 지수처럼 막 사건 현장을 척척 다닐 정도로 작가님도 겁이 좀 없는 스타일이신지, 아니면 성향과 상관없이 그냥 장르물을 좋아하시는 건지 궁금했어요.
A.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 말미에 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 중에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인물로 설정을 한 것에 대해 작가의 재능을 칭찬하는 대목이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아, 이렇게 설정하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토마토 정원>에서도 지수가 헤집고 다녀야지만 스토리가 이어지기는 하니까요.
Q. 그쵸. 지수가 말을 옮기기도 하고요.
A. 세상에 사람들 유형이나 조합이 되게 다양하잖아요. 요새는 인물의 성격이나 개연성에 대해 ‘이렇게 불안이 높은 인물이더라도 이런 것에 대해서는 막상 겁이 없는 인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자유롭게 생각해 보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긴 해요.
저 스스로도 걱정도 많고 불안도 많은데, 의외로 또 저지르는 건 잘해요.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 관두고 말도 없이 번역대학원 가고.(웃음) 그래서 지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요.
🔖미야베 미유키, <13계단> 해설 중에서

Q. 작가님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 또는 최근에 재밌게 본 작품들이나 추천 리스트가 있을까요.
A. 심리 스릴러는 즐겨 보는 편이긴 한데, 제가 또 의외로 드라마나 영화는 범죄물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Q. 아, 정말요? 이전 인터뷰에서 언급하신 <타인의 지옥이다>는 재밌게 보셨던 것 같은데요.
A. 네, 그건 재밌게 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또 이런 식이구나라는 식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글쎄요, 장르가 비슷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오히려 다른 장르에서 더 아이디어를 찾고 영감이랄 게 있다면 영감을 좀 얻고 싶은 유혹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반면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진짜 다큐잖아요. 그래서 이상하게 그 프로그램은 빠지지 않고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Q. 그쵸, 또 자극적이기도 하고요.
A. 또 알게 모르게 스며들 듯이 습득되는 정보들도 많아요. 저 용의자는 저랬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배제되었구나 하는 식으로, 수사의 흐름 같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비슷한 포맷이어도 너무 반응을 유도하도록 각색된 스타일의 프로그램은 또 안 보게 되긴 하더라고요.
옛날 대학교 시절에 ‘당신의 취향은?’ 이런 설문 같은 게 있었어요. 그때 나온 진단은 제가 ‘대중적인 소년 소녀 취향’이라는 것이었어요.
Q. ‘갓반인’이신 거네요.(웃음)
A. 네, 되게 대중적인 취향인 거죠.(웃음)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이런 취향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죠. 제 눈에 재미가 없으면 다수의 눈에도 재미가 없다는 거니까요. 드라마 같은 경우 <블랙 미러>는 한 편 한 편 작품성이 높아서 아껴 봤던 시리즈고요. 밥 먹으면서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을 되게 열심히 봤었어요.
Q. ‘오뉴블’은 밥 먹으면서 보긴 쉽지 않을 텐데요.(웃음)
A. 약간 비위가 상할 때도 있긴 한데요.(웃음) 최근에 본 것 중에 기억이 나는 건 <로맨틱 어나니머스>라는 일드인데요, 한효주랑 오구리 슌이 출연한 드라마예요. 남들과 시선을 못 맞추는 불안장애가 있는 여주와, 결벽증이 있는 남주의 웃픈 사랑이 너무 잘 그려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재밌었고, 얼마 전에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도 재밌게 봤어요.
Q. 김부장은 뒤로 갈수록 아쉽긴 했지만 저도 초반엔 정말 몰입해서 재밌게 봤어요.
A. 김부장이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잘 만들었더라고요. 좋았던 장면이 어쩔 수 없이 집을 팔고 경기도 빌라로 이사를 가는데, 그 가족들이 웃으면서 마치 소풍을 떠나는 것처럼 가요. 사실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좀 아름답더라고요. 만약에 진짜 저런 태도로 살 수 있다면 뭐가 그렇게 문제일까, 이런 생각을 그 순간 좀 했었어요.

Q. 좋아하시는 소설 취향은 어떠할까요.
A.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같은 경우는 뭐랄까, 자꾸 분석하면서 읽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기가 어렵고……. 그래서 다른 장르를 오히려 더 열심히 읽게 되는 것 같고, 그러면서 생각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강화길 작가님 작품 좋아하거든요. 심리 묘사를 솜털 하나하나까지 하시잖아요. 또 볼 때마다 ‘아흑! 너무 따뜻해.’라고 흐느끼게 되는 건 최은영 작가님 작품이고요. 안 어울리죠.
그리고 언제나 닮고 싶었던 분은 명작 <아웃>과 <그로테스크>를 쓰신 기리노 나쓰오 작가님이십니다.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옛날 사진을 우연히 봤는데 하…… 너무 멋있었어요. 제가 약간 이렇게 차갑고 도시적인 얼굴을 좋아하거든요.(웃음) 도발적인 소재,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심리 묘사에 푹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렸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Q. 처음부터 냅다 취향만 엄청 캐묻는 것 같지만…… 영화는요?
A. 아리 애스터 감독님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나 <유전>을 보면서 이분은 저와 나름 비슷한 것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벗어날 수 없는 관계 안에서 느끼는 두려움, 불안 같은 감정들이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Q. 아니 그냥 장르 진짜 많이 보시는데요.(웃음)
A. 아, 정말…… 희석이 안 되네요.(웃음)
Q. 일전에 언뜻 독서 모임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독서 모임을 하시나요?
A. 독서 모임이 여러 가지 책을 읽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돼요. 보통 자기 취향이거나 필요한 책만 읽게 되는데, 독서 모임에서는 참여자들의 의견을 다 수렴해서 한 해 리스트를 만들거든요. 제가 활동하는 독서 모임은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모임인데, 솔직히 읽고 싶지 않은 책들도 분명 있어요. 대개는 다 좋은 작품들이고 좋은 책들인데, 주로 인문학 책들이 많고요.
장르소설은 어쩌다가 한두 권씩 껴 있지만 스티븐 킹이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네임드 작가들 책이이에요. 그래도 그렇게 읽게 되는 게 감사해요.
Q. 맞아요, 시각을 확장해 주니까요. 독서 모임은 작가님께서 찾아서 정보를 얻게 되신 건가요?
A. 네, 제가 한 3~4년 전쯤 이사를 했는데 사실 좀 많이 외로웠어요. 그래서 도서관 같은 데서 독서 모임 하면 좋겠다 해서 찾아갔었어요.
독서 모임을 같이 하는 분들께 되게 감사해요. <토마토 정원>도 한 권씩 사 주시고, 재밌게 읽었다고 알라딘에 리뷰도 달아 주시고요.(웃음) 브릿G도 전혀 모르시다가 저 때문에 아이디 만들어서 들어오고 공감도 눌러 주시고 댓글도 달아 주셨어요.
Q. 든든한 커뮤니티가 생긴 거네요.
A. 네. 독서 모임을 하다 보니 글 쓰는 데 반드시 소설책만이 유용한 건 절대적으로 아니더라고요. 또 저는 이런 기준이 참 중요하다고 보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종이 낭비이기도 하잖아요.
Q. 헉! 나무야 미안해 이런 건가요.
A. 새털같이 많은 책들 중에 사실 이런 이야기가 하나 없어도 그만이잖아요. 갈수록 그런 생각을 많이 해 보게 돼요.
Q. 출판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요? 스스로 기준이 조금 엄격하신 편이군요.
A. 아까 했던 얘기에서 이어지는 것 같은데, <토마토 정원>에서 다루는 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책들을 좀 여러 가지 읽어 봤어요. <네 이웃의 식탁>이나 <마당이 있는 집>도 읽었고요. 일본의 셰어하우스를 소재로 한 <셰어하우스 플라주>라는 책도 읽었는데, 이 책은 어두운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한집에 살면서 본인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어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지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 써야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차별화라고 하잖아요. 읽는 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는 모르겠는데 저 나름대로는 그런 생각들을 했고, 처음부터 악인을 딱딱 정해 놓고 접근한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악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좀 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그런 소설을 한번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A. 타임라인은 순전히 제가 기억력이 부족해서 저를 위해서 만든 거예요. 그리고 도래동이라는 작중 동네는 모델로 삼은 지역이 있어요. 전형적으로 산 밑에 있고 도심과 떨어져 있고…… 주변에 농지 같은 것도 있고요. 그 동네 지도를 PPT에 따서 붙여 놓고, 여긴 누구 집 저긴 누구 집 이렇게 다 정해 놓고선 시작을 했었어요. 그 동네 자체가 무대가 되기 때문에 현실성이 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인물들도 각자 장표 하나씩 만들어서 구체적으로 설정을 좀 해 놓긴 하는데, 저는 그런 과정이 되게 재밌더라고요. 염두에 뒀던 배우가 있냐 이런 질문도 하셨는데, 사실 다 참고한 배우들이 이미 있어요.(웃음)

한소은 작가님의 <토마토 정원> 타임라인 일부
Q. 그러셨군요! 이미지가 또렷해서 글 쓰실 때도 오히려 좋았을 것 같은데요.
A. 은찬이 같은 경우는 ‘로건 리’라고,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나왔던 등장인물 이름이라고 하더라고요. 박은석 배우를 보게 된 건 <나 혼자 산다>에 강아지랑 나왔을 때였는데, 그때 그 인상이 각인된 것 같더라고요. 잘생겼는데, 웃을 때 약간 날카로운 느낌이 있더라고요. 처음엔 장표가 스무 장으로 시작했는데 디곡신도 넣고 설정을 추가하다 보니 나중에 100장이 넘어가는 거예요.

출처: 펜트하우스 홈페이지
Q. 히익, 정말요.
A. 자료 조사한 걸 붙여 넣고 나중에 보려고 쌓다 보니까 계속 그렇게 늘어나더라고요. 한 번은 독살하는 내용을 다뤄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독극물에 대한 책들을 좀 읽었어요. <한국의 독초>라고 대학교에서 쓰는 자료가 있거든요. 거기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모든 야생초들 중에 온갖 독초들이 다 나와요. 미나릿과부터 고사릿과까지 다 독초더라고요.
사실 이 책은 독초를 먹었을 때 증상이 나오고 그 증상이 있을 때 어떻게 처치하는지 가이드를 담은 응급 의학서인데, 어느 정도 사건을 미궁에 빠지게 하면서도 어울리는 증상을 찾기 위해 어렵게 중고로 구해서 봤어요.
또 책에 있는 수많은 야생초들을 보니까 이런 것들을 소설 속에 녹여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만약에 은수가 원하는 것이 토마토 정원이라면, 그밖에는 이런 독초나 야생초들이 자라는 것도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누님은 뭐예요? 방울토마토? 아니면…… 잡초?” 이런 은찬의 대사 같은 것도 나오게 됐고요.

Q. 저도 어쨌든 캐릭터에 몰입을 하려면 텍스트로 이미지 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중간에 은수의 외모 묘사를 일부 보충해 달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었잖아요. 그래서 추가로 덧붙여 주신 외형이나 은수의 결벽증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묘사들이 정말 좋았어요.
A. 배우나 이런 분들 얼굴을 보면 이런 성격일 것 같다고 저만의 방법으로 단정을 짓는 것 같아요. 그래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붙여 놓고 시작하고요.
Q. 참고했던 다른 인물들 레퍼런스도 있나요?
A. 지수는 천우희 배우를 생각했었고, 은수는 지금은 활동을 안 하시는데 ‘40대 여배우’로 검색했을 때 발견했던 어떤 분이 계셨어요. 그렇게 검색하다 보면 꽂히는 인물이 있어요. 반묶음 머리하고 촌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웃고 있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연기였겠지만 좀 무서운 거예요. 웃을 때랑 정색할 때랑 이미지가 또 다르고요.
마리비어 도말희 사장은 가수 장혜진 님을 생각했어요. 그분의 실제 성격은 그렇지 않겠지만, 약간 엉뚱한 면도 있고 사기도 잘 당하고, 그럼에도 계속 사랑하는 도말희의 이미지로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재원은 김동휘 배우의 장난스러운 이미지를 생각했고요, 무교는 뮤지컬 배우 최재림 씨를, 혁중은 jtbc의 어떤 기자님 이미지를 생각했어요. 소원은 제가 열심히 보는 <나는 솔로> 돌싱 특집에 나왔던 한 여성 출연자를 참고하게 됐고요. 뭔가 다양한 곳에서 도용(?)해서 죄송하네요.(웃음)

출처: 마이 유스 홈페이지
Q.도용이라기보단 참고죠, 참고.(웃음) 보다가 딱 꽂히는 인상을 간직하고 있다가 떠올리시는 것 같네요.
A. 연애 프로그램도 그렇고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하면서 보는 게 재밌어요.
Q. <토마토 정원>이라는 제목이 정말 더없이 완벽하게 느껴지는데요, 토마토가 자가 수분을 하는 식물이라는 점에 착안해 타인을 통제하고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은수의 욕망을 빗대어 제목을 짓게 되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요즘 왜인지 모르게 책은 물론이고 굿즈라든지 고유의 인기가 있는 아이템 중 하나가 또 토마토인 것 같은데, 마케팅부에서 전해 듣기론 사전 모집한 서평단 신청이 이례적으로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토마토라는 핵심적인 모티브를 떠올리게 된 발상의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직접 가꾸신다거나…… 토마토를 좋아하신다거나…….
A. 사실 토마토를 정하게 된 건 의의로 좀 간단한데요. 텃밭에서 주말농장으로 재배를 할 수 있는 단일작물이어야 했는데, 고추 농장은 좀 이상하잖아요. 오이 농장도 그렇고요.(웃음)
Q. 그건 그렇죠. 이미지가 조금 구수해지는…….(웃음)
A. 그래서 토마토 농장일 수밖에 없었어요. 단일작물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있었기 때문에요.
Q. 한 식물에 대한 이미지가 뚜렷해야 하기 때문에 단일작물을 생각하셨던 걸까요?
A. 네, 그렇기도 하고 은수가 여기는 뭐 심고 저기는 뭐 심고 이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의외로 토마토는 쉽게 정해졌죠. 처음부터 제목을 <토마토 정원>이라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괜찮구나 싶어요.
사실 이 텃밭을 정원이라고 하는 건 은수의 생각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상당히 소름이 끼치는데, 사실 처음에 시놉시스 제출할 때만 해도 ‘무슨 정원이야 텃밭이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편집자님도 이 제목이 가장 적합하다고 하셨을 때 그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정말 그랬어요. 토마토 정원이라는 표현 이상으로 이 이야기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제목이 없겠더라고요. 주신 그대로 제목이 된 거라서요. 후기를 보면 독자분들도 읽으면서 ‘왜 토마토 정원이지?’라는 생각이 계속 드나 봐요. 다 읽고 나서 소개자료 내용을 찾아보시고는 ‘토마토가 자가 수분을 하는 식물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런 식의 감상을 전한 분들도 있더라고요.(웃음) 그러니까 다 읽고 나서 그 뜻을 알았을 때 한 번 더 섬뜩해지고, 곱씹을 게 많은 제목 같아요. 그리고 독자님들이 토마토를 굉장히 많이 좋아하신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A. 그러니까요. 서평단이 많이 들어왔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많이 끌리셨던 게 아닌가, 그만큼 이 표지와 제목의 성공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출처: o**us 님 알라딘 리뷰
Q. 결론은 작가님께서 토마토를 직접 가꾸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었다.(웃음)
A. 아, 저는 식물과는 연이 닿지 않습니다.
Q. 저도 그렇습니다. 오히려 동물들은 나름 성심껏 케어를 하는데요. 저희 부모님이 농부시거든요. 근데 왜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을까요.(웃음)
두 여성을 중심으로 한 구도를 제외하면, 은찬과 무교, 재원 등 여러 조연들도 저마다의 욕망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형성하잖아요. 그중에서도 은찬은 은수가 장미나 토마토 등을 심은 텃밭을 애지중지하는 것과 비슷하고도 또 다르게 다양한 야생초 모종을 기르는데, 처음 들어 보는 식물들 이름도 신기했지만 작중 사건의 핵심적인 매개로 쓰이기도 하면서 저마다 다양한 역할을 해요.
그래서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야생초와 꽃들의 꽃말로 암시를 넣어 부속 이미지를 꾸미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표제지 구성은 작가님하고 이야기해서 이렇게 하자고 이야기가 되었는데, 사실 저는 나중에 디자이너가 꾸며 준 목차도 너무 좋더라고요. 이렇게 딱 모아 놓으니까요.
A. 사실 이 이미지 중에 어느 하나도 뚜렷하게 뭔지 알아내기가 힘들잖아요. 그리고 꽃들이 다 각이 져 있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꽃 이미지라고 해서 온화한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주신 것을 보고 이것조차도 허투루 하지 않으시는구나 생각했어요.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게 대체 무슨 식물이야?’라는 생각을 하실 것 같기도 해요.
Q. 사실 제 의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에 나왔던 야생초 같은 것들이 다 영화 내용과 어울리는 꽃말이 있는 식물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운과 감동이 컸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그 뜻이 알려지길 고대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볼 것 같아서 그냥 대놓고 매거진에 소개해서 제가 퍼뜨리려고 합니다.(웃음) 애기기린초나 이런 것들은 사실 그림이나 사진을 봐도 잘 모르니까요.
A. (웃음) 꽃말이 되게 탐나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Q.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을 의도하고 쓰신 부분도 있지 않나 싶었거든요.
A. 꽃말 이야기를 하시길래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엔 사실 꽃말까지는 생각을 못 했어요.

각 표제지 페이지 이미지

[2032년, 봄] 참나리
꽃말: 순결, 깨끗한 마음, 변함없는 사랑

[2012년, 겨울] 애기기린초
꽃말: 소녀의 사랑

[2032년, 6월] 제비동자
꽃말: 기다림

[2031년, 5월] 디기탈리스
꽃말: 가슴속의 생각

[다시, 봄] 벚꽃
꽃말: 삶의 덧없음, 아름다움
각 목차와 표제지의 꽃과 꽃말을 같이 곱씹어 보시면 더 재미있는 요소가 될 거예요!😌
Q. <토마토 정원>이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정도 후의 시기적 배경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가까운 미래의 설정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많았어요. 애초에 정부에서 도심 공동화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빈집을 매입해 1인 가구나 독거노인, 한 부모 가정 등을 위해 공동체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는 설정 자체가 머지않은 미래처럼 느껴지고요.
또 외국인 노동자 유치를 위한 공공주택 설립이라든지, 임종을 앞둔 노인들의 마지막 거처로 개조된 가정식 요양 주택 ‘실버홈’이라든지…… 다양한 주거 형태와 생활상에 대한 설정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는데, 역시 관련 서적이나 일본의 사례, 다큐 등을 참조하셨다고요.
거기에 작가님만의 미래상을 곁들여 이야기에 녹여 주신 것일 텐데, 혹시 여러 자료 중에서도 가장 체감이 되었던 내용이 있으셨나요? 고령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서 점차 대두되고 있는 돌봄 문제의 현실도 생생하게 느껴졌거든요.
A. 사실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참상들은 말도 못 할 만큼 심한데…… 요양원에서 기저귀를 안 갈아 줘서 엉덩이가 썩어 가는 일도 많잖아요.
Q. 그런 것에서 자동배변처리기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신 걸까요.
A. 그런 것도 있고요, 쩌우가 혼자 일을 하려면 뭔가 그런 도구가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 있겠더라고요.
Q. 그러네요. 실버홈이 미래적인 돌봄 주거 형태이긴 하지만 최첨단의 기술이 깃든 공간은 또 아니니까요.
A. 일본 다큐멘터리나 <노인지옥>이라는 책을 보면 소설에서 그려지는 것과 고령화된 일본 사회의 현실이 상당히 흡사해요. 소규모로 노인들이 입주한 가정식 돌봄 주택이 있고, 실제로 반려동물하고 같이 지내는 곳도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영세한 시설마저도 들어가기가 힘들고 비싼 거예요. 작중에 그려진 노인하숙도 일본에는 이미 있는 형태예요. 어쨌건 자식들이 돌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면 그런 곳에 그냥 맡겨 놓고 가는 거예요. 그냥 방 하나에 파티션 하나 대충 쳐 놓고 혼숙을 할 정도로 되게 열악해요.
일본 소설 중에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라는 책이 있어요. 주인공이 결혼을 안 한 채 칠순이 넘은 나이가 됐는데 같이 살던 동성 친구가 죽은 거예요. 너무 슬프고 무섭잖아요. 그래서 좀도둑질을 시작해요. 어떻게 해서든지 감옥에 가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감옥에 입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고, 일본은 이제 교정시설이 요양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Q. 너무 슬프네요, 정말. 저는 개인적으로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재원의 이야기가 처음 원고로 왔을 때 읽기가 좀 힘든 거예요. 나중에 편집부에서 다 같이 원고를 보고 이야기할 때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좀 힘들었다고 했더니 팀장님이 그만큼 잘 쓴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생생하게 써 주셔서 제게도 마음의 타격이 있던 것 같아요.
A. 소설 속에서 요양원 안의 풍경이 냉랭하게 그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실상을 그렇게 드러내고 있다곤 생각을 안 하거든요. 그래서 버려진 강아지들에 버려진 존재들을 투영해서 다 같이 은유해서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었나 봐요.
Q. 돌봄을 못 받는 약자들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겨 있으니까요. 또 시기적 특성상 현재 사회와는 조금 더 진보된 시대상이 드러나는 설정들도 더러 있어요. 학령 인구 감소로 대학이 폐교하고 그 부지를 에어택시 승강장으로 재설계한다든가, 이미 어느 정도 보급된 AI 활용 도구가 한층 더 발달되어 독거노인들의 돌봄로봇으로 쓰인다든가.
편집 과정에서 아주 살짝 더 늦춰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먼 미래도 아니고, 지금 당장의 이야기도 아닌, 2030년대의 가까운 미래를 시대 배경으로 상정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A. 일본의 현실을 차용하긴 했지만 약간 고민스러운 부분은 있었어요. 그래도 지금부터 7년 후니까 기술이 좀 더 발달하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막 최첨단 CCTV로 전부 바꿀까 싶은 생각도 드는 거예요. 너무 미래라 AI CCTV 같은 게 보편화되어 있으면 곤란했고요. 범죄의 틈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실버홈 같이 열악한 시설에서 허점을 노려서 범죄가 발생한다는 설정 자체가 먹히려면 시점이 너무 멀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근미래로 설정을 했던 거고요. 그 과정에서도 두려운 게 되게 많았고, 마지막까지 허점이라고 읽힐 수 있는 부분들을 보완하는 노력을 했어요.
Q. 아, 그래서 적당한 근미래로 설정하게 되셨던 거군요. IP마켓에서 관계자들과 이야기 나눠 보니까 너무 먼 미래가 아니고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있을 법한 설정 자체를 되게 흥미로워하시더라고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많았던 거죠.
A. 돌봄로봇 같은 기능은 사실 지금도 이미 있거든요. 7년 후에는 웬만한 노인들에게는 보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고요.

Q. 이렇게 돌봄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A. 아무래도 저도 소위 ‘낀 세대’다 보니까요. 밑으로는 아이를 돌보고 위로는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거든요. 막상 가까운 가족들이 더 노쇠해지면 어떡하지 싶지만 애써 외면할 뿐이지 돌봄 문제는 밑에 항상 깔려 있는 걱정인 것 같아요. 언젠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돌봄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Q. 육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실 단편 <은수>에서도 그렇고 <토마토 정원>에서 지수는 거의 끝장에 다다를 때까지 은수에게 속 시원하게 의문을 해소하거나 대적하지 못하는 이유가 다 육아 돌봄으로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잖아요. 작가의 말에도 소개해 주셨듯, 작가님의 일부 경험에서 비롯된 어려움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A. 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하필이면 대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학교 다닐 때는 어머니가 아이를 봐 주시긴 하셨죠. 그런데 가끔은 정말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 올 때도 있었기 때문에 나름의 고생을 많이 했죠. 아이를 돌보면서 여러 이모님을 뵈었는데 온갖 기물이 파손되는 경우도 있었고요.(웃음)
Q. 여러 관계에서 오는 고충이 다 달랐겠네요.
A.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요. 은수라는 캐릭터를 착안하게 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아이를 굉장히 사랑하시고 눈만 봐도 애정이 느껴지는 분이셨는데, 첫날 면접을 보러 오셨어요. 여름이라 맨발에 샌들을 신고 계셨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맨발로 침대에 올라가서 당시 갓난아기였던 제 딸을 어르시더라고요. 그런 게 저는 좀 불편했어요. 왜, 그 경계가 나랑 다른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와 달리 지수 같은 경우는 대안이 없으니까요.
Q. 그쵸. 그녀는 일단…… 최소 2년은 갇혀 살아야 했죠.
A. 그분을 보면서 경계가 아예 없을 수 있는 분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는 해요.
Q. 저는 그 대사가 진짜 좋았거든요. “김은수, 김지수. 우리 꼭 자매 같잖아. 그렇죠?” 그렇게 딱 순간적으로 침입해 오는 말 있잖아요. 그런 얘길 들으면 저도 그냥 멈칫하고 앞에선 별말 못하는데 자꾸 곱씹게 될 것 같거든요. 또 꽃잎을 떼어 주는 장면도 되게 섬세한 침범으로 느껴졌어요. 그게 또 마지막 장면하고도 연결돼서 좋았고요.
A. 만약 제가 그때 되게 절박하고 애정이 고픈 사람이었으면 그런 게 또 좋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옛날에는 어느 정도 사람 성격이 타고난 게 있지 않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인간이 시간과 장소라는 좌표에 찍힌 점 같은 존재라는 관점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이 어떤 궤적으로 흘러가는 건데, 그 사람이 타고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시간과 장소에 따라 사람이 계속 변하는 거라고요. 그 말이 요새는 더 좀 와닿아요. 그래서 뭐가 선하고 악하고 이런 차원이라기보다는 우리는 다 부족하게 태어났고, 각자 죽을 때까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면서 우리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누구나 그런 여정 한가운데 있다고요. 그 사람이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없었으면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만 해도 옛날에 회사 다닐 때는 MBTI가 INTJ가 나왔는데 지금은 INFP가 나오거든요. 회사 생활할 때는 가면을 확 쓰고 일을 했던 거고요.
Q. 그래야 제가 안 무너지니까요.
A. 그릇도 작고 에너지 레벨도 낮다 보니까요. 결국은 저라는 사람도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고, 그래서 요새는 사람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사람이 강퍅하고 그러면 좀 힘든가 보다 생각하게 되고요.
Q. 작품 개작 과정에서 존 레논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는 부분은 여러 문제로 빠지게 되었는데,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싶으셨던 메시지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었기에 아쉬움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대목에, 어떤 뉘앙스로 들어가길 원하셨던 건지 이 자리를 통해서라도 노래를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이 노래를 처음부터 즐겨 들었던 건 아니고, 찾아보다가 알게 됐어요. 그 가사가 은수한테 위로가 될 것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조언도 아끼지 않는 그런 내용이거든요.
존 레논, 「Beautiful Boy」
Close your eyes 눈을 감아
Have no fear 무서워하지 마
The monster’s gone, he’s on the run 괴물은 갔어, 도망가버렸단다
And your daddy’s here 아빠가 여기 있잖아
Beautiful, beautiful, beautiful 아름답고 아름다운
Beautiful boy 예쁜 아이야
Beautiful, beautiful, beautiful 아름답고 아름다운
Beautiful boy 예쁜 아이야
Before you go to sleep 잠자기 전에
Say a little prayer 잠시 기도를 하자
Every day in every way 매일 모든 게
It’s getting better and better 점점 더 나아질 거야
Beautiful, beautiful, beautiful 아름답고 아름다운
Beautiful boy 예쁜 아이야
Beautiful, beautiful, beautiful 아름답고 아름다운
Beautiful boy 예쁜 아이야……
A. 따뜻한 마음으로 뒤에서 한 발 떨어진 채 바라봐 주는 그런 가사잖아요. 은수가 혼자서 그런 존재를 얼마나 목말라했을까 싶었죠. 은찬은 되게 꼴 보기가 싫었을 것 같고요. 또 저러네 하면서요. 은찬은 자기가 못 받은 사랑에 대한 상처를 되새기게 되다 보니 다른 반응을 보였던 건데, 은수는 결국 이런 옛날 영화에서 부모의 자취를 찾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실제로 그렇기도 하거든요. 70~80년대 영화 보면서 저희 엄마 아빠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옛날 영화를 보는 때가 은수에게는 그런 시간들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Q. 은찬은 그게 너무 지겨운 거고요. 은찬의 그 마음이 이중적이잖아요. 지긋지긋한데 서로가 서로를 떠날 수 없고, 마지막에 은찬의 이야기가 여운이 많이 남더라고요.
A. 막판까지 고민했던 게 그 지점이었는데, 은찬이라는 인물을 좀 이중적으로 그리고 싶었거든요. 죽어 가는 것들에 대해서 목숨을 빨리 끊어 주고 싶다는 충동을 가짐과 동시에 점차적으로 그게 즐거움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는데 과연 이게 독자들에게 와닿을까 싶은 거예요.
Q. 너무 사이코패스 같은 이상심리자로만 느껴질까 봐요?
A. 네, 결국 제가 은찬에 대해 설정하기로 결정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를 어딘가 고장 난 사람인 것 같다고 느낀다는 거죠. 남들이 판단을 그렇게 한 게 아니라요. 결국은 본인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어떤 의지를 포기한 게 아닌가, 내려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은찬의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그것이 아니었나 싶네요. 은찬도 내가 아니었으면 누나가 이렇게까지 안 됐을 거란 걸 알잖아요. 은찬이 만약 은수에게 의지했더라면 사실 은수도……(웃음)
Q. 이렇게 모두에게 폭주하진 않았을 텐데요.(웃음) 그렇지만 은찬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던 거죠.
A. 은찬이 뭐랄까, 다소간의 공감 능력이 결여된 인물일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사람이 없진 않잖아요.
Q. 작가님께서 보내 주신 타임라인을 보고 <토마토 정원>이 토마토 모종을 심고 열매를 수확하는 3~4개월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는데요, 은수가 애지중지하는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기르는 일에 연례행사처럼 입주민들이 동원되기도 하니까 제목과 더불어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혹시 이렇게 시기적 배경을 약 3~4개월 동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한정한 것은 컴팩트하고 스피디하게 내용을 전개시키고자 하셨던 부분도 있었을까요.
A. 수사에는 기간이 걸리잖아요. 실제로 수사에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 시간대로 맞춰서 갔던 것 같아요. 도중에 시간이 애매하게 뜨면 긴장도도 낮아질 것 같고 해서, 수사의 타임라인에 맞춰진 부분도 있는 거죠. 제가 좀 조심스러웠던 게 7년 뒤에는 기법이 더 발달돼서 시간도 더 단축이 될 거란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너무 빠르게 나오면 또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머리를 좀 많이 굴렸죠.


A. 그게 약간 농촌 스릴러 같은 거거든요.
Q. 농촌이요? (눈 번쩍)
A. 그렇잖아도 아까 부모님이 농사짓는다고 하셔서……(웃음)
Q. 농촌에 대해 아는 거라면 알려 드리겠습니다.(웃음) 너무 재밌겠는데요?
A. 인물 구상을 하면서 나름 또 즐거운 시간을 가졌죠.
Q. 농촌 스릴러를 쓰고 싶다, 이런 욕구는 어느 순간 피어나는 걸까요? 발상의 시작이 어디였을지…… 왜냐면 저는 작가님들께서 다른 작품들 들어가는 순간이 늘 궁금하거든요.
A. 일단 초고 넘기고 피드백을 받기까지 시간이 좀 있었잖아요. 그 시간을 단편이 됐건 장편이 됐건 뭘로든 메워야 하니까 뭔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한 올해 여름 정도부터? 왜 농촌으로 흘러갔는지는 음…….
Q.아닙니다, 그냥 그런 거겠죠. 애써 설명해 주지 않으셔도.(웃음)
A. 그러게요. 갑자기 ‘왜 농촌이 됐지?’라는 생각은 드는데, 써 보고 싶은 인물이 그런 환경이어야만 하기는 했어요. 이 주인공이 좀 발이 묶여 있는 친구거든요. 농촌이면 좋겠다고 발상을 떠올렸는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 주인공하고는 환경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Q. 그게 뭘까요.
A. 궁금하시죠.(웃음)
Q. 네, 정말 궁금한데요. 어쨌든 이야기 구상 자체보다는 인물들의 세세한 설정 자료들을 만드는 데 좀 더 시간을 들이시는 편인 거네요.
A. 네. 그런데 다른 작가님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기는 해요. 인물의 부모, 가정환경, 어떤 관계 같은 것들을 설정해야 하니까요.
어쨌든 관심 있는 게 정해져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사건 자체보다는 캐릭터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가 궁금해서 늘 캐릭터 중심이에요. 그중에서도 더 관심이 있는 캐릭터도 따로 있고요. 다른 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시던데 쓰면 주인공 캐릭터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거죠.
이번 인물은 지수랑 은수하고는 다른 캐릭터이긴 한데 역시나 제가 좀 관심이 있는 문제를 가진 캐릭터이긴 해요.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이 이런 문제와 얽혀서 뭔가 갈등 상황이 생기고 인물 위주로 생각을 하다 보면 플롯이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니에요. 다만 거기서 살아 보는 게 좀 오래 걸려요.
Q.이입을 하면서 상상하는 건가요.
A. 네, 상상하면서 그 마을 속에서 살아 보는 거죠. 이 사람 입장에서도 머리를 굴려 보고 그 마을에 좀 들어가서 이런저런 환경에 노출되어 보는 거죠. 이 작품도 마을을 어느 정도 만들어 놓고 시작을 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산책도 좀 해 보고요. 그러다 보면 이웃 사람들도 등장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나 에피소드도 늘어나게 되고요.
Q. 이야기를 쓰시는 작업 외에 작가님 일상의 루틴은 어떻게 흘러가는 편인가요? 물론 작업을 포함한 일과의 루틴을 소개해 주셔도 좋습니다.
A. 사실 저는 작업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어깨가 좀 안 좋아서요. 주 2회는 운동을 좀 빡세게 하는 편인데 그날은 에너지가 달아나서 글 쓸 체력이 되지 않고 주 3회 정도 쓰려고 해요.
저도 하루에 한 페이지 정도 채워 보려고 노력은 해 봤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저는 반 페이지 이상은 안 되더라고요. 저는 초고를 막 쓰는 타입은 아니고, 마지막 글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는 나와야지 계속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쓰다 보면 ‘어, 이거 한 줄 마음에 들었어’, ‘나온 것 같아’ 이런 쾌감이 들잖아요. 근데 그 쾌감에 한계치가 있어서 어느 정도 쾌감이 차면 쓰기가 싫어요.(웃음)
Q. 그렇군요.(웃음)
A. 억지로 견디면서 많이 써 봤는데 결국 다음 날 읽어 보면 다 지우게 돼요. 저 같은 분들도 계실까요?(웃음)
Q. 계시지 않을까요? 루틴을 만들어서 그것에 맞추는 분도 있지만, 결국은 내 스타일대로 해야 가능한 작업이니까 자기 스타일을 아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를테면 저는 프리랜서를 절대 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직장을 다니는 거거든요.
A. 그렇군요. 일이 아니더라도 즐거운 게 굉장히 많은 타입이신가 봐요.
Q. 그런 거라기보단 그냥 고정적인 루틴을 회사 일과에 끼워 맞추는 편이긴 한데, 일이 아닌 데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나이 들수록 더 노력하는 것 같긴 해요. 요즘엔 커피를 배우고 있어요.
A. 바쁘신 중에도 커피를…… 착실히 준비를 하시는 건가요.
Q. 아뇨, 그냥 정신적 도피처를.(웃음) 예전엔 저도 영화관에 가는 식으로 도피를 했다면 요즘엔 좀 다른 장르로, 몸을 쓰며 배우는 게 좋더라고요. 아예 다른 느낌이어서요. 작가님은 집에서 작업을 하시나요.
A. 예전에 작업하면서 사진 한 번 보여 드렸었는데 그냥 거실의 식탁이자 작업하는 테이블에서 해요. 저희 고양이가 매일 올라오고요.
Q. 쓰기 싫다고 하시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있고, 이미 쓰고 계셔서요.(웃음) 작가님들이 대체로 그러신 것 같아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예전에 박경리 작가님이 본인의 굴곡진 삶으로 인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유의 이야길 읽었던 것 같은데, 저는 이게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의 차이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A. 그래서 사람들도 이미 되게 많이 만난 느낌인 거예요. 왜냐면 등장인물들이 이런 말 저런 말 하고 머릿속에서 대사도 왔다 갔다 하니까 그 사람들을 매일매일 만나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글이 치유가 된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그럼에도 현실 만남은 중요하고요.(웃음)
그리고 산책하는 것도 좋아해요. 기안84가 웹툰이 잘 안 풀릴 때 산책한다는 이야기를 봤었는데, 산책할 때는 그런 게 잘 안 떠오르는데 이상하게 산책을 하고 나면 잘 떠오르는 경험을 몇 번 했어요.
그리고 글 쓰다 막히잖아요. 묵혀 두고 딴짓하고 딴생각하고 산책이나 하고 그러다 보면 별다른 일상을 보낸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에 갑자기 딱 떠오를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뭐 걱정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싶은 거죠. <토마토 정원>에서 은수랑 지수랑 몸싸움하는 장면 있잖아요. 그건 앉아서 한 번에 쉽게 쭉 썼어요.
Q. 그 장면의 빠른 호흡대로 그냥 쭉 쓰게 되셨나 봐요.
A. 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지막까지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면 한 번에 쓴 글이 결국은 잘 쓴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고민하고 맘에 안 드는 건 계속 맘에 안 들어요.(한숨) 뭐든지 그렇게 한 번에 쓰고 싶죠.(웃음)
Q. 이시우 작가님도 예전에 <이화령>이란 작품을 쓰실 때 ‘일요일 저녁 예능프로그램 시작하는 시간에 쓰기 시작해 뉴스 시작하기 전에 마무리했다’고 하셨었거든요. 이따금 그런 경우가 있는 것 같고, 그런 글은 정말 그 스피디한 호흡이 생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A. 맞아요. 그래서 늘 그 순간을 기다리게 돼요. 늘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죠. 그런데 신이 나서 글을 쓴다기보단…… 늘 조립하고 깎아 내고 살 붙이기 했다가 지우고 이런 식으로 힘겹게 조금씩 써 나가는 것 같아요.
Q. 혹시 기존 단편 중 또 장편으로 개작해 보고 싶다고 느껴지는 이야기가 있었을까요? 이번에 너무 힘들어서 다신 안 하고 싶으실 것 같긴 한데요.(웃음)
A. 힘들기도 했지만 <은수>는 <토마토 정원>으로 개작하면서 즐거웠어요. <그때 보이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 너에게 없는 것> 같은 작품은 개작하면 재밌을 것 같기는 해요.
예전에 다른 곳에서 단편 청탁을 받아서 오디오북으로 나온 게 있어서 담당자님도 단편을 더 쓸 용의가 있냐고 물어보기도 하셨는데, 더 드릴 만한 단편이 없었어요. 장편 작업을 하고 있기도 했고, 쓸 수는 있지만 자가복제로 흘러갈까 봐 내키지가 않는 거예요.
저는 싫증을 많이 내는 타입이라 조금이라도 더 새롭게 쓰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장편의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더 즐겁기도 하고요.
Q. 시국이 어수선하던 작년 12월에 <토마토 정원> 출판 계약을 한 이후, 또 한 번 수정을 살펴 주신 후 2025년 11월에 개최되는 IP마켓 참가 때 맞춰 도서를 선보이겠단 목표로 부지런히 달려왔습니다.
감사하게도 3년 연속 참가사로 선정이 되었고 책 출간일이 행사 기간과 겹치는 11월 26일로 결정되면서 정말 행사가 개최되는 시기에 책을 선보이게 된 것인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출간 정보가 없던 상태에서 <토마토 정원>을 소개해 드리니 관계자분들도 현장에서 작품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여 주셨더랬어요.
요즘은 배우 매니지먼트사에서도 직접 제작도 많이 하시는데, 전도연 배우 등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담당자께서 미팅에 오셨는데 배우들의 매력이 드러날 수 있는 소설인 것 같고, 배우들의 연령대가 다양하고 인물들이 많아서 흥미롭다고 하시더라고요.
A. 오, 갑자기 전도연이라고 하시니까…… 그림이 나오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콘텐츠IP마켓 2025 황금가지(민음인) 부스
Q. 은수……?(일동 웃음) 나이대나, 컨트롤 프릭 역할 되게 잘할 것 같아요.
A. 그니까요, 빼빼 마르고 안광도 형형하고요.
Q. 딱 보면 호감형 미인인데, 보면 볼수록 뭔가가…….
A. 어울리는데요.
Q. 구상할 때 매칭한 이미지들은 아까 다 말씀해 주셨는데 영상화도 희망하시나요?
A. 너무 환영이죠. 다만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적어도 영상보다는 소설로 읽었을 때 더 재밌다, 이런 얘기는 듣고 싶어요. 모든 글 쓰시는 분들의 바람이 아닐까 싶은데 특히나 이렇게 플롯 위주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극작가와 뭐가 다르지, 하는 고민을 이따금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구성이며 시점 같은 것들을 신경 쓰게 될 텐데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그래도 영상이 낫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Q. 그런데 작가님 소설은 확실히 심리 묘사라든지 분위기가 섬세해서 소설로 읽는 차이는 뚜렷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영상으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고요. 배경이나 캐릭터가 뚜렷하기도 하니까요.
A. 드라마를 봐도 요즘은 시리즈가 6회만 해도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도 확실히 기억에 남는 건 좀 긴 호흡이기는 하더라고요. 애착이 생겨야지 더 뇌리에 많이 남고 생각도 많이 해 보게 되고 허우적거리게 되고요. 그래서 단편보다는 장편의 매력을 많이 느끼게 돼요.
Q. 뒤에 이상한 것(?)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토마토 정원>을 읽기 전후로 작가님의 이 인터뷰를 만나게 될 많은 미지의 독자님들께 전하고 싶은 한 말씀 전해 주시겠어요.(웃음)
A. 이건 제가 독서 모임 같이 하는 분들께 진심으로 드린 말씀이기도 한데요. 지인이라는 이유로 16,2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책을 사 준 걸로도 모자라 시간을 들여 읽어 주시잖아요. 저는 되게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솔직히 말해서 관심 없는 책이나 재미없어 보이는 책을 두세 시간 들여서 읽으라고 하면 안 읽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읽어 주시고 격려도 해 주시고 고맙기가 한량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 독자분들께도 같은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여러분의 서가에 제발 가치가 있는 한 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Q. 이거는 안 하셔도 되긴 하는데요.(웃음) 평소 가방 속에 휴대하고 다니는 일상템을 직접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사실 이게 제일 고민이기는 했거든요. 별거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무취향이라서 죄송합니다.(웃음)
Q. 밸런스 게임은 책 내용에 맞춰서 짜 봤습니다.
1. 서울 소재 공동체 주택에 입주해서 어울려 살기 vs 지방의 단독주택에서 호젓하게 살기
A. 첫 질문부터 너무한데요.(웃음) 편집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Q. 전 확실합니다. 전 공동체 주택에 절대 못 사는 인간입니다.(웃음) 저도 편집하면서 실제 공동체 주택 주거 사례도 좀 찾아봤거든요. 또 요즘엔 예술인 전용 임대주택도 많아서 그런 후기도 종종 보게 됐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커뮤니티 활동을 못 하는 사람은 다시 생각해 봐라’, ‘외향적이지 않은 사람은 힘들 수 있다’ 이런 거더라고요.
A. 그렇군요. 저는 부모님 댁이 단독주택이어서 태어나서 거의 한 30년을 단독주택에서만 살았어요. 그러면서 단독주택이 야기하는 수많은 노동과 그로 인한 부부 갈등과…… 단독주택은 자칫하면 폐가 속에 살게 될 수도 있다.(웃음) 그래서 차라리 INTJ로 페르소나를 갈아 끼워서 최소한의 어울림만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차라리 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그러다 또 외로울 때도 있고 바뀔 수 있으니까요.
Q. 요즘은 나라에서 하는 게 꼭 아니어도 지인들끼리 커뮤니티를 꾸려서 사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던데, 어쩌면 그런 형태는 괜찮을 수 있겠다 싶긴 하더라고요.
2. 공동체 주택 옆 방 이웃으로 밤낮 뒤바뀐 웹소설 작가 vs 공용 공간에서 운동하는 직장인
A. 전 둘 다 괜찮은데요?
Q. 정말요? 밤낮이 뒤바뀌면 리듬이 안 맞으니까 잘 때는 쿵쿵거리고, 그 사람이 잘 때는 내가 생활 소음이 나오기도 할 텐데요.
A. 아, 그러면 전 거실에서 운동하는 직장인이요. 안 보면 그만이니 적당히 피하고요. 하루 종일 운동하진 않을 거 아니에요. 제가 잠귀가 예민한 편이라서 전자는 안 되겠네요.
3. 아이를 돌봐 주는 컨트롤 프릭 vs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지만 무심한 사람
A. 아이를 돌봐 주는 컨트롤 프릭은…… 싫습니다.
Q. 사실 아까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상이 되었어요. 너무 은수 얘기긴 한데요. 지수는 너무 간절했으니까요.
4. 강력 사건 현장 탐험하기 vs 폐가 탐험하기
A. 저는 강력 사건 현장 탐험은 못 할 것 같아요. 폐가를 탐험한다고 해서 거기 혼령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잖아요.(웃음) 그래서 차라리 폐가가 낫다.
왜냐면 옛날에 교통사고 현장을 한번 지나치면서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처참했거든요. 기억력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잊히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강력 사건 현장 탐험 쉽지 않습니다.
Q. 지수가 정말 대단한 걸로.(웃음) 지수 막 혼자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이렇게 막 이야기하잖아요.
5. 연유 라테 or 블랙 커피
A. 저는 당연히 블랙커피입니다. 겨울에도 ‘아아’를 먹게 되는 것 같아요. 늘 수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편이라서 ‘뜨아’를 먹으면 시들시들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앗, 시들시들하다고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요.(웃음)
Q. 앗, 무엇이죠.
A. 어떤 분이 <토마토 정원>을 읽고 블로그에 소감을 올리셨는데, 책을 읽으면서 동해 바람에 서서히 말라 가는 과메기가 되는 기분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Q. 비유가 너무 찰떡인데요.
A. 보고 한참 웃었어요. 정말 천재다 싶어서요.(웃음)

6. 막걸리에 김치전 or 무알콜 맥주에 가벼운 안주
A. 저는 무알콜 맥주 따위는 먹지 않기 때문에요.(웃음) 당연히 막걸리에 김치전이죠.
사실은 저는 소은과 지수가 낮술을 먹는 걸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럼 지수가 좀 무책임하게 보일 것 같아서요.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수도 있고 해서 기분만 내는 설정으로 바꿨죠. 맥주는 지수가 좀 지겨울 것 같긴 했어요. 호프집 알바는 못 해 봐서 호프집 사장님들이 올린 영상 같은 걸 많이 찾아봤거든요. 맥주 잘 따르기 영상 이런 것도 되게 많거든요. 그런 걸 보면 하루 종일 맥주랑 싸우시더라고요.
Q. 작가님은 어떤 주종을 좋아하시나요.
A. 저는 주로 맥주를 마시는 것 같아요.
Q. 저도 요즘 일상에 변화가 좀 커서 그런지 맥주를 좀 더 마시게 된 것 같고 그렇습니다.(웃음)
7. 참소라를 먹을 때: 내장을 먹는다 or 내장을 먹지 않는다
A. 저는 당연히 내장을 먹습니다. 순대도 항상 간과 내장을 좋아하는 것처럼 맛의 다양함을 즐기는 것 같아요.
Q. 이런 요소들도 재밌었던 것 같아요. 참소라 내장의 독 이야기를 하면서 관계를 상징하게 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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