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나무 숲』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쓴 소설이다.”
Q. 『얼음나무 숲』 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그만큼 독자들의 사랑도 많이 받아 온 작품입니다. 『얼음나무 숲』은 작가님께 어떠한 의미가 있는 소설인가요. 처음 책을 내셨을 때와 또 달라진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얼음나무 숲』은 제가 심적으로 한창 괴로워하던 시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쓴 소설입니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이 저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전까지 여러 직업, 진로 등을 놓고 고민하면서도 항상 마음 뒤편엔 ‘소설가’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도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음나무 숲』이 뜻밖에도 독자 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서, 내가 정말로 소설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확신이나 가능성을 보았다기보단, 도전해 보고 싶은 의지를 준 소설입니다.
Q. 『얼음나무 숲』은 정말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고대 익세의 전설부터, 음악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통일된 아름다움이 문장의 표현으로 넘나들며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낡은 질문이지만, 음악 그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미스터리 스릴러인 이 작품을 애초에 어떤 출발선에서 집필하게 되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A. 대학교 학부생 시절 어느 교양과목을 듣다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다 함께 관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영화가 준 충격은 정말 놀라웠는데, 그렇게 뭔가에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덕분에 음악이 좋아졌고,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좋아졌습니다. 많은 음악을 들었고 음악가들의 생애에 관련된 이야기, 나아가 다른 예술가들의 이야기에도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찬사를 글로 표현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구상의 시작은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작품 속에서는 ‘음의 언어’로 표상되는, ‘말이 되는 음악’이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이 표현이 실은 어디에서나 가장 어려운 행위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말이었는데요, ‘언어’, ‘말이 된다’라는 것을 어떻게 풀이하시는지 조금 더 자세히 여쭤 봐도 될는지요.
A. 개인적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체 간에 시대를 초월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음악이 가장 근접할 거라 생각합니다. 언어는 서로 다르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음악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슷한 감정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즐거운 음악은 누가 들어도 즐거운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우울한 음악 또한 그렇지요. 이건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 동물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러한 방식을 확장하여 생각해보면 음악에 통달한 천재들 간에는 그들 사이에만 관통하는 언어, 초월한 음악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택받은 몇몇 이들만 알 수 있는 그런 거죠. 우리가 글을 쓰거나 말하듯이 하는 형태라기보단, 시처럼 함축된 언어일 거라 생각합니다.
Q. 음악의 도시로 표상되는 에단 시민들의 집단적인 광기, 바옐만을 향하던 고요의 무한한 순수, 백색의 무결함을 자랑하던 얼음나무 숲, 천재 예술가를 좇는 섬뜩한 동경 등… 이 작품 속 일련의 모든 것은 서로를 욕망으로 탐닉하다가 결국 그 이면의 속성이 바닥까지 드러나게 됩니다. 고정된 아름다움도 영원한 선함도 없는, 미와 추, 선과 악의 개념을 끊임없이 뒤흔들고,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본래의 속성을 배반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계속해 등장시킵니다. 예술 그 자체, 또는 행위자로서 예술가의 이면적인 속성은 필수불가결한 관계라 보시는지요?
A. 개인적으로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적인 악처럼 극단적으로 나누는 것보다, 두 개를 동시에 지녔거나 얽혀 있는 걸 좋아하고 또 세계를 이루는 것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특히 그런 혼돈과 역설을 잘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필수불가결한 관계라고 본다기보단, 제가 그런 걸 좋아하기 때문에 글 속에서도 드러나는 모양입니다.
Q. 바옐을 보면 광기에 휩싸인 에단의 시민들을 사랑할 수 없음에도 에단이라는 도시 자체에는 일말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굳이 사람이어야 한다기보다, 어떤 태도나 공간의 역사를 더 사랑하는 모습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성역’으로 구분되는 에단은 어떤 의미가 있는 도시인가요? 아니면 특정한 곳을 염두에 두고 구상하셨다거나 하는 모티브가 있는지요.
A. 특정한 모티브는 없고, 오직 음악을 위해 음악에 바쳐진 도시, 그런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느 골목을 걸어도 멀리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고, 모두가 음악을 사랑하는 그런 도시를요. ‘성역’은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음악가들의 일생을 대변하기 위한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모두가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순례하듯 가고 있는 거죠. 음악이라는 종교를 품고.
Q. 명확한 장르로 분류되거나 한정되기보다는 몽환적인 매력이 가득한 작가님의 필력이나 작품의 분위기가 늘 놀랍게 느껴집니다. 장르 구분에 대해 딱히 의식하지는 않으시는 건지요.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A. 예전부터 그저 쓰고 싶은 글을 써 왔는데, 장르가 모호하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습니다. 스스로도 굳이 이런 장르다 저런 장르다 나누고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지향하는 건 재미있는 글, 이게 가장 중요하고 거기에 저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넣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독특한 분위기와 개성이 느껴지면서도, 재미와 가독성 또한 놓치지 않는 글을 쓰는 게 현재로서는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예술가의 정체성과 내밀한 속내를 깊이 탐구하고 주효하게 다루어 온 작품들을 두루 쓰셨는데, 작가님 스스로 풀어내고 싶으셨던 이야기가 많은 주제였던 건지 궁금합니다.
A.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항상 예술가들의 생애나 예술과 관련된 주제의 글 또는 영화를 볼 때마다 깊이 빠지고 공감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을 쓰게 되기 마련이죠. 그래서인지 제 글에서도 그런 성향이 묻어나는 것 같네요.
Q. 작품 집필은 보통 어떻게 하는 편이신지요. 주로 글을 쓰시는 공간이 있다거나, 일정 시간을 정해두고 글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작가님께서도 글을 쓰실 때 작품 속 장면처럼 집요하게 몰두할 때도 있으신지요.
A. 전업 작가가 된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 일정한 패턴이 없습니다.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법으로 작업을 해도 어느 날은 잘 될 때가 있고, 또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정말로 두서가 없어요.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래도 조용한 밤에 일하는 편이 제게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장면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듣습니다.
Q. 글을 안 쓰실 때는 무얼 하며 보내시는지요. 또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여행지나 일정이 있으신지요.
A. 여러 가지를 하는데, 관심이 가는 대상이 항상 바뀌어서 이것저것 산만하게 많이 합니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그때그때 달라지곤 합니다. 다만 놓지 못하는 건 영화와 책, 음악, 게임 정도가 있겠네요.
여행은 갈 수만 있다면 언제나 가고 싶지요. 지금은 여건이 허락이 안 되는데, 다음번에 여행 갈 기회가 생기면 미국으로 갈 생각입니다. 해리포터 테마파크에 꼭 가보고 싶거든요.
Q. 작가님의 작품은 드라마 씨디나 만화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많은 인기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원작의 장르 확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는 불특정한 이미지로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 2차 작업의 경우 원작의 상상력 제한에 있어 우려하시는 부분은 없는지 또 작업 과정에 참여하시는 경우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원작의 확장이나 2차 창작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원작은 원작 나름으로, 2차 창작은 또 그 나름대로 매력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2차 창작물에 원작자가 참여하는 건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그건 그쪽의 전문가가 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결과물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원작자는 뭐랄까, 자기가 만든 것이기에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기도 어렵고, 포기하지 못하는 고집 같은 게 있어서… 차라리 타인이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껏 만들어진 어떤 2차 창작물에도 제가 과정에 참여한 적은 없습니다.
Q. 황금가지에서 『얼음나무 숲』 종이책 재출간과 함께 작가님의 신작도 발간될 예정입니다. 신작을 기다리는 많은 독자 분들을 위해 작품에 대한 아주 간단한 힌트라도 주실 수 있는지요. 더불어 『얼음나무 숲』을 처음 만날, 또 몇 번을 거듭해 다시 읽어주실 독자 분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신작은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불행한 과거와 죄의식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못하는 아이죠. 그리고 악마와 오컬트와 신비주의가 뒤섞인 참으로 정체를 알기 어려운 글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적극 반영되어 있지만 너무 마니악하지 않고 독자 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서 쓰고 있습니다.
『얼음나무 숲』은 벌써 출간한 지 7년을 앞두고 있네요. 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과분한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덕분에 지금껏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었고, 재출간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기까지 잊지 않고 사랑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거듭되어 읽히는 글의 캐릭터들은 언제나 어느 곳에선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 생명이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이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얼음나무 숲』과 함께 듣기 좋은 음악들, 하지은 작가의 플레이리스트
Chpin – Nocturne No.13 in C minor Op.48-1
Chpin – Nocturne in E minor Op.posth.72 No.1
Zbigniew Preisner – Decision
Zbigniew Preisner – Love story
두번째 달 – 앨리스는 더이상 여기 살지 않는다
두번째 달 – 얼음연못
Acoustic Cafe – Long long ago
Acoustic Cafe – Tears
Hisaishi Joe – Hana BI
Hisaishi Joe – Two of us
Hisaishi Joe – The twilight shore
Secret Garden – Silent wings
양방언 – Solitude
양방언 – Separation