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는 몰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역의 특색이 그렇고,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이 그렇습니다.”
편집부 만장일치로 브릿G 출판 지원작으로 선정된 묵직한 스릴러 소설 『콘크리트』 단행본 출간을 기념해, 하승민 작가와 나눈 인터뷰를 매거진으로 공개합니다.
데니스 루헤인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전쟁, 즉 범죄소설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주목하며 “사회의 현실을 소설적으로 파고들면 그 끝에 범죄소설이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승민 작가 역시, 장르소설은 단순한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 시대나 사회성을 담아야 할 의무가 있고, 사건을 통해 이면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보여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바로 자신의 첫 작품인 『콘크리트』의 정체성이 조금씩 형성됐다고 말합니다.
‘연쇄 실종 사건 현장에 손가락이 남겨져 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쓰기 시작한 이야기는, 강렬한 캐릭터성과 촘촘한 심리 묘사, 눈을 뗄 수 없는 묵직한 서사를 갖춘 장편소설로 완성되었고, 계속해 새로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 안덕에 대한 흥미로운 설정부터, 주요 등장인물들의 설계와 모티브 등등 연재로는 미처 만날 수 없던 풍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안덕에 어둠이 깔렸다.
공장이 작업을 멈추고 잠드는 시간이었다. 불청객 같은 안개가 스며들고 나면 이 쇠락한 도시는 쥐와 까마귀의 차지였다. 주민들은 옷깃을 여미고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를 달아나듯 걸었다.
막힌 하수구가 역류해 도로에 썩은 물이 흘러들었다. 연이은 맹추위에 갈라진 논바닥은 시커멓게 물들었다. 안덕의 주민들은 농성이나 투표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굿판을 벌이고 거나하게 취하는 것으로 고된 인생을 달랬다. 그사이 고름 같은 구정물은 바다로 흘렀다. 안덕의 바다는 언제나 비린내로 자욱했다.
―『콘크리트』 중에서
Q. 작품 초반, 안덕이라는 도시에 대한 짧은 서술이 인상적입니다. 쇠락한 도농복합도시에 바다까지 연결되어 있다니, 쉽사리 떠올릴 만한 지역이 없는데 집필하실 때 혹시 참고한 지역들이 있으신가요?
A. 안덕은 구단지와 신단지로 나뉘어 있는 지역입니다. 구단지는 한때 융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한 지역이고, 신단지는 몰락한 안덕이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지역이지요. 구단지 사람들은 가끔 그 곳을 벗어나 신단지에 거취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많은 묘사가 되어있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두 지역의 갈등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안덕에는 ‘맹티고개’라는 언덕도 있습니다. 안덕을 길게 가로지르는, 넘기가 쉽지 않은 같은 곳이에요. 바닷가가 지척에 있는데도 버스를 타고 빙 둘러 가는 게 편할 정도죠. 그 언덕을 넘으면 바다가 나옵니다. 안덕의 바다는 더 넓은 곳으로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밖으로 나간 것들을 끝없이 돌려 보내는 곳이에요.
말하자면 안덕은 구단지와 신단지로 경계가 나뉘어 있는, 섬처럼 폐쇄적인, 한때는 철공소 같은 공업이 발달했던, 그리고 바다 지척에 위치한 언덕이 있는 곳입니다. 글을 쓰면서 독자분들 중에 이 상징을 찾아내는 분이 있을지 궁금했는데요. 안덕은 어떤 도시가 아니라 한반도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맹티고개는 태백산맥인 셈이지요.
Q. 작중 배경을 폐쇄적인 소도시로 설정했을 때 흔히 연상할 수 있는 창작물들과 이미지나 인상이 겹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으셨는지요.
A. 다른 작품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러면 뭐 어때 싶었습니다. 배경이나 소재라는 건 음악으로 치면 코드 같은 것인데, 같은 코드 진행에서도 무수히 많은 변주가 일어나지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써야 합니다. 쓰려는 이야기에 가장 어울리는 배경을 선택해야 하고요. 창작을 하려는 사람이 스스로 제약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덕과 비슷한 배경으로 먼저 작업을 했던 수많은 창작자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수많은 창작자가 유사한 배경과 소재를 두고 변주를 이루어나갈 겁니다. 창작물은 그런 식으로 발전해나가는 거라 믿습니다.
Q. 처음 브릿G에서 『콘크리트』를 접했을 때, 작품이 가진 무게감에 깜짝 놀랐습니다. 특별히 작품을 집필하면서 참고하셨던 책이나 작품이 있으셨는지요?
A. 특별히 참고한 작품은 없었는데요, 평소에 좋아하던 소설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요 네스뵈나 스티그 라르손 같은 작가를 좋아합니다. 북유럽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 고발성 소재나 지역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그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이국적인 묘사가 소설의 배경을 만드는 데 많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장르소설은 단순한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라 시대나 사회성을 담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을 통해 이면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신문 기사나 뉴스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흔히들 우발적 범죄라고 얘기하는 사건들에도 이면에는 여러 층위가 존재하고 있었어요. 사건이 현상이라고 하면, 현상 너머에 있는 배경에 더 큰 흥미를 느낍니다. 뉴스를 보면서 그 일이 벌어지게 된 경위를 분석하거나 상상해보는데요, 그런 과정에서 『콘크리트』라는 소설의 정체성이 조금씩 형성됐습니다.
Q. 주인공인 세휘의 설정이 이채롭습니다. 이혼과 퇴직, 아들을 홀로 데리고 낙향하였지만 현실은 어머니의 병환이죠. 게다가 미스터리한 사건에 휘말리기까지 하고……. 실제로 서울지검 검사 출신이 이렇게 몰락한 삶을 살기가 쉽잖아 보이는데요, 세휘라는 인물을 창안했을 때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을 알 수 있을까요?
A. 『콘크리트』는 몰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역의 특색이 그렇고, 모든 등장인물의 운명이 그렇습니다. 세휘도 그 맥락을 함께하는 인물이지요. 몰락할 것 같지 않은 인간이 가장 몰락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점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라야 했고요.
범법을 저지르는 것도 개의치 않는 초반의 행동도 그런 의도가 반영된 장면입니다. 거리낄 것이 없어야 했고, 그런 강단있는 인물이 작은 도시에 들어가 새로운 세계의 영향력에 휩쓸려 무력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조금만 프레임을 바꿔 바라보면 전혀 다른 기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세휘를 통해 드러내려 했습니다.
Q. 세휘의 아들인 수민은 어찌 보면 세휘의 기대와 달리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누가 봐도 방치된 생활을 하는 게 보이는데도 엄마인 세휘는 이걸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는 거 같아요.(심지어 강남으로 돌아가서 1류로 키우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죠.) 게임에만 빠져 있다거나 부모에 대한 왜곡된 애정 등은 안타깝기까지 했는데요. 수민의 캐릭터는 혹시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을까요?
A.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요. 사회성이 부족하고, 애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 하는데 공부는 엄청나게 잘 하는 애였어요. 그 친구 집에 놀러갈 일이 있었는데 어쩐지 그 친구 성격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문제집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하루 종일 풀어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게다가 생일 선물로 현미경을 받고 좋아했는데, 그게 정말 그 친구가 원하던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임기를 선물 받았다면 더 좋아하지 않았을지. 부모님의 은근한 기대가 압박이 돼버린 경우가 아닌가 해요. 너는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다, 너는 현미경을 선물 받으면 좋아하는 아이다, 너는 부모님 말을 잘 따르는 아이다……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지 않나요? 부모의 기대와 다르게 성장해버린 아이들의 이야기요. 특히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을 조금씩 차용해 이야기를 이끌어봤습니다.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수민은 그런 생각을 상징하는 캐릭터였습니다. 세휘는 야망이 있고, 지금껏 자신의 뜻대로 살아온 인물입니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보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수민은 스스로 판단하지 못 하는 아이예요. 부모의 세계 속에서 흘러가는 존재입니다.
수민의 이야기만 따로 떼어 놓으면,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자신을 인격체로 대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 세계를 벗어나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수민 스스로는 자신을 주체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세계에 휩쓸려버리는 결과가 되지요. 의존하는 대상이 바뀐 것 뿐입니다. 약하고 불쌍한 아이지요.
Q. 작품을 읽으면서 일부 등장인물에는 의도적으로 다소 과장된 캐릭터성이 부여된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특히, 도연이 엄마 같은 경우요. 이런 캐릭터성을 드러낸 건 장르적 의도가 반영된 걸까요?
“검은 덩치가 눈 앞에 있었다. 실루엣 위로 눈알이 새파란 안광을 뿜어냈다.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그 존재가 위협이 되는 부류였다.”
A. 사람이 어떤 존재를 대할 때 사진처럼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인상적인 몇 가지를 크게 부각시켜 기억하죠. 현실을 기억하되 그걸 되새김질 할 때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인식하기 마련입니다. 묘사는 그 되새김질의 역순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소설의 등장인물이 느꼈을 감정을 투사해 묘사하고, 그게 독자에게 전달될 때는 각자의 괴물이 만들어져 있기를 원했습니다.
Q. 노용기와 세휘의 어릴적 에피소드는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작품에서 둘이 좀 더 콤비처럼 움직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 일견 아쉽기도 했습니다. 둘에 관한 작품 속 이야기는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설정이었나요?
A. 맞아요. 노용기와 세휘는 처음부터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안덕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어요. 노용기는 안덕에 순응하고 이용하며 사는 존재고, 세휘는 안덕을 거쳐 가는 통과점으로 생각하죠. 노용기가 세상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인물이라면 세휘는 강한 척하면서도 사실은 피하고 도망치기에 바빠요. 거리낄 것 없이 강해보이는 한 사람이 몰락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두 사람은 엮일 듯 하면서 결국 갈라서야 했습니다.
Q. 서울에서 지방으로 좌천된 지 5년이나 된 기자 한병주의 이야기는 작중에서 가장 직업적인 부분에서 사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습니다. 취재를 통해 창안된 이야기인지요?
A. 취재는 거의 하지 못 했어요. 아무래도 책 한 권 못 내본 사람이 소설 쓰겠답시고 다른 사람들 시간 뺏는 게 미안했거든요. 기자 쪽 이야기가 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대학 전공 때문이 아닐까 싶고요. 덕분에 기자로 일하고 있는 지인들이 몇 명 있고, 평소에 들었던 현장 이야기를 글로 옮겨 봤습니다.
기자들에게는 분노와 안쓰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평소에 관심이 많은 업계이기도 하고요. 신입 기자 생활을 하게 된 지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른 나라 소식인 것처럼 흥미로웠어요. 기자 생활을 하며 가치관이 변해가는 모습도 지켜봤고요. 조직이 개인의 정체성까지 바꿔버리더라고요.
여담이지만 『콘크리트』가 출판된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는 글 쓰기 전에 취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콘크리트』라는 책을 쓴 사람인데, 차기 소설을 위해서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하고요. 정말 좋네요.
Q. 실종사건마다 범인이 손가락을 남겨둔다는 설정은 꽤 충격적인데요, 손가락을 남겨두는 의미나 의도된 바가 무엇이었을까요? 또한 반드시 방화를 저지르는데 이는 범행에 대한 흔적 지우기였을까요?
A. 범인에게 손가락이라는 건 다음 사건을 의미합니다. 손가락은 다섯 개니까 다섯 개의 사건이 일어날 거라는 암시지요. 그 과정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피해자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거예요. 손가락마다 가지고 있는 상징도 담겨 있습니다.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요. 권력, 지시, 비난, 결속, 약속. 이건 안덕의 악인들이 가지고 있던 속성이기도 하고, 범인이 처단하거나 이용하려는 속성이기도 합니다. 챕터의 제목이 각각의 손가락을 의미하는데, 독자분들이 이걸 눈치채셨는지 궁금하네요.
화재는 흔적을 지우기 위한 방법이 맞아요. 범인이 복잡한 방법으로 현장을 은폐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짧은 시간 안에 피해자를 처리하고, 손가락을 남겨놓고, 흔적까지 지워야 하니까요. 흔적을 지울 가장 쉬운 방법이 뭘까 고민한 결과가 방화였어요.
Q. 작품의 결말에 이르면 왠지 후속작을 암시하는 느낌도 보입니다. 혹시 후속작 혹은 마지막에 밝혀진 흑막을 토대로 시리즈물에 대해 염두해 두고 계신 게 있는지요.
A. 후속작에 대한 생각도 해봤는데, 이쯤에서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시리즈물이라면 악인이라도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은 마땅히 그럴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안덕은 여기까지!
Q. 브릿G에서 『콘크리트』 연재를 종료하면서 다른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새로 집필하시는 작품에 대해 살짝 귀띔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스릴러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기억과 자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도시가 배경이고요. 40년에 걸쳐 한 사람에게 새겨진 트라우마,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다시 찾는 내용이에요. 개인의 기억을 더듬는 동시에 근현대의 기억을 더듬어 나가려 합니다.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라 배경 조사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어요. 올해 안으로 완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 저자 소개 프로필을 보면 음악을 하셨다고 하는데,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A.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어요. 음악도 소설도 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고 소설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죠.
소설은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는데, 배운 적이 없으니 쉽게 봤습니다. 그래서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쓰다 보니 엄청난 작업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세 번 정도 뒤집고 다시 썼어요. 배경만 남겨놓고요. 쓸 때는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작업했는데 끝나고 보니 소설 쓰는 일이 더 즐거워졌습니다. 이제는 글도 쓰고 음악도 할 수 있다 생각하니 세계가 좀 더 넓어진 느낌이 들어요. 아마 이 기분을 느끼고 싶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이건 인터뷰의 거의 필수 공통 질문인데요( ) 브릿G에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 그 계기와, 브릿G에서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첫 작품으로 추리·스릴러 소설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요.
A. IT 회사에서 일하며 플랫폼이 창작물을 상품으로 대하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음악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이기도 하고요.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판단이겠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있었어요.
브릿G는 확실히 출판사에서 만들고 운영하는 플랫폼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브릿G에서 선택을 받으면 뿌듯할 것 같았어요. 게다가 황금가지를 원체 좋아합니다. 출판사를 보고 책을 고르는 건 아닌데, 맘에 드는 책을 구매하고 보면 황금가지에서 나온 경우가 많더라고요.
장르는…… 추리소설을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연쇄 실종 사건 현장에 손가락이 남겨져 있다면?’ 이라는 질문에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는데요. 얼개를 잡다 보니 이야기에 가장 어울리는 구성이 추리였습니다.
Q. 그렇게 브릿G에 오셔서 연재를 통해 작품을 처음 공개하셨는데, 추리는 사건을 끊임없이 복기해야 하기 때문에 회차별 연재하는 형태에는 취약한 장르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재하시면서 특별히 어렵거나 신경쓰신 부분이 있으신지요.
A. 연재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은 아니었습니다. 웹소설, 웹툰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완결된 장편소설을 써두고 연재를 시작했어요. 때문에 연재를 할 때는 어디서 끊어야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때쯤 끊어야 좋다는 건 알지만 애초에 그럴 의도로 쓴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분량이 들쑥날쑥해지는 일도 있었어요. 연재 과정에서 몇 차례 수정을 하기도 했고요.
독자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콘텐츠를 동시에 즐기고 있을 거라, 콘크리트의 앞선 이야기를 충분히 기억하지 못 하는 상태에서 다음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재를 자주 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마지막 챕터를 제외하면 하루에 한 편씩 연재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콘크리트』는 오랜 시간 연재하지 못 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을 보면 장편 소설 분량의 경우 몇 개월에 걸쳐 연재를 하시더라고요. 다만 여전히 소설의 완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앞으로도 연재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플랫폼의 특성에 맞춰 글을 쓰게 되면 상상력이나 연출에도 제약이 있을 것 같아서요.
Q. 마지막으로, 브릿G에 작품을 공개하고 출판지원작에 선정되어 출판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과정에 대한 소회 한마디 부탁드려요. 단문응원이나 리뷰 등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과정이 있으셨을 텐데요.
A. 연재할 분량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한 챕터씩 올려놓을 때마다 달리는 댓글, 그걸 통해 독자들의 생각을 곱씹고 반성하고 의지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생각하지도 못 했던 오류나 의견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 없이 읽고만 가는 여러 독자분들의 방문 기록을 살피는 것도 즐거운 일과였습니다.
출판지원작에 선정되었을 때는, 기쁘면서도 몹시 부끄러웠어요. 덤덤한 척하면서 메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만 한 글자 한 글자 답변을 적고 발송 버튼을 누를 때마다 어찌나 많은 생각이 오가던지요.
책을 낼 기회를 얻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숨어있는 수많은 작가분들을 발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승민
댄서를 꿈꿨고 때때로 락밴드를 했다. 극단을 어슬렁거렸으나 공연기획자로서의 삶은 길지 않았다. 돈은 필요한데 정장을 입는 건 싫어서 IT 회사를 다녔다. 『콘크리트』는 세상에 내놓는 첫 소설책이다. 20세기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고 있다.
쇠락한 도시 안덕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 방화사건, 그리고 실종된 남성들. 하나뿐인 아들을 지키기 위해 검사직을 던지고 고향 안덕으로 내려온 세휘는, 도시의 권력을 쥔 당숙의 제안으로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날아든 여러 장의 폴로라이드 사진. 세휘의 주변인들을 찍은 사진들엔 저마다 ‘다음은 누구?’라는 글자가 적혀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